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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소식/해외 인권소식

잘 다녀왔습니다! - 미국 공중보건학회(APHA) 참가후기

by 행성인 2014. 12. 8.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보건과학과 / 동인련 HIV/AIDS 인권팀 이혜민

 

 

142회 미국 공중보건학회(APHA)

 

지난 11월 15일부터 19일까지 미국 재즈의 본고장인 뉴올리언즈에서 개최된 미국 공중보건학회(American Public Health Association)에 다녀왔습니다. 작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이캅(ICAAP) 이후로 해외에서 열리는 학회에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 기자 자격으로 참여한 것은 두 번째였습니다. 지난 아이캅에서는 해외에서 HIV/AIDS 관련하여 어떤 활동들이 진행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에는 LGBT 건강과 관련해서 현재 미국에서 어떤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올해로 142회를 맞은 이 학회는 1,000여개가 넘는 수의 세션(구두/포스터 발표, 원탁회의)과 영화제 등을 통해 공중보건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약 12,000명의 학생 및 연구자, 활동가들이 이번 학회에 참가했다고 합니다.

 

 

미국 공중보건학회의 LGBT 회의 로고

 

그 중에서도, 제가 학회에 참가하게 된 중요한 이유는 LGBT 건강에 대한 세션들입니다. 이 세션은 성소수자 건강 이슈에 관심 있는 연구자들에 의해서 1975년도에 설립된 LGBT 회의(LGBT Caucus of Public Health Professionals)에 의해 주최되고 있었습니다. LGBT 회의는 미국 공중보건학회에서 성소수자 건강 이슈에 대한 포럼 등을 개최하여 LGBT 회의 멤버들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를 대하는 의료제공자에게 LGBT 건강 이슈들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고, 학회에 참가한 다른 분야의 공중보건 연구자들에게 성소수자 건강 이슈에 대해서 알리고, 또 학회 내에서 동성애 혐오와 이성애주의를 배척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무엇보다 공중보건 정책을 토론하는 자리에서 LGBT 건강에 대한 이슈들이 더 많이 다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웹사이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 The Lesbian, Gay, Bisexual & Transgender Caucus of Public Health Professionals (http://www.aphalgbt.org/)

 

올해 미국 공중보건학회에서는 LGBT 회의가 주최한 세션 7개를 포함한 49개의 세션, 총 132개의 구두⋅포스터 발표와 원탁회의가 성소수자 건강 관련하여 진행되어 ‘성소수자’라는 이름 아래 함께 모일 수 있는 다양한 집단들과 이에 따른 다양한 주제들을 다룬 건강 연구들이 소개되었습니다. 연구 대상자별로 살펴보면, 연구 대상에 MSM(게이, 바이섹슈얼 남성 포함)을 포함한 연구 94편, WSW(레즈비언, 바이섹슈얼 여성 포함)을 포함한 연구 56편, 트랜스젠더(트랜스남성, 트랜스여성 포함)를 포함한 연구 53편, 퀘스쳐닝을 포함한 연구 12편, 그리고 인터섹스를 포함한 연구가 1편이 있었습니다(중복 포함). 한국의 경우 성소수자의 건강과 관련하여 레즈비언과 남녀 바이섹슈얼, 그리고 퀘스쳐닝이 대상 인구집단으로 대부분의 연구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혜민, et al. 2014)에 반해, 미국에서는 좀 더 다양한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학회에서 발표된 연구들을 주제별로 살펴보면, 정신건강 관련 연구 25편, 건강 관련 행동(음주, 흡연, 약물 포함) 연구 20편, HIV와 STI 관련 연구 19편, 부정적인 사회경험(낙인, 차별, 폭력 등) 관련 연구 17편, 성적 행동 관련 연구 16편, 의료이용 관련 연구 9편, 암과 같은 만성질환 관련 연구 3편, 법⋅제도와 사회운동 관련 연구 3편 등이 있었습니다(중복 포함). 한국에서 출판된 성소수자 건강 연구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흡연이나 음주와 같은 건강 관련 행동, 의료이용, 그리고 만성질환을 주제로 한 연구들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 공중보건학회에 동인련 웹진의 기자로 press 등록해서 참가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

 

그 중 특히 주목해서 살펴본 연구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법적 보호를 주제로 한 것이었습니다. 학회에서는 2개의 발표가 이와 관련된 연구를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하나는 주에서 시행되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법적 보호와 지역사회에서 트랜스젠더가 경험하는 낙인, 그리고 정신건강 사이의 관련성에 대해 살펴본 연구였고, 또 하나는 공공 숙박시설에서의 트랜스젠더에 대한 법적 보호가 이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금지를 서울시민인권헌장에 적시하는 것이 이미 시민위원회의 표결로 합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의 반대로 폐기될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LGBT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조치의 부재는 그 자체로도 문제가 되지만, LGBT 인구집단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또한 제가 관심 있게 살펴본 또 다른 주제는 성소수자를 대하는 의료제공자에 대한 트레이닝 관련 연구와 성소수자가 경험할 수 있는 의료이용에서의 불평등과 의료적인 욕구, 그리고 건강 보험과 관련된 연구들이었습니다. 요즘 제가 공부하고 있는 연구실에서 트랜스젠더의 의료이용 관련 질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 참고할 점이 많았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여러 발표에서 등장한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이었습니다. 이 개념은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다양한 인종이 페미니즘 운동 진영에 결합하게 되면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상호교차성 이론이라는 용어는 1989년에 크렌쇼(Kimberlé Crenshaw)가 처음 사용했는데요, 억압과 지배, 또는 차별의 형태나 체계 사이의 상호교차성에 대한 연구를 의미합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흑인 여성들이 경험하는 상호교차성은 그들의 인종과 성별에 의해 경험되는 것 혹은 그 둘의 경험을 합한 것보다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연구자들은 공중보건 분야에서 인종과 성적지향에 대한 각각의 연구들이 다소 활발하게 진행된 반면, 인종과 성적지향을 함께 살펴본 연구가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인종과 성적지향의 상호교차성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가령 한 연구는 LGBT 커뮤니티에서 유색인종인 LGBT가 배제되고 차별 받는 현상과 이것이 유색인종인 LGBT 집단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한국의 성소수자 집단 내에서도 여성인 성소수자, 이민자인 성소수자, HIV 감염인인 남성 성소수자/트랜스젠더 등과 같이 다양한 정체성이 서로 맞물려 더욱 강력한 차별을 경험할 수 있는 집단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정체성의 상호교차성을 잘 반영하여 분석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가본 미국에서 이렇게 많은 연구자들이 LGBT 건강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것을 보고 한국에서 느낄 수 없는 뿌듯함과 가슴 벅참, 동시에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세션을 들으면서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가도 짠고 슬퍼지는 양가적인 감정에 혼란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세션에서 연구자들이 하는 말에 머리가 징~ 울렸습니다. 바로 미국에서 LGBT 연구 대상자 건강을 장기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종적 연구 디자인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미국에 종단 연구가 없는 건 아닙니다. 가령 뉴욕을 배경으로 하여 다양한 인종/민족 정체성을 지닌 LGBT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The P18 Cohort Study’나 하버드대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The Growing Up Today Study(GUTS)’ 등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전부터 LGBT 인권운동의 영향으로 국가 단위의 다양한 조사에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한 질문 항목을 넣어 LGBT 인구집단의 규모를 추정할 수 있고, 여러 대학이나 연구소에도 LGBT 건강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이 많아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며 부러워하고 있었는데, 정작 그들은 아직도 연구가 부족하다, 나라에서 LGBT 건강에 대해서 지원하는 것도 적다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미국에서도, 그리고 한국에서도 LGBT 건강 연구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고, 앞으로 한국에서도 LGBT 건강에 대한 좋은 연구들이 진행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연구에 대한 동기부여는 덤으로 얻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인련 웹진 기자로 좋은 경험을 하고 왔고, 이렇게 뜻 깊은 자리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여러 가지 일들로 마음까지 추운 12월이지만,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즈 학회장에서 즐긴 재즈를 사진으로나마 보여드리고 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참고문헌>


이혜민, 박주영 and 김승섭 (2014). "한국 성소수자 건강 연구." 보건과 사회과학 36(-): 4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