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만세 돌아보기

Posted at 2008. 8. 25. 11:05// Posted in 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오리

  동성애자 인권연대에서 진행하는 세미나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그마한 방 안에 옹기종기 모여, 처음 보는 사람들과 동성애의 역사, 문화를 이야기하고 있다니. 새롭다. 일상의 공간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와도 아웃팅 당할까봐 참거나, 호모포비아 발언을 고쳐주고 단어 설명해주느라 시간을 다 잡아먹곤 하는데. 이 사회에서 성소수자는 세미나도 제대로 하기 힘들다. 이제야 조금 세미나하는 맛이 나는구나.  역시 세미나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지고, 후기는 복잡했던 머리를 정리시켜 주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이 글에는 나의 관점만이 들어가서 풍부하고 다채로운 이야기와 농담이 삭제되어 있으니, 궁금하면, 다음 세미나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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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미나 첫 번째는 주제는 “동성애의 역사”였다. 사회의 경제, 정치적 구조에 따라 동성애를 포함한 성에 대한 문화와 태도가 달랐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동성애가 원시사회와 비서구사회,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중세시대,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시대의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에 대한 내용이 발제문에 친절히 정리되어 있었다. 로마시대를 비롯한 어떤 사회에서는 동성 간의 육체적인 접촉(혹은 정신적인 사랑)이 허용되었다는 이야기들과 이것들이 가진 사회적인 맥락이 지금과 달랐다는 이야기는 많은 궁금증을 피워냈다.


  아메리칸 인디언은 남성과 여성 말고 제3의 성(Two-spirit(두 정신): 하나 혹은 혼합된 여러 성역할을 행한다)이 있었다는데 그런 사회에선 어떤 식으로 이들을 받아들였을까? 지금과 같이 어떤 특별한 특성들을 공유한 종족으로서의 “동성애자”란 개념이 없었으면, 동성애는 무엇이었을까? 소년이 성인이 되기 위해서 정액이 필요하고 그래서 오럴이 성인식이었다는 사회에서 오럴은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졌을까? 성적인 행위였을까? 남성의 동성애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에 비해 여성의 동성애는 어떤 식이었을까? 우리나라에서 항문섹스, 동성이 평생 같이 사는 일, 동성간의 정신적인 사랑들은 사회에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변화해왔을까?


  이런 질문들이 줄을 잇고 나오다보니, 그 사회가 동성 간의 여러 관계를 어떻게 이름 지우고, 대하느냐에 따라 나의 감정과 행동도 그 사회에서 주어진 이름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렸을 적, 내가 “동성애자”라는 개념을 모를 때, 남자가 좋고 하니까 그냥 여자가 되고 싶었다. 남자를 좋아할 수 있는 건 여자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럼 나는 트렌스젠더인가?) 만약 동성이랑 사랑해도 되는 제3의 성이 있는 아메리칸 인디언 사회였다면, 그 성이 되고 싶었을 수도 있다.(그럼 나는 Two-spirit인가?) 혹은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것이 눈이 예쁜 사람을 좋아하는 것처럼 별게 아닌 사회였다면 아마 나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럼 내가 나를 지금처럼 동성애자라고 정체화하고 있을까?)


  (동성애를 포함한) 성이라는 것이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만들어져 있는가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나 욕망을 이름 짓고 설명하는 다른 도구들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어떤 도구를 가지게 되는가에는 그 사회의 정치, 경제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 사회의 필요에 따라 어떤 욕망은 억압되고 어떤 욕망은 권장될 것이며, 성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성역할이 고정되기도 할 것이다.


  사방팔방에 튀어 나온 온갖 주제들의 질문들이 있었지만, 첫 세미나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아마도.


  두 번째 세미나 주제는 정체성의 정치였다. 60년대 미국사회에서 정체성 운동이 발생한 배경과 전개과정을 다루면서 성과와 한계에 대한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조금 어려웠다. 정체성운동이 뭔지도 잘 모르겠고, 미국의 운동으로부터 영향을 받긴 했겠지만, 그것이 지금 이곳의 운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들어온 정체성 운동에 대한 비판지점은, 정체성 운동이 개개인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것에 너무 많이 기대면서 전체 사회의 구조적인 측면을 바꾸어 나가는 전망을 놓친다는 것이었다. 또 정체성 운동이 그 내부에도 있는 계급이나 성별, 인종에 따른 다른 억압들과 어떻게 같이 싸워나갈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보다, 또 다른 정체성들로 모여 분리되어갔던 경향이 있어왔던 점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다른 건 잘 모르겠는데, 동질성을 기반으로 한 정체성 운동 또한 성별, 계급, 인종, 장애 같은 다른 억압에는 무심할 수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사회적 위치가 나은 비장애인, 중산층 백인 게이들을 중심으로 동성애 운동이 진행되는 측면이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동성애 운동의 성과와 혜택들이 대부분 이들이 돌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정체성의 운동의 한계지점에 대한 비판들이 더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기보다, 정체성운동이 계급운동으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오해되면서 이야기가 더 나아가지 못하는 지점들이 생기곤 하는데, 매우 안타깝다. 하지만 오해가 아무이유 없이 그냥 생긴 것은 아닐 터이다. 여성운동이나, 장애인운동, 성소수자운동이 계급운동에 비해 부차적인 것이라는 이야기를 (어렵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 왔고, 경험들이 쌓여왔을 것이다. 물론 이야기가 더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에는 자신의 정체성 운동 외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려는 배타적인 운동의 측면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눈에 가져다 놓을 수 있는 완벽한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체성운동을 비판한다하더라도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정체성운동의 성과들은 가져가고, 한계들은 고쳐나가는 과정과 여러 운동들 사이의 연대 속에서 이에 대한 토론이 발전적이기를 희망한다.


  두번째 세미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우리는 이주노동자이면서 성소수자인 이들과 무엇을 같이 해야 할까?”였다. 강제추방의 위협 속에서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은 불구하고 주말에 서울에만 집중되어 있는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업소에 찾아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성소수자이자 이주노동자인 이들과 어떤 식으로 연대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은 우리 운동이 지닌 한계지점들을 직접 활동으로 깨어나갈 수 있는 길을 찾는 한 발자국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에이즈 운동을 통해서 성소수자 감염인들의 인권과 다국적 제약회사와 신자유주의, FTA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 비가시화 되어 있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려할 때, 우리 모두가 가야할 길이 보이지 않을까.




 오리 _ 동인련 걸음[거: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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