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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AIDS 국제 연대와 LGBT의 참여_ 공통점 찾기

HIV AIDS

by 행성인 2011. 6. 27.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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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AIDS 국제 연대와 LGBT의 참여 -공통점 찾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을 지지하는 1,201명의 페이스 선언! (2008년 12월1일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을 기념하며)


한국에서 에이즈 감염이 확인된 지 올해로 30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국내에서도 누적 감염인의 숫자가 7,000여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알고 계시다 시피, 에이즈 치료제의 개발 덕분에 더 이상 에이즈는 예전처럼 ‘죽음의 질병’으로 생각되지 않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당뇨와 마찬가지로 꾸준히 치료제를 복용하고, 건강관리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충분히 건강한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HIV/AIDS를 둘러싼 오해와 편견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습니다. 에이즈를 동성애자들의 질병으로 치부한다거나,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들의 문제로 간단히 생각해 버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HIV/AIDS 감염인들의 마음을 멍들게 합니다. 이렇게 이들에게 던져지는 한국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은 직장에서의 해고나, 가족으로부터의 외면과 배제, 정서적/사회적 고립 등의 현상으로 체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억압과 차별의 벽은 넘어설 수 없을 만큼 높다랗게만 보입니다.


한편, HIV/AIDS 문제는 빈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감염인의 숫자가 가장 많은 대륙 중에 하나는 바로 아프리카입니다. 그 중에서도 경제력이 없는 청소년과 여성들이 HIV/AIDS에 더욱 취약합니다. 세계 각국에서는 값비싼 에이즈 치료제를 가난한 이들에게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의 문제를 두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노동권을 박탈당한 한국의 감염인들의 대부분은 쪽방 생활을 하며 가난하게 살아갑니다. 이렇듯, HIV/AIDS 감염인들은 질병뿐만 아니라, 차별과 낙인, 그리고 빈곤과도 싸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어쩌면 이 문제가 그다지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저 역시도 그랬으니까요. 제가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교 때였던 것 같습니다. 교과서에 실려 있던 에이즈 바이러스의 사진은 그저 저에게는 수천만 배로 확대된 먼지조각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십년이 흘렀습니다. 십년이 흐른 어느 날, 저는 동성애자로 살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동성애자의 삶을 선택한 저에게 에이즈 바이러스는 더 이상 그냥 먼지조각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동성애자 커뮤니티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저는 커뮤니티에서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에이즈에 걸려 자살했다든지, 병마와 싸우다 죽었다든지 하는 괴이한 소문들이 돌았습니다. 공포감에 휩싸였습니다. 심지어는 새롭게 데이트를 시작하는 설레고 행복한 시간들조차 온전히 즐길 수 없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원인 모를 불신이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웅크리고 있었으니까요. 상대방 역시 저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자괴감마저 들었습니다. 저 역시도 내 자신이 완전히 안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으니까요. 이런 고민을 게이 친구들에게 털어 놓으면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어느 화창한 날 열 살짜리가 골프장에서 홀인원을 한 뒤, 벼락을 두 번 맞고 죽을 확률보다 감염확률이 적으니 괜찮다고요. 그런데 왜 제 눈에는 그들의 얼굴이 불안하게만 보였을까요?


동인련에서 인권운동을 시작한 이후, 불안과 공포는 서서히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그게 누구에 대한 분노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게 정확히 분노였다고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에이즈를 이유로 남성 동성애자들을 향해 문란하다며 손가락질 하고 있었고, 남성 동성애자들은 다시 에이즈 감염인들을 향해 문란하다며 손가락질 하고 있었습니다. 레즈비언이나,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들은 아예 논란의 대상에도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논란의 대상이 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함께 싸잡아서 문란한 사람들로 정의 내려졌지요.


그 절정을 보여준 것이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둘러싼 보수 기독교 단체들의 동성애 혐오 광고 살포 사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들 광고의 거의 대부분은 ‘에이즈’라는 단어가 열 번 정도씩은 들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레즈비언의 경우, 그들의 관계로 인해 HIV/AIDS에 감염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광고는 성소수자 진영 전체를 타깃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동성애=에이즈’다 라는 다소 무식한 소리들을 담고 있던 이 광고들의 파급력은 우리들이 생각하던 것보다 엄청난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광고들이 나온 지 꽤 시일이 흘렀음에도 며칠 전, 커밍아웃한 일반 친구와의 통화 끝에 ‘게이 사우나 같은데 가지 말고, 콘돔을 잘 쓰라’는 당부인지 인사인지 모를 소리를 들었거든요. 물론 저는,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저답게 ‘너부터 잘 쓰라’고 응수해 줬지요.


그간의 제 개인적 경험을 돌이켜 보면, 에이즈는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몇 번 정도 HIV 테스트를 받을 경험이 있었지만, 저는 검사를 받지 않는 쪽을 항상 선택하곤 했습니다. 인권 운동의 현장을 따라다니면서, 에이즈에 대한 올바른 정보들을 비교적 많이 접할 수 있었던 편이었음에도 저는 왜 항상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동성애자 인권연대의 회원인 여러분은 정말 솔직하게 에이즈 문제가 자신의 삶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어째서 단지 먼지조각에 불과했던 작은 바이러스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심각하게, 다른 이들에겐 아무렇지도 않게, 또 누군가에게는 위험하고 슬픈 것으로,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는 더럽고 문란한 것으로, 그렇게 받아들여지게 된 걸까요?


제가 에이즈 문제에 본격적으로 진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솔직히 말해서 한 달이 채 안 됩니다. 한 달이 갓 넘은 관심과 경험을 가지고, 국제 연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제가 좀 무모하게도 느껴집니다. 사실 아직까지도 과연 무엇이 정답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그 한 달 동안, 저는 정말 운이 좋게도 HIV/AIDS 인권 운동을 하고 있는 아시아 각국의 활동가들을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그들을 만나기로 결심한 것은 이 HIV/AIDS 문제가 한국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공통된 이슈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무엇인가 같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들에게서, 그들의 운동에서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레는 기대만으로 그들이 모이는 곳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기 위해,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면서도 과연 어떤 일들을 같이 할 수 있을지는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처럼 어려웠습니다.


아시아 각국이 에이즈 문제를 겪고 있는 방식은 우리가 잘 쓰는 표현대로, ‘사람 얼굴이 모두 다르듯’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방식이 다르니 문제점도 달랐고, 문제점이 다르니 해결책도 모두 달랐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왜 모여 있는 걸까. 도대체 국제 연대라는 게 무엇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이런 자리들이 내가 살고 있는 땅의 복잡한 현실을 과연 바꿀 수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의문들이 생겨날 때마다 ‘국제 연대’라는 말이 참 허울 좋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가장 답답했던 것은 아시아의 저개발 국가들 사이에서 한국의 현실은 그나마 좀 나은 것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는 지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에이즈 치료제의 보급조차 위태로워서 치료제 보급에 안간힘을 쓰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저개발 국가들의 사연을 듣고 있자면 (꼭 영어 때문이 아니더라도!)저절로 입이 다물어졌습니다. 우리가 심각하게 앓고 있는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낙인의 문제는 그들에겐 아직 생각해 보기조차 힘든 낯선 주제인 것 같았습니다. 마치 우리 한국의 성소수자들이 서구 유럽의 경우처럼 ‘동성 결혼’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기 힘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저는 일행들과 함께 태국 방콕의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구걸을 하기 위해 밤거리를 쏘다니고 있는 예닐곱 살 정도의 어린 아이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눈에 띈 것이 낯선 외국인들에게 몸을 팔기 위해 길거리에 늘어서 있는 십대 청소년들이었습니다. 낮 동안의 회의에서 동남아 국가의 활동가들이 섹스 워커와 청소년 감염인의 문제에 진지하고도 열띤 토론을 하던 이유를 그제야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여섯 살 밖에 되지 않은 순진한 아이들의 미래가 밤거리에서 시작되어 밤거리에서 끝나게 될 것처럼 생각된 것은 단지 제 개인적인, 너무나 지나친 감상에 불과했을까요. 그렇게 밤거리를 쏘다니다 어느 날 감염 사실을 알게 되고, 질병뿐만 아니라 빈곤, 그리고 차별과 낙인에 시달리게 될 어떤 누군가를 떠올린 것은 단지 합리적이지 않은 단상들에 불과했을까요.


국제 연대를 위해 모인 활동가들은 에이즈에 취약한 4개의 그룹을 분류하고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MSM(남성 간 성행위 그룹)과 성노동자, 이주노동자, 마약 사용자가 바로 그들입니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아마도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고 냉대 받는 사람들이라는 점일 것입니다. 국제 활동가들은 실제로 이들에 대한 비범죄화의 노력이 HIV/AIDS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었습니다. 비범죄화가 전제되어야, 이들의 커뮤니티가 사회에 가시화되고 그런 가시화를 통해서 이들 그룹의 자발적인 정책 참여 및 예방과 검사 등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감염인의 대다수가 MSM인 한국의 상황은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국제 연대의 실마리가 이런 부분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냉대 받고 차별받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연대하고자 했고, 그들의 문제에 대해 항상 같이 고민했기 때문에 저는 이런 주제들이 매우 익숙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이 국제 활동가들이 나누었던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 가장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공통점이었던 셈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한국에서 줄곧 가져왔던 연대활동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의 현실에 대해, 성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혹은 이주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우리는 당사자들만큼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함께 고민하는 활동들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우리는 이런 연대가 어째서 중요한지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성소수자들만의 해방이 찾아온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차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레즈비언들에게는 성소수자 해방이 찾아온대도 여성해방이 없는 세상이라면 그런 해방이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요. 이미 여러분에게는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지겨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제 연대라는 것도 어쩌면 같은 선상에서 고민해야하는 문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태국에서 묵었던 호텔 근처에 아버지와 함께 쭈그리고 앉아있던 소녀에게 동전 몇 닢을 건네주었습니다. 겨우 동전 몇 닢이었지만, 그것은 결코 동정의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내 앞의 현실을 어떻게 바꿀까를 고민하고, 국제 활동가들에게 무엇을 배울까만을 고민하는 것이 틀렸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아직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에이즈를 둘러싼 이 세계의 현실에 어떻게 개입하고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아는 것은 없습니다. 이제부터 고민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여러분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의약품 특허와 관련해서 다국적 제약기업이 횡포를 부리고 있는 이 세계의 현실 또한 앞으로 국제 활동가들과 연대해서 함께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횡포는 우리가 겪었던 푸제온 투쟁뿐만 아니라 수많은 저개발 국가의 감염인들의 현실에도 영향을 미쳐 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렇게 더 많은 공통점들을 발견해 내고, 함께 이 세계의 비참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제 스스로가 성소수자임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모든 순간들 가운데 가장 빛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차별과 소외의 아픔을 알기 때문에, 다른 모든 이들의 아픔에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바로 그런 순간입니다. 비록 그 빛이 아주 조그맣고 보잘 것 없는 빛이더라도 저는 그 빛의 힘이 이 땅의 감염인들과 차별받는 모든 사람들의 현실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어쨌든 그건 빛이니까요.


해와_ 동성애자 인권연대 회원, ICAAP
커뮤니티 위원회 코디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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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28 23:14
    간담회때 떨리는 목소리로 이 글을 읽어나갔던게 생각나네요~
    많은 친구들이 감동으로 울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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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29 13:36
    저역시 간담회때 해와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가슴속 많은 감동을 느꼈었답니다
    앞으로 해와의 감염인 인권운동의 행보가 매우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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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30 10:12
    이 글을 읽으면 슬프다기보다 힘이나고 내가 지금 당장 뭘 할수있지. 고민이들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해와의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 좋은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