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자다

Posted at 2014.04.30 17:21// Posted in 회원 이야기

서진(동성애자인권연대 청소년자긍심팀)



나는 트랜스젠더(FTM)이다. 트랜스젠더로 살아오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만큼 많은 질문도 받아왔다. 비트랜스젠더들은 내게 말한다. “언제부터 남자라고 생각했냐”고. 나는 이 질문을 받고 헛웃음이 났다. 이해하기 쉽게 해주기 위해 내가 그 사람에게 되돌려 질문했다. 당신은 언제부터 본인을 남자(여자)라고 생각했냐고. 여기서 이해하고 넘어가는 사람은 본인이 한 질문이 얼마나 어이없었던 건지 알고 머쓱해 한다.




하지만 꼭! 굳이! 그래도 남자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지 않냐며 물어오는 사람이 있다. 축구나 농구, 격투기를 좋아했다, 남자 아이들과 더 친했다, 안에서 노는 것 보다 밖에서 뛰어 노는걸 좋아했다, 액션 만화를 좋아했다. 이것이 질문자가 바라는 모범답안일 것이다. 그리고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는 어렸을 때 책 읽는 걸 좋아했다. 방과 후에 도서관에 가 문닫는 시간까지 책을 읽을 정도였다. 그리고 액션 만화도 좋아했었지만 꼬마 마법사 레미나 빨간 망토 차차 등 이쁘고 아기자기한 만화를 더 즐겨 보았다. 내가 이런 식으로 모범답안에서 벗어나는 대답을 하면 듣는 이 중에 반이 그건 좀 아니지 않나? 트랜스젠더인 걸로 헷갈리는거 아니야? 라며 대신 고민해준다.

 

뭐, 굳이 내가 남자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때를 말해주자면 5살 때 혼자 동네를 걷다가 문득 아, 난 남자지. 라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어떤 계기가 있어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길을 걸어가다가이다. 이런 생각이 들고 나서, 나중에 내 몸이 여자처럼 변하는게 두려워 그냥 어린 몸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몸이 자라고 불편한 것들이 늘어났다. 여성 속옷을 착용해야 하고, 교복 치마를 입고, 여성스런 행동을 강요 당하고, 샤랄라한 여자 옷을 입으라고 하는 등 신체적, 정신적 억압이 시작됐다. 원래 나는 여자옷이나 구두 등에 거부감이 없었다. 그런데 계속 여성적인 것을 강요당하다보니 나중에는 여자 옷만 봐도 불태워버리고 싶어졌었다. 내 여성스러운 모습을 한 번 보겠다고 사람들이 내게 온갖 아양과 칭찬을 해주는 모습이 가여워 한 번씩 보여주긴 했었다.

 

애초에 치마나 구두, 여자옷 중에 이쁜건 탐이 나고 입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내 패션 스타일이 남들보다 범위가 넓기 때문이지 내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옷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 내 모습을 보고 싶고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 나는 마음에 드는 옷이면 남자거든 여자거든 신경쓰지 않는다. 그걸 나눠서 잘 어울릴 수 있는 옷을 포기하는 바보들이 안쓰러울 뿐이다.



내 인생을 아주 조금 적어 놓은 것을 읽어보니 어떠한가? ‘불쌍하구나, 힘들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가? 여전히 가끔은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것이 힘들다. 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를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런 사람이 돼 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몇 가지 알려주고 이 글을 마치겠다. 첫 번째, 트랜스젠더는 호르몬 투여와 수술을 하기도, 하지 않기도 한다. 그러니 아무 외적 변화가 없고 호르몬 투여나 수술을 할 생각이 없다는 사람에게 함부로 ‘너는 트랜스젠더가 아니야’라는 씁쓸한 실수는 하지 않기를 바란다. 


두 번째, 본인을 여자 또는 남자라고 말하는 외적변화가 없는 트랜스젠더를 대할 때에 그 사람이 말한 성별로 대해줬으면 한다. 당신이 그 트랜스젠더에게 ‘아무리 그래도 겉모습이 그래서 네가 말한 성별로 대하기 어려워’ 라는 말은 그냥 씹어 삼켜라. 그런 말은 해서도 안되고 듣고 싶지도 않다. 어렵고 어색해도 최대한 티는 내지 마라. 그러면 언젠간 당신은 그런 상황에 익숙해 질 거다. 그리고 몇 몇의 트랜스젠더는 말은 안해도 그 행동에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세 번째, 상대방을 배려해주면 된다. 이 단순한 말이라도 기억해주면 된다. 그리고 노력해주면 된다. 당신이 이 글을 읽는 날에는 좋은 일이 일어나길.





  1. 모리
    2014.04.30 19:40 [Edit/Del] [Reply]
    꺆~ 그림이 넘흐 귀여워여~ 누가 그렸나여???
  2. 2014.04.30 21:35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2014.05.02 00:39 [Edit/Del]
      글 쓴 송서진이라고 합니다^^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해요
      일단 제 글을 읽고 좋다고 말해주셔서 글 쓴 사람으로서 기분이 좋네요.
      댓글 중에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남자였어라는건 개인적인 내용이라서 들어간거였어요. 사람마다 다른거라고 저도 생각하고 있어요.
      인지하는 시기가 다른건 당연한거니까요.
      댓글을 읽다가 트랜스젠더 말고도 호르몬을 맞을 수 있다는 것과 트랜스젠더 중에서도 CD가 있을 수 있다는걸 새삼 알게 돼서 좋았어요.
      다시금 제 글을 읽어주시고 조언 주셔서 감사합니다 ^^ 좋은 하루 되시길
  3. 이주사
    2014.05.01 11:48 [Edit/Del] [Reply]
    좋아요를 누르고 싶네 ㅎㅎㅎㅎ
  4. 마루
    2014.05.01 17:04 [Edit/Del] [Reply]
    배려와, 노력. 항상 기억할게요 ^^
  5. 2014.05.05 16:32 [Edit/Del] [Reply]
    마지막 그림 참 좋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6. 2014.05.05 22:22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2014.05.08 19:04 [Edit/Del]
      아마 맞는거 같네요^^
      그 때 좋은 의견을 달아주셨던거 같은데 ㅎㅎ 아마 내년쯤부터나 말했던 모임을 만들 수 있을거 같아요
  7. 2014.05.07 23:04 [Edit/Del] [Reply]
    글, 그림 모두 잘 봤어요! 참 좋네요!!
  8. 2014.05.09 15:03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9. 2014.05.12 18:17 [Edit/Del] [Reply]
    어색하지만 솔직하고 마음에 와닫는 글이네요 ㅋㅋㅋ 근데 댓글 강요는 하지마라 ㅋㅋㅋ 농담이고 정말 글 잘 읽었어. 서진이 너는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나에게 참 많은것을 깨우쳐주네 ㅎㅎ 당당하게 사는 니가 좀 멋있는듯? ㅋㅋ
  10. 산양
    2014.05.14 13:17 [Edit/Del] [Reply]
    어머 사랑해요
  11. 2014.05.27 12:53 [Edit/Del] [Reply]
    남성으로서 여자좋아해요?^^
  12. 2014.06.15 17:42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2014.06.16 18:07 [Edit/Del]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저도 어느 순간 어중간한 존재가 된 느낌을 받았을 때 당혹스럽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했었는데 혼자 견뎌야 할 때가 많더라구요.
      모임을 만들게 된다면 꼭 다시 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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