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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에이즈, 또는 에이즈에 걸린 ‘사람’ - 법과 에이즈, 한국 에이즈 운동의 고민

by 행성인 2012. 12. 1.

권미란(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이하 나누리+)가 2004년부터 활동을 한 후 주로 만나게 되었던 에이즈감염인은 성인이면서 게이이면서 기초생활수급권자였다. 이들은 대부분 게이커뮤니티를 포함하여 가족, 친구, 직장 등과의 단절을 경험하였고, 병원이나 동사무소, 보건소처럼 지속적으로 접해야하는 사회에서는 에이즈를 이유로 차별을 경험하였으며,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의학과 약의 발달로 에이즈는 더 이상 ‘죽음의 병’이 아니지만 이들이 HIV감염 후 겪은 삶은 ‘사회적 사망’이라고 할 만큼 너무도 외롭고 고통스러워서 에이즈는 여전히 무서운 병이라고 말한다. 에이즈는 80년대 초부터 ‘동성애자들이 문란하게 살아서 내린 천형’이라는 편견과 낙인이 따라다녔고, 이는 에이즈공포와 함께 성소수자들의 삶과 권리를 부정하고 위축시키는데 일조했다. 그래서 에이즈운동은 에이즈감염인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실현하는 것 뿐만아니라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지지하고 향상시키는 운동이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에이즈운동과 성소수자운동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은 무엇일까, 나누리+는 성소수자운동에 얼마만큼 참여해야할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

 

또 다른 고민은 성인 게이가 아닌 에이즈감염인을 만났을 때이다.

 

올해 초에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몇 다리 건너 연락을 해왔다. 계속 한국에 있고 싶은데 에이즈치료제를 구할 방법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2010년부터 법무부의 정책이 바뀌어서 HIV에 감염되었다고 이주민을 강제출국시키지는 않기 때문에 병원에 갈 수는 있다. 에이즈치료제 약값을 100% 본인이 부담해야하는데 한국에는 모두 특허가 있는 약이어서 한달 약값이 100만원이 넘는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말은 한달에 100만원을 벌까 말까 하다는 말과 같다.

 

작년에는 교도소에 수감된 에이즈감염인이 몇 다리 건너 연락을 해왔다. 교도소에서 독방을 쓰게 하고 목욕, 운동 등 모든 생활에서 다른 재소자들과 분리시키고 대화 나눌 사람도 없이 지내야 하는 격리생활이 너무 괴롭다고 했다.

 

몇 년 전에 아기가 먹을 수 있는 소아용 에이즈치료제를 구할 방법이 있느냐고 몇 다리 건너 연락이 왔다. 엄마는 아기가 HIV에 감염된 사실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감염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충격으로 곧 자살하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아기를 키우려고 하지 않아 할머니가 아기를 키우고 있다. 아기는 결국 성인용약을 갈아서 먹고 있지만 다행히 잘 자라고 있다고 한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초국적제약회사가 돈이 안된다고 소아용약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몇 년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봄이처럼 이 아이는 동네에서, 학교에서 어떤 일들을 맞이하게 될까?

 

이 사연들의 첫 번째 공통점은 ‘몇 다리 건너’ 나누리+에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게이인 에이즈감염인은 동성애자인권연대나 에이즈감염인단체에 문을 두드려 볼 수 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이거나 이주민이거나 성노동자이거나 재소자이거나 여성이거나 청소년인 에이즈감염인의 경우 어디에 가서 함께 고민을 나누어야할지 난감할 것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이 사연을 가진 이들의 어려움을 결국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생존감염인수는 약 7천여명으로 인구대비 유병율은 극히 낮은 축에 속하여 정체성이나 사회적 처지별로 그룹화하기 어렵다. 작년 10차 아시아태평양에이즈대회에서 보았듯이 해외에서는 마약사용자, 성노동자, 남성과 성관계를 갖는 남성, 청소년, 이주민 등 사회적 처지가 같은 에이즈감염인들끼리 그룹화하여 문제점과 해결책을 찾고, 조직적 대응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어렵다. 예를 들어 이주민 에이즈감염인이 처한 어려움은 이주민정책과 에이즈정책이 결합하여 낳은 결과이다. 따라서 이주민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이주민에 대한 에이즈정책도 궁극적으로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다양한 사회적 조건에 처한 에이즈감염인들이 실존하고, 한국의 에이즈정책속에도 존재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 수립된 에이즈정책은 ①밖에서 유입되는 것을 차단(이주민 대상 에이즈강제검진과 입출국통제, 수입혈액에 대한 에이즈검사, 외항선원 에이즈강제검진 등), ②취약한 집단을 대상으로 ‘색출’(성노동자, 재소자, 군인, 동성애자 등), ③감염인 감시(과거 추적관리, 과거 격리수용, 실명보고, 전파매개행위금지 등)를 통하여 에이즈를 예방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현재는 ‘감염인 감시’를 과거처럼 할 수 없기 때문에 ‘색출(강제검진, 검사의 중요성 강조)’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서는 오히려 강제검진 대상이 확대되고 있다. 성노동자, 재소자, 이주민, 동성애자, 군대 등 사회적 지위가 낮은 집단과 손쉽게 통제할 수 있는 집단을 우선적으로 타깃화한 점, 이 집단이 일반인구에 비해 에이즈유병율이 높다는 증거나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에이즈공포와 편견에 기반했다는 점, 감염병 전파방지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취약한 집단에 대한 통제방식은 한국사회에서 그 집단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눈에 보이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법적인 인정여부에 따라 다른 방식의 통제를 하고 있다. 성노동자가 에이즈강제검진의 핵심 대상이 되었던 것은 성매매정책과 에이즈정책이 결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불법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위생분야종사자’에게 성병강제검진을 하는 방식을 취하여왔다. 이주민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과 정책이 매우 차별적인 상황에서 모든 이주민에게 강제검사를 하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외교 등의 문제에 직면, 이주민 중에서도 취약한 이들에게 에이즈강제검진, 입국금지, 강제출국시켜왔다. 재소자와 군인은 집단생활을 하기 때문에 아주 통제하기 쉽고 인권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에 강제검진, 강제격리(격리수용, 전역)를 한다. 동성애자는 법적으로 불인정되는 존재이고 가려내기 어려우므로 법을 통해 통제하기보다는 에이즈공포와 윤리적 잣대로 억압하는 방식이었다. 에이즈역학조사결과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1:9로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점으로 보아 실제로 MSM이나 게이가 많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 동성애자 통제가 강제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동성애자에 초점을 둔 에이즈예방사업의 발굴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한국의 상황에서 나누리+의 고민에 도움이 될 만한 보고서가 나왔다. ‘법과 에이즈에 대한 국제위원회: 위험, 권리, 건강(Global commission on HIV and the Law: Risks, Rights & Health)’이다. 이 보고서는 그 자체로 상징적이고 아주 괜찮은 권고이다. 2010년에 유엔에이즈(UNAIDS)는 향후 10년간의 에이즈대응비전으로 3Zeros(신규감염 제로, 에이즈관련 사망 제로, 차별 제로)를 제시하고, 차별 제로(Zero discrimination)를 위해 2010년 6월에 ’법과 에이즈에 관한 국제위원회(global commission on HIV & Law)를 발족시켰다. 유엔에이즈는 에이즈감염인과 에이즈에 취약한 계층을 차별하거나 처벌하는 법과 제도, 관행은 이들이 에이즈예방, 치료, 돌봄, 지원 프로그램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때문에 에이즈대응의 실패를 초래한다고 평가하였다. 법과 에이즈에 관한 국제위원회는 많은 국가에서의 법과 정책의 재검토과정과 변화를 활성화시키는 것을 중요한 역할로 삼고 있다.


 <법과 에이즈에 대한 국제위원회: 위험, 권리, 건강> 보고서



법과에이즈에 관한 국제위원회가 올해 7월에 권고안을 담은 보고서를 내기까지 18개월의 과정도 만만치 않았지만 내용의 측면에서 투쟁(논쟁)의 장이라고 할 만하다. 내용의 구성이 크게 4개분야 즉 에이즈관련 법률, 취약그룹(마약사용자, 성노동자, 남성과 성관계를 갖는 남성, 트랜스젠더, 재소자, 이주민), 여성과 아동, 지적재산권과 의약품접근권으로 이뤄져있고, 유엔산하 인권협약인 여성차별철폐협약 등의 수정을 요구하기도 하고, WTO(국제무역기구)회원국들에게 강제력이 있는 TRIPS(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의 중단을 요구하는 등 실현여부를 떠나 논쟁, 투쟁의 대상이 될 만한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나누리+는 법과 에이즈에 관한 국제위원회의 보고서 내용을 빌어 11월 17~18일에 이주민, 재소자, 트랜스젠더, 성노동자, 성소수자, 청소년의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이들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우선 좋았던 것은, 먼저 에이즈에 국한되지 않고 얘기를 나눴다는 점이다. 트렌스젠더바를 성매매가 일어날 수 있고 그래서 HIV에 감염될 수도 있는 공간으로만 보면 안된다는 조언을 들었다. 트렌스젠더바는 직장이기도 하면서 때로는 집이고 때로는 마을회관같은 곳이고 트렌스젠더들의 공동체가 형성되는 곳이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건강권의 문제를 걱정하였다. 평생 호르몬제를 투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제대로 연구된 바도 없고, 에이즈치료제와 호르몬제를 병용투여했을 때 어떤 상호작용과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도 없다. 그리고 이주노조 비대위원장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주민정책 자체가 미등록 이주민을 만들어내고 있고, 이주정책 자체가 에이즈에 취약한 조건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동과 청소년’ 간담회에서는 그동안 성인중심으로 고민했던 점에 대한 반성이 들었다. 각 주체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들으면서 이들에게 에이즈는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느꼈다.

 

또 좋았던 것은, 법과 제도안에서만 그 존재를 바라보는 것이 왜 답답했는지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법과 제도안에서 형평성을 따지고 과학적 근거를 따지는 일은 중요하고, 권리를 법제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일단은 그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누리+는 성노동자를 대상으로 에이즈강제검사를 하도록 한 에이즈예방법을 두고 이를 없애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다. 이유는 법의 취지를 따지자면 없애야할 조항이지만 성노동자의 건강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는 고민없이는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서 성노동자는 불법적 존재인데 제도적으로 어떻게 건강권을 보장하지? 성‘노동자’라고 불러도 되나? 등의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그/녀는 남들이 성‘노동자’라고 부르지 않는 것과 상관없이 성‘노동자’로 살아가고 있고 자신의 ‘성권리’의 실현이라고도 했다. 집창촌을 쓸어내면서 성병강제검진이 많이 사라진 지금 그녀는 약 50만원의 자비를 들여 성병검진을 받으러 다닌다고 했다. 결국 법과 제도를 다시 고민해야겠지만 우선 나는 성노동자의 권리와 삶을 지지하고 싶어 졌다.

 

셋째로, 보고서의 권고에 빗대어보았을 때 한국의 상황이 좀 더 명확히 들어왔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재소자의 성권리를 인정하고 교정시설에서 콘돔을 자유롭게 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했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이들 모두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국의 재소자 인권현황을 보았을 때 너무도 먼 일이기 때문이다. 마약사용도 마찬가지. 그래서 간담회때 아예 이야기하지 말자는 암묵적인 합의같은 게 생기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간담회 한번으로 끝내지 말고 앞으로 다시 만나거나 소통해야할 필요성을 서로 느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지금 명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계속 만나가면서 확인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