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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 혐오/차별금지법

동성애찬반을 넘어 이제는 차별과 혐오에 맞서 함께 행동할 때

by 행성인 2013. 5. 30.


정욜.민석 (동성애자인권연대) 



차별금지법 제정과정에서 ‘성적지향’은 가장 민감한 화두였다. 이성을 좋아하든, 동성을 좋아하든, 둘 다 좋아하든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가 확산될 것이고, 에이즈가 창궐할 것이며, 학교에서는 항문성교를 교육하게 되고, 설교시간에 동성애가 죄라는 말을 하게 되면 벌금폭탄을 맞게 될 것이라는 말로 바뀌어버렸다. 말도 안 되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던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보수 기독교의 압력에 굴복해 결국 법안을 자진 철회하였다.동성애혐오를 조장하는 이들의 행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있다. 성적지향에 의한 차별금지를 명시하고 있는 서울학생인권조례와 국가인권위원회법마저 개정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있고 국제사회에서도 성적지향에 의한 차별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는 이 때, 한국은 동성애자들이 드러나는 것마저 두려워 혐오와 차별 속에 가두려 한다.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며 “내 주변에는 없는 것 같은데 성소수자들이 직장에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참 많이 받는다. 나를 비롯해 차별의 경험을 한두 가지씩 안고 살아가는 성소수자들과 만나면서도 이 질문들을 받으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참 난감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대개 보이는 차별에 집중하고 판단한다. 성별이 달라서 경험하는 차별, 장애유무에 따라 고용형태에 따라 경험하는 차별, 피부색이 달라서 경험하는 차별은 충분히 상상 가능하지만 동성애자여서 받는 차별은 쉽게 떠오르지가 않는다.

 

차별금지법안 철회의 이유를 보수교계의 책임만으로 떠넘길 수는 없다. 물론 그들이 가장 큰 역할을 했지만 무관심과 침묵으로 일관하며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문제쯤으로 생각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로 인식되기 때문에 내 가족 중에, 내 친구 중에, 내 직장동료 중에 성소수자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다. 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성소수자들은 영원히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다. 최근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행보를 보이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메시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이들은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 민감한 주제라고 말합니다.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제 세대의 많은 분들처럼 저도 이런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분위기에서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히는 법을 배웠습니다. 생명이 걸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이고, 이것이 전 세계 모든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유엔 헌장과 세계 인권 선언에 따른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2012.3.7 유엔 인권이사회) “성소수자들은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권리를 가졌습니다. 성소수자들 역시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습니다. 민주주의는 다양성 위에서 번창합니다. 정부는 편견을 부채질하는 것이 아니라 편견과 맞서 싸울 의무가 있습니다”(2012.12.11 유엔 뉴욕본부에서 열린 <호모포비아에 대한 투쟁에서 지도력>에 관한 행사에서)

 

차별의 경험을 이해한다고 소수자를 존중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은 아니다. 관심을 가지고 신문기사만 검색해 봐도 성소수가 경험하는 차별사례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지금 바로 찾아보길 바란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동성애를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왜” 라는 궁금증에 “혹시”라는 가정을 더하고 “그래도”라는 단서를 두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왜 이성애자가 되었는지, 혹시 이성애를 바꿀 수 없는지, 노력하면 동성애자가 될 수 있는 건지는묻지 않으면서 동성애자들에게 던져지는 수많은 물음들, 그것은 곧 편견이고 침묵을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강조한 것처럼 성적지향을 생명이 걸려있는 문제로 인식하고 다양성을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우리 모두가 편견에 맞서 싸울 의무를 실현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 편견의 이유를 따져 묻는 것. 성소수자 차별을 반대한다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 이런 행동들이 쌓이고 쌓였을 때 차별금지법 제정은 물론 성소수자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의 구름도 조금씩 걷힐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