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3회에 걸쳐 동성애자인권연대 내부의 이야기 (회원이야기, 활동이야기, 꿈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개인마다 감추고 싶은 비밀도 있고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듯이 단체 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1년 동안 참 많은 회원들이 거쳐 갔고 또 많은 활동들이 있어왔지만 우리에게,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밝히기 싫은 것은 철저히 숨기기 바빴습니다. 단체 활동도 사람이 만들어 나가는 것! 사람 냄새나는 동인련을 만들기 위해 다시 출발선에 선 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습니다. 지난 활동을 되돌아보고 현재를 점검하며 앞으로 더 나은 활동을 만들어나가는데 초석이 되었으면 합니다.




 

Part 1.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이야기


 
최근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 내부에서는 단체명을 변경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안되고 있다. 트랜스젠더/성전환자들이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단체명이 회원들의 소속감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렇다고 동인련이 그동안 동성애자 이슈가 아니라는 이유로 트랜스젠더/성전환자 이슈에 침묵하거나 방관해 왔던 것은 아니다.) 물론 11년 역사와 함께한 단체명이 바뀐다는 것은 그동안 쌓아온 역사를 잃어버린다는 느낌이 들어 아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단체명을 변경하는 것이 더 나은 발전을 위한 시작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동인련과 어울리는 단체명을 만들기 위해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은 동인련 새 출발에 큰 힘이 되고 있다. 결과가 어떻게 될 지 잘 모르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실천과 연대의 원칙이 훼손되지 않고, 더 다양한 회원들을 포용하고 소통할 수 있는 멋진 이름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서로에게 말 걸기



동인련에는 매우 다양한 회원들이 있다. 어떤 모임이던지 해가 바뀌면 새로운 사람들로 물갈이되기 마련이지만 동인련에는 꽤 오랫동안 만나왔던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새로운 회원이 가입하면 반갑게 그들을 맞아준다. 친절히 동인련 활동에 대해 소개도 하고, 어떻게 가입하게 되었는지, 관심사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본다. 가끔 우리의 지나친 주책과 관심이 새롭게 성소수자 활동을 접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긴 하지만, 동인련 만의 특유한 회원문화에 새로운 회원들도 금방 적응하곤 한다.



동인련은 올 초 ‘걸음[거름] 활동가 체계’를 도입했다. 걸음활동은 매월 한번씩 모여 회원들과 동인련 활동방향에 대해 토론하고, 그들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직접 회원 프로그램을 기획해 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지금은 매우 성공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고, 회원과 함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걸음회의를 통해 제안된다. 그 가운데 촛불은 동인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명박에게 불만을 갖고 있던 다양한 성소수자들을 거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무지개 깃발과 함께하기 위해 온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술도 함께 마시고 하다보면, 그들은 어느덧 동인련 활동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지난 8월 중순, 처음으로 세미나에 참여한 어떤 분은 촛불집회 때 무지개 깃발을 들고 나온 단체를 찾아보다가 동인련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세미나 참여를 위해 사무실에 방문하게 되었다고 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동인련을 알게 된 이들은 이제 프로그램을 함께 준비하는 회원들이 되어있다.


 
역동적인 모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회원들의 열정적인 참여가 가장 기본이 된다. 역동적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토론과 논쟁을 이어가며 우리의 활동방향을 결정하고 마지막엔 결정한 바대로 ‘함께’ 행동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회원들을 통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게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설프지만 동인련은 이제야 첫발을 떼기 시작했다. 나를 벗어나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할 삶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어려운 일이고 동시에 무신경해질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회원 개개인마다의 특수성과 관심사를 함께 이해하고 정리하는 것을 첫걸음으로 삼기로 했다. 이것은 각자의 삶을 단순히 이해하고 넘어가는 차원이 아니라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알아야 할 정보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대안적인 행동에 대한 고민이다. 게이로서 트랜스젠더 회원들을 만날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10~20대 회원들이 자신의 부모 나이보다 더 많은 중년의 게이, 레즈비언과 과연 잘 어울릴 수 있는지. HIV에 감염되지 않은 회원이 HIV에 감염된 회원을 대할 때 어떤 정보를 알아야 하는지. 우리는 작은 모임 안에서 너무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고 살아가지만 서로에 대해 잘 몰라 실수를 하게 되고, 그 실수가 오해를 만들기도 한다.



이를테면, 트랜스젠더 회원이 주민번호가 변경되지 않아 얻게 되는 삶의 고통을 이해하고, 젠더로 규정된 호칭을 불러주는 것은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가 되어야 한다. 또한, HIV감염인 게이로서 사는 삶과 그들의 일상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에게 의약품이란 어떤 의미인지, 때로 그들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 회원들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나이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주체성을 존중해주고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방법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서로의 삶과 특수성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함께 쟁취하고 변화시켜야 하는 행동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동인련을 통해 맺는 관계들 속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서 나의 미래를 투영해 볼 수 있다. 곧 30,40대를 맞는 회원들은 이미 그 시기를 경험한 중년의 게이, 레즈비언들의 삶을 보며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고,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여러 색을 섞으면 색이 어두워지고 탁해지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색을 섞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색이 아주 선명하게 보이는 무지개다. 서로에 대한 이해는 간섭이 아니라, 존중이며 무지개를 향한 우리의 첫 출발선이 되어야 한다.



성소수자 공동체에 대한 상상?!


가끔씩 길을 걷다 전망 좋고 예쁜 2~3층 집이 나오기라도 하면, 그 집 앞에 멈춰 서서 "이런 집에서 함께 모여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록 그 집의 방 구조를 모르고 있지만, 1층엔 누가 살고 2층엔 누가 살고 하는 식의 행복한 상상을 하다보면 이미 그 집에 입주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성소수자들끼리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에서 찾게 되는 대안 중 하나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상상 만해도 즐거워진다. 맘껏 끼 떨 수 있는 공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의 연애사를 큰 목소리로 얘기할 수 있는 공간, 그런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말에 한정되어 있지만 동인련 사무실도 가정집이다보니 회원들이 편하게 찾아와 자유롭게 음악을 듣거나 밥을 해먹고, 술을 마시기도 한다. 일주일 가운데 단 하루밖에 되지 않지만 나름 공동체를 꾸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공간을 벗어나게 되면 다들 각자의 사회적 위치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 학교에 가야하는 사람들.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도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야 하고, 돈벌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직장동료들 틈바구니 속에서 한주를 지내야 한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꽤 많은 시간을 - 어쩌면 하루 종일 -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날 수밖에 없다. 별도의 건물을 사고 우리가 살고 싶은 모습으로 집을 꾸며 성소수자 타운을 건설한다고 하더라도, 그 외 시간에는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과 지내야 하고 공동체 주변의 지역민과의 관계 또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돈이 없는 성소수자이거나, 멀리 외국으로부터 이주해온 성소수자들, 성소수자들 가운데서 친밀한 관계를 가질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의 경우에는 공동체조차 꿈꿀 수 없다.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행동과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넘어 사회로부터 존재를 인정받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때 비로소 공동체다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성정체성이 동일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이 동질감을 느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도 진정한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떨어져 살아도 불편함 없이 주변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동인련은 우리들만의 공동체보다 성소수자들이 사회로부터 배제 받지 않고, 이 땅에 살고 있는 소수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데 더 큰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첫 출발점은 동인련에 투영된 다양한 회원들의 모습을 그려보는 일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회원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경험과 고민들은 우리가 반드시 바꿔야 할 사회의 모순된 지점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소수자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회원들이 있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 걸고 성소수자 인권 현실이 더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얘기되어져야 한다. 혹시 성소수자로 살면서 분노를 알고 진보의 가치 아래 소수자들의 인권을 되찾기 위한 활동에 관심이 있다면 동인련이란 공동체의 문을 두드려보시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정욜 _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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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와
    2008.08.25 16:04 [Edit/Del] [Reply]
    우리만의 공동체는 늘 꿈꾸는 일이고, 설레는 일이지만

    결코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말에 공감해요.

    그리고 그 출발로서 우리 안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회원 한사람 한사람이 동인련이 아닌 사회에 가서도

    그런 이해를 실천할 수 있을테니까요.
  2. 나라
    2008.08.25 18:22 [Edit/Del] [Reply]
    흠...좀 더 구체적인 회원들 이야기가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 그러나 역시 욜님, 가장 앞장서서 동인련의 미래를 고민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더 많이 '말 걸기' 할수록 우리는 더 풍부해질 거에요. 그런 풍부함은 더 나은 세계를 전망할 때 꿈꾸는 것이기도 하죠.
    존중과 이해가 더 나은 세계를 위해 함께 싸울 힘을 줄 때 차이를 돌아보는 것이 진정한 의미를 가질 거라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각자의 개성을 발휘하면서도 어울릴 수 있는 그런 날을 위해서!
  3. 정욜
    2008.08.26 09:49 [Edit/Del] [Reply]
    나라~ 너무 과분한 칭찬이오. 여러 활동이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이 '회원들과의 관계'인 것 같아. 모두들 그러겠지만 사람들이 모이다보면 뜻하지 않는 다양한 일이 생기잖아. 인권 나부랭이 외치지만 우리도 특별할 게 없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 뭐~ 동인련도 사람사는 곳이니.
  4. Solid
    2008.08.26 20:51 [Edit/Del] [Reply]
    그래요 형은 그런 사람이었어요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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