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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소식/해외 인권소식

오사카에서 만발한 무지갯빛 자긍심 축제, 간사이 레인보우 페스타 2014 〈Kansai Rainbow Festa 2014〉 참가 후기

by 행성인 2014. 11. 11.

 

민수 (동성애자인권연대) 


혐오 세력의 가시화와 논문 준비로 인해 매년마다 충전하여 오던 무지개 자긍심이 올해는 유달리 빠르게 방전되어 하루하루를 허덕이며 보내고 있던 2014 10, 때마침 한글날 연휴기간에 맞춰 일본의 관서지방에 LGBT 퍼레이드가 열린다는 소식을 알게되어 정말 아무런 사전 계획 없이간사이 레인보우 페스타 2014<2014 関西 レインボフェスタ, Kansai Rainbow Festa 2014>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10 11일 토요일, <Open Mind>라는 주제로 진행된 올해의 간사이 레인보우 페스타는 도심 한복판에서 아주 살짝 떨어진 오기마치 공원에서 열렸습니다. 차없는 거리의 좁은 도로에서 열려 다소 복잡하고 왁자지껄했던 서울에서의 퀴어문화축제와는 다르게, 넓고 여유있는 공원 운동장에 열려서 그런지 다소 조용하고 쾌적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처럼 기꺼이 찾아와서 반대하던 혐오세력이 없었다는 점에서 마음 편히 축제를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11시라는 약간 이른 시간에도 스테이지는 스테이지대로, 부스는 부스대로 여러 활동들이 스케쥴에 맞춰 이미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결성한 카피그룹들의 무대도, 일본 전통음악에 맞춰 모두 함께 어우러져 전통 춤을 추는 무대도, 개인의 경험을 들려주는 사람의 이야기도, 청각장애인 성소수자 모임의 겨울왕국 공연도, 성소수자로서 커밍아웃하며 활동하는 싱어송 라이터의 라이브 공연도, 모두모두 흥겹고 유쾌했습니다.

 


부스행사의 규모는 서울 신촌에서 개최된 퍼레이드보다는 다소 작긴 합니다만, 더욱더 다양한 성격의 참가자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좀 더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기업 참여 부스, 개인 부스, 그리고 NPO 참여 부스 수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단 인상을 받았습니다. 결혼 상담 및 맞선을 주선하는 정보회사, 무지개 빵과 모찌를 만들어 파는 호텔 식당, 대만 퍼레이드를 위한 투어 컨설팅, 그리고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구글까지, LGBT들을 대상으로 한 친화적인 분위기와 사업 아이템들을 선보여주었습니다.

 

 

 


개인부스의 경우에는 음료와 술, 그리고 간단한 요기거리를 팔고 있었던 도야마쵸게이바상인회부터 시작해서 무지개를 테마로 만든 여러가지 아기자기한 패션 아이템, 다기, 문구류 등을 팔고 있었습니다. 섬세하게 만들어진 수공예품부터 시작해서 한국에서도 먹힐만한 힙한 아이템까지, 이날 일본에서의 각종 선진문물을 싹쓸어 담기 위해 2주일 가량 긴축재정을 펼친 보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


 

 

 

NPO 부스에서도 꽤 인상 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축제 당일 어린이 휴게 부스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긍정하고 알리고자 하는 무지개색 가족, 청각장애인 성소수자들이 수화교실을 열어 일본어 수화를 가르쳐 주던 L*Sign, HIV/AIDS에 대한 편견과 무지를 타파하기 위해 퀴즈를 마련하고 상품을 주는 chotCAST난바, 직장에서 성소수자들이차별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법률활동을 펼치는 무지개색다이버시티까지, 일본에서도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한 여러가지 활동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NPO 부스에서 어떤 분께 한국에서 왔다고 이야기를 드리니까 이번 신촌에서의 퍼레이드를 이야기하시면서 굉장히 힘들었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한국에서의 좋지 않은 상황이 이렇게 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식으로 반대하거나 훼방을 놓는 사람들이 없어서 좋다고 말씀을 드리니까 일본에서는 겉으로는 괜찮아하지만 돌아서서 욕을 한다거나, 못본 척을 한다거나, 무시하는 식으로의 대응이 널리 퍼져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셔셔 안타까웠습니다. 한국도 일본도, 서로 힘내자는 메시지를 남기고 왔습니다.


 


레인보우 페스타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모습들도 가지각색이었습니다. 서로 유카타를 입고 시바견과 함께 정말로 마을 산책을 나오듯이 축제에 온 게이 커플도 있었고요, 포켓몬매니아로 추정되는 두 분의 포켓몬코스프레, 레인보우를 주제로 독특하게 입고 나오신 전문 코스플레이어까지, 자긍심 행진이란 주제 아래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축제 주최측에서 참가자들을 위해 준비한 프로그램도 꽤 좋았습니다. 처음 축제를 참가한, 혹은 주변에 성소수자 친구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서로 친해져서 축제 당일 함께할,그리고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교류회 이벤트를 마련하여 참가자들이 어색하지 않도록 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어요. 또한, 퍼레이드에 대한 안내와 가이드, 그리고 참가자 자신들이 들고나갈 팻말을 직접 꾸밀 수 있도록 여러모로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번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더욱 깊은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지 않았나 합니다.


축제의 꽃, 퍼레이드는 145분 가량부터 줄을 서는 식으로 차근차근히 이루어졌습니다. 6개의 구간이 있었는데요, 선두의 2그룹은 어필 존이라고 해서 자신을 포함한 LGBT의 존재를 알리고, 여러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플래카드, 깃발 등등을 들고 참가한 사람들이 주로 이 그룹에 참여했습니다.제가 참여했던 중간의 2 그룹은 DJ존이라고 해서 앞에서 DJ가 틀어주는 음악과 함께 오사카 거리를 즐겁게 행진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행렬이었습니다. 마지막 2그룹은 촬영 금지 존이었는데요, 신상노출의 위험이나 부담을 줄이고 안전하게 퍼레이드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행렬이었습니다.

 

 

[Open Mind, 나답게, 있는그대로. // 성소수자인 친구가 있습니다!]

정렬이 어느 정도 완료가 된 후부터 2시부터 본격적으로 공원을 나서서 오사카 키타지구를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도 안전한 퍼레이드를 위하여 경찰의 협조와 함께 약 한시간 반 가량을 걷게 되었는데요. 키타 지역의 주요 관광지였던 우메다 일부를 무지개 깃발과 함께 걷는다는 게 정말 신기하고 즐거웠습니다. 특히 이곳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는 HEP-FIVE의 관람차와 무지개 깃발이 겹쳐있는 순간의 짜릿함이란! 빌딩 위에서 퍼레이드를 신기하게 보며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무리들도 있었고, 중간에 참여해서 같이 걸었던 할머니도 있었고, 혼자서, 혹은 단체로 함께 환호를 해주던 가게도 있었습니다.

 

http://youtu.be/Bxfo0BnJ6Dc

[아키야마리오 (秋山理央)씨께서 찍으신 퍼레이드 영상입니다! 굉장히 재밌어 보이죠? >_<]

 


3km 가량의 퍼레이드를 마치고, 게이와 레즈비언 유닛그룹의 마지막 합동공연까지 보고 난 다음, 올해의 주제곡과 함께 풍선을 날려보내는 것으로 간사이 레인보우 페스타 2014는 막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끝났다는 생각에 교차하는 만감을 느낄 틈도 없이,오사카의 주요 게이 거리인 도야마쵸에서 열린 애프터 파티는 이 여흥을 그대로 이어주었습니다.클럽과 바를 넘나들며 오후에 무대에서 노래했던 가수의 앵콜라이브 공연을 보고, 게이 변호사들의 토크쇼를 즐기고, DJ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고고보이, 고고걸스, 드랙퀸들의퍼포먼스를 감상하는,저녁 7시부터 새벽 5시까지 지칠 새도 없이 정말 가지각색의프로그램들로 어우러진 화합의 장이었습니다.

 

[애프터 파티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비밀!]

 

가깝고도 먼,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열린 자긍심 축제에 참여하면서 매 순간순간이 저에게는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왕복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아 반짝 도깨비 여행의 느낌적 느낌으로 다녀올 수 있다는 건 큰 이점일 것입니다. 저는 급히 부랴부랴 다녀온 데다 성수기까지 겹쳐서 그리 혜택을 보진 못했지만, 저가항공사들의 특가 이벤트 등으로 인해 일찍 예약하면 15만원 내외로도 다녀올 수 있기도 할 겁니다. , 안타깝게도 간사이 레인보우 페스타는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안내가 부족하거나 없는 경우가 있어서 일본어가 되지 않으시는 분들에겐 여러 행사나 부스를 즐기는 데에 애로사항이 꽃피는 경우도 있긴 할겁니다. 물론 저와 함께 가신다면 옆에서 통역을 해드려전혀 문제될 것이 없으니 내년에는 오사카의 퍼레이드를 함께 즐기러 다녀오는 건 어떠하실런지요? :)

잔뜩 쌓인 추억들 속에서 무엇보다 하늘로 날려보낸 무지개 풍선들이 저편 너머로 넘어가는 풍경은 아마 쉽게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풍선을 날려보내며 울려퍼진 올해의 간사이 레인보우 페스타주제곡,のあたる坂道<해가 뜨는 언덕에서>를 들려드리며 후기를 줄입니다. 부디 일본에서 다시금 고무된 저의 무지개 자긍심이 다른 분들께도 힘이 되는 글이었길 바라며!

http://www.youtube.com/watch?v=JeaK9kvPKS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