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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회고전에 앞선 단상: 불가능한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한 영원한 시도들

by 행성인 2012. 6. 7.

 

웅(동성애자인권연대 HIV/AIDS인권팀)

 

다음 달이면 서울 플라토(구 로댕갤러리)에서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élix González-Torres, 1957-1996) 회고전이 열린다.(6월 21일- 9월 28일) 작가에 대한 높은 인기와 더불어 아시아 최초 회고전이라는 타이틀이 붙게 되면서 전시는 시작 전부터 관심이 높다.

작가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따라붙는 프로필에 어느 정도 익숙할 것이다. 쿠바 출신, 동성애자, 에이즈로 애인을 보내고 자신 또한 에이즈로 떠난 작가. 그의 프로필에서 물씬 풍기는 마이너리티적인 성격은 많은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

 

Félix González-Torres

하지만 작가의 프로필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그의 작업 동기와 형식에 있을 것이다. 그의 작업은 80년대 후반 에이즈 위기의 끄트머리에 위치한다. 인터뷰에서 수차례 언급한 바 있듯이, 작가는 그의 연인 로스 레이콕(Ross Laycock, 1959-1991)을 작업의 ‘유일한’ 동기로 삼는다. 말하자면 그의 작업은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이루지 못한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하지만 작가 역시 질병 당사자였다는 사실은 그의 작업이 죽음과 질병을 향한 혐오에 분투해 온 기록이었음을 시사한다. 형식에 있어서도 취약한 소재들을 활용하고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토레스의 작업은 작가의 개인사를 중요한 길잡이로 삼는다. 그의 작업은 개인적 경험을 다루고 있지만 공적인 파급력을 갖고, 아픔을 다루지만 아름다운 여운으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된다.

 

익명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익명의 장소

대부분 그의 작업은 ‘무제(untitled)’ 로 표기된다. 작가는 작품에 제목을 달지 않는 대신 의도에 따라 작품구성을 조금씩 변경하고, 이를 의미하는 부제들을 붙임으로써 하나의 시리즈로 연결한다. ‘비어 있는’ 제목의 자리에 다른 이름들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로 그의 작업은 많은 경우 관객들의 참여에 의해 완성된다. 이름(제목)이 붙고 사람(관객)들이 드나드는 작업의 구조는 하나의 ‘스팟(spot)’을 형성한다.

 

 

 ‘사탕 시리즈’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작가는 사탕을 바닥에 쌓거나 늘어놓고, 보는 이들에게 가져가 먹을 수 있도록 한다. 사탕더미는 애인 로스의 체중인 175파운드(79kg)를 유지하거나, 애인과 작가 자신의 체중을 합한 325파운드(147kg)를 유지한다. 말인즉슨 땅에 흩뿌려진 사탕들은 애인 로스와 작가의 몸을 의미하는 것이다. 혀 끝으로 사탕을 녹이면서 관객들은 작가의 잃어버린 사랑의 기억을 더듬는다. 상상력을 조금만 펼친다면, 우리는 ‘빨아먹는’ 행위에 성적 뉘앙스를 보탤 수 있다. 한 공간에 이름 모를 관객들과 함께 사랑의 흔적을 핥고 빠는(licking&sucking) 행위는 공적 섹스의 은유를 갖는다. 한편 에이즈로 죽은 애인의 체중만큼 바닥에 흩뿌려진 사탕은 HIV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관객들이 땅바닥에 떨궈진 사탕 무더기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주워 먹는 행위는 전염의 위험을 전유(appropriation)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사탕은 쓰디쓴 아픔을 달래는 치료약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탕 시리즈에는 Revenge(복수)와 Placebo(치료약)의 소제목들이 붙는다.) 이렇게 사탕을 먹는 행위는 혀 끝으로 몸을 더듬는 행위에서 혐오를 삼키는 행위, 나아가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이를 기리는 애도의 행위로 확장된다.

 

사탕과 더불어 그의 인쇄물 작업 또한 누구든 가져갈 수 있도록 설치된다. 종이에는 총기사고로 사망한 이들이 인쇄되어 있거나, 검게 일렁이는 수면, 빛이 걸려 있는 구름의 이미지들이 인쇄되어 일정한 높이로 반듯하게 쌓여 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건들, 말이 필요 없는 풍경들, 굳이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는 이미지들이 그려진 인쇄물들은 누구든지 와서 가져가도록 허락하지만, 우리는 인쇄물이 누구에 의해 어디서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우연성의 공간, 부재의 공간을 창출한다.

 

 

 

흩뿌려진 사탕더미들, 쌓여있는 인쇄물의 육면체는 무대(stage)로 변주되기도 한다. 무대 위에 고고보이 쇼가 상연되고 나면, 대부분의 관객은 그가 춤췄던 빈 무대만을 보게 된다. 발자국과 흐릿한 땀 냄새만이 남아 있는 무대에서 사람들은 지금 없는 열정적 춤사위의 흔적, 육체의 흔적만을 느낀다.

비어있는 공간은 죽은 애인의 흔적이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의 기억이다. 그의 많은 작업들에서 빈 공간의 성격은 공적인 참여와 결부된다. 차곡차곡 쌓여있는 인쇄물과 사탕더미들은 하나의 파편들, 혹은 찌라시의 성격을 가짐으로써 작품을 중심으로 익명의 군중들이 모여들고 거쳐 가는 교차점을 형성한다. 이 익명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그의 서사를 읽고 자신들의 경험을 만들어간다. 작업을 중심으로 부딪치는 관객들은 손에 인쇄물을 한 장씩 말아들고, 입 안에 사탕을 오물거리면서 어색하게 시선을 주고받거나, 은밀하게 아련한 그리움과 부재를 가슴 깊이 새긴다. 부재를 확인하고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텅 빈 무대는,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저마다의 서사를 만들고, 여기 없는 누군가를 애도한다. 그것은 광장(agora)의 역할에 맞닿아 있다.

 

불가능성의 극복을 표현하는 취약함의 소재들

발 딛고 있는 사회에서 자신의 실존을 호소하는 토레스의 작업은 빈 공간과 부재의 흔적을 표상한다. 여기에는 너와 나의 거리, 쿠바의 어린 시절과 마이애미의 삶을 연결하는 거리, 죽음과 삶에 놓인 좁힐 수 없는 거리들이 옮겨져 있다. 이 넘지 못할 벽 위에서 벌어지는 작가의 줄타기는 이뤄지지 못한 사랑과 건널 수 없는 시간들을 노래한다.

 


돌이킬 수 없는 거리를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취약한 소재들을 사용한다. 가령 너와 나 사이의 비극적인 사랑은 같은 시각에서 출발한 시계 한 쌍에서 조금씩 벌어지는 초침의 거리로, 창틀에 매달려 바람에 제각기 나부끼는 한 쌍의 커튼으로, 가냘픈 전선에 매달린 전구로 표현된다. 전구의 가는 필라멘트가 발하는 빛은 균일하지 않다. 밝은 빛은 조금씩 조도차를 보이다가 하나 둘 씩 빛을 잃는다. 전구의 빛으로부터 우리는 삶의 흥망성쇠를 읽는다. 너와 나는 하나가 될 수 없고, 과거의 그리운 시간들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 죽음과 삶 사이에 놓인 좁힐 수 없는 거리에 대한 슬픔은 비즈커튼에서도 반복된다. 비즈커튼이 만들어내는 반투명한 벽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바다의 공간으로, 이승과 저승을 통과하는 사이(in between) 공간으로 의미 부여된다. 공간을 구획하고 단절하는 벽은 돌이킬 수 없는 거리와 불완전한 사랑의 슬픔을 시사한다. 다만 알알이 떨어지는 구슬로 엮인 벽은 아련한 감흥을 자아내며 단절된 거리를 가로지를 수 있는 시적 비유를 함축한다.

깨지기 쉽고, 구겨지거나 증발하기 쉽고 녹기 쉬운 소재들은 개개인의 심리적 방어벽을 미세한 떨림으로 허물어 버리는 파급력을 갖는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질병의 은유를 통해 자신의 작업이 “바이러스처럼 사회에 침투할 수 있기를 원한다” 고 말한 바 있다. 혐오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HIV는 이제 단절을 잇고자 하는 매개로 전환된다. 취약한 소재들은 머리보다 몸을 먼저 자극한다. 분자적 침투는 미세하게 오감에 스며들어 온 몸을 전율케 하고 공적 언어를 동기화한다. 그의 사적인 기억들은 취약한 소재들을 통해 우리 가슴에 깊이 각인된다.

취약한 소재들을 사용하면서도 작가는 극복할 수 없는 거리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리를 좁히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들을 보여준다. 가령 매 전시에 제공되는 가이드라인은 재료에 대한 선별과 지속적인 보충을 요청한다. 불빛을 잃은 전구들은 교체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가져가고, 수분이 증발하거나 닳아서 줄어드는 사탕과 인쇄물도 수시로 보충함으로써 항시 주어진 무게와 규격을 유지해야 한다. 보충과 관리를 요구하는 소재들처럼, 우리의 존재는 외부의 위험에 취약하지만 삶의 경계에서 죽음과 배제를 이겨내기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치고 투쟁해야 한다. 그의 작업은 흡사 약품을 꾸준히 섭취하고 건강을 유지해야 하는 감염인들의 삶과 닮아 있다.

그는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작업이 재생가능하기를 바랐다. “사탕과 인쇄물은 계속 충전될 것이기에 파괴될 수 없다. 그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또는 항시 실제로 존재할 필요가 없기에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 끊임없는 보충과 교체를 요구했던 그의 작업은 죽음 이후에도 질병을 이겨내고자 했던 그의 의지였다. 취약한 소재들은 우리 삶의 취약함을 일깨워주지만, 취약한 소재들로 구성된 토레스의 작업은 상실과 죽음을 이겨내는 행위가 지속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와 그의 애인은 이제 여기 없지만, 이들의 흔적은 지금까지도 작품으로 남아 있다. 그의 시도들은 단절과 죽음의 벽 앞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실패의 얼굴은 취약한 소재들을 통해 애틋함으로 남아 우리에게 영원한 사랑에 대한 의지를 전한다.

 

분노의 불편함보다 애도의 따뜻함이 전하는 파급력

토레스의 작업은 표현상의 외설성을 피한다. 그가 전하는 이미지는 자극적이지 않다. 토레스는 자신의 개인사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지만, 죽은 애인은 작업 속에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90년대 이전 에이즈투쟁과 비교해볼 때, 격렬한 투쟁 이후의 작업이라는 시간적 거리에는 형식적 차이들이 발견된다.

당시 에이즈 투쟁은 하위집단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가를 둘러싼 싸움이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감염인을 담는 사진가들의 시도는 감염인을 정당하게 그려내고자 하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체와 타자의 이분법 속에서 대상으로만 바라본다는 비판에 부딪혔다. 키스 캠페인을 비롯한 당사자들의 주체적인 활동도 적극적인 메시지 때문에 테러를 당하기 일쑤였다.

 

 


앞 세대의 시각작업들이 에이즈 이슈를 가시화했던 반면 토레스는 공적인 정치구호와 예술의 언어가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단순히 예술이 개인적 영역의 활동임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예술이(정치적인 구호로 도구화되기보다)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공적인 파급력을 가져올 수 있는 미적 언어를 만들어내는 작업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토레스가 작업에 에이즈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재현하지 않았던 점은 이전의 정치적인 구호들로부터 거리를 두는 밑바탕으로 작용한다. 그의 작업은 구체적인 사회적 이슈를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삶과 죽음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슬픔과 애도의 언어들을 추상화함으로써 보편적인 상실의 감수성을 재현한다. 그 속에서 바이러스와 질병은 우회적으로 연결됨으로써 질병의 이슈들을 환기시키지만,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 까닭에 그의 작업은 특정 이슈들로 소급되지 않는다.

토레스의 작업이 갖는 개인적인 성격은 역사적 맥락을 통해서도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실 ‘터프한’ 에이즈 투쟁의 선례들과 그의 작업이 진행된 시간적 거리에는 90년대 초 연방의회가 에이즈지원법(AIDS Care Act)을 통과시키는 사건이 존재한다. 정부가 질병의 이슈에 관심을 갖고 관리와 지원을 제도화하게 된 것은 투쟁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질병의 제도적 관리는 질병의 투쟁을 쇠퇴하게 만든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투쟁의 집단성이 후퇴하는 가운데 토레스의 작업이 등장하는 것은 이들과 무관할 수 없다.

에이즈 위기라는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거리 위로 나와야만 했던 선배들과 달리, 토레스는 개인적인 작업에 ‘제3세계 성적소수자 감염인 작가’ 라는 타이틀을 적용하여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언어는 개별적인 차원에서 만들어지지만, 그가 처한 상황들은 그의 작업에서 공적인 해석들을 이끌어낸다. 더불어 정치적 구호가 강화되었던 이전의 집단적인 작업들과 달리, 취약함을 강조하는 그의 작업형식은 소수자적 감수성을 강화하여 넓은 층의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획득할 수 있도록 한다. 여기에 관객의 자연스러운 협조를 구하거나, 다소 ‘친근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여 전시기획자들과 제휴하는 적극성을 보여주는 작가의 태도(attitude)는 질병당사자로서, 그리고 성적 소수자로서 주변화되었던 위상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에 환기되고 수정될 수 있는지 고찰의 여지를 남긴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의 문제

에이즈가 시급한 문제로 떠올랐던 80년대 말과 달리, 토레스의 작업은 에이즈 위기가 새로운 국면에 이르는 90년대 초중반에 걸쳐 있다. 사실 그가 떠난 90년대 중반은 칵테일 요법이 개발되어 HIV/AIDS가 만성질병으로 자리 잡는 시기이기도 하다.

각기 다른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때, 그의 작업에 있어 ‘부재의 흔적’ 에만 해석의 초점을 맞춘다면 현재 질병의 이슈와는 갭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의 작업은 죽은 애인의 자리를 재현하고 죽은 애인의 체중을 암시하지만, 우리에겐 그의 작업으로부터 지금 여기 ‘살아있는’ 질병당사자로서 자신의 취약성으로부터 어떻게 말을 만들어내고 있는가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공적 시스템에 침투하여 상실의 감수성을 심어놓는 그의 ‘착한’ 이미지들은 이제 대형미술관의 기획전으로 돌아온다. 대기업 갤러리의 조직력과 치밀한 기획은 작업 대부분의 시리즈들을 가져와 전시한다고 전한다. 전시기간동안 사람들은 서울 전역에 설치될 간판 시리즈를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대 위에서 고고보이의 공연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주류 미술관에서 기획하는 대형 전시가 소수자와 질병의 이슈들을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우려가 든다. 작가 회고전이라는 성격 아래 현행하는 이슈들이 작가의 개인사 내지 당시의 맥락에 갇힐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에이즈로 떠난 지 17년이 된 지금, 착한 이미지들은 착한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불편한 지점들은 매끈하게 정련되기 쉽다. 만날 수 없는 애인을 애도함으로써 과거 질병이 할퀴고 간 상처를 쓰다듬어준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에이즈’와 ‘동성애’는 따옴표에 갇혀 미적 언어로 ‘승화’되고 소비 가능한 개인사로 가공됨으로써 이미 지난 이슈로 축소되거나 작가를 수식하는 하나의 키워드로만 수식될 수 있다. 이 경우 회고전은 말 그대로 ‘회고전’으로만 남게 된다. 그것은 작가의 작업을 컨텐츠로 가공함으로써 박제하는 폭력이나 다름없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업은 격렬한 투쟁의 역사가 저무는 시기 실패한 사랑과 소멸해가는 삶을 다룬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사랑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소멸하는 삶으로부터 삶을 어떻게 일으켜 세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실천한다. 그의 작업은 그가 생존하기 위한 투쟁이기도 했다. 이 투쟁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을지라도, 그의 작업은 시공간의 갭을 가로질러 우리의 입 안에 들어오고, 우리 감수성의 촉에 취약한 매개물들을 깜박이면서 불가능한 사랑의 슬픔을 적시는 공론적 장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실패한 사랑이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이야기될 것인지, 그리고 새로운 서사를 어떻게 쓸 것인지의 문제는 이제 우리가 그의 작업에서 읽어내야 할 과제이고, 지금 우리가 이야기해야할 화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