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 그의 이름

Posted at 2010. 7. 4. 13:03// Posted in 무지개문화읽기
 

1. ‘지겨운 나른함, 질리게 봐온 창백함.’

1949년, 체코 이민 2세 출신의 상업그래픽 작가가 뉴욕에 첫 발을 내딛었다. 뉴욕, 그에게 그곳은 울트라 스펙터클의 신천지였다. 스케일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도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쏟아지는 광고와 온갖 상품들, 하늘을 찌르는 빌딩숲 사이로 사람과 자본이 넘실대는 풍경들. 모든 것이 사건과 뉴스로 소비되고, 사람들마다 ‘유행’이라는 세련됨으로 무장한 도시. 


대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에 입성하여 그가 처음으로 시작한 작업은 광고 일러스트였다. 그는 종종 흐드러진 코르셋에 온갖 장신구가 치렁치렁한 여성 캐릭터를 선전용 전단에 그려 넣으며 허리춤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더러 여성의 제스처와 표정을 과잉되게 연출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그려 넣기도 했다. 



‘나는 완전한 여자로 변신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남자들이 좋다. 왜냐하면 그들은 남자의 징후를 없애려 애쓰고, 여성적인 징후를 빨아들이려고 노력하면서 거의 두 배나 열심히 연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려는 말은 그 일이 아주 힘들다는 것이다.’


정련되지 않은 드로잉의 선은 인물의 인위적인 제스처를 강조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본모습보다는 인위성과 시각적인 스타일을 부각하는 특징은 상품광고에서 상품을 다루는 지침들과 비슷했다. 즉 상품의 ‘의미’는 중요치 않다는 것, 독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할 수만 있다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여장남자이든, 남장여자이든 괘념치 않았던 것이다. ‘스테이크를 팔지 말고 지글거리는 소리를 팔라.’고 말했던 광고주의 조언이 의미하듯, 대상의 본질보다도 중요했던 스타일과 디자인은 앞으로 그의 작업에 중요한 강령으로 자리 잡게 된다.


동시대의 대중문화와 함께 호흡했던 그의 작업은, 좋든 나쁘든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얻었다. 포스터, 잡지 일러스트와 같이 그가 주로 다루었던 매체는 대중문화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들이었다. 작업 기반에 있어 그는 이미 순수예술과 뿌리부터 달랐다.


그는 텔레비전에도 매혹되었다. 수많은 이미지들을 전함으로써 시선을 유혹하고 정보를 쏟아내는 기계, ‘텔레비전은 마법 같은 것이었다.’ 허공을 떠돌며 안테나에 걸려 특정 처리과정을 거쳐야만 소리와 영상으로 전환되는 거대한 전파의 그물, 사각의 화면에 쏟아지는 이미지의 향연. 텔레비전의 속성들은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흡사 금태환제의 중단선언 이후 변동환율제의 적용을 통해 날개를 단 화폐의 모습을 닮아있었다. 그 자체 종잇조각에 불과한 화폐가 사람들의 실제 삶을 변화시켰듯, 텔레비전의 뉴스와 드라마는 우리의 직접적인 삶을 잠식해갔다. 


텔레비전은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존재의미를 바꿔놓는데 일조했다. 텔레비전의 단편화된 신호체계와 대중장악력은 기존 매체들의 효력을 뛰어넘었다. 무게 없는 전파와 이미지는 급속하게 전 세계의 안방을 파고들었으며, 단편화된 텔레비전의 기호는 이 세계를 일시적이고 표상뿐인 화면의 연속으로 나열했다. 매순간 변하는 화면 속에 담겨있는 동시대인들의 모습,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들의 삶은 흡사 한순간 반짝하는 디자인과 유행 같은 것으로 비춰졌다.


텔레비전의 시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판화를 선택했다. 속물적 취지에서 판화는 대량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많이 팔 수 있다는 계산이 바탕에 전제되어 있었다. 하지만 표현의 문제에서 본다면 현대사회에서 넘쳐나는 이미지, 반복적으로 주입되는 사건들을 표현하는 데 회화나 조각 등 고립된 순수예술의 매체보다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판화가 주효했다 점도 간과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의 판화작업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은 팝적인 감각이 절정으로 발산되는 7,80년대보다 그 이전의 작업, 60년대 초중반의 작업들에 주목한다. 60년대 그의 판화작업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들을 관통하는 소재로서 죽음의 사건사고가 발견되는데, 죽음의 요소가 팝아트의 감수성과 본질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팝적 감각과 죽음의 연관성, 대관절 상극으로만 보이는 두 개념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워홀은 텔레비전과 신문을 통해 사고의 현장 속 익명의 희생자들이나 유명인들의 죽음을 포착했다. 작업을 통해 그는 가십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유명해지고 잊혀지는 현상이 한순간이라는 사실을, 심지어 누군가의 죽음 역시 한순간의 ‘사건’에 불과하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텔레비전은 사람들의 죽음을 끊임없이 보여줘 왔다. 통조림생선을 먹다가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경찰들의 총탄에 맞아 죽는 끝도 없는 사례들. 그에게 현대의 죽음은 반복되는 사건사고로 포착되어 금세 망각되는 일상적인 재난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이미지의 반복성을 강조함으로써 사건으로 표상되는 죽음에 매달렸다. ‘가십’으로 전락한 죽음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의도적으로 이슈와 관련된 인물들의 얼굴을 반복적으로 찍어낸다. 그는 똑같은 사고의 현장을 한 화면에 나열한다. 무관심할 만큼 반복되는 얼굴들과 사건사고들. 반복되는 이미지, 끔찍한 현장의 반복은 보는 이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지만, 나열된 동일이미지들은 몰입을 방해하고 우리의 시선을 분산시킨다.



더불어 판화의 성격상 찍혀진 이미지들에는 색조와 선들에 있어 조금씩 미세한 차이가 드러난다. 이는 사고현장의 작업도 그렇고, 전기의자도 마찬가지였으며 마를린 먼로와 재클린의 얼굴도 예외가 아니었다. 매번 다르게 찍혀 나오는 이미지들, 동일한 이미지 사이에 빚어지는 균열은 빈틈을 노출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단지 불완전한 표상만이 지겨우리만치 반복될 뿐, 그 이미지들은 우리로 하여금 어느 것도 기대할 수 없게 만든다. 단편화된 텔레비전의 화면들처럼 반복된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고정된 형상을, 통일된 형태의 의미를 부정한다. 신호화된 화면만 가득한 텔레비전처럼, 반복된 이미지의 판화에서도 사물의 본질은, 사람들의 본모습은 의문과 회의에 부쳐진다.


죽음과 유명세마저도 일시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으로 소비되는 풍경에 매료되면서도 그가 매순간 마음에 품었던 것은 일종의 ‘공허함’, 죽음의 사건보다도 심층적인 ‘죽음’ 이었다. 현실의 면면들이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텔레비전의 일시적인 이미지로 현현됨에 따라 대중들의 의식은 무뎌질 수밖에 없었다. 의식을 마비시키는 동안 온갖 저널리즘과 선전물들이 대중의 눈과 귀를 지배했고, 무심결에 지각된 화면 속에서는 얼마든지 여론이 조작되고 권력이 미화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필연적으로 의미나 가치관이 몰락한 현대사회의 혼란과 불안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넘쳐나는 사건사고 속에서 의미의 ‘부재’는 곧 키치와 캠프처럼 스타일을 우선하는 'POP'적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부재에 동반한 상실의 감수성은 텔레비전의 세계가 갖는 근본적인 무의미를, 가십과 쇼만이 허공에 판치며 막장가도를 달리는 현대사회의 이면을 보여줬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가 연회장에서 꽃단장한 신사숙녀들에게 쉬이 끌렸음에도 이들을 가리키며 해골과 시체가 지나다닌다고 운운했던 것처럼, 속물적이며 사업가적 기질이 다분한 캐릭터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주변에 추종자와 안티 팬들을 항상 몰고 다니며 온갖 염문을 뿌렸던 워홀에게 스타일이 전면에 부상하는 현대의 화려한 삶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말마따나 ‘지겨운 나른함, 질리게 봐온 창백함’ 이었다.

Andy Warhol, Skulls.



도시의 삶, 온갖 유행이 시시때때로 변덕을 부리며 바뀌는 곳, 빈부의 차이가 극에 달하지만 노숙자부터 세계재벌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라벨의 콜라를 마시고 있는 풍경은 모든 인간을 등가화 한다. 하지만 그것은 눈앞에 보이는 차별과 억압의 테제들을 취향으로 포장하고 은폐해버리는 자본주의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하물며 자본주의의 총아이자 세계자본의 성전으로 일컫는 뉴욕의 삶은 어떠했을까. 역동적인 도시풍경 속 가치관의 부재, 존재의 부재, 그리고 공허.


‘살아 있다는 것은 항상 당신이 원하지 않는 일에 너무 많은 품을 들인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는 뛰어난 사업수완을 가진 비즈니스 아티스트이기 이전에, 활발하게 요동하는 도시적 삶을 한 꺼풀 벗겨내면 덧없는 무의미만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염세주의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치기어린 염세주의자로 남지 않았다. 환멸적인 세상 안에서 나만 잘나면 된다는 식의 저급 나르시시스트로, 이면에는 속물적 허세에 빠져 세태에 순응하려 발버둥 쳤던 그저 그런 캐릭터로 머무르지도 않았다. 그는 사건이 남발하는 현대사회에 내재된 트라우마를 철저하게 관찰했다.



2. ‘15분 안에 당신은 유명해질 수 있다.’

그가 주목하는 또 하나의 매체는 비디오레코더였다. ‘사람들은 비디오레코더를 가지고 최상의 포르노를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친구들에게 보여줄 것이며, 또한 텔레비전을 통해 사람들을 훔쳐볼 것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개인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면, 비디오레코더는 사람들을 사건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그들은 타인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만큼 자신의 모습을, 텔레비전의 요란한 연예인들만큼이나 빛나는 이미지로 변신하여 뭍사람들로부터 시선을 한 번에 받고자 했다. 이를테면 텔레비전과 비디오레코더는 사람들의 관음주의와 노출주의의 양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매체였던 셈이다.


그 역시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스크린작업을 도왔던 젊은 조수들을 데리고 자신의 작업실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워홀의 작업실 Silver Factory와 영화촬영장면

 

그는 공장 부지를 자신의 작업실로 꾸몄다. 도시의 사각지대에 그는 은박과 은색 페인트로 도배를 하고 ‘실버-팩토리’(이하 팩토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작업실에는 부랑자, 콜걸, 큐레이터, 트랜스젠더, 게이, 예술가 작품판매자, 배우, 수집가, 레즈비언, 모델, 배우지망생, 저질의 식객 할 것 없이 모두가 찾아왔다. 파티, 마약, 섹스 등 퇴폐적이고 열정적인 이벤트들이 끊이지 않았던 그곳에서 그를 중심으로 넓은 인맥이 형성되었다.


하부문화의 아지트나 다름없던 팩토리는 어둡고 은폐된 하위공간의 위상을 뒤집었다. 어딘지 질펀해 보이는 그곳엔 사람들이 모이고 주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사람들은 팩토리를 거쳐 얼마든지 유명해질 수 있었다. 넘쳐나는 가십 속에서도 항상 목말라있던 대중들에게 팩토리의 사건사고는 좋은 ‘씹을 거리’가 되었다.


이목이 집중됨에 따라 그곳은 관음과 노출 사이의 긴장이 팽팽할 정도로 시선이 교차했다. 팩토리에 머무르는 사람들 또한 자신들이 다른 이들에게 관찰당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시선을 의식하는 그들의 행위는 부자연스럽고 연극적이었다. 그들의 본모습 보다는 연출된 비주얼과 시청각적 제스처가 전면에 드러났던 것이다. 팩토리의 분위기를 묘사한 많은 자료들은 그곳에 대해 어느 곳 보다도 과장되고 쾌활함이 넘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시선의 최중심에는 그가 있었다. - ‘앤디 워홀’, 그는 모든 것을 관찰했다. 그는 뒤집어진 게토공간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그곳의 멤버들을 주연으로 발탁하여 수편의 영화와 기록물들을 제작했다. 그는 팩토리의 구성원들이 빛날 수 있도록 장려했고, 더불어 그들을 장악했다. 그는 인위적이고 연극적인 것, 트랜스젠더와 드랙퀸들에게 애정을 아끼지 않으며 이들을 배우로, 스타로 만들어냈다.



팩토리의 사람들


 

‘15분 안에 당신은 유명해질 수 있다.’ 그는 스스로 스타가 되어 남들의 눈에 쉽게 노출되기보다는 디렉터임을 자처했다.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유명세를 좇기 보다는 ‘앤디 워홀’이라는 이름하에 ‘탈(脫)인간적인’ 지배를 추구했던 것이다. 숱한 염문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무성애자라는 소문이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던 것은, 더불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루머들 속에서도 그의 구체적인 사생활의 사례들은 비밀에 부쳐 있는 것은 아마도 그가 ‘나는 비디오와 결혼했다’고 선언함으로써 야단법석의 화려한 무대로부터 한발 물러나 철저하게 관찰자의 위치를 고수했던 면모를 부각했던 점에 있었다고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하에 일어나는 어떤 실수나 우발적인 사고들을 환대했다. 자신의 고용자들이 판화를 찍으며 자칫 실수를 할 때마저 그는 독려하며 다른 작품보다 값비싸게 팔아치웠다. 그는 팩토리에 넘쳐났던 ‘스타’에 안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들 머리 위에 군림하며 ‘슈퍼스타’니 ‘하이퍼스타’니 하는 것들을 ‘발명’하고 만들어냈다. 그는 그 자체 하나의 회사, 비인간적 지배자, 하나의 상징적인 이름으로서 ‘앤디 워홀’을 표방했다. ‘나는 기계이길 원한다.’ 그는 ‘앤디워홀’이라는 하나의 브랜드이길 원했다. 자신의 작품을 대량생산했던 하나의 공장이었고, 다수의 영화를 제작했던 스타양성소였으며, 팩토리 안팎의 많은 작가와 배우들과 염문을 일으켰던 사건의 중심이었다. 그는 엄청난 전략가이자 관찰자였던 것이다.    


그에겐 일상의 대량생산품들을 비즈니스 아트상품으로 내놓는 지략이 있었다. 더불어 그에게는 옷장 속의 성소수자를 잘 포장된 슈퍼스타로 전환시킬 수 있는 연출력도 있었다. 예술과 대중문화를 가로질렀던 그의 ‘비즈니스’적인 삶은, 오늘날 자기계발의 이상적 주체상으로 떠오르는 ‘기업가 정신’을 선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창조적인 주체, 자기혁명의 주체로 포장되는 새로운 산업일꾼의 표본으로서 앤디워홀은 근 몇 년 사이 부쩍 각광받으면서 국내외 수많은 앤디워홀 추종자들을 만들어냈다. (그들 중 상당수의 경우 저급한 나르시시즘과 물신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를 팝아트의 선구자로 추앙하고, 혹은 당대 사교계의 핵심이자 사업수완 좋은 장사꾼이라는 ‘불명예’를 부여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위상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본다. 온갖 가치관들이 횡행하는 미국사회에서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적어도 그는 현대사회 자본과 유행이 휘몰아치는 도시에서 ‘상실’의 상흔을 발견할 수 있었던 ‘우울한 영혼’이자, 존재의 불안을 팽창의 기폭제로 전환시킬 수 있었던 ‘현대적 마인드의 예술가’였다.



다재다능했던 그의 능력을 단순화시켜놓은 해석들은 지천에 있다. 굳이 여기서 뭍 평가들에 정당성을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온갖 유행과 디자인이 난무하는 자본주의 시장판 속에서도 단순히 스타일과 유명세에만 젖지 않으며 세상을 관조할 수 있었던 그의 면모를, 멀티플레이를 구사함으로써 세상을 자기 스타일대로 이끌어가는 동안에도 스타일과 유명세의 핵심에 자리 잡은 본질적인 공허를 시종일관 간직했던 그의 이름에 초점을 두었다.


다만, 상실과 우울의 존재적 바탕을 팝적인 감각으로 발현한 그의 활동들 속에 버무려진 성소수자의 존재 위상은 본지에서는 다루지 못했지만 분명 간과되지 말아야할 문제이다. 기실 그의 많은 작업을 통해 주변문화의 당사자들은 ‘스타’의 모습으로 포장되어 대중에게 드러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사회 속 가벼운 엔터테이먼트 상품으로, 정치적 여과 없이 유미주의적 가치만을 강조하는 미적 대상으로서의 ‘반쪽뿐인’ 드러남이었다. 워홀 사후 그의 ‘스타’들의 행보는 그리 밝지 않았다. 다수의 이들은 한순간 유명해졌던 만큼 금세 시들어 잊혀져 다시금 어두운 게토로 들어가거나 두문불출했다.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과 HIV/AIDS의 감염의 상황 속에서 자살을 택하기도 했던, 그들의 유쾌하지 않은 ‘최후’를 상기한다면, 우리는 예술과 성소수자 정치가 별개의 질서와 구조를 갖는 장이 아님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성소수자 존재가 상품으로서, 미적 대상으로서 상품사회에 편입되었던 역사를 우리는 ‘독재적’인 워홀의 작업방식에 따른 것으로 봐야할까. 아니면 예술적 마인드만큼 치열하지 못했던 그의 정치적 감수성 문제로 탓을 돌려야 할까. 그에 대한 ‘단죄’의 필요성과 시도들은 예의 전략이 되풀이되고 있는 최근 한국의 상황들을 겨냥하고 있다. 빛나는 감수성 뿐 아니라 발견되는 문제에서조차도 그는 선구자의 자리를 또렷이 새긴다. 여전히 그의 이름은, 되새겨질 필요가 있다.


‘앤디 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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