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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가짜 일반’에서 ‘게이’가 된 소중한 시간

by 행성인 2010. 7. 4.
- 2010 퀴어문화축제 : 퀴어퍼레이드 후기


2010년 6월 12일, 오늘을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에게 가장 큰 행사가 있었다. 바로 ‘2010 퀴어문화축제’의 하이라이트인 ‘퀴어퍼레이드’가 있는 날, 바로 그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들떠있었겠지만, 나에게는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 10년 만에 처음 참여하는 퍼레이드였기에 그 들떠있음은 더한 것이었다. 사실 바로 다음 월요일부터 기말시험이 있었지만, 그건 그날 퍼레이드에 참가하고자 굳게 마음먹은 나에게 아무런 걸리적거림이 아니었다.


날씨는 전날 밤부터 좋지 않았다. 새벽의 폭우가 지나가고 비가 잠잠해지나 싶더니 아침부터 빗줄기가 다시 굵어지기 시작했다. ‘이래가지고 행사가 제대로 진행이나 될 수 있을까?’하는 우려 속에, 시청을 지나 행사의 주 무대인 베를린 광장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부스를 세팅하고 축제 준비에 한창이었다. 그리고 곧 낯익은 얼굴들을 만났다.


우리는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와 부스를 공유했다. 오른쪽은 그들이었고, 왼쪽이 우리였다. 우리는 이번에 그동안 우리의 활동을 담을 사진들을 전시하고, 여러 가지 물품들을 팔기로 했다. 아, 물론 군형법92조 위헌판결 촉구 탄원서도 이날을 끝으로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위원회에서는 동성애허용법안반대국민연합(이하 동반국)광고에 대한 대응광고를 내기 위해 서명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선전물에 우리가 퍼레이드를 준비하면서 스캔했던 그 광고 원본이 크게 인쇄되어 있어 묘한 느낌이 들었다. 동반국 대응광고가 나오게 된다면 내 실명도 후원인 중 하나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일부러 내 필명(게이총각)이나 가명은 쓰지 않았다.




많은 비가 오는 와중에도 점점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덩달아 부스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외국인도 상당히 많았다. 뭐 외국인이야 학교에도 널려있고 평소에 길거리에서도 많이 보지만, 그들 중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는 경험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지를 보내주었다. 나도 또한 그들에게 지지로 답했다.


곧 행사의 개막을 알리는 공연들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6월 9일 강의차 한국에 와있던 친숙한 외국인, 시카고신학대의 테드 제닝스 교수가 특별 연사로 우리에게 지지의 말을 해 주었다. ‘여러분은 모두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라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사랑을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본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사랑도 당연히 존중받고 축복받아야 될 것이리라.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퍼레이드가 시작되니 행사 관계자 여러분들은 위치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방송이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드디어 1년에 하루, 거리로 나와 사람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지지를 호소하는 시간인 퀴어퍼레이드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가장 뒤의 차량을 운영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뒤를 따르게 되었다. 곧 흥겨운 음악과 함께, 빗속의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들의 행진, 우리들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는 좋지 않은 기상여건에 그리 곱지는 않은 사람들의 시선까지, 많은 것들이 우리를 위축시키려 하고 있지만 우리는 결코 위축되지 않았다. 월드컵 거리응원을 위해 붉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 사이를 당당하게 행진하는 무지개빛 행렬, 그렇게 긴 행렬은 붉게 물든 고층빌딩숲 사이를 행진하며 빌딩처럼 높은 편견의 벽과 더불어, 붉은 물결처럼 하나의 색, 하나의 관점만을 강요하는 사회의 시선에 ‘다양함’을 상징하는 무지개빛으로 도전하고 있었다. 물론, 폭력적이거나 80년대 분위기를 풍기는 진중한 분위기의 시위가 아닌, 우리들만의 즐겁고 유쾌한 시위의 방식으로.


사실 나는 지금의 청소년 친구들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빨리 인식한 편이다. 15살 때 이미 이루어지지 못할 짝사랑을 해 봤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 짝사랑이 깨지고 가장 가깝고 나를 잘 이해해 줄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흔히 ‘친구’라 하는)에 의해 아웃팅 당할 뻔하기도 했다. 그로 인한 트라우마 탓인지 나는 게이임에도 그동안 최대한 일반처럼 보이려고 부단히 노력해왔는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이반카페나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하지도 않았고, 그냥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살려 했다. 새로 사귄 친구들도 모두 일반이었다.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사교육으로 점철된 고3 생활을 거쳤고, 어찌하다 잘 되어 흔히들 ‘명문대’라 부르는 대학에도 들어갔고, 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스스로 부정하려 했던 탓인지 별 사고 없이 보통 사람들처럼 무난히 2년간의 나라의 부름에도 응답했다. 적어도 2010년 4월까지는, 나는 천성은 게이지만 겉은 철저히 일반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날 수많은 보통 사람들, 한때 내가 그렇게 되고자 했던 보통 사람들 앞을 행진하는 나는 더 이상 ‘가짜 일반’이 아니라, ‘게이’였다. 내가 게이임을 인정하고 처음으로 해 보는 나와 같은 사람들의 행진, 얼굴을 가린 것이 아니라 만인에게 당당히 드러내고 나는 게이임을 자랑스럽게 내비친 처음의 시간, 그리고 세상의 편견과 따가운 시선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 본 처음의 경험. 물론 이전에도 동인련에 들어와 서명을 받으러 길거리에 나가고 집회현장에 가보기도 했지만, ‘동인련’이라는 인권단체의 회원이 아닌 나 자신, 말 그대로 ‘게이’인 나 자신으로 참가한 1시간여의 퍼레이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퍼레이드가 끝나면 나는 다시 ‘가짜 일반’으로 살아야 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집에서 ‘가짜 일반’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퍼레이드에서의 소중한 경험들을 통하여, 이전까지 내가 ‘가짜 일반’으로 살아왔던 것과는 그 근본 자체가 달라졌다. 아웃팅의 위협이 두려워서,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아직도 그 10년 전의 경험이 두려워서 내 자신을 스스로 일반이 되고 싶은 ‘가짜 일반’으로 규정하는 우를 이제 더 이상 범하지는 않으리라. 가족과 사회에서는 현실적인 고려 때문에 ‘가짜 일반’으로 살지언정 내 자신에게는 절대 스스로 ‘가짜 일반’의 옷을 입히지 않으리라. 이제 ‘가짜 일반’이 아닌 ‘게이’로서의 나를 확립하고 인생을 설계하리라.




그리고 그렇게 퍼레이드가 끝이 났다. 그리고 이어진 ‘게이시대’ 친구들의 공연. 내가 그들과 비슷한 나이었던 10년 전, 생각하기도 싫은 경험을 하고 그 이후로 무려 10년간이나 스스로를 옥죄었던 것과는 달리, 그들은 밝은 표정으로 무대 위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끼’를 떨고 있었다. 귀엽고 풋풋한 모습. 나도 저럴 때가 있었을까. 그리고 무대 앞에서 춤추는 그들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귀엽다고 했지만, 나는 그들이 대견하게 보였다. 10년 전의 나의 모습, 즉 아웃팅만은 제발이라며 애원했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밝은 표정. 그리고 그들 스스로 게이라는 것에 대해 긍정하는 듯한 자신 있는 분위기. 한편으로 상상해 봤다. 지금은 비록 여건이 좋지 않아 별 진전이 없지만, 분명히 무대에 선 저 ‘게이시대’ 친구들이 대학을 나오고 직장에 들어가거나 자기 사업을 시작해 꿈을 실현해 나갈 때쯤이면 분명 많은 것이 바뀌어 있으리라. 무대 위에서의 당당한 모습들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분명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들, 우리들이 살기 좋아지는 대한민국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그들이 그런 당당함을 유지하는 데는 그들의 형뻘 되는 나 같은, 내 필명과 같은 20대 ‘게이총각’들의 노력이 그 기반이 되어야 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즐거운 상상을 마지막으로 해본다. 세계의 유명한 게이 퍼레이드들도 30년 전 처음 시작할 때는 수백명 정도의 조촐한 규모였다. 그러나 지금은 수백만 명이 참가하는 초대형 축제가 되었고, 일부 국가에서는 모든 종류를 통틀어 최대 규모의 축제가 된 곳도 있다. 2030년대 초반의 어느 초여름날, 왕복 2차로의 청계천길 부분통제가 아니라, 왕복 14차로의 영동대로와 8차로의 테헤란로가 전면 통제되고, 그 넓은 대로를 수십, 수백만 명의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들, 우리들이 장악하는 그날, 서울의 또 다른 중심 전체를 무지개빛으로 물들이는 감동적인 순간이 오면 어떨까. 아마도 그 순간이 오면, 나이든 나도, 그리고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게이시대’ 친구들도 그 대로의 어딘가를 20년 전인 2010년의 그날처럼 당당히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게이총각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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