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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촛불에게, 성소수자 운동이 나아갈 길을 묻다

by 행성인 2008. 7. 30.
 


정욜_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출범 3개월 만에 대통령 지지도를 10% 미만으로 떨어뜨렸던 촛불의 힘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과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과연 그 끝이 ‘이명박 퇴진’이라는 해피엔딩을 가져올 수 있을까? 주말마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내고 있을 것 같은 이명박에게 최근 참가인원이 줄어든 촛불의 모습은 나름 므흣한 표정을 짓게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서울 시내 곳곳을 누비며 ‘이명박 퇴진’을 외치는 시민들을 보면 촛불의 힘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공안탄압, 경찰폭력, 궂은 날씨가 무색할 정도로 너무도 당당하게 촛불은 타오르고 있다. 청소년들의 외침으로 시작했던 5월보다는, 100만이 모여 이명박 탄핵을 외쳤던 6월10일보다는 비록 적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촛불은 비정규직 철폐, 사회공공성 강화, 물, 가스, 전기, 의료 민영화 반대 등의 다양한 의제로 확장되며 그 생명력을 끈질기게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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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여성 / 무자비하게 촛불을 탄압하는 경찰 /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및 여러 정치적 의제들을 주장하는 참가자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분노는 촛불에 또다시 불을 지필 수 있다. 그것을 잘 아는 이명박은 ‘서민들의 분노’라는 휘발유가 촛불에 끼얹어질까봐 노심초사하며, 자신의 유일한 무기인 ‘경찰폭력’과 ‘공안탄압’으로 가까스로 이 상황을 버텨내고 있다.



  자신감을 되찾는 방법


  6월10일 100명이 넘는 성소수자들이 대형 무지개깃발 아래 함께 참석한 경험에 이어 7월5일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두 번째로 공동 참여를 결정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단체 회원들과 개인 참가자들은 무지개깃발 아래 옹기종기 모여앉아, 수다도 떨고 토론도 하며 행사를 지켜보았다.


  드디어 행진 시작! 우리는 6월10일 행진 시 보였던 (어디로 갈까하는) 어수선함을 떨쳐내고 독자적인 행진로 확보와 함께 독창적이고 재기발랄한 구호를 선보였다. 당연히 이 날도 마스크를 쓰거나, 카메라 방지 붉은 리본은 없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의 행진이었지만 우리의 구호는 끊이지 않았다. 을지로에서 종로3가 방향으로 행진로를 트는 순간, ‘게이공화국’인 종로3가 낙원동으로 행진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5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순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행진대열에서 빠져나와 단성사 앞 낙원동으로 진입했다. 혹시 이 길을 주요 행진로인 줄 알고 쫓아오는 대열이 있을까봐 뒤따라오는 행진대열에 대한 안내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낙원동을 지나며 또 다시 외치기 시작했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가 대안이다’ ‘번개녀도 함께해요’. 재기발랄한 우리 구호는 게이스트리트에서 술을 마시고 있거나, 정말 번개하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꽤나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간혹 손가락질에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100만 대열 부럽지 않았던 우리는 그런 모습을 간단히 무시하고 촛불과 다시 합류하기 위해 광화문으로 향했다. 낙원동을 지나 다시 종로. 맨 앞 대열이 보이지 않을 만큼 촛불로 꽉 메워 진 종로에서 우리는 당당히 발언을 시작하였고, 마무리가 될 무렵에는 차도에 분필을 이용해 ‘성소수자 차별반대’ ‘이명박은 호모포비아’라는 글씨를 새겨 넣으며 ‘자신감을 되찾았던’ 하루 활동을 최종 정리하였다.


  커뮤니티 활동이나 퀴어문화축제와 같은 성소수자들의 다채로운 활동은 우리의 자긍심을 높이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은 한다. 그렇다면 촛불 집회과 같이 불특정다수와 함께 공존하는 광장은 성소수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와 닿을까. 처음에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 아닐까 한다. 낯선 사람들과 동일한 공간에서 동일한 분노를 내세울 수는 있어도 사람들마다 성소수자 이해에 대한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할 것이다. 그들과 성소수자들의 다양한 인권사안에 대해 토론하게 되었을 때 갸우뚱해 하거나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누군가 차벽에 적어놓은 “이명박은 게이다”라는 글귀 속에서 일부 참여자들의 후진적인 성소수자 감수성을 읽는 것처럼 말이다. 촛불을 보며 ‘우리 문제가 아닌데’라며 배타적으로 생각하는 성소수자들이 있듯이 대다수의 사람들은 성소수자 인권현실에 있어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무관심할 것이다. 이런 전제가 있다 보니, 촛불에서도 성소수자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촛불로 비춰진 광장에서의 무지개는 늘 자신감으로 연결된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불편해 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광장을 공존하는 것이 처음에는 두렵고 낯설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저 멀리에서 무지개 깃발을 보고 반가움을 나타내는 성소수자들을 만났을 때는 이상하게도 그 두려움은 눈 녹듯이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무지개 아래에서 가지게 된 자신감은 주변에서 무지개 의미를 물어보는 사람들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마주설 수 있게 하고 있다. 나를 구성하는 정체성이 성소수자라는 하나의 타이틀로 국한되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무지개는 최소한 우리 존재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자 광장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국민의 개념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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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저항의 촛불과 함께 한 무지개




  우리가 꿈꾸는 세상 - 무지개가 대안이다


  지난 7월5일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본래의 행진대열을 이탈해 낙원동을 가로질러 독립적인 행진을 감행(?)했던 그 날의 경험을 함께한 사람이라면 순간 ‘성소수자 해방의 느낌이라는 것이 이런 거 겠구나.’ 하는 즐거움이 있었을 것이다. 늘 주말이면 게이들에 의해 독차지되다시피 한 공간이지만, 그 공간 역시 늘 익명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 길을 대형 무지개 깃발을 들고 지났으니, 게이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주변 상인들과 거리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게이들의 놀라움은 컸을 것이다. 게다가 “무지개가 대안이다”라는 구호까지 외쳤으니. 볼 장 다 보여준 것 아닌가.


  그동안 촛불집회 현장에서 대안과 전망에 대한 토론은 미비했다. 여전히 논쟁중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날 아주 급진적이게도 “무지개가 대안이다”는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구호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지개 대열에 함께 했던 참여자들도 저마다 이 구호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무지개는 성소수자들의 상징이다. 각 색마다 섹슈얼리티, 삶, 치유, 태양, 자연, 예술, 조화, 그리고 영혼을 의미한다. 평화와 평등, 다양성을 상징하기도 하며 촛불에 참여한 사람들은 무지개깃발을 이정표로 삼는다. (무지개 깃발이 눈에 잘 띈다는 이유다.) 정확한 정답을 내릴 수 없지만, 촛불 정국에서 무지개는  ‘참여와 저항’ 의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무지개는 참여와 저항의 역사다. 1978년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커밍아웃을 하고 시의원에 나가 당선된 최초의 정치인 하비밀크가 호모포빅한 동료의원에게 저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그 당시 게이 사회는 자신들의 세력과 견고함을 천명하기 위해 1979년 퍼레이드에서부터 레인보우깃발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그것이 무지개의 시초다. 대중적인 보급은 1989년 웨스트 헐리우드에 사는 존 스토우트라는 사람이 그의 아파트 발코니에 레인보우 깃발을 내걸었다가 이를 금지한 집주인에게 소송을 제기해서 승리한 사건을 통해서다. 이와 같은 무지개의 역사를 고려하면, “무지개가 대안이다”라는 구호가 가진 참여성과 저항성, 그리고 그것이 대안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광장의 익명성에 기대 나왔던 성소수자들이 무지개를 통해 자긍심과 자신감을 찾고, 집단적이고 정치적인 커밍아웃을 한 경험을 지금의 성소수자 운동이 어떻게 흡수하느냐는 촛불이 성소수자 운동에게 넘겨준 과제다. 우리 운동이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지키고 우리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우리의 삶이 후퇴되지 않도록 하는 100점짜리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촛불을 통해 얻는 참여와 저항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야 한다. 또한 광장에 나오는 이유가 서로 다를 수 있어도 ‘이명박 퇴진’이라는 결과를 희망한다는 공통점이 있음을 함께 공유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공간에서 성소수자 인권이슈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 곧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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