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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

한국 최초의 동성혼 소송 시작되다

by 행성인 2014. 5. 26.

[편집자주] 지난 5월 21일 김조광수-김승환 부부가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에 대한 불복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한국에서 동성결혼 인정을 요구하는 최소의 소송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웹진 ‘랑’은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가 소송을 시작하며 발표한 기자회견문을 게재한다


동성 부부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에 대한 불복 소송을 시작하며

  

가정의 달 5월, 둘이 하나 되는 21일 부부의 날을 맞아 우리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는 질문을 던진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에서 가족과 부부란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의 가족제도는 과연 평등한지.

 

지난 2013년 9월 7일 김조광수, 김승환 부부가 사회 각층의 축복 속에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 부부는 같은 해 12월 서대문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하였으나, 구청은 수리를 거부했다. 서대문구청은 그 근거로 민법상 동성혼은 혼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 부부의 혼인은 혼인이 아니라는 순환논법을 제시할 뿐이다. 우리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과 이 사회에 묻고자 한다.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와 결혼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서대문구청의 처분이 어떻게 평등할 수 있으며, 김조광수, 김승환 부부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은 우리 사회에서 과연 보장되고 있는지를.

 

차별과 낙인이 성소수자들에게서 기본적 인권인 가족을 이룰 권리를 박탈해온 오랜 역사를 다시금 되짚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2013년 6월 미합중국 연방대법원은 혼인을 남녀의 결합으로 한정한 혼인보호법 제3조가 헌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많은 국가들이 성별에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가족을 이룰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혼인이라는 제도가 이를 명확하게 포함하도록 굳이 법전을 고쳐 쓰는 나라들도 늘어간다. 동성혼을 ‘반대’하는 논거들이 하나같이 빈약하고 모호하다는 점은 정치적 대립을 넘어선 모두의 상식이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에 비추어 볼 때, 대한민국에서 동성혼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단언할 수밖에 없다. 이 소송은, 그리고 이 질문들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누구도 이 질문들을 제기하지 않는 동안,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족들은 낡은 가족규범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이란 이름을 박탈당했다. “가정이, 나라가 무너진다”는 정체불명의 이유로 타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 2014년 대한민국에서 공공연히 일어난다. 가족은 배타적인 말이 되어 성소수자들은 이성애자와는 달리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를 인정받지 못한다. 성소수자들은 평등한 대우도, 행복추구권도 바랄 수 없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란 말인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혐오와 묵살이 당연시되는 동안, 왜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는가.

 

우리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는 성소수자들과, 다양한 가족들과 함께 늦게나마 이 상황에 이의를 제기한다. 우리는 오늘 김조광수, 김승환 부부의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 불복 소송을 시작함과 동시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한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서대문구청의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을 취소하고, 이들 부부의 행복한 혼인생활을 법적으로 인정하라.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기본권과 인권의 견지에서, 배우자의 성별이 같다고 하여 혼인신고를 거부하는 차별적인 관행은 설 자리가 없음을 분명히 확인하라.

 

정부와 국회는 성소수자들의 다양한 가족이 침묵을 강요당하는 현실을 인지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평등한 가족제도를 설계하여 법제화 할 의무를 이행하라. 지금 이 순간에도 동성 부부를 비롯한 공동의 가족생활을 영위하는 수많은 성소수자 가족들은 제도적 차별과 사회적 낙인에 노출되어 있다. 개인의 존엄과 성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을 보장할 국가의 헌법적 의무를 외면하지 말라.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는 또한 성소수자이거나 성소수자가 아닌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요청한다. 당연시되는 차별과 혐오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법원과 정부, 국회에 차별적 관행과 제도운영이 설 자리가 없음을 분명하게 알리자. 우리 사회가 소수자를 외면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게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임을 증명하자. 우리 사회가 타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혐오세력은 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성숙하였음을 확인하고, 차별과 혐오라는 폭력을 종식하는 데 힘을 보태자.

 

오늘 시작된 이 소송은 평등한 대한민국을 이루는 하나의 초석이 될 것이다. 우리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는 이 중요한 과정을 시작하면서 역사적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다시 한 번 법원과 정부, 국회,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 요청한다. 평등하고 다양한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성소수자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라!

 

 

2014년 5월 21일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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