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성소수자 노동자 - 우리들의 생존기’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11월 11일, 밀레니엄 빼빼로데이를 맞아 우리는 민주노총 교육원에 모였다. 1년 반 만에 다시 열리는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 적어도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만큼의 변화가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앞섰다. 내가 보기에 노동현장은 여간해서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곳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내 생각은 바뀌었다. 그 변화가 충분하지 않을지 몰라도 여전히 희망은 있다는 것이다. 필요성만으로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결국은 만남의 계기가 있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 또한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찾게 된다. 그리고 11일 저녁 성소수자 노동자를 만나러 왔던 사람들로부터 나 또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따뜻한 느낌을 받았어요.”


“사람이 보였어요.”


노동권팀 구성원들이 이 토론회에 대해 궁리할 때 결코 어렵게 이야기하지 말자는 것과 ‘성소수자 노동자’라는 사람이 보이는 자리를 만들자는 것은 매우 핵심적인 문제였다. 누구나 대화의 장에 참여했으면 하는 생각에서 토론자와 발표자 참여자의 경계를 없애고자 했다. 여전히 부족하긴 하지만 앞으로도 우리는 관심있는 사람들이 누구나 참여하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랑방이 되기를 원한다. 그런 면에서 ‘나, 성소수자 노동자’ 토론회에 오셨던 분들과 그런 생각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시작.


우리는 2009년 하반기에서 2010년에 걸쳐 성소수자 노동권에 대한 1차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우리가 일터에서 어떤 차별을 받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에 이름도 ‘노동권’ 실태조사였다. 그 결과 마련된 자료들은 여러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차별의 유형’에 대한 것이었다. 실제로 분배 차원의 차별이라고 볼 수 있는 복리후생 상 의 차별부터, 직접적인 해고 문제, 그리고 끊임없는 거짓말과 결혼에의 압박, 구조적으로 강제되어 있는 노후 불안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또한 여성이어서, 비정규직이어서 나타날 수 있는 중첩된 차별에 이르기까지, 일하는 성소수자라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문제들을 정리해 나갔다. 아무도 몰랐지만 우리가 이렇게 차별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정리해내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했다. 그리고 아직 새로이 길어 올려야할 이야기들이 산더미 같기 때문에 이것은 정말로 수많은 시도들 중 하나였다.


이번 글들에서는 1차 조사에 집중했던 것처럼 제도적 차별을 밝히는 부분에는 크게 집중하지 않았다. 1차 조사에서 보여준 것 같이 다수의 노동자들은 자신이 어떤 차별에 직면해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살아왔고, 일부 대기업 정규직을 제외하면 실제로 주어지는 복리후생상의 혜택이라는 것이 미미해서 그것을 기록하는 것이 이번만큼은 큰 의미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부분은 추후 다른 방법을 통해 보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인터뷰에서 노동 문제와 다소 상관이 없어 보인다 하더라도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면 싣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다한들 그가 노동자임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1차 조사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현실에서 우리의 삶과 노동의 문제는 거의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밀착해있다는 점 때문에, 시시콜콜해 보이는 이야기들을 통해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일상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들을 공유하고자 노력했다. 잘 되었다고 자신하기는 어렵지만^^


두 번째 직면한 문제는 그런데 그런 차별을 받는 노동자들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1차 조사에서 우리가 정리한 이야기들은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생생한 증언에 바탕하고 있다. 그러나 ‘권리’의 문제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다보니 우리는 충분히 성소수자 노동자에게 숨을 불어넣지 못한 것 같았다. 한명의 삶이 조각조각의 권리 이야기로 파편화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로지 그런 이유에서 준비하게 되었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


이것은 사람으로서 공감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은 ‘성소수자’라는 덩어리로서도 ‘노동자’라는 덩어리로서도 아니어야 한다. 한 명 한 명의 삶이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음을 발견할 때에서야 우리는 노동자과 성소수자를 단지 우선순위로서만 배열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현장에 성소수자가 없다고 믿는 노동자들이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싶어도 그들이 어디있는지 모르겠다”고 난망해할 때, 이런 저런 사람들도 있다고 이야기해주면 어떨까? 읽다보면 이게 왜 성소수자 차별인지 의문스러운 부분도 있을 것이다. 물론 성소수자 이야기를 쓰고자 노력했지만 동시에 이 사회에서 공동의 숙제들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어떤 성소수자든 말이다. 그래서 두 명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를 초청했다. 이 분들은 차별받은 여성/비정규직의 입장에서 소수자 노동자들과의 연대, 공감의 지점을 이야기해 주었다. 노동운동에서 배제되거나 대상화되었던 여성노동자들이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투쟁해왔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분명히 서로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고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변화


지난 10월, 우리는 가판대를 끌고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에 갔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서명을 받고 있는 우리들에게 건설노조 조합원 한 분이 시비를 걸었다. 그는 호모포비아를 드러냈고 잠깐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의 동료들이 ‘동성을 좋아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그를 억지로 만류하여 데리고 갔다. 그날 우리는 좀 혼란스러웠다. 비정규 노동자들과 연대하려고 나간 자리에서 비정규 노동자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다니.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해왔으면서도 막상 현실로 닥치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고민하게 되었다. 사실 개인이 일으킨 문제라고 치부하고 건설노조에 문의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 이 사건을 트위터에 올린 동인련 회원에게 건설노조 활동가가 연락해왔다. 조합원의 행동에 정식으로 사과하고 싶다고 말이다. 건설노조의 다른 활동가들에게 연락해보았더니 몇몇 활동가들의 제기로 노동조합 상집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었다고 한다. 공식적인 사과와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교육에 대해서 말이다. 이런 경험은 우리에게 연대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남자들만 가득한 건설노조에 우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치부해버렸던 나를 돌아보았다. 어쩌면 진짜 변화는 부딪히고 그래서 누군가가 이야기하고 몇 명 쯤이 웅성웅성댈 때에서야 시작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웹진에 “나, 성소수자 노동자 - 우리들의 생존기”에 자신의 소중한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던 여섯 명의 사람들을 한 명씩 초청하려고 한다. 이 글은 토론회에서 발표한 것들이다. 지금까지는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인터뷰하여 정리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제 우리 중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 6회에 걸친 연재물을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좋겠다.


이경_ 동성애자인권연대 성소수자노동권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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