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의 당당한 권리 _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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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건강이란 질병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인간이 평생을 살면서 질병에 걸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건강이란 넓은 의미로 현재 질병이 없는 상태는 물론이고, 질병을 치유할 수 있으며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열악한 환경이나 생활 조건에서 살아가야 하는 빈곤한 사람들은 언제나 질병에 노출되어 있고, 이미 질병에 걸린 사람들은 그러한 불평등한 삶에서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 이 사회이다.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지속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데도 말이다.


나는 HIV/AIDS 감염인(이하 감염인)들의 건강하지 못한 삶이 얼마나 인간 보편의 권리가 불평등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이 사회의 불평등이 감염인들의 건강을 불가능 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질병의 원인제공과 치료의 과정에서 사회적 요인들이 결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평등이 항상 질병을 만들지는 않지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

얼마 전 함께 에이즈 인권 운동을 하고 있는 감염인 활동가에게 연락이 왔다. 이 친구는 감염이 된 후 가족과 연락이 끊긴 채 쉼터에서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하고 있는데, 어느 날 동사무소에서 이 친구에게 부양의무자 기준에 해당되니 기초생활수급이 끊길 수도 있다는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HIV에 감염된 이후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든 상황에서 한 달에 40만원 남짓한 돈이 생계비의 전부였던 터라, 화들짝 놀란 친구는 동사무소에 가서 확인해 보았다. 알고 보니 감염 후 연락이 끊긴 어머니에게 재산이 생겨 호적상 직계가족인 이 친구의 기초생활수급비를 끊겠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친구는 감염 이후 어머니와 연락이 끊긴지 오래라는 증명을 한 뒤에야 비로소 동사무소에서 수급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또 다른 감염인 친구 역시 한 달에 한번 들어오는 보조금 42만원으로 생활을 한다. 월세 20만원을 내고 이것저것 공과금을 내고 나면 진료비가 거의 들지 않는 상태인데도 생활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나마 요즘은 여름이라 난방비가 거의 들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겨울에는 너무 힘들다고 했다. 보조금 42만원으로는 살인적인 물가를 감당할 수 없고, 건강을 위해 밥도 잘 먹어야 하지만 기본적인 생활조차 유지가 하기가 힘드니 건강이 더 안 좋아 지는 것 같다고 했다.


2005년 인하대 이훈재 교수팀이 에이즈 환자 2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감염인 중 27%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고, 응답자의 55%는 감염 이후 소득이 줄었다고 말했다. 감염인 중 20~40대가 78%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사회의 편견과 낙인 때문에 한창 일할 나이이지만 직장을 구하기가 힘든 것이 감염인의 현실이다. 어찌 보면 감염인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는 건강이 아니라, 가족에게 버림받고 직장에서 쫓겨나 당장 먹고 살 일일 것이다.


절망적인 삶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최저생계비

감염인은 사회적 차별과 낙인으로 직장을 잃고 가족에게도 버림받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이 이 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복지제도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는 특례제도로 관리되어, 본인이 원하면 수급자로 인정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경제적 어려움을 받고 있는 모든 감염인들은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는 것일까?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현재 확인된 감염인은 6680명(2009년 통계)이고 이중 1,128명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고 있다. 사실 이 숫자는 정확한 숫자가 아니다. 기초생활수급자 가운데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숫자이다. 많은 감염인이 일을 할 수 없는 조건에 처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많은 감염인들이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이어야 할 것이다.


올해로 시행 10년이 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누릴 권리를 보장’ 한다는 취지로 도입되어다. 과거 시혜적인 생활보호제도를 한 단계 뛰어넘어 공공부조제도를 ‘권리성 급여’로 전환함으로써 의료급여제도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하 기초법)에 의한 복지수급은 정부의 시혜가 아닌 법적인 권리가 되었다.


그러나 현재 기초법 수급자는 157만 명으로 전 국민의 3%에 지나지 않는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빈곤과 불평등이 급속도로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부양의무자 기준과 비현실적인 재산 및 소득기준으로 인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410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이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서도 드러난다. 사실상 가난한 사람들은 제대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기초법공동행동 자료)


기초법은 국가와 사회가 빈곤한 국민을 책임지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지만, 기초법에는 빈곤의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고 있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두고 있어 수많은 가난한 이들이 기초생활수급 진입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또, 기초법의 최저생계비는 수급권자를 빈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에이즈감염인의 경우 1인가구가 많은데 이 경우 현금급여 수준은 40만원을 겨우 넘는다. 이러한 최저생계비로는 치솟는 물가와 주거비용, 의료비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 가난한 에이즈감염인의 현실이다. 게다가 수급자들은 당연히 알아야 할 자신의 복지급여의 내용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급여나 제도가 변경되어도 알지 못한다. 일방적인 행정지침으로 인권침해를 당했더라도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제도개선을 요구할 통로도 보장되지 않고 있다.


‘칼끝의 꿀’ VS ‘복지 선진국’

최근 공중화장실 3남매에 관한 TV방송을 시청한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로 한 달간 “찾아주세요, 알려주세요”라는 이름으로 일제조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발표하였다. 총 22,669명을 발굴하여 12,135건 중 현재 4,005건(33%)에 대하여 지원을 완료하였다고 한다. 최근 정치권의 복지논쟁을 의식한 듯 보편적 복지는 ‘칼끝의 꿀’처럼 위험한 것이라고 이야기 하더니, 한시적 일제조사에 대해서는 스스로 ‘복지 선진국’이라고 홍보하느라 여념이 없다.


또, 최근 정치권에서 복지논쟁도 뜨겁다. 올해 2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자신의 복지철학을 담은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한 후 적극적으로 복지논쟁에 뛰어들고 있으며, 여권의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현장, 맞춤, 통합’의 복지를 주장하며 논쟁에 가세하고 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도 이에 질세라 적극적으로 ‘복지’ 논쟁에 뛰어들고 있다. 민주당의 경우 3+1로 대변되는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등 ‘무상복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복지논쟁을 정면으로 돌파하려 하고 있고, 손학규 민주당 대표, 유시민 전 장관 등도 앞 다투어 논쟁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알려지기로 103만 명의 복지 사각지대를 안고 있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 및 개선하기 위한 논의는 계속 미루어지고 있고, 복지부는 예산이 부족하다며 법 개정엔 관심도 없다.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적인 문제는 외면하면서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복지논쟁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허공의 메아리 같은 것이다.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다. 더 이상 개인에게 빈곤과 복지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가난과 불평등의 책임은 이 사회와 국가가 책임져야할 문제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허울뿐인 복지논쟁에 앞서 기초법에 빈곤의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부양의무제 기준을 폐지하고, 빈곤의 최전선에서 죽지 않을 정도의 삶을 살며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해야 할 것이다.


정숙_ 동성애자인권연대 HIV/AIDS인권팀 코디네이터


  1. CrossK
    2011.06.29 14:16 [Edit/Del] [Reply]
    한달 전쯤 저가(감염인) 주민센터에 기초생활수급권자를 문의했지만 가족이랑 같이 살고 있다는 이유(부양의무자)로 신청을 거부 당했죠 갑자기 작년 장애아동을 둔 부모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자식에게 기초수급을 받게 하기 위해서 자살한 일이 생각이 나네요 기초수급이라는 허울 좋은 복지제도로 힘없는 약한 소수자들을 우롱하는 이 사회가 역겨워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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