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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이주사의 받아쓰기

#1 자선이라는 나눔과 연대라는 나눔

by 행성인 2012. 8. 3.


이주사(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80년대 대표적인 영국 밴드 스미스의 보컬 모리씨는 영국의 유명한 자선 공연이었던 ‘라이브 에이드’에 불참 의사를 표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를 돕자는 거라죠? 하지만 그쪽 사람들이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한 적 있던가요? 단언컨대, 대처 및 왕실 가족이라면 ‘라이브 에이드’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신속한 방법으로 10분 안에 그 문제를 해결했을 겁니다만, 밥 겔도프 이하 사람들은 여왕에게 대들기엔 너무 간이 작았고 그래서 결국 그런 식으로 없는 사람들 주머니나 공략하기로 한 겁니다."


지금 동인련, 그러니까 동성애자인권연대는 아주 오랜만에, 내가 이곳에 발 담근 이후 처음으로 대대적인 후원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바로 이 시점에 나는 모리씨의 저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한국에도 ‘라이브 에이드’ 같은 온갖 종류의 자선 공연이 흔하다. 자선하면 익숙한 자선냄비와 불우이웃돕기부터, 요즘에는 유니세프나 세이브더칠드런 같은 단체들의 광고도 자주 접할 수 있다. 큰 자연재해나 재난이 일어나면 어김없이 텔레비전 한 귀퉁이에 모금 전화번호가 뜬다. 수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불행을 안타까워하고 자선에 동참하는 것을 보면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말이 참 근거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자선을 통해서는 빈곤이나 기아를 해결할 수 없다. 이 사회에는 분명 모든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지 않을 정도의 부가 존재한다. 그 부가 전쟁이나 은행가 구제, 한국으로 치면 4대강사업 같은 곳에 낭비된다. 이런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다시 말해 우선순위를 바꾸지 않는 한 자선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산불을 물총을 갖고 진화하려는 것과 같다.


나아가 자선은 종종 이 사회의 어마어마한 불평등과 지배자들의 책임을 가리는 구실을 한다. 이명박이 자선냄비에 돈을 넣고 자선을 호소하는 것처럼 구역질나는 일이 또 있을까. 굶주린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자선을 호소하는 광고는 선한 의도와 상관없이 무고한 이들에게 죄책감을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자선은 빈곤이나 실업 같은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수혜의 대상이나 무기력한 피해자로만 볼 뿐, 투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주체로 보지 않는다. 당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연대의 기초이자 출발이다. 문제는 자선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왜 우리 사회에 가난과 불평등, 기아, 전쟁과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지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라이브 에이드’와 ‘러브 뮤직 헤이트 호모포비아’


그런데 영국에는 또 다른 공연이 한 가지 있다. 성소수자 혐오에 반대하는 가수들이 ‘러브 뮤직 헤이트 호모포비아’라는 이름으로 여는 공연인데, 단지 공연과 기금 마련에서 그치지 않고 성소수자 혐오에 맞선 운동을 건설하는 단체이기도 하다. ‘러브 뮤직 헤이트 호모포비아’는 연대와 저항의 정신을 보여준다.


2012년 런던 자긍심 행진에 참가한 '러브 뮤직 헤이트 호모포비아' 회원들(사진출처:http://www.facebook.com/events/399509460086217/)


‘라이브 에이드’가 나눔을 통해 현실의 고통을 경감하고자 한다면 ‘러브 뮤직 헤이트 호모포비아’는 연대를 통해 현실의 변화를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리라.


동성애자인권연대가 강조하는 ‘연대’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차별받고 천대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나 부채감은 출발점일 수는 있다. 그러나 거기에 멈춰서는 안된다. 성소수자 차별이 부당하고 사람들에게 획일적인 틀을 강요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차별에 맞서 함께 싸워야 한다. 그래서 동인련은 당신에게 연대하자고 말한다. 우리와 함께 싸우자고, 다른 세계를 만들자고 말한다.


그리고 더 잘 싸우기 위해서는 더 큰 텃밭이 필요하기에, 당신의 지지를 후원으로 표현해 줄 것을 호소한다. 그래서 무지개 텃밭 후원 캠페인은 당신의 선행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 차별에 맞선 투쟁의 필요성을 알리고 연대를 호소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