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박 3일의 동인련 워크샵 '랑(함께라는 뜻의 우리말)'을 다녀왔다. 주말에 비가 올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왔다 그치기를 반복해서 큰 문제는 없었다. 큰 비가 한 번에 내리고 맑게 개었으면 무지개를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았지만 말이다.


 어쩌다보니 선발대가 되어버려서 떠나는 날 일찍 사무실에 나와 짐을 옮기고 아용이 형 차를 타고서는 먼저 가평으로 출발했다. 심상치 않게 생긴 먹구름이 하늘을 빼곡하게 덮고 있어서 불안한 마음이었지만 어디론가 떠난다는 설렘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중고등학교 때 가던 수학여행이나 대학교 때 가던 OT, MT는 아는 사람들끼리 가는 것이어서 긴장감 같은 것이 없었는데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2박 3일을 함께 한다고 하니 익숙한 가평이 마치 새로운 여행지처럼 느껴졌다.


 처음 본발대는 16명이 왔는데, 나중에 온 사람들을 다 합쳐 보니 총 참여 인원은 30여 명이 넘었다. 알던 사람, 모르던 사람, 이름만 들어본 사람, 얼굴만 봤던 사람들과 인사하고 알아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호 웹진 ‘거리에서 1 - 종로를 돌아보며’에 나온 것처럼 나 역시 팔려가길 바라는 게이 중의 하나이지만, 그러한 신데렐라 콤플렉스 따위는 벗어 던지고 목가적인 분위기에서 편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있었기 때문에 편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왕자님을 찾는 사람이 아예 없었냐고 물으신다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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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크샵 프로그램은 총 다섯 가지였다. 한 문장의 빈칸에 자신의 생각을 넣어 말하는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나’, 특정 주제를 가지고 2인 1조로 대화와 산책을 겸하는 ‘100분 산책’, 나와 당사자, 제3자의 시각을 생각하게 해주는 ‘인권과 친해지기’, 뻣뻣한 몸을 풀어주는 ‘아침 요가’, 그리고 바로 앞 계곡에서의 물놀이까지. 평소에 하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었던 이야기들을 이런 자리에서 하게 되니 훨씬 더 말도 잘 나왔고,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인권과 친해지기’였다. 워크샵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은 LGBT로서 사회적 약자 문제에 관심이 많았지만, 굳이 소수의 인권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LGBT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비단 성소수자 문제  뿐만 아니라 소수자 인권 문제는 개인이 억압의 대상에 속하지 않는 이상 관심 가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고 비판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상황이 그러하다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에 자신이 속하지 않는다고 무관심해서는 안 되며, 그와 같은 무관심은 인도적으로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속하는 구성원이라면 사회에 기여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형성된 도덕과 윤리일 뿐이라 비판 받을 수도 있지만, 이 사회와 완전 무관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러한 도덕률은 구성원으로서 지켜야할 의무(하지만 강제성은 없는)이니까 말이다.


 또 기억에 남았던 프로그램은 ‘100분 산책’. 두 명이서 짝을 지어 제비뽑기로 뽑은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하면서 산책하는 시간이었는데, 하필이면(?) 걸린 주제가 ‘10년 후 동인련의 모습’이었다. 고3 때 동인련에 처음 나온 후 올해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니 약 8개월의 시간을 동인련과 보냈지만 10년 후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꽤 어려웠다. 겨우 겨우 고민을 해서 내린 결론은 ‘이성애자뿐만 아니라 동성애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편견부터 깨고 싶다’는 것 정도였다. 호모포비아인 일반인도 참 많지만, LGBT들 사이에서도 편견과 오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말이다. 시간도 짧았고 사람도 둘 밖에 없어서 만족할 만한 모습은 나오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깊이 생각해볼 주제였다.


 프로그램도 프로그램이지만 밤새 먹고 마시고 것도 빠지지 않았다. 주제도 발제도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긴긴 밤을 지새우기에 충분했다. 과거에 살아온 삶과 현재의 삶,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까지 서로 갖고 있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모인 사람들끼리 동질감을 느꼈다. LGBT 중에 자신의 정체성을 염두 해 두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지만 그걸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은 한정적이다. 포장하지 않은 자신을 보여주고, 얘기를 듣고 들려주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워크샵에서 얻은 것이 많았다. 우리가 살아왔고 우리가 살아갈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값진 시간들, 그 시간들을 앞으로도 계속 가질 수 있길 바란다.



 아니마 _ 동인련 걸음[거: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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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olid
    2008.08.26 20:47 [Edit/Del] [Reply]
    그래.. 그래야 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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