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동성애자인권연대 운영위원장)

 

당신에게 '노동권'은 무엇인가요?

 

이 글은 지난 총선 당시 보트피플 간담회에서 나누려고 쓴 글입니다. 당신에게 노동권은 무엇인가요? 지난 2년 정도를 성소수자 노동권이라는 것을 가지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들게 된 의문입니다. 노동권이라는 말이 언젠가부터 문서상에 보장된 권리로 읽히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노동을 둘러싼 권리들은 그보다는 훨씬 역동적이어야 하고 더욱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이런 것들도 노동의 권리이고, 노동하는 사람들의 권리일 것 같습니다. 한번 나열해볼까요.

 

일할 권리로서의 노동권

차별받지 않고 일할 권리로서의 노동권

일하고 있지 않더라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로서의 노동권

차별받지 않고 동등하게 참여하고 결정할 권리로서의 노동권

분리될 수 없는 사람, 분리될 수 없는 인권으로서의 노동권

적극적인 연대권으로서의 노동권

 

갖가지 노동권들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일할 권리로서의 노동권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노동권을 인권의 차원에서 접근하면 한 인간에게 분리될 수 없는 갖가지 권리가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더 잘 알 수 있기도 합니다. 권리는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소수자의 관점에서는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로서 배우자의 간병을 위해 휴직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면, 가족구성권이 인정되지 않는 성소수자 노동자는 그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그렇기에 인권은 분리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한 주체로서 나서기도 해야 하는데, 성소수자들은 대체로 노동자라는 생각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단적으로 성소수자들은 노동조합에서 대표되지 않기 때문에, 요구 또한 대표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식의 지평이 여기까지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노동권은 동등하게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참여할 권리도 뜻하게 됩니다.


매번 당사자들만이 자신만의 요구를 주장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이름 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결정짓는 여러 문제들에 참여하고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적극적인 연대권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소수자들의 노동권은 확장되고 심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위에 나열된 권리들은 노동권이 가지는 속성들의 일부이거나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르게 사고할 수 있습니다. 단적으로, 일하는 FTM 트랜스젠더가 여성 유니폼을 강요당하지 않을 일터의 권리가 해고당하지 않을 권리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노동자에게는 노동자의 권리만 있고 성소수자에게는 성소수자의 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을 토대로 아래의 질문에 답해봅시다.


 

첫째, 비혼-독립생활자-성소수자와 노동권은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일 수 있습니다. 예전에 성소수자 노동권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다보니, ‘비혼들도 성소수자처럼 파트너십 권리 달라고 떼쓰지 않는데, 왜 성소수자만 무리한 요구를 하느냐, 결국 결혼 안한 건 둘 다 같은 것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제일 많았습니다. 사실 이 논리는 매우 강력해서 성소수자들이 권리를 요구하면 결혼 못한 이성애자도 많다거나, 파이는 한정되어 있는데 어느 세월에 거기까지 신경 쓰냐는 반론이 돌아오곤 하지요. 함정은 무엇일까요?

 

모두에게 적용되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보편성이나 공공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대편의 생각으로는, 단 한명만 적용되는 권리라 할지라도, 그 권리가 없어서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없게 된다면 그 권리를 갖는 것이 공공성이라는 주장도 있지요.

 

하나의 예로 우리는 의료제도에서 보호자 제도를 없애자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보호자 제도를 없애는 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매우 다양할 것입니다. 사실 보호자의 ‘보호’에서 제외된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죠. 또 하나의 예는 기업에서 성소수자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다양성을 보장하는 여러 조치들을 사규로 만들라는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휴게실이 남녀로만 구분되어 있는 것을 1인용 수면실로 바꿀 수 있으며, 트랜스젠더가 곤란하지 않도록 1인 화장실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뭔가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소수자로서의 특수성과 보편적 인권, 공공성의 문제가 서로 대립하지 않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코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둘째, 지역과 노동의 권리는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까?

 

지역은 정치의 주체가 모습을 드러내고 참여하는 공간입니다. 여전히 지역과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성소수자들은 당연하게도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고, 또한 일터에 몸담고 지냅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활동을 하는 데 지역은 정말 중요한 공간이고 필수적이기까지 합니다. 성소수자가 존재하는 지역과 공간, 그 곳은 다양성을 더하고 소수자가 동등한 참여를 일구어내도록 하는 가능성을 가지게 됩니다. 성소수자의 참여로 지역과 공간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활동 하는 사람들로부터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 됩니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노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일 따로, 잠 따로, 놀기 따로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주변에서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일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나와 가까이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적극적 연대가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 지역 청소년 노동자들의 노동인권을 보장하는 제도, 지역사회의 기혼여성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 재진입하여 매우 열악한 대우를 받을 때 그들과 함께 싸우는 것, 지역의 사업장들이 최저임금을 지키도록 하는 것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너무 먼 얘기일진 몰라도 미국 최초의 게이 시의원이었던 하비 밀크는 자신이 활동하던 지역인 샌프란시스코의 노동자 투쟁에 직접적으로 연대하여 자신의 지지자들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다만 ‘연대권’은 부당함에 맞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권리고 앞으로 꼭 강조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셋째, 고용관련법들을 뜯어 고치는 문제도 ‘가족’과 연결되어 있는데?

 

민법 상의 가족개념은 고용관련법에 영향을 미쳐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제도적으로 강요합니다.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고용보험법 등 고용관련법이 바로 그것입니다. 노동법을 뜯어 고친다는 것은 사회가 강요하는 이성애 중심적인 가족개념을 거부하는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간단한 문제는 아니겠지만 이 부분에 있어 노동권은 ‘정상가족’에게만 주어졌던 쥐꼬리만한 혜택에 대해 새로운 분배 정의를 요구하는 운동과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재생산 기능을 전담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차별에 순응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족 문제에도 도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상가족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의 사회적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에도 도전해야죠. 아직 노동운동은 여기까지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성소수자와 노동은 아주 구체적인 삶 속에서 만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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