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 팩토리> - 레즈비언들의 투쟁과 사랑에 대한 생생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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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말, 대만의 컴퓨터 부품 제조업체의 사장이 회사 돈을 횡령 잠적하면서 공장이 문을 닫자 공장에서 일하던 대만 근로자와 필리핀 이주여성 근로자들은 실직의 위기에 처한다. 낙담한 직원들은 대만국제노동자협회(TIWA)에 도움을 요청하고 협회는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직원들 사이에 단체 시위대를 조직하기 시작한다. (2011년 제12회 서울LGBT필름페스티벌 상영작 <레즈비언 팩토리> 소개글)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다큐 중 내레이션에 따르면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기록을 위해 촬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촬영 도중 곳곳에서 레즈비언 커플의 모습이 담겨졌고 이들의 모습을 계속 담다보니 이 다큐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감독이 한국에서 한 인터뷰를 보면, 이주노동의 현실에 대해서 사람들은 쉽게 무관심해 하지만, 또 한편으로 레즈비언의 이야기엔 관심 있어 한다. 그렇다면 전략적으로 레즈비언의 이야기와 이주노동의 이야기, 둘 다를 함께 담으면 어떻게 될까? 이런 구상에서 이 다큐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렇다. 이 다큐는 레즈비언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그들의 이주노동에 관한 이야기다.

 

레즈비언, 여성, 이주노동자의 이야기

 

다큐 초반에는 사태가 발발하고 사람들이 모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논하는 모습, 처음 시위를 하는 모습 등이 담겨진다. 그 와중에 곳곳에 레즈비언 커플들이 서로를 꼭 안고 있는 모습이 담긴다. 튀지 않는다. 그냥 그곳에 있다. 서로를 위로하며 용기를 불어넣으며 말이다.

 

중간에 기숙사라는 곳이 종종 등장한다. 그런데 이곳은 최소한의 사생활도 보장되어 있지 않은 열악한 상황이었다. 이층 침대가 좁은 방 곳곳을 채우고 다들 어쩔 수 없이 맨 몸을 드러내며 다녀야 한다. 자기만의 쉴 수 있는, 연인과의 작은 속삭임을 위한 공간조차 허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사랑은 계속 된다. 레즈비언 커플들은 누가 먼저 대쉬했는지, 그리고 섹스는 어떻게 하는지, 소리는 어떻게 감추는지 아니면 감추지 않는지/못하는지,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 진지하지 않게 천천히 즐겁게 이야기해준다.

 

그 와중에 흥미로웠던 부분은 다큐에 등장하는 레즈비언 대부분이 가톨릭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가톨릭이나 신부가 자신들을 억압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필리핀이라는 사회에서의 특수성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신부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들을 받아들이며 특별히 억압하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눈길을 끌었던 또 다른 부분은 자신의 어머니가 이주노동으로 가족을 먹여 살렸는데, 이제 집에서 쉴 수 있게 하고 싶어서 자신이 이주노동을 왔다는 한 레즈비언 이주노동자의 이야기였다. 자신의 어머니도 이주노동자였던 것이다. 세계화라는 것이 제3세계 사람들을, 그 중에서 특히 여성을 착취하고 그것이 심지어 대물림되는 것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었다.

 

이후 투쟁 끝에 상당수의 이주노동자들이 새로운 직장을 알선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상황은 나빴다. 대만에 온 이주노동자들은 새 직장을 자신들이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정해진 번호표를 받고 사업주가 찍어서 데려가는 형식이었다. 레즈비언 커플들은 일단은 돈을 계속 벌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생이별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불안해했다. 실제로 몇 커플은 함께 새 직장으로 갈 수 있었지만 상당수의 커플은 헤어져야만 했다.

 

이 과정이 더욱 문제적이었던 것은 새 직장이 굉장히 열악한 조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몇 명의 이주노동자들은 철강/건설 등으로 직장을 배정받았고 그곳에서 지금껏 해오지 않았던 일을 하기란 너무나 힘겨운 일이었다. 결국 이주노동자들과 TIWA는 다시 투쟁해 이제는 이주노동자들이 직장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새롭게 바꾸는데 성공했다. 헤어졌던 커플들은 그렇게 다시 만날 수 있었다.

 

5년 후

 

그리고 5년 후, 감독은 필리핀을 찾는다. 레즈비언 커플들의 모습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헤어졌고 남성과 결혼을 한 이들도 있었다. 한 커플은 자기가 필리핀에 돌아오니 ‘이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면서 휴지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이 사람’은 담배만 뻑뻑 피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고. 얼마쯤 지나자 서로 ‘I LOVE YOU’ 짓을 하며 울며 웃었지만.

 

많은 이들이 레즈비언 커플들의 헤어짐에 섭섭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섭섭할 이유는 없다. 5년 전에 사귄 사람을 지금도 사귀고 있는 이가 몇 명이나 있을까?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동화 속 등장인물들이 아니다. 지금 이 지구라는 곳에서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사람들이다.

 

아마 다큐를 보고 나서 이렇게 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정말 레즈비언이냐?”

“그냥 타지에서 외롭다 보니 어쩌다 눈 맞아서 그렇게 사귄 것 아니냐?”

그게 중요할까? 그들이 그곳에서 레즈비언으로서 서로를 사랑하고 아꼈다는 것, 그 경험, 그 기억의 진실성에 의문을 던져선 안 된다. 그건 그분들의 것이니까. 자신이 레즈비언인지 아닌지는 누가 질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만이 할 수 있고 자신만이 답할 수 있는 것이니까.

 

레즈비언 팩토리 2편을 기다린다.

 

감독은 레즈비언 팩토리 2편 분량 촬영을 이미 마쳤다고 한다. 2편에 담길 내용은 레즈비언 커플들이 이후에 왜 깨졌는지,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등을 다룰 예정이라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문득 슬펐다. 레즈비언은, 성소수자는 이별마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긴. 물론 연애는 이성애자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충분히 정치적인 일이기 하지만.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2편도 꼭 보고 싶다. 기다려진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판타지적이지도 않은 생생한 현실의 이야기를 영화관에서 보고 싶다. 우리만 힘든 게 아니고, 또 쉬운 게 아니고, 어딘가의 누군가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살아갔다는 것을 보는 것, 그것을 통해 위로 받는 것, 그것이 다큐가 가진 힘이 아닐까? 그 힘이 2편에서도 생생히 살아있기를.


마쯔_ 동성애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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