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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정욜의 세상비틀기

[기고] 나는 ‘게이’ 황의건보다 ‘날라리 외부세력’ 김여진이 더 좋다.

by 행성인 2011. 6. 27.

황의건씨, 당신의 커밍아웃이 부끄럽습니다.

이 글은 인터넷언론 <참세상>과 <종로의 기적> 블로그에 기고한 글입니다.  


커밍아웃한 게이, 패션 칼럼니스트 황의건씨가 배우 김여진씨를 비난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려 화제라고 합니다. 트위터를 하지 않는 저로서는 이 소식을 잘 모르고 있다가 최근 개봉한 게이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뒤 늦게 이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혹시 영화 관객들의 조롱과 비난이 들리지 않았나요? 물론 게이라고 정치적 올바름을 모두 가질 순 없겠지만 당신의 커밍아웃이 부끄러운 건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종로의 기적>은 당신과 같은 사회적 위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소소한 일상을 두려움 속에서도 즐겁게 살아가는 게이들이 등장합니다. 당신의 말 한마디 때문에 영화에 출연한 나조차 황의건씨의 말에 동조하는 게이가 될 뻔했습니다. 불쾌하게도

 

궁금해서 물어봅니다. 황의건씨가 말한 것처럼 요즘 제일 핫한 배우. 어디 출연했는지 기억은 못하지만 어느 시위현장에 갔는지 기억하는 바로 그 배우. 연기자로서 존재감마저 없는 김여진씨를 희생양삼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싶었나요? 아니면 패션을 잘 아는 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만천하에 자랑하고 싶었나요? 만약 이런 목적으로 트위터에 글을 올리셨다면 완전히 실패하신 것 같습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도 느껴지지 않았고 사회를 바라보는 저열한 수준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무엇보다 차별과 억압을 무조건 감내해야 하는 대다수 성소수자들의 현실은 더더욱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김여진씨의 답변이 훌륭하더군요. 황의건씨는 김여진씨를 향해 “연예뉴스에 한 번도 못나온 대신 9시 뉴스에 매일 나오는 그 밥집 아줌마처럼 생긴 여진족”이라고 비난했지만 김여진씨는 “국밥집 아줌마라고 해서 고맙다. 그래도 당신이 차별을 받을 때 함께 싸워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이송희일 감독의 말처럼 “정체성을 팔아 상징 자본을 가진 후 자기 준거집단에 대척되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당신을 위해 김여진씨는 그곳에서라도 차별이 있다면 함께 싸워주겠다고 합니다.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어쩌면 차별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패션업계에서 얼마나 승승장구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대다수 성소수자들과 함께 ‘커밍아웃’의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저로서는 김여진씨와 같은 국밥집 아줌마가 더 필요합니다.

 

물론 저도 김여진씨를 직접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인권센터 설립을 위해 기금을 내 놓은 것은 물론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활동에도 힘을 보태고 있고 반값등록금,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등 이 시대의 아픔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사회적 약자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그녀의 행보가 그렇게도 불편했습니까. 연예뉴스에서 보지 못해 그렇게 아쉬웠나요.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두십시오. 반값등록금을 요구하는 집회에서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만나러 가는 ‘희망버스’에서도 성소수자들은 존재했고 함께했다는 사실을요. 황의건씨와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당신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이유는 바로 사회적 약자라는 감투를 쓰고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돌이 황의건씨 바로 자신을 향했을 때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바로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게이로서 제가 당신께 드리는 마지막 충고이길 바랍니다.

 

정욜_ 게이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 출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