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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AIDS 감염인의 삶과 사랑 - <푸른알약> 리뷰

by 행성인 2014. 2. 26.


조나단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인권 운동을 하다 보면,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열악한 누군가의 고통, 막막함, 슬픔을 계속 접하게 된다. 고통을 가중시키는 열악한 사회 시스템과 편견에 찬 인식들, 다양한 아픔들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인권 운동 당사자들의 기쁜 순간이나 연인으로서의 모습 같은 삶의 부분들은 막연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런 막연함이 당사자들을, 함께 생을 살아가는 사회적 동료에서 연민을 갖게 하는 누군가로 손쉽게 전락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소개하는 <푸른 알약>이라는 책은 에이즈 환자와 연인이 함께 겪는 세세한 삶의 순간들을 보여줌으로써 에이즈 환자의 삶 중 아름다운 어떤 시간들을 상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푸른 알약>은 HIV에 감염된 카티라는 여자와 연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프레데릭 페테르스의 자전적인 그래픽 노블이다. 줄거리는 책 뒷면에 인쇄된 요약이 잘 되어 있어서 그것을 옮겨오려고 한다. 


열아홉 살의 어느 날 저녁, 프레데릭은 생기 넘치는 스물한 살의 카티를 친구 집에서 처음 보고 호감을 느낀다. 6년 후 프레레릭은 이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카티와 우연히 다시 마주치고, 그들은 점점 가까워진다. 모든 일이 잘 되어 가는 듯 보였다. 카티와 그녀의 아들이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러나 프레데릭은 카티를 포기하지 않는다. 고통, 의심, 불안과 초조, 죄책감 그리고 편견의 시선. 이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푸른 알약>은 두 남녀가 만나고 사랑하며 기뻐하는 평범한 연애담이자, 이길 수 없는 병과 함께 살아가기로 한 조금은 특별한 연인들의 이야기다.


이 책은 세 명이 함께 살아가면서 생기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에이즈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커밍아웃 하는 것, 그 때 파트너의 머릿 속에 교차하는 감정들, 자신의 아이까지 에이즈에 걸리게 했다는 자책, 세이프 섹스를 위해 영원히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콘돔, 감염을 두려워하는 프레데릭, 감염을 시킬까 봐 두려워하는 카티, 카티의 매력적인 모습, 아이 양육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을 때 건네는 파트너의 응원과 그것을 통해 다시 노력하고자 하는 용기있는 모습, 또한 그것을 보며 다시 연인을 존경하고 감탄하게 되는 프레데릭, 심각하게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도와줌으로써 위안을 주는 의사, 비감염인으로서 에이즈에 대해 생각하는 프레데릭, 다시금 아이를 갖기 원하는 카티 등…


여러 모습들을 담담하게 묘사하여 독자가 그것을 거울 삼아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기도, 비유적으로 자신을 이입해보게도 한다. 그래서 에이즈에 대해 마음이 열리게 하고 종국엔 독자가 자신의 삶과 주변인들과의 관계맺음에 대해 성찰할 수 있도록 한다. 물론 이 그래픽 노블의 주인공들은 굉장히 이상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모나지 않은 캐릭터들이다. 크게 삐뚤어진 데 없는 매우 괜찮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이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괜찮은 사람들’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자로서 우리가 가진 괜찮지 않은 모습을 숨길 필요도 없지만, 각각의 사람들이 가진 괜찮은 장점들과 아름다운 순간을 주변에서 더 많이 발견해내 세상에 드러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감염인을 삶의 동등한 동료로 복원시키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권운동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더 많은 방법을 상상해내야 한다. 다르지만 동시에 나와 별달리 다를 것도 없는 삶의 동료로, 감탄을 할 만큼 매력적인 모습의 동료로, 위기 상황에 몰린 당사자들을 복원시킬 수 있다면 차별을 조장하는 시스템, 차별에 대해 기본적인 방패막이도 없는 사회야 말로 ‘되게 이상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