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현 (동성애자인권연대)


토론회는
청소년 성소수자 발언으로 시작되었다. 바람과 오렌지가 학교에서 겪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괴롭힘, 막말, 폭력의 경험들이 바람과 오렌지의 입에서 나올 때,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울 수 없었다. 게다가 바람과 오렌지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 그럼 울면서 말하면 현실적이었을까? 모르겠다. 차별과 폭력이 일상이라는 건 무엇일까? 내가 겪은 괴롭힘을 어떻게 설명하는 게 좋은 걸까? 예전에 미국에서 온 레즈비언이 나에게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국에서 동성애자로 살면 너무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던 게 떠오른다. 

오렌지와 바람이 학교에서 커밍아웃하고 그 후에 겪은 괴롭힘을 들으면서, 내 머릿속엔 계속해서 '너무 성급한 커밍아웃이 아니었나?' '판단 미스야'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충분한  고민을 안 한 걸로 보였다. 괴롭힘이 뻔하게 보이는 상황에서 커밍아웃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닌 것으로 여겨졌다. 동성애혐오가 심한 세상에서 도대체 어떤 커밍아웃이 '충분히 고민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질까? 나에게조차 커밍아웃은 최악의 경우에 관계가 끝날 것을 상정하면서까지 하는 것이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어서" 커밍아웃을 했다는 그 이유 하나가 왜 그렇게 와 닿지 못하는 걸까? 라는 의문을 가지는 것처럼 우리는  너무 쉽게 차별과 폭력에 압도되어 버린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드러낸 바람과 오렌지를 응원한다.

특히 괴롭힘 이후 이들의 대응은 정말 존경스러웠다. 바람은 매일 밤 자신의 핸드폰으로 혐오문자, 카톡들을 보내고,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을 '협박'했다. "니가 나한테 이렇게 괴롭힌 거 신고하면 처벌 받는다. 너 때문에 너네 부모님, 선생님, 교장이 뉴스에 나와서 무릎 꿇고 사죄하는 꼴을 보고 싶냐" 이렇게 당당하게 차별을 이야기하고 대응할 수 있다니. 결국 친구들 사이에서의 심한 괴롭힘은 사라졌다고 한다.

오렌지는 커밍아웃을 한 후,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는데, 끊임없이 친구들을 쫓아다니면서 왜 어떤 말이 차별적이고,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인지 설명하고, 동성애혐오적 괴롭힘으로 자살한 학생에 대한 탄원서를 받고 했단다. 이러한 노력 속에서 학급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었다고 한다. 성소수자가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나를 드러내고 변화를 요구하는 건 참 어렵다. 성소수자 커뮤니티나 인권운동단체에서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힘들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이들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이윤승 교사의 이야기도 정말 흥미로웠다. 무려 6명의 성소수자 학생으로부터 커밍아웃을 받은 분인데, 학생들이 왜 자신에게 커밍아웃을 했는지 그 이유를 추정해서 발제문으로 적어왔다. 일단 상담을 많이 한다고 했다. 근데 학생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에서 하고, 뭔가를 물어보기 보단 학생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로 듣는다고 했다. 그래서 상담일지에 쓸게 별로 없다고. 연예인 이야기만 하다가 끝나기도 한단다.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뭐 하시는지, 학교 끝나고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장래희망은 무엇인지(대학은 어떻게 할 건지) 등을 물어보는 상담에서 나의 성정체성을 이야기할 공간은 없다. 그런 상담에서 교사가 원하는 답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무런 제약이 없을  때 말 할 수 있다.

 

이윤승 교사는 매우 적극적으로 소수자의 이야기를 꺼낸다고 했다. 수학선생님인데 집합을 설명할 때 LGBT로 레즈비언 집단, 게이 집단을 설명하기도 하고, 기말고사가 끝나고 시간이 남을 때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주제로 수업하면서 성소수자를 설명하기도 하고, 일부러 성소수자 관련 영화를 틀기도 한단다. 임신한 여성이 드라마에 엑스트라로조차 나오지 않고, 장애인을 학교에서 찾아볼 수 없고, 사회에 존재하는데 드러나지 않는 소수자들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그것이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거. 그래야 월드컵 때 아르헨티나를 응원하는 내가 이 사회에서 쫓겨나지 않을 테니까. 전교조 교사들은 이미 학교에서 소수자라면서. 모두가 똑같고, 다수에 속하고, 튀지 않기를 강요하는 학교에서 각자가 가진 소수자로서의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토론회에 참가한 선생님으로부터 나온 질문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학생이 성소수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무조건 부모에게 알리지 않는다는 것은 교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라는 것이었다.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교사로서 매우 어려운 문제일 것 같다.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부모나 학교가 책임을 물을 수 있고, 부모에게도 중요한 문제인데 교사만 알고 있다는 것이 부모에게 잘못하는 것 같고, 부모를 이해시키는 쪽으로 설득하는 역할을 교사 할 수도 있지 않냐는 생각들. 
대답이 참 훌륭했는데, 사실 성소수자가 부모에게 커밍아웃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이 순간을 수없이 고민하고 또 하면서 하게 되는데,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사가 말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사회에서, 그리고 청소년이 사회적으로 놓여있는 위치에서 섣부른 아웃팅은 성소수자 청소년을 가정폭력과 같은 다른 어려움에 빠트릴 수 있다. 그렇다고 손 놓고 모른 채 하라는 것이 아니다. 부모에게 커밍아웃 하는 중요한 순간을 스스로 선택 할 수 있도록 교사가 같이 고민하고 상담할 수 있다. 어떤 어려움들이 닥칠 지에 대한 조언일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해야 하는 이유를 토론할 수도 있고. 교사가 성소수자 청소년과 같이 고민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안전하게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성소수자 청소년에게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인상적인 질문은 학교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돕는 수업을 하는데, 모든 자료를 찾아서 편견에 대해 설득하고 혐오와 차별이 왜 나쁜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끝까지 큰소리로 "그래도 동성애는 싫어요. 더러워"라고 말하는 아이들 한두명 때문에 말문이 막혀버리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역시 또 훌륭한 대답. 학급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큰소리로 혐오를 말하는 이들은 대체로 다수의 위치에서 주류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사람이기 쉽다. 다른 소수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기 쉽다. 장애인은 싫다라든지. 그래서 그만큼 당당하고 꺼릴 것 없이 내뱉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자신이 소수에 속하는 두려움은 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자신이 그런 혐오표현을 할 때 주변에서 전혀 동의하지 않고, "쟤 왜 저래?"라는 느낌이 들면 함부로 입 밖에 꺼내지 못할 거다. 혐오표현을 하는 자신이 소수가 되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런 한두명에 너무 힘 빠지지 말고 학급 전반적인 분위기를 변화시키도록 적극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돕는 수업을 할 필요가 있다. 

이 이외에도 곱씹어볼 만한 많은 내용들이 있었으나, 더 적는 것은 나도 그렇고 읽는 분도 힘들 터이니 여기까지만. 자료집은 링크를 시켜놨으니 읽어보세요. 

<우리 학교, 우리 반에 꼭 있다: 성소수자 학생에 대한 혐오성 폭력과 교사 학교의 역할>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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