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나라


 금요일 밤이 되면, 종로 낙원동에는 휘황한 불빛들이 거리를 메우고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늘 항상 같은 풍경이다.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걱정과, 저마다의 고민과, 저마다의 지친 인생을 이끌고 낙원동 일대의 술집을 가득 메운다. 우리는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서로에 대해 알고 있다. 그들의, 혹은 우리의 이름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우리는 지칠 줄 모르는 우리의 이야기들로 술잔을 기울이며, 비로소 우리 자신이 되어 자유를 만끽한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일 수 있는 것은 주말 밤의 낙원동 일대와 홍대, 이태원 등지로 한정된다. 우리의 자유는 파티가 계속되는 동안뿐이다. 파티가 끝나고 아침이 찾아오면, 마치 마법이 풀린 비밀의 정원처럼 우리들의 낙원엔 우리가 없다. 낙원에서 종적을 감춘 동성애자들은 이 땅 어디에서도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다음 주말이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채로 가면 속에 숨어 얼굴을 드러내지 못한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답답한 현실은 여전한 것 같다.

 햇살이 쏟아지는 낙원동의 금빛 거리를 걷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과연 낙원이란 가능할까? 눈앞에 펼쳐진 한낮의 낙원동은 어쩐지 우리에게 낙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벗어날 수 없는 감옥처럼 느껴진다. 과연 우리의 자유가 주말 밤의 낙원이라는 한정된 시간과 공간에서만 허용되어야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진정한 낙원이란 어떤 것일까.

 동인련 회원인 나라 씨와 인터뷰가 결정되고, 나는 동성애자 해방운동과 사회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그녀에게 이런 문제들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해와: 오늘의 주제는 우리에게 과연 낙원은 가능한가인데. 주제가 너무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대화를 해 나가면서 이런 문제들에 함께 생각해볼 지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우선, 자기소개를 좀 부탁드릴게요.


나라: 저는 동인련 회원인 나라입니다. 2000년부터 회원이었고, 최근에 동인련 청소년 자긍심 팀에서 활동을 하고 있어요.


해와: 거의 10년이나 활동했네. 상당히 오랜 시간이네요. 난 나라누나가 가입할 당시에 없었으니까 그 당시가 어땠는지 궁금한데, 2000년 가입 당시에는 어떤 활동들을 한거야?


나라: 처음에는 대학 동성애자 동아리에서 활동하다가 제1회 퀴어문화축제 준비에 참여하게 됐어요. 그 뒤 홍석천 씨가 커밍아웃하고 방어캠페인을 했고, 그 외에 인권캠프 준비 같은 것을 했지.


해와: 서로 잘 아는 처지에 웃기는 질문이지만, 소개를 위해 묻겠습니다. 성향은요? 현재 애인은 있나요?


나라: 바이섹슈얼이고, 성향? 친구들이 그래. 천생 '탑'이라고. 현재 솔로. (웃음)


해와: 언제 처음 정체성을 깨닫게 된거야?


나라
: 정체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중고등학교 때였는데, 대학교 들어와서 고민을 하다가 신입생 때 한 5월쯤에 정체성을 인정을 하고 대학 동성애자 동아리에 가입을 했어. 정체성을 깨닫기 시작할 당시엔 참 고민이 많았지. 중학교 때 한 여자 친구를 좋아했는데, 꽤나 힘든 시기를 보냈지.


해와: 짝사랑이었어?


나라: 그렇지는 않았어. 서로 좋아했다고 생각되는데, 굉장히 오랫동안 서로 인정하지 않았지. 동성을 성적으로 좋아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었고,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거부를 하면서 힘이 좀 들었었지. 답답했고. 부러 남자도 만나고 섹스도 하고 했어. 물론 나야 남자도 안 되는 건 아니지만. 


해와: 첫사랑과의 기억 중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면?


나라: 그 친구하고는 추억이 참 많은데, 아무래도 커밍아웃 했을 때지. 학교 앞에서 만나서 술 마시며 얘기를 했어. 처음엔 아무 말도 없더라고. 그냥 개방적인 친구니까 받아주는구나 하고만 생각했어. 술만 먹었지. 그러다 시간이 늦어서 첫차 시간 기다리려고 비디오방에 갔었거든. 그 친구가 많이 취해서 부축하고 들어갔는데 들어가서 문 닫자마자 엉엉 우는 거야. 영문도 모르고 놀래서 달래주는데 그러더라고. '너 남자 만나는 게 참을 수가 없었어.' 하고. 나도 "너랑 더 이상 친구로 못 지내겠다"고 했지. 그 뒤에 한동안은 정말 행복했던 것 같아. 얼마 안 가 헤어졌지만.   


해와: 당시에는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인정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 나도 그랬고. 물론 지금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정체성을 인정하게 되면서 어떤 변화 같은 것들이 있었어?


나라: 인정을 했다고 해서 확 달라진 게 있었던 건 아닌데 굉장히 세상과 단절돼 있는 느낌 속에서 살다가 대학교 동아리에 들어가서 동성애자들을 만나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내가 이상한 게 아니다.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됐어.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면서 굉장히 편안해졌어. 사람에 대한 믿음 같은 것들이 생기게 됐지. 그때 만났던 사람들 중에 소중한 사람들도 참 많아. 아마 그런 과정이 없었으면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 거야.

 

해와: 정체성을 깨달았을 시점과 지금 본인의 인생에서 달라진 점들이 있어?


나라: 글쎄.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거의 10년 가까이 지났으니까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이 변했겠지. 특히, 나는 정체성을 깨닫고 LGBT 운동에 참여하다가 사회운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됐어. 그리고 사회주의자로서 세상을 바라보고 그렇게 살려고 해온 과정에서 많은 걸 배운 것 같아.


해와: 현재 다함께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어떻게 사회운동을 처음 알고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시게 된 거야?


나라: 홍석천 씨의 커밍아웃이 이슈가 되면서, 차별이 가시화되면서 방어하는 캠페인을 했었을 때 여러 대학들에서 토론회들이 열렸어. '동성애는 비정상인가?' 이런 제목의 토론회였는데 거기에 동인련 활동가가 연사로 초대받아 갔었거든 그때 나도 함께 갔었어. 그 토론회들을 주최했던 곳이 다함께였고. 거기서 다함께의 잡지들을 보게 됐고 처음엔 몰랐지만 아는 사람 중에 활동하던 사람도 있었어. 다른 주제의 토론회에도 가보게 되었고. 당시에 다함께가 주최한 토론회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 그러면서 같이 활동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거고. 처음에는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는 것이, 정체성 때문에 힘든 시기를 겪고 했던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지. 동성애자 억압에 관심이 한정돼 있었는데 조금씩 나 말고도, 성소수자들 말고도 세상이 뭔가 잘못되어 있구나, 불의하고 부당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것들을 느꼈어. 굳이 정체성을 떠나서도 세상에서 벌어지는 그런 문제들에 맞서는 사람들을 보고, 나도 동참하고 싶었기 때문에 사회운동에 참여한 거야. 활동을 하면서 왜 이렇게 많은 억압과 차별이 존재 하는지, 동성애자는 왜 억압받는지,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그런 의문들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


해와: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라씨의 변화의 과정에 정치가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한 것 같아.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정치의 비전은 뭘까? 이를테면, 정치를 통해서 우리를 둘러싼 부당한 환경 같은 것들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라: 처음에 사회주의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활동하게 됐느냐는 질문 많이 했어. 그때 나의 대답이 "내가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변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도 변할 수 있다고 생각되고 그렇다면 사회도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였어. 운동을 하면서 변화가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는 것을 계속 확인해 온 것 같아. 물론 우여곡절도 있었지. 정치는 그 과정에서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기준이자 그 자체라고 생각해. 내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세상을 바꾸는 과정에 참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올바른 의식을 지닌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고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과정에서 그들 자신이 변화할 때 그런 게 내가 원하는 진정한 변화라고 생각을 하지. 그리고 당연히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 과거를 돌아보면 정말 많은 것들이 변했잖아. 궁극적으로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세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해와: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려고 해. 오늘 인터뷰 주제가 ‘우리에게 과연 낙원은 가능한가’ 인데. 그렇다면 사회 운동을 통해서 우리에게 낙원이 가능할까?


나라: 난 낙원이란 말이 오해의 소지가 많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해. 왠지 어떤 근심 걱정도 없는 천국 같은 느낌이 들잖아. 개인적으로는 사회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사회주의 사회가 되어도 인간의 삶에서 존재하는 희노애락?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차이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 그런 게 전혀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거든. 그런데 그런 사회에서는 생겨나는 문제들. 그런 것들을 해결하는 방식이 오늘날 사회와는 다를 거라고 생각을 하는 것뿐이야. 오늘날 사회가 이윤을 위해서 모든 게 굴러가는 사회라면, 내가 생각하는 해방된 사회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필요에 맞추어서 운영이 되고 되어야한다고 생각하고. 지금처럼 폭력적이고 편견과 차별에 기초에서 누군가를 희생시키면서 사회를 운영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인간의 개성이라든가 차이가 지금 사회에서는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협력하면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 무엇보다 다른 세상을 위해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싸우는 과정에서 지금 존재하는 편견이나 차별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해와: 그렇다면 동성애자들도 나라씨가 말한 ‘해방’ 안에서 새로운 변화들을 경험할 수 있겠네. 어떤 변화들이 있을까? 청사진을 제시한다면?


나라: 글쎄, 내가 감히 청사진을 그릴 수 있을까 싶지만, 아무도 정확히 미래를 알 수는 없으니까. 내가 원하는 건 성정체성이, 자기가 누굴 좋아하고 누구와 섹스를 하고 이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중요하지 않은, 그건 그 사람의 삶이고 몫이 되는 거지. 지금은 그걸 이사회가 체계적으로 억압하고 있잖아. 동성애자 억압이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봐. 과거의 많은 사회들만 봐도 그렇잖아.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가 되면 사람들이 관계 맺는 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


해와: 사실, 우리는 사회적인 억압 때문에 우리자신을 드러내지 못하잖아. 커뮤니티 내부의 어떤 사람들은 왜 쓸데없이 커밍아웃을 하느냐. 그냥 숨어서 우리끼리 잘 지내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사회적으로 커밍아웃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고. 한편으론, 동성애자 해방이 이성애자를 배제하고 단지 우리끼리의 결속과 연대감으로 이루어질 거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종류의 생각들이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를 더욱 가두는 속박처럼 느껴지는 거지. 우리가 사회주의 해방과 동성애자 해방을 연결시킬 때에는 적지 않은 반발도 예상되는데, 또 사회주의 해방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혁명이 필수적이잖아.


나라: 그래. 혁명은 필수적이지만 앞에도 말했듯이 혁명이 필연적인 거라고 생각진 않아. 하지만 혁명이 필요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고 다시 말하면 지금 이 상태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해, 그 과정에서 지금 이 체제를 고수하려는 사람들과 싸워 이길 때 혁명이 가능하겠지.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자들이 너무 강력해 보이고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으니까 변화의 가능성에 회의적인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의식적으로 그러한 움직임을 만들어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거지. 솔직히 말해서 동성애자 운동 같은 것도 지금 어쨌든 수십 년 전과 비교하면 많은 변화들이 있잖아. 그런 변화들이 그냥 세상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일어난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지지를 얻고 그랬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있는 거니까. 싸워서 얻어낸 것들이니까. 싸움에서 질 수도 있고. 그러니까 이길 수 있도록 뭔가 해야 하는 거지. 혁명을 하면 자연히 여성해방이 된다, 동성애자해방이 된다, 그런 얘기에는 나도 동의하지 않아. 반대로 여성해방이나 동성애자해방 없는 혁명이 없다고 생각해. 그런데 여성해방, 동성애자해방이 독자적으로 가능할까? 여성만의 해방, 동성애자만의 해방이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일까, 난 그게 더 불가능해 보이거든. 우리 사회가 동성애자를 억압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도 있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면, 다 뒤섞여서 살아가잖아. 가족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어디서나 말이야. 그 곳 자체가,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변할 수 있어야 여성해방, 동성애자해방이란 말이 현실이 되겠지. 숨어서 적당히 행복하게 사는 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은 우리가 얼마나 억압받는지 반증하는 것 같아. 그래서 더더욱 난 진정한 해방이 절실한 것 같고. 운동 안에도 사회의 편견, 보수성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인데 그럴수록 더 적극적으로 그게 왜 문제인지 제기하고 맞서야 한다고 생각해. 잘못을 고치고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는 혁명의 이해관계와 억압받는 소수자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렇지 않다면 결국 해방은 불가능한 일이겠지.  


해와: 조금 흐름을 바꿔서 질문을 해볼께. 동성애자와 관련된 수많은 이슈들에는 필연적으로 성과 사랑이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 본인이 생각하는 ‘낙원’에서, 그러니까 ‘해방’된 사회에서 성과 사랑은 어떤 위치에서 어떤 모습을 띄게 될까.

 

나라: 원래부터 내 관심의 큰 부분이 성과 사랑이었고 내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거든. 내가 농담으로 사회주의자가 되지 않았으면, 성과학자가 되었을 거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성과 사랑이 일반적인, 인간 본성에 있는 어떤 것처럼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성과 사랑이 사회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잖아? 해방된 사회라면 성과 사랑에 대해 솔직하게 접근할 수 있는 토대가 생길 거라고 생각을 해. 여성과 남성의 관계라든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계라든가. 가족이라든가. 굉장히 다른 조건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거지. 지금은 성이라는 문제가 굉장히 왜곡되어 있잖아. 한편에서는 성적인 보수주의가 여전히 존재를 하고 성 문제를 편안하고 진지하게 인간 삶의 한 부분으로 다루지 못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완전히 상품화 되어서 성이 팔리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오늘날의 성과 사랑과 관련한 많은 문제를 낳는다고 생각을 해. 개인의 성적 삶에 대해 사회가 간섭하고 규정하지 않고, 솔직할 수 있고, 돈 때문에 몸을 팔거나 인간의 가치를 돈이 되는 가치로 환원하지 않는 사회라면 지금과는 아주 다른 성과 사랑의 관계들이 가능하지 않을까?

 

해와: 나라씨는 동인련에서 ‘사만다’로 불리고 있는데. 섹스 앤더 시티의 그분과 자유분방한 면에서 많이 닮아서.(웃음) 이건 우리 모두 부러워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러한 시각이 부담스러울 때는 없어? 이를테면 벅차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런 부분에 대해 신경이 쓰인다거나.


나라: 나는 성관계에 대해서 편안하게 생각하는 편이거든. 섹스가 나한테 참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 근데 내가 벅차서, 사람들이 벅차게 나를 보는 게 너무 그 부분만 보는 게 아닌가 이런 고민을 하기도 했어. 그런 게 스트레스가 될 때도 있고. 그런데 분명히 나는 내 내 성생활의 모습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그런 면만 보고 나를 판단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지. 근데 내가 잘못이라고 하는 건 다른 문제야. 그 사람들이 왜 잘못이라고 생각하느냐 그 이유도 아예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야. 나도 사실 정답은 모르겠어. 정답이 있을 수가 없겠지. 여튼 그런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때로는 내가 세상에 타협하고 있나 라고 생각할 때도 있어. 사람들이 벅차다고 말할 정도로 나는 섹스가 좋았고 많은 사람들과 섹스를 했어. 그런데 그게 다 좋았냐 그런 건 당연히 아니지. 내가 맺은 연애관계가 다 만족스러웠던 건 아니야. 다 불만족스러워. 어떻게 보면 그런 거야. 그치만 내 삶이 후회스럽지는 않아. 요즘엔 너무 조신해서 그런 생각도 안 해.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어.


해와: 사실 나라씨가 겉으로 보기에 성과 사랑의 문제에 있어 진정한 해방을 실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이런 질문을 한 건데. 혹시 바이섹슈얼로 살아가면서 어려운 점은 없어? 커뮤니티 내부에서는 바이섹슈얼에 대한 편견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잖아


나라: 그래. 여전히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도 많지. 나랑 친한 게이 오빠들 중에도 내가 여자를 안 만나니까 이제 일반 된거냐고 묻기도 하니까. 바이섹슈얼은 이중으로 배제당한다고 하잖아 왜. 내 주변 사람들은 다행히 대부분 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만. 남자도 사귈 수 있으면 왜 여자를 만나냐 굳이 그런 소리들도 없지 않으니까 한 때 귀찮아서 그냥 레즈라고 한 적도 있어. 그리고 레즈 커뮤니티에 친근감이 별로 없는 것에도 내가 바이인 게 일부 영향을 미쳤을 수 있지. 물론 레즈들도 다 커뮤니티를 좋아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거지만 정체성이란 게 입증할 문제가 아니잖아. 이젠 커뮤니티 내의 편견도 편하게 생각해. 그럴 수 있는 문제니까. 필요하면 설명해 주면 되는 거고. 나도 편견이나 한계가 없지가 않잖아. 처음에 에이섹슈얼 개념을 접했을 때 참 이해가 안 갔거든. 그런 거지. 이해를 잘 못하는 문제 말고는 동성애자들이 어려운 점하고 크게 다르진 않은 듯해. 아, 무엇보다 남자 여자 다 돼서 상대가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는 정말 오산이야. 내가 개인적으로 섹스를 많이 하긴 했지만 그건 내가 바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벅차서 그런 거라구.  


해와: 난 사실 짓궂은 질문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그동안 관계를 가졌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경험과 가장 최악의 경험을 뽑는다면?


나라: 이게 짓궂은 겨? 음...좋았던 경험은 너무 과거에 있다는 게 왠지 슬픈데, 사만다라는 별명이 무색하네. 어제 했던 거 이렇게 말하고 싶은데. 그리고 하나만 꼽아야 하나. 첫사랑이랑 했던 첫 섹스가 기분은 참 좋았고 예전에 여자 친구 한 명이 성적으로는 제일 잘 맞았거든. 최고였어. 별로였던 섹스도 참 많은데. 최악은 하지 못한 섹스가 아닐까? 기분 나쁜 경험도 많아 여자로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해와: 정말 궁금한 건, 사실 나는 사랑이 전제가 된 섹스가 가장 뒤끝이 깨끗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편견이 있어. 물론 다른 사람들이 다양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에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내가 너무 답답한 건가? 나라누나한테는 사랑과 섹스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야? 나랑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


나라: 사랑에 섹스가 포함될 수 있고 안 될 수도 있겠지? 나 같은 경우는 그 사람을 좋아하고 섹스도 즐겁게 할 수 있으면 아주 좋다고 봐. 그런데 섹스는 그냥 섹스로도 가능한 거지. 사랑하지 않는 사람하고 좋은 섹스를 한 경우도 많아. 섹스를 원할 때 그 사람을 꼭 사랑하거나 잘 알지 않아도 성심성의껏 성적 만족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좋은 우정을 나누는 사람들이랑 좋은 섹스를 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서로 오해가 없이 하는 게 좋겠지. 그러니까 사랑과 섹스는 연결되기도 하고 아니어도 돼. 나한테는. 앞으로도 좋은 섹스를 많이 하고, 섹스에 있어서 늘 모험심 충만한 사람이고 싶어. 점점 모험심이 떨어지는 것 같아 아쉽거든. 물론 내 이런 가치관 때문에 사람들한테 상처를 준 적도 있어. 안타까운 일이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상호간의 합의가 중요한 건데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  


해와: 나는 개인적으로 성의 해방이 곧 사랑의 해방이고, 사랑의 해방이 동성애자 해방까지 가져올 수 있다고 믿거든. 그리고 요즘 청소년 동성애자들과 함께 하면서 그런 문제를 절실히 느껴.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성이 굉장히 억압받고 있고, 이런 억압이 결국 청소년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을 아예 존재해선 안 될 것으로 여기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잖아. 우리가 이러한 인식들을 바꾸기 위해서 기억해야 될 점들은 무엇일까?


나라: 아무래도 우선 청소년들을 존중해야 하겠지. 그들의 생각과 선택에 대해 존중할 생각 전혀 없이 일방적으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할 수 없는 것이고. 사람들은 누구나 서로를 존중하면서 토론하고 조언도 하고 할 수 있지만 나이가 올바름을 보장하는 건 아니잖아. 또 성에 대한 솔직하고 개방적인 태도가 필요한 것 같아. 물론 성이 상품화 되고 성적 매력이 인간의 다양한 개성을 무시하고 획일적인 기준으로 평가되는 것도 큰 문제지. 참 모순적인 세상이야. 하여튼 청소년들에게도 자기의 성을 표현하고 누릴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해. 민감한 주제지.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그런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제대로 된 성교육도 가능할 거야.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은 개인적으로만 바뀌는 게 아니라 사회의 여러 측면들에 영향을 받는 문제니까 인식 변화로만 얘기하기 힘든 부분이 있네. 예를 들면 서구에서 6~70년대에 성적 개방성이 크게 확대된 건 전반적인 사회 변화와 관련해서 봐야 하는 문제니까.   


해와: 요즘 동인련에서 나라는 청소년 이슈에 함께 하고 있는데. 청소년들과 함께 하면서 느끼는 점, 앞으로의 희망과 전망, 우리가 그들과 함께 만들어 갈 낙원에 대해 정치적인 관점과 사랑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이야기해 본다면?


나라: 일단, 청소년 활동이 너무 재밌어. 많이 배우고 있어. 그리고 많이 놀라기도 했고. 예전에도 청소년 인권학교 같은 곳에도 참여를 해봤고.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있다는 걸 모르진 않았지만, 이번에 청소년 활동을 하면서 많은 친구들이랑 좀 더 깊게 이야길 나눌 수 있었고 친구들의 삶이나 생각이 참 새롭게 다가왔어. 한편에서는 많이 변했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스스로를 긍정하고 즐겁게 당당하게 잘못된 것에는 맞서면서 살려는 모습을 봤고. 하지만 여전히 어딘가에는 나 같은 10대를 보내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왜 자신들이 억압받아야하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차별에 대해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인권활동들에 관심을 갖는 친구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이제 그 친구들이랑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어. 동성애자나 성소수자로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왜 사회에서 우리가 이런 처지에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다른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보고 싶고. 근데 이미 이 친구들이 세상의 다양한 문제들에 많은 관심을 가진 친구들이더라고. 그래서 참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

 

      바라는 게 있다면, 그 친구들도 계속해서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고 능동적으로 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래. 개인적으로 그런 자신감을 유지하려면 정체성과 섹슈얼리티가 사회체제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이해하고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힘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해. 동인련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말이야. 억압받는 많은 사람들.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노동자들이 부당함에 맞서 싸우고 있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처럼 말이야.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우리 편이 될 수 있고 우리도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을  때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사랑, 나도 참 사랑 잘 하고 살았다고는 차마 말 못하겠어서 뭐라고 할 지 모르겠다. 많이 사랑하고 그럼 되는 거지. (웃음) 잘 한다는 거, 좋은 사랑, 연애라는 게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닐테고 말이야. 알아서들 하세요. (웃음)


해와: 역시 언니는 멋져(웃음)


 인터뷰를 마친 며칠 후, 필요한 책을 사기위해 영풍문고에 들렀다가 문득 종로 3가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내가 서 있다. 행색이 초라한 할머니 한분이 나에게 다가왔다. 새카맣게 때가 낀 그녀의 손이 바닥을 위로하고 내 가슴께에 머물렀다. 나는 그녀의 손이 부끄러울까봐 얼른 주머니를 뒤졌다. 천 원짜리 한 장이 구겨진 채 나온다. 평소와 달리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손에 그것을 쥐어주었다. 그녀의 불안한 눈빛에서 그녀의 지나온 사연이 묻어나고 있었다.

 결국 그런 것이었다. 그곳은 동성애자들의 게토이기도 했지만, 동성애자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는, 각자의 힘겨운 인생이 부대끼고 있는, 모두의 삶의 터전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우리 모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억압받는 우리들은 때론 동성애자로, 어느 순간 여성으로, 장애인으로, 청소년으로, 이주노동자로, 노인으로, 소외받는 다른 어떤 사람으로 매순간 얼굴을 바꾼다.

 과연 우리에게 낙원은 가능할까? 낙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해방이란 가능한 일일까? 거기에 대한 우리의 희망은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 주변으로 눈을 돌릴 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의 모든 차별과 억압에 기권하지 않을 때, 비로소 실낱같은 가능성을 움켜쥘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낙원, 다시 말해 진정한 해방이란 단지 동성애자 해방만이 달성되었다고 해서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이름은 단지 동성애자라는 정체성 단 하나로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의 또 다른 이름들로 인해 또 다른 차별과 맞닥뜨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에게 낙원은 가능한가?’ 라는 질문에서의 ‘우리’는 마땅히 소외받는 모든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는 진정한 낙원은, 진정한 해방은 분명히 꿈꿀 수 있고 실현될 수 있다고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답할 수 있다. 누가 뭐라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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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27 18:07 [Edit/Del] [Reply]
    "내가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변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도 변할 수 있다고 생각되고 그렇다면 사회도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가슴에 뭉클하게 와닿았어요. 아, 코 끝이 찡찡.
    • 해와
      2009.02.28 13:26 [Edit/Del]
      정말 스스로 변화 하기 시작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놀라운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해. 그런데 나도 요즘 느끼는 거지만,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그 기적의 씨앗이 있고, 잘키우려는 의식적 노력만 있다면 쉽게 싹트고 잘 자란다는 거지. 그런 변화들이 모이고 모이면, 사회도 변할 수 있겠지.
  2. 찌난
    2009.03.01 10:33 [Edit/Del] [Reply]
    두 분 이 코앞에서 서로 대화하시고 계신거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
  3. 2009.03.03 23:44 [Edit/Del] [Reply]
    그러고보니 나라누나랑 만난지 8년이 다 되어가요.
    그사이 우리 각자 많이 변했어요.

    인터뷰 글 읽으면서 더 많은걸 알아갑니다.

    "요즘엔 너무 조신해서 그런 생각도 안 해.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어." 이말은 참 슬프군요.
    나도 요즘 이 상태이니! 섹스는 권리에요! 행복한 사만다들로 가득한 열린 세상을 만들어요~
  4. d
    2012.05.24 02:33 [Edit/Del] [Reply]
    동성애자들은 착각하는게 있는데.. 이성애자처럼 똑같이 동일할것처럼 착각한다.
    동성애자들이 인정되는 만큼 이성애자들은 또 다른 세계관을 받아들여야한다.
    그리고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를 그 반대도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 존중하고 공존만 할뿐이지..
    그러니 애초에 그런 낙원을 바라는 자체가 비현실적인것이다.
    이성애자들은 동성애를 거부감이 들어하고 싫어하기때문에 존중과 싫어하는것의 차이를 깨달을 필요가있다..
    싫어한다고해서 친구가 될수없는것은 아니지만 싫어하기에 낙원자체는 불가능하다. 그게 맞는것이고 이치다. 동성애자들은 동성애자들끼리, 이성애자는 이성애자끼리 공존만 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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