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말, 한 HIV/AIDS 감염인 친구는 이 땅에서는 구할 수 없는 약이 필요했다. 그는 국내에서 공급되는 12가지의 에이즈 치료제에 내성이 생겼고, 그래서 그에게는 새롭게 개발된 약이 투여되어야 했다. 푸제온(Fuzeon)이라는 약을 이 때 나는 처음 알았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인 나라에서 연간 2만 달러의 비용을 요구하는 약이었다.

모두들 ‘금값보다 비싼 약’이라고 했다. 그 말이 내 머리 속에서 뽑아내는 생각의 줄기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정말 비싸구나.”라는 놀라움, 다른 하나는 금속의 차가움이다.


엄마 손은 약손


어렸을 적에 자주 앓았다. 툭하면 편도선이 붓고, 열이 났다. 그래서 남들은 평생 한두 번 일으킨다는 경기도 수십 번을 경험했다. 그 때의 기억이 지금도 잔상처럼 남아 있다. 열이 펄펄 끓어서 눈앞이 뿌옇게만 보였다. 몸에 차가운 물수건이 닿아 놀래서 눈을 뜨면 근심어린 표정의 엄마가 내 몸을 닦아주고 있었다. 아빠의 서늘한 손은 내 이마를 쓰다듬어주면서 먹기 싫은 쓰디 쓴 가루약을 입 안에 넣어주었다. 며칠을 엄마와 아빠의 품속에 안겨 있으면 들끓던 내 체온은 서서히 내려갔다.


나에게 약은 ‘온도’로 다가온다. 내 몸속에서 나를 괴롭히던 열, 엄마 품의 체온, 서늘한 아빠의 손, 그보다는 무척 차가운 물수건. 그리고 따뜻한 물과 함께 들이킨 약. 그리고 얼마 후 열에 들떠 공중에 부유하는 듯한 나의 신체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그 안정감 등. 내가 기억하는 약은 나의 체온에 녹아 내 몸에 들어와 흔적도 남기지 않고 몸의 일부가 되는 그런 것이었다. 먹으면 똥이 되어 나오는 음식과는 달랐다.


아픈 것을 우리의 신체가 스스로 이겨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누구에게나 빈틈이 있다. 그래서 약이 만들어졌다. 비어있는 부분을 채워주는 약의 따뜻함은 피를 돌게 하고, 열을 내리고, 머리를 맑아지게 한다. “엄마 손은 약손”이라는 말도 거꾸로 보면 약이 인간의 체온을 지닌 것이라 생각하기에 가능한 비유이다.


금속의 온도를 지닌 약


약이 인간의 체온을 지닌 것이라고 믿어왔던 나에게 ‘금값보다 비싼 약’의 존재는 충격이었다. 이 약을 투여 받은 사람들은 과연 어릴 적 나의 부모가 나에게 약을 먹였을 때처럼 ‘따뜻함’이나 ‘안정감’을 연상할 수 있을까?

‘엄마 손이 금손’이 되어버렸을 때, 즉 사람의 체온을 가져야 할 약이, 그래서 우리 몸의 비어있는 부분을 채워 36.5도의 건강한 따뜻함을 만들어야 할 약이 금속이 되어버릴 때 약은 몸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박히는 딱딱한 이물질이 된다.


다행히도 친구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푸제온을 투약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와 나의 친구들에게 푸제온은 이제 약이라기보다는 마음 속 진한 생채기를 남긴 금속이 되어버렸다. 의사에게 시한부 인생 선고까지 받았던 감염인 친구의 절망에 눈물지었던 그 시간이 내내 가슴에 남는다. 살기 위해 그가 먹는 그 약도 그에게 ‘따뜻함’으로 다가오진 않을 것이다.

사람의 체온을 가지고 있었던 것들이 하나 둘씩 금속성의 외피를 덮어쓰게 되면 심지어 사람마저 그렇게 되어간다. “돈 없으면 약 먹을 생각도 하지 말라.”는 말이 상식이 되어버린 자도 있다. ‘인간다움’이라 불리던 것들이 어느 순간 차가운 금속성을 지닌 것으로 변하게 됐을 때, 남겨지는 것은 절망이 가져다주는 공포. 새로운 약이 만들어 지고, 그것이 국내에 공급될 예정이라는 뉴스를 보면 이제는 반가움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생명력을 내뿜으며 빛나고 있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화폐로 변이된 차가운 물질이기 때문이다.







절망에 대해 눈물짓는 능력


2006년부터 푸제온이 나에게 말해주는 세상은 이런 거다. 공포가 지배하는 세상. 공포에 잠식될수록 미래를 그리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 사는 이 세상이 점점 희망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들 이야기 한다. 그래서 지난 3년간 친구들과 함께 흘렸던 눈물이 그 무엇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누군가가 받고 있는 인간적 절망에 대해 눈물짓는 능력이 마비되지 않는다면 공포가 모든 것을 잠식하지는 않을 것이다.



 

홍지 _ 진보네트워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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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욜
    2009.02.05 23:27 [Edit/Del] [Reply]
    푸제온에 이어 얀센에서 출시하는 프레지스타라는 약이 또 말썽이네요.
    언제가 되야 안전하게 공급되는 약을 환자들이 편안하게 먹을 수 있을까요?





    얀센 에이즈약, 시판않고 비급여 추진 '구설'

    심평원에 전환 요청···환우회 "공식 항의할 터"


    한국얀센이 급여등재 후 반년도 지나지 않은 에이즈약 ‘프레지스타’를 비급여로 전환해 달라고 요청해 구설에 올랐다. 에이즈인권단체는 한국의 약가 통제시스템을 무시한 행태라며 공식 항의행동에 나설 태세다.

    4일 관련 업계와 심평원에 따르면 ‘프레지스타’ 비급여 전환요청 안건이 이르면 이달, 늦어도 다음달 급여평가위원회 회의안건에 상정될 예정이다.

    복지부가 급여 의약품으로 등재한 지 5개월밖에 안된 시점에서 비급여 요청이 이뤄진 것.

    한국얀센은 이 신약을 공식 시판하지도 않고, 기부형식을 빌어 그동안 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서만 제한적으로 공급해왔었다. 이와 관련 ‘다코젠’과 함께 ‘프레지스타’를 한데 묶어 건강보험공단과 자율협상을 해놓고도 뒤늦게 가격을 문제 삼아 한국얀센이 에이즈약의 급여를 포기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다른 나라 보험자들이 한국의 보험상한가를 참조해 ‘프레지스타’ 가격을 산정할 것을 우려, 아예 근거를 없애려는 속셈이라는 주장.

    실제 협상 당시 ‘다코젠’은 얀센 요구가의 90%선, ‘프레지스타’는 절반수준에서 가격이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위원인 서울대 김진현 교수도 민주당 전현희 의원이 지난해 12월에 마련한 한 간담회에서 “해외시장에서 미칠 영향을 우려해 무상공급하겠다는 조건으로 비급여 전환을 요청했다”면서, 이른바 ‘글로벌 프라이스’(플랫폼 프라이스)를 지키기 위한 내부정책으로 풀이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에이즈인권단체는 말도 안되는 행태라면서 반발에 나설 태세다.

    에이즈인권연대 나누리플러스 미란(약사) 간사는 “한국의 약가제도나 약가통제 시스템을 철저히 무시한 처사”라면서 “급평위에 안건 상정되면 곧바로 항의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누리플러스의 이런 반응은 희귀질환치료제의 국내 공급여부가 제약사의 의지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현실 때문이다. ‘프레지스타’를 무상으로 제공한다고 하지만, 얀센이 정책을 바꿔 공급을 중단한다고 해도 막을 재간이 없다는 것.

    얀센 측은 “비급여 전환하더라도 의약품 공급은 종전대로 이뤄질 것”이라면서도, 곤혹스런 기색이 역력했다.

    회사 한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매번 필수약제 공급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프레지스타가 단골메뉴로 등장해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뿐 아니라 일본 약가도 낮다”면서 “약가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내부적인 문제 때문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2. 정욜
    2009.02.11 16:42 [Edit/Del] [Reply]
    조금 기쁜 소식이에요. 어제 동인련 사무국회의에서 잠깐 언급했던 '프레지스타' 있잖아요...
    오늘 나누리+ 활동가에게 전화해서. 심평원에 비급여 신청했던 것을 취하했다고 합니다. 자기네들이 로슈제약회사처럼 나쁘지 않다고 말이죠 ㅋㅋ

    아무튼 2008년 로슈를 상대로 싸웠던 힘이 다른 제약회사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 해와
      2009.02.11 17:36 [Edit/Del]
      와우! 잘됐네요^^
      다국적 살인 기업 로슈는 언제쯤 이런 변화를 보여줄까요?
      아무튼, 화이팅 입니다.
      너무 기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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