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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회원 인터뷰

동성애자인권연대 전 운영위원장 곽이경을 만나다!

by 행성인 2014. 4. 1.

인터뷰 한 사람: 바람, 종원(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인터뷰 받은 사람: 곽이경(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 첫 여성 운영위원장이신 곽이경 씨와의 인터뷰를 기획했어요. 운영위원장 활동을 되돌아보는 자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먼저 지난 2년간의 동인련 운영위원장 활동에 관한 간단한 소감을 듣고 싶어요.

 

일단은, 진짜 거짓말 안 보태고, 정말 소중한 시간, 소중한 인연이었고, 그걸 통해서 제가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두 번째로 말씀 드리고 싶은 건 아쉬움이 없다는 거예요. 물론 나 자신에 대한 아쉬움은 남죠. 더 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요. 지난 2년간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보다는 목표를 잘 수행하는 데에 집중을 했거든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회원들의 재능, 열정, 노력을 정말 많이 발견했어요. 그래서 아쉬움이 없다고 말씀 드린 거예요. 이제는 잠시 곁에 미뤄 뒀던 일들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2년 전에는 어떻게 동인련 운영위원장을 하게 되었나요?

 

동인련은 활동가들이 대부분 자기 영역을 가지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 단체예요. 스스로 집행, 기획을 하는 등 많은 멋진 분들이 자력으로 활동해 오고 있죠. 그런데 단체 규모가 커지다 보니까 단체 운영에 있어서의 체계나 효과적인 동참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동인련 운영을 운영위원회가 책임지고 있는데, 이 운영위원회가 어떻게 되면 좋을지 많은 생각을 했었어요. 저도 운영위원으로서 그 고민을 공유하고 있었고요.

 

그 전까지는 정욜이 많은 책임을 지고 있었어요. 그가 계속 짐을 도맡게 되니까 단체 운영 체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들이 2011년에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2012년부터는 새로운 운영위원장이 단체 운영을 책임지면 좋을 것 같다는 말들을 했던 거고요. ‘내가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한편으론 ‘내가 동인련 활동을 과연 욜처럼 다 파악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굉장히 컸어요.

 

결국 제가 운영위원장을 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동인련 활동의 목표가 제 활동의 목표와도 연결이 되기 때문이었어요. 제가 2년을 하기로 했는데, 운영위원회가 동인련의 운영을 함께 책임지는 방식으로 가기 위해서 그 기반을 잘 다지는 2년을 만들자는 내부적인 목표가 있었죠. 당시에 동인련은 15주년 후원의 밤, 사무실 이사, 육우당 10주기 같은 큰 행사들을 앞두고 있었어요. 이 행사들을 회원들과 함께 잘 치르고, 또 동인련을 탄탄하게 하는 것이 목표였죠. 과도기라고 스스로도 많이 얘기했어요. 2~3년간 단체 규모가 굉장히 커졌는데, 운영위원회가 함께 운영을 잘 책임질 수 있는 구조를 확립하기 위해 내가 2년을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제가 동인련 운영위원장이 되면서 정욜이 저한테 했던 말이 사람을 대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는 거였어요. 이건 2년 동안 매번 깨달은 점이기도 하고요.

 



동인련의 첫 여성 운영위원장이기도 했는데, 그런 점을 처음부터 의식하셨나요?

 

의식 안 하는 척하긴 했지만 사실 굉장히 의식했어요. 내가 여자라는 건 나의 일부니까요. 또 동인련의 이미지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고요. 상대적으로 게이보다 레즈비언이 적었던 동인련에서 여성 활동가들이 많이 모일 때 여성 회원들이 느낄 수 있는 친숙함, 이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2000년대 초, 중반 동인련의 여성 활동가는 정말 손에 꼽았어요. 한 여성 회원이 모임에 나왔는데 여자가 한 명도 없어서 되게 어색했다고 한 적도 있었어요. LGBT가 같이 있는 단체에서는 L(레즈비언)도 있어야 되고, B(양성애자)도 있어야 되고, T(트랜스젠더)도 있어야 되고, 눈에 보여야 돼요. 그런 면에서는 내가 여자라는 점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했고, 동인련에서 여성 성소수자가 조금 더 돋보이는 계기가 될 거라는 생각도 했어요.

 



여성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기울인 활동들이 있나요?

 

여성 모임이 많이 활성화됐고요. 여성 상담도 그렇고요. 여성이 상담을 요청할 때는 게이가 상담하는 것보다 여자가 하는 게 더 편하거든요. 이런 연결 지점들이 있다 보니 더 많은 여성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독려하게 되더라고요. 물론 성별을 떠나 운영위원들 중에 여성 문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없고, 감수성이 없는 사람이 없지만, 약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새로운 여성 활동가들이 많이 들어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거죠.

 

운영위원회나 각 팀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무성애자 등 다양한 정체성들이 드러나는 것이 중요해요. 선험적으로 어떤 감수성을 갖고 있는 것보다 직접 만나는 게 중요하거든요. 경험하지 않고 여성에 대해, 트랜스젠더에 대해 감수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성을 만나면, 트랜스젠더를 만나면 깨지는 게 많을 수도 있다는 거죠. 내가 청소년 인권을 지지한다고 추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마주치면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깨닫게 돼요.

 

그래서 다양한 정체성의 활동가들이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이주 노동자 미셸을 만나면서, 특히 청소년들 만나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선험적으로 나는 감수성이 있다고 자만을 했던 거죠. 그래서 여성 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하는 것도, 누구의 관점에서 활동을 하고, 누구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여성 노동자들과 연대를 하면서도 그 자신은 약자나 소수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어요. 권력 없는 자의 시선에서 세상을 본다는 게 어떤 건가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 같아요. 여성주의의 관점이기도 하잖아요.

 

청소년들과 함께 활동하면서는 음주, 외박, 흡연을 두고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제가 운영위원장이 아니었다면 그 고민에서 뒤로 물러서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운영위원장으로서 가장 많이 배웠던 거는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 같아요. 갈등이 생겼을 때 일단 해결을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 해결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가장 큰 숙제였던 것 같아요. 권력 관계에서 열세에 있는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 것이 좋은 것일지, 그런 고민을 2년 동안 많이 했고, 또 그러면서 정말 많이 배웠죠. 힘들기도 했고.

 

다만 그렇게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이나 생각을 접하다 보니까 동인련 회원들의 훌륭한 점들이나 약점들을 느끼게 됐어요. 힘이 없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문제를 푸는 방식에 대해 진짜 처음으로 고민을 했었던 것 같아요. 동인련은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유지되기 어려운 곳이에요. 기존의 시선으로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우리가 왜 인권 단체인지, 성소수자 단체인지, 이런 정체성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성 문제에 있어서 어떤 연대 활동을 해왔나요?

 

동인련은 매년 여성의 날에 거리에 나갔어요. 2010년에도 진짜 준비 열심히 해서 혜화동에 나갔어요. 그때 우리가 주되게 썼던 슬로건이 ‘성소수자에게 좋은 것은 여성에게도 좋다!’였어요. 무대에 나가서 발언도 하고 그랬죠. 동인련 회원들이 용기가 백배해서 여러 명이 다 같이 무대에 올라가서 피켓 들고 막 그랬어요. 발언문이 동인련 웹진에 실려 있을 거예요.

(http://lgbtpride.tistory.com/195)

 

사람들이 그 발언을 되게 좋아했어요. 여성의 날에 왜 성소수자가 함께 하는가, 이걸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거든요. 성소수자 당사자들도 차별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왜 함께 싸워야 하는가, 이런 이야기들로 연대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죠. 여성 운동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동지들이란 생각도 많이 했었고요.

 

당시 낙태 문제가 되게 심했어요. 낙태권을 빼앗으려는 낙태 반대 진영이 동성애 혐오 진영하고 굉장히 흡사하잖아요. 성적 보수주의라고 하는 것이 여성과 성소수자 모두에게 얼마나 해악적인가, 이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사실 어떻게 보면 낙태와 레즈비언의 관계는 에이즈와 레즈비언의 관계처럼 서로 거리가 엄청 먼 문제라고 생각되잖아요. 하지만 그 본류는 동일한 성적 보수주의, 억압에서 나오는 거죠. 꼭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레즈비언들은 정말 낙태를 경험하지 않는가, 라는 문제가 제기되고, 더 구체적으로는, 레즈비언들에게는 그런 정보가 더욱 없다는 거예요. 그런 고민이 많이 시작됐고, 거리가 좁혀져야 할 게 많다는 생각도 했죠.

 

2011년에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하고 처음으로 같이 만나서 성소수자 노동권에 관한 대담을 한 적도 있어요. ‘나, 성소수자 노동자’라는 자료집도 있어요.(http://www.lgbtpride.or.kr/xe/index.php?document_srl=61223그때 기륭전자분회 김소연 동지, 이랜드 이경옥 동지 같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났을 때 동인련 회원들도 그렇고,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그렇고, 세상에서 무시당하거나 천대받는 게 어쩌면 이렇게 똑같냐는 얘기들을 했어요. 토론회 이후에 김소연 동지가 ‘인권오름’에 글을 썼어요. (http://sarangbang.or.kr/bbs/view.php?board=hrweekly&id=1942&page=70)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감수성이 우리랑 저변이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한 그 글이 너무 좋았어요.

 



2년 동안 여성 문제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동인련 내부에서도 느껴지는 변화들이 있었나요?

 

제작년에 제 토정비결에 재복이 대단하다고 되어 있었는데, 근데 그 재운이 다 동인련 후원금으로 갔어요. (웃음) 일단 가시적인 변화라면 회원이 많아졌어요. 여성 회원의 숫자가 늘어났고, 여성 활동가들도 많이 늘어났고, 운영위원 중에도 여성이 많아졌어요. 트랜스젠더 운영위원도 생겼죠. 회원이 많아지다 보니 일도 많아지고 바빠졌어요. 회원이 많아진다고 무조건 일이 많아지는 건 아니에요.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겠다는 사람이나 단체에 뭔가를 요구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니까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무실을 옮겼죠. 왜 홍대인가, 이 얘기를 할 때도 여성 회원들의 목소리가 높았어요. (웃음) 그때 이동권도 굉장히 중요하게 고려됐는데, 그게 동인련 회원들의 소수자, 인권에 대한 감수성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나중에 사무실에 전동 휠체어가 들어오는 걸 보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여기 동인련 사무실엔 턱이 하나도 없거든요. 어쨌든 여기로 이사 오고 나니까 이 동네 레즈비언들이 많이 오더라고요. 장소 선정은 정말 탁월했던 것 같아요.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말들을 했었죠.

 

실제로 최근에 신입 회원들 상대로 설문 조사 했을 때에도 여성이 절반을 넘었어요. 예전과는 달라졌죠. 그리고 또 중요한 건 최근 1~2년간 새로운 활동가들이 많아졌어요. 지난 2년은 그 전 10년 동안 쌓아 놓은 잠재력을 터뜨린 시기인 것 같아요. 갑자기 없던 게 생긴 건 아닌 것 같아요. 육우당 10주기 행사도 많은 회원들 덕분에 가능했던 거고요. 질적으로, 양적으로 많이 달라졌어요. 많은 사람들이 많이 성장했다고 느끼고요. 이제는 내실을 다질 때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회원 조직을 강화하는 게 올해의 주요 목표 중 하나이기도 하죠.

 

그리고 우리가 옛날부터 워낙 연대를 중요시했지만 회원이 많아지다보니 연대의 총량도 늘어나더라고요. 그만큼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어요. 15주년 후원의 밤을 준비하면서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정말 대박이 났어요. 그 동안 연대했던 모든 곳에서 다 찾아온 거예요. 얼굴 본 사람들은 다 왔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우리가 스스로를 얕보고 너무 좁은 곳을 마련했다, 이러면서 자화자찬하고 그랬어요. (웃음) 진짜 행복했어요. 연대의 확대도 큰 변화였죠. 저는 정말 2년 동안 모든 큰 행사를 준비하면서 그때 있었던 사람들의 얼굴, 그 사람들이 했던 일들이 다 기억이 나요. 그래서 회원 모임이 있으면 목매달고 나가는 이유가 그 사람들이 했던 일들을 너무 잘 기억하기 때문이에요.

 

또 한 가지 큰 변화가 동인련의 SNS예요. 2011년부터 유결이 동인련 SNS를 관리했어요. 희망버스 때도 거의 생중계를 하다시피 했었는데요. 동인련 트위터가 급성장을 했어요. 운영 방식에 따라 굉장히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트위터 보고 후원의 밤에 오신 분들도 많았어요. 동인련 회원들의 활동의 힘을 느꼈죠.

 



동인련의 정체성은 어떤 거라고 생각해요?

 

일단은 우리가 성소수자 단체라는 걸 잊으면 안 돼요. 성소수자들과 지지자들이 우리 활동의 주인공들이니까요. 그리고 동인련 정체성 얘기하면서 자주 하는 말이지만, 연대가 굉장히 중요하죠. 또 동인련은 성소수자 단체로서 모두가 활동함에 있어서 소외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즉 동인련은 회원 단체라고 생각해요. 소수의 몇몇 활동가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이 자기가 활동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동성애자로서, 양성애자로서, 트랜스젠더로서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들. 그리고 부족한 점도 잘 인정하는 단체여야 해요.

 

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동인련이 실천적인 단체여야 한다는 거예요. 동인련이 활동을 만들어 내는 주요 방식은 성소수자들이 스스로 투쟁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만드는 거예요. 그것으로 활동이 계속될 수 있는 단체죠. 길바닥 정체성이에요. (웃음) 길바닥을 좋아해야 해요. (웃음) 사람들이 스스로 싸우는 조직이어야 하고, 무슨 일을 하건 나이가 어떻건 간에 자기 스스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조직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사회적 연대도 중요하죠. 연대는 동인련이 잃어 버릴 수 없는 정체성인데, 사실 길바닥에서 싸우려면 연대는 너무 당연한 공기 같은 거죠. 무지개 깃발을 끊임없이 길바닥으로 들고 나가는 이유는 아마도 만남을 위해서인 것 같아요. 누군가 우리를 알아보길 원하고, 궁금해하길 원하고, 우리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싸운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한 상징이에요. 그래서 동인련의 정체성은 요약하자면 무지개 깃발이에요. 동인련의 로고이기도 하죠. 덧붙이자면,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또는 뭔가 바꿔 보고 싶은 게 있는 성소수자들의 커뮤니티이기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는 동인련이 그런 성격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로 보듬고, 이해하려 하고, 어려운 건 서로 돕고, 삶을 챙겨 주는 공간이어야 해요.

 



성소수자 운동에서의 여성, 여성 운동에서의 성소수자의 위치를 어떻게 보시나요?

 

레즈비언들에 비해 게이들이 주류로 비춰지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적으로 레즈비언들이 자원이 더 없는 건 사실이고요. 그래서 레즈비언으로서 강조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레즈비언 커플들도 강조돼야 하고요. 동성애자 커플이라고 하면 대부분 게이 커플을 떠올려요. 그런 대표성을 지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고요. 그리고 성소수자 운동이라고 해서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죠. 한 게이가 한 레즈비언을 차별했다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거죠. 어떤 운동이든 어떤 권리든 게이들이 더 많이 대표될 가능성이 항상 있기 때문에 그걸 염두에 두고 활동하지 않으면 성소수자 운동에서 제대로 여성 문제나 소수자 문제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하죠.

 

여성 운동에서 성소수자의 위치도 마찬가지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성애만 염두에 두고 있는 경우도 많죠. 성소수자들이 얼마나 대표되고, 참여하고 있고, 고려되고 있는지는 활동을 통해서만 볼 수 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청소년 인권을 고려한다고 하지만, 실제 활동에서 그들이 대표되거나 고려되지 않으면 고려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곽이경 씨는 현재 어떤 분야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세요? 또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요?

 

운영위원장에서 물러나고 한 달은 되게 편했어요. 여행도 갔다 왔고요. ‘평일 저녁에 회의가 없을 수가!’ 막 이랬어요. (웃음) 그동안 내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근데 되게 많이 달라지진 않을 거 같아요. 지금도 활동하는 게 다시 하나씩 늘고 있어요. 내일도 회의가 있고요. (웃음) 제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분야는 성소수자 노동권 활동이에요. 장기적으로는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조직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일터의 자긍심’ 같은. 자신의 목소리로 노동자의 권리를 호소할 수 있게 기반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그래서 노동권 활동은 계속해요.

 

그리고 가족에서 배제된 성소수자들이 겪는 고통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가족구성권 네트워크 활동을 계속하고 있어요. 현재로서는 중요한 활동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또 먼저 떠난 성소수자 친구들 추모 활동을 해요.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추모 기도회를 준비해요.

 



마지막으로 차기 동인련 운영위원장에게 한마디 전해 주세요.

 

차기 운영위원장인 덕현은 일단은 제가 진짜 신뢰하고 사랑하는 동지이고, 친구이기도 해요. 흔쾌히 운영위원장을 하기로 한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고요. 잘할 것이라는 점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어요. 동인련 회원들이 함께 얼마나 잘해 나갈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걱정은 없어요.

 

마지막으로 딱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나도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하는 일을 고민해야 하는 지난 2년이었지만, 근데 그 속에서 발견했던 행복이나 원동력이 너무 컸기 때문에, 분명 당신도 그러리라는 거예요.

 

무엇보다 자기가 행복한 활동을 길게 보면서 했으면 좋겠어요. 그걸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전해 주고 싶어요. “행복하길 바란다. (웃음) 언제든지 밥을 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