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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회원 에세이

<종로의 기적> 그리고 커밍아웃

by 행성인 2010. 10. 19.


막연하게 그려지는 존재
흔히 게이를 ‘패션 감각이 뛰어나고 자기 관리에 능숙한 전문직’을 연상케 하는 이야기나 글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강연을 가거나 어느 공간에서 커밍아웃을 할 때 ‘여러분들이 생각했던 게이가 아니어서 당황하셨죠?’하는 이야기를 내 스스로 할 때도 있다. 대중 매체를 통해 알려진 게이 캐릭터 혹은 실제 게이들의 모습을 보면 멀끔한 모습이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성애자가 아닌 다른 성정체성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과 더불어 살아가는 주변인들에게 시선을 돌리기기 쉽지 않은 듯하다. 설마 내 친구, 내 가족, 내 직장 동료가?

 

편견은 그 뿐만은 아닐 것이다. 얼마 전 조선일보 하단 광고에 등장한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 된 내 아들 AIDS에 걸리면 SBS 책임져라!’라고 당당하게 동성애혐오를 드러내며 다른 성정체성을 ‘잘못된 편견으로 공격하고 차별 하는’ 일들은 비일비재 하다. 이런 시달림 속에서도 성소수자들은 오늘 하루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종로의 기적> 다큐멘터리를 보다

2년 하고도 3개월 남짓 걸려 제작된 ‘한국 최초 게이(남성 동성애자)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이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장편 다큐멘터리 경쟁 부분에 초청이 되었다. 나는 10월 8일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영화관에서 두 시간 남짓 풀어내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사흘 전 출연진 시사회 때 들었던 ‘프로젝트로 쏘는 작은 화면하고는 또 다르다니까!’라는 말을 생생하게 실감했다. 먼저 이혁상 감독의 어렸을 적 사진이 지금과는 너무나 달라 혼자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영상 속에서 준문, 영수, 욜의 일상과 저마다 가지고 있는 고민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큰 화면을 통해 생생하게 다가왔다.

 

종로의 기적 다큐멘터리 : 2010 : 감독 이혁상



두 번째 이야기로 들어간 나의 모습. 사실 내 목소리를 내가 듣는 것이 익숙하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언제 그랬냐 싶게 화면 가득 나오는 나의 ‘끼 & 기갈’! 심장이 두근거리며 화면을 제대로 볼 수 없어 한 손으로는 눈을 가리고 한 손으로는 옆에 나란히 앉은 파트너의 손을 꽉 잡고 보느라 출연진 시사회 때보다 시선을 제대로 두기 힘들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내 삶의 어느 한 부분이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의문도 들었다. 더구나 누군가에게 ‘내가 게이’라고 ‘커밍아웃’하며 드러내는 것은 내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했었기에, 사람들의 선택에 의해서 내가 보여지는 경험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 낯설음도 내가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겠다는 마음을 먹었기에 벌어진 일이지만.

 

커밍아웃이라는 숙제

벽장문을 열고 나(의 성정체성)를 드러낸다는 ‘커밍아웃’의 의미에 하나를 더 더하자면 ‘누군가 가지고 있는 편견 그리고 차별적인 행위를 없애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소중한 동료를 얻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이 다큐멘터리에 얼굴을 내밀고 출연한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모르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의 생활, 나의 고민’을 영상을 통해 커밍아웃 한 것이다. 나를 낳아준 부모 그리고 내 형제와 친척들도 모르는 커밍아웃을 한다는 버거운 마음이 마음 한켠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과 내가 활동하는 동인련의 고민, 그리고 성소수자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일상이 잘 전달된다면 의미 있는 커밍아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앞으로의 시간이 더욱 기대되는

두 시간의 상영시간을 마치고 이혁상 감독이 출연진들을 소개했다.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앞으로 나갔다. 바들바들 떨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관객들의 따뜻한 시선이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주었다. 이후 이어진 커밍아웃 파티에서 멀리 부산까지 찾아온 사람들에게 축하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진하게 이어진 뒷풀이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일어나니 서울로 올라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전날 이혁상 감독의 말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는. 이 다큐멘터리가 다양한 통로와 방법으로 누군가를 만나면서 오고가는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편견을 없애며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친구를 만들어 주지 않을까? 그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하도록 만들어준 <종로의 기적>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장병권 _ 동성애자인권연대
 

10월 15일,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종로의 기적>이 다큐멘터리 부분에 주어지는 피프메세나상을 수상했다. 다음 웹진에서 <종로의 기적> 이혁상 감독을 만나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 그리고 수상 소감을 듣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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