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소수자 모임

사부작사부작 대구경북성소수자인권모임 '대소인'을 만나다!

by 행성인 2013. 7. 19.

이주사(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언젠가부터 ‘대소인’이란 대구 지역 성소수자 인권모임의 이름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지역사회의 특성과 자원의 부족 때문에 2000년대 중반부터 외향적인 활동을 하는 지역 성소수자 모임을 찾기 힘들었던 상황에서 대소인의 결성과 활동은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동인련은 올해 두 차례 지역을 방문해 지역 회원들을 만날 계획을 세웠는데,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대구를 첫 방문지로 선정했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5회나 이어져 오고 있는 대구퀴어문화축제를 응원하고 대구에서 활동하는 성소수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동인련 회원이기도 한 대소인 창립멤버 아이몽님을 통해 대소인 회원들과의 인터뷰가 성사됐다.


대구퀴어문화축제 다음 날 필자와 이경이 대소인 회원이기도 한 준이님이 기획한 퀴어미술전시가 열리는 토마 갤러리에서 대소인 회원들을 만났다. 올해 매니저 달달달, 카페 개설자이자 작년 매니저인 아이몽, 최근에 가입한 길냥, 기록을 담당하고 모든 정모와 번개에 빠지지 않는다는 준이님이 인터뷰에 함께했다.


대소인 회원들이 참여한 작품 앞에서. 왼쪽부터 아이몽, 준이, 달달달.


아이몽은 서울에서 차세기연 등 인권활동에 참여하다가 학교 때문에 대구에 오게 됐는데 활동할 곳이 없어서 아쉬워하던 차에 사회운동을 하는 지인들의 격려로 대소인을 만들게 됐다. 카페 개설 뒤 인권관련 사이트에 많은 홍보를 했고, 홍보를 보고 회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카페 회원 수는 276명인데, 그 가운데 실제 활동하는 사람은 20여명이다. 정모에 많으면 20명 적으면 10명 정도가 참여하는데, 10대부터 40대까지 나이 대는 다양하다.


길냥은 대소인 활동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으로 도서관에 비치된 성소수자 관련 서적에 성소수자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적은 쪽지를 넣어놓은 활동을 꼽았다. 아이몽이 처음에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라는 책을 샀을 때 차세기연 책갈피가 들어있었던 것을 보고 차세기연을 알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직접 활동은 안하지만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사람들에게 뭔가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대소인 회원들은 10여개의 대구 지역 도서관, 대구에 위치한 대학교 도서관을 함께 다니면서 쪽지를 끼워놓았고, 아직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도서관에 다니며 쪽지가 없어진 책이나, 신간 서적에 새로 쪽지를 끼워 넣는다. 쪽지를 보고 대소인에 가입한 사람들이 10명이 넘는다. 특히 도서관에 자주 가고,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10대가 많았다. 구미나 김천에 사는 회원이 쪽지를 받아 가서 자기 지역 도서관에 끼워놓기도 했다.



대소인이 도서관에 직접 다니면서 성소수자 관련 도서에 끼워놓은 쪽지. 손글씨가 정성스럽다.


동성로 거리에서 동성결혼에 대한 지지 여부를 묻는 스티커 설문을 벌이기도 했다. 거리 캠페인은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참여할 수 있고 인식 개선도 도모할 수 있는 방식이다. 동영상 제작도 추진했다. 아쉽게도 담당자들이 활동을 쉬는 상태여서 중단된 상태다. 아무래도 인터넷 카페다보니 회원들이 활동을 지속하는 데 어려운 점이 있다.


소모임도 여럿 있다. 인권공부 소모임을 만들어 청소년 세계 인권사에 대한 책을 함께 읽었고, 공작교실, 10대 소모임도 있다. 달달달은 락밴드 활동을 해서 음악 관련 소모임도 추진했다. 퀴어 퍼레이드에서 성소수자들이 꾸미는 무대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한다. 미대생인 준이는 가칭 무지개 크레파스라는 이름으로 미술관에 함께 가는 소모임을 생각 중이다.


작년 5.17 성소수자혐오 반대의 날(아이다호 데이) 때는 활동하는 회원이 적기는 했지만 각자 카톡 대화명에 아이다호 데이를 알리는 문구를 써놓는 활동을 했고, 지식인에 일부러 아이다호 데이에 대한 질문을 올리고 답하기도 했다. 올해 아이다호 데이 때는 거리에 무지개와 아이다호 데이를 알리는 그림을 그리는 활동을 벌였다.






(왼쪽) 작년 아이다호 데이에 대소인 활동가들의 카톡 프로필 (오른쪽) 올해 아이다호 데이에 진행된 거리 그림 그리기 모습과 작품들




정모 때 사람도서관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어려운 얘기가 아니라 살아간 얘기를 듣는 것이었지만, 서로 치유가 되는 것 같았다. 회원 중에 트랜스젠더가 있어서 그 분 얘기도 들었는데 많은 것을 알게 됐다.


대구 퀴퍼에도 부스 참여를 비롯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함께하고 있다. 이번 퀴어 미술 전시도 준이가 개인적으로 준비했지만 대소인 회원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


최근에는 퀴퍼를 통해 새롭게 가입한 회원들이 많은데 기존 회원들과 친해지는 문제도 고민이다. 정기 채팅과 정모를 통해 함께 하고 싶은 활동에 대해 얘기하고 추진한다. 작년에는 많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고 누구든 아이디어를 내면 추진하는 식이었다. 물론 활동의 지속성 등 문제점도 있어서 앞으로는 의견을 모으는 과정을 좀 더 갖는 데 공을 들일 생각이다. 


대소인은 대구 KBS의 취재 요청을 받아 방송을 타기도 했다. 아이몽은 지역 방송에서 성소수자를 다뤘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었다고 말한다.


대구 출신이 아닌 길냥은 가장 보수적이라는 대구에서 이런 지역 활동이 활성화돼 있는 것이 극과 극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대구 사람들은 대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아이몽은 활동가들이 가끔 사람들이 퀴어가 뭔지 몰라서 그렇다는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변화도 느껴진다. 예전에는 성소수자들이 퀴어문화축제에 나오길 꺼렸지만 지속되다 보니 점점 나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아이몽은 지역적 특징보다는 인권 활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괴리를 더 크게 느낀다.


준이는 대구에 퀴어문화축제가 있는 것이 너무 심하게 괴롭힘을 당하기 때문에 저항감도 크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전시를 보러 오는 사람들을 보면 혐오를 표출하기보다는 대부분 신기하게 보는 경우가 많았다. 성소수자에 대해 단편적이지만 알려진 바도 많아졌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길냥은 부산 출신인데 지방은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활동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서울에 갔을 땐 아는 사람이 없어서 모임이나 활동에 나가기 쉬웠다.


대구에서 태어나 20년 넘게 대구에서 산 달달달은 활동하던 뮤지션 단체가 퀴어문화축제에 연관을 맺는 것을 봤다. 그런데 사실은 호모포비아인 사람들이 단지 진보적인 성향이기 때문에 함께 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는 것에 반발감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길을 찾아서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게 됐다.


대소인은 대구 지역 진보 단체들과 여러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정모 장소로 사용하는 예술창고, 물레책방 등도 진보 단체들과 연관 있는 곳이다. 대구는 워낙 진보 운동이 작기 때문에 서로 서로 지지하고 돕는 분위기가 있다.


이경이 퀴어문화축제에서 만난 한 활동가는 보수적인 대구에서 소수자 운동이 힘들지 않냐고 묻자 운동 자체가 소수기 때문에 더 힘들고 덜 힘들고가 없고 우리끼리 뭉쳐야 된다는 정서가 강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운동의 느낌이 나면 반기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물론 진보라고 해도 성소수자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진보 진영이 성소수자 이슈에 우호적이기 때문에 접점을 만들고 이해를 높이는 활동도 고민하고 있다.


활동할 때 스스로 걱정하고 위축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의외의 경우도 많았다. 도서관에 쪽지 넣는 활동을 하면서 제재를 받은 적도 없고 심지어 보존서고에 있는 책에 쪽지를 넣어달라고 사서한테 부탁을 했는데 흔쾌히 응해주기도 한 것이다. 인권위원회에 장소 대여 때문에 연락을 했는데 이런 활동이 많지 않다보니 인권위원회 직원이 너무 반가워하기도 했다.


얘기는 자연스럽게 박정희에 대한 대구 지역의 ‘충성심'으로 넘어갔다. 얼마 전 한 미술 전시에서 박정희에 비판적인 작가의 작품이 검열을 당하기도 했다. 준이는 할머니에게 박근혜가 싫다고 말하는 것이 커밍아웃하는 것보다 더 두렵다. 아이몽과 달달달도 공감한다. 달달달은 노란색 바람막이 입었다고 할머니한테 혼이 났다. 정치적 커밍아웃이 더 힘든 이 상황이 어쩌면 가장 큰 차이인지도 모른다.


달달달은 앞으로 치유와 관련된 미술, 음악 관련한 문화적 활동을 하고 싶다. 아이몽은 지역 사람들이 서로 만나 재밌게 놀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 싶다. 지역은 아무래도 모임과 단체가 적다보니 서로 만나고자 하는 욕구가 크다. 달달달은 커뮤니티의 당사자들이 서로 다른 섹슈얼리티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데 깜짝 놀랐다. 그래서 바이섹슈얼이나 트랜스젠더, 동성애자들이 서로 얘기하는 기회를 만들려고 한다.



(왼쪽) 로컬의 대장이 꿈인 달달달. (오른쪽) 인터뷰 막바지에 합류하신 부운영자 류군님과 함께 대소인 회원들 한 컷.



아이몽은 성소수자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일단 시작하라고 말한다.


“시작하세요. 사람들은 분명히 있고 모여요. 나 혼자인 것 같지만 그 지역에 분명히 그걸 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누군가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모이니까 누군가 시작할 필요가 있어요.”


아이몽은 매번 서울에 갈 차비가 없다. 길냥은 자기 지역에서 살고 싶다. 성소수자로서 살고 싶기 때문에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 서울에 가면 자유롭고 오픈된 느낌이 들지만 내 고향이 아니고 내가 사는 곳이 아니란 느낌이다. 달달달도 마찬가지다. LGBT인권포럼에 가도 위화감이 든다.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사투리 쓰는 사람도 없다. 달달달은 로컬에서 대장이 되는 게 꿈이다.


단순하지만 내가 있는 곳에서 즐겁게 살 수 있도록 여기를 바꾸는 것 그것이 지역모임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