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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2010년 동인련 송년회 스케치> 2010년을 떠나며...

by 행성인 2011. 1. 10.


막 2010년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달력에 적힌 ‘이공일공’이라는 숫자를 보고 마치 공상과학영화 같다고 생각했었다. 무엇보다도 그런 숫자로 카운트 되는 시대에 아직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었다. 무엇인가 새로 시작될 것 같은, 그 시작을 보게 되는 것 자체가 감사하게 느껴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기대가 많았던 한 해였는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속눈썹에 닿을 듯 가까이 다가와 있는 서른 살을 맞이해야 했던 해였고, 동인련으로서는 좋든 싫든 새로운 변화들에 발맞춰 성장해야 했던 해였다. 여러 가지 아쉬움이 남지만, 지난 한해 우리는 꽤 성공했던 것 같다.


그런 2010년을 떠나보내기 위해 46명의 회원들이 망원동에 있는 민중의 집에 모여들었다. 동인련에 가입한지 이제 여섯 해나 되었지만, 올해 같은 광경은 처음이었다. 오십 명에 이르는 회원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은 작고 가난한 단체인 우리에게 무척 낯선 일이었다. 옛날 생각이 났다. 서울역의 비좁은 사무실에 붙어 앉아서 보냈던 기억과, 성북동 이층집 앞마당의 감나무와 달을 바라보며 술을 마셨던 연말의 풍경. 따스했던 석유난로의 온기와, 추억하면 그리운 옛 사람들의 얼굴들. 해마다 우리는 같은 꿈을 이야기했고, 차별에 지지 않을 것을 약속했었다. 밤을 지새워 얘기했던 우리의 꿈과 약속들이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푸념 또한 매년 되풀이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세상은 조금씩 변화해 오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2010년이 되었고 우리의 꿈과 약속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더욱 심해진 차별에 대해 푸념하고 있었다. 나는 아는 얼굴이 많이 줄어든 것에 조금 어색함을 느꼈다. 하지만 벽면에 붙은 활동사진들을 보면서 어쨌든 그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더 많은, 그리고 새로운 꿈을 꾸는 세대가 동인련에 찾아왔고 추억을 만들었다. 우리는 더욱 진지해졌고, 다양한 목소리를 끌어안기 위한 노력을 해야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경쟁하듯 지난 일 년을 기록한 사진을 사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우리가 꽤 선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나누었다. 서로를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고, 누가 어떤 선물을 받게 될지 궁금해 하며 각자의 얼굴들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지난 일 년 동안의 노력을 상으로 인정받았다. 여느 송년회와 다를 것 없는 풍경이랄 수도 있겠지만 우리들에겐 더없이 중요한 일이었다. ‘동성애가 자랑이냐’고 따져 묻는 사회에서 지난 일 년 간 ‘성소수자로서 자랑스럽게 살았다’고 격려 받고 힘을 얻는 유일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은 곰 인형이나, 저금통, 정성들여 쓴 편지 한 장, 연필과 필통 같은 사소한 물건들을 각자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사소한 것들 안에 아스라이 사라질 듯 담긴 온기를 제각각 느끼면서.


그리고 2011년이 왔다. 나는 서른 살이 되었고, 동인련은 벌써부터 새로운 과제들을 부여받았다. 2010년을 떠나며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실패와 성공과 좌절과 기쁨들을 통해 배웠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아마도 우리는 또 다른 도전과 모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안다. 2011년을 통해 다시 또 배우고 성숙해지며, 푸념하고, 그럼에도 희망을 약속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래. 2011년이 드디어 왔다.


동성애자인권연대_ 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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