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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김비 장편소설 연재]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6. 산 - 괜찮아, 동그랗지 않아도

by 행성인 2014. 12. 21.

長篇小說

 

金 飛

 

 

 

6. - 괜찮아, 동그랗지 않아도 

  

 

 나는 비어 있었다. 구멍이 난 봉지, 찢겨진 상자, 깨진 유리창.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나는 오래도록 텅 비었다. 구멍이 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비어있는 나를 채우려고만 했고, 새어나가는 것들 때문에 불안하고 조바심 났다. 스물 네 시간 나를 지배하는 내 안에는 균열이 있었다. 볼록 튀어나온 것이거나 날카롭게 깨진 것이거나, 너덜거리는 것이거나 지저분한 것이거나, 손끝에 만져지는 그것을 통해 내 삶이 빨려나가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 두려웠던 건 그 틈이 내 몸을 따라 커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나는 완결된 구()가 아니었다. 그리다가 만, 흔들리거나 뒤틀린, 직선도 아니고 곡선도 아닌 어쨌거나 동그랗지 못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구르려고 해도 구를 수 없고, 같이 간다고 길을 나섰다가 반드시 혼자 길을 잃고 마는, 무엇으로든 미완이었다

 손을 들어 잡티가 엉겨있는 그녀의 볼에 손 등을 가져다댔다. 잠 속에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손 등에 닿은 온기가 어디론가 올라갔다가 천천히 내려왔다. 손가락으로 그녀의 볼 한 쪽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꼭 내가 동그라미일 필요는 없었다

 

 “자요?” 

 “아뇨, 그냥 흉내 내 봤어요. 그쪽 자는 거.” 

 

 그녀가 웃었고, 나도 웃었다

 

 “잘 잤어요?” 

 

 그렇다고 말하는 대신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얼굴에서 손을 떼려고 하자 그녀가 내 손을 붙들어 그 한 가운데 입김을 훅 불어넣었다. 아니다, 입김을 불어넣은 것이 아니라 내 손에 온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아니, 부서진 내 동그라미에 입을 대고 훅훅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건지도

 

 “손이 크니까 참 좋네. 덕분에 내 손도 작아지고, 내 얼굴도 작아지고.” 

 

 장난치듯 손을 쫙 펴서 그녀의 얼굴에 댔다. 그녀의 얼굴은 길쭉하거나 네모나기보단 동그래서, 내 손의 손가락 끝을 이어 그린 것 같았다

 

 “다르진않았어요?” 

 

 내 손바닥 아래 숨어서 그녀가 웅웅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대답이 무얼까 잠시 생각했다. 내게는 분명 특별하고 다른 존재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래서 당연히 달랐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특별하다는 말이 그녀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겠구나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뇨, 다르지 않았어요.” 

 “다행이다, .” 

 

 내 손바닥 속에 안도의 숨이 쏟아졌는데, 온통 물기로 엉겼다. 나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완결되지 않아 서로 끊어진 채로, 혹은 구멍이 나거나 찢겨 너덜거리거나 깨져 텅 비어버린 채로, 우리는 그렇게 하나로 이어졌다. 나는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비어지고 깨진 우리들만의 동그라미를.  



 우린 부산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올랐다. 손을 잡을 때마다 그녀는 나를 빤히 올려봤는데, 나는 그때마다 엉성하게 웃어 주었다. 몸을 섞으면 마음도 섞이는 일인지, 그녀의 두 눈 속에 너무 많은 생각이 뒤엉킨 게 보였다. 아마 그녀도 끊어진 자신의 곡선 어딘가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속으로 새어나갔던 어떤 것,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흔들리고 삐뚤빼뚤인 어떤 것을.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녀가 말하지 않은 내 마음을 이해했는지는 알 길 없었다. 물론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괜찮다.’ 

 손을 잡은 채 나란히 앉아 우린 지하철 유리창 밖으로 뭉개져 지나가는 부산의 풍경을 바라봤다. 손을 놓지 않은 채 서면 거리를 걸었고, 사람들이 많은 카페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땐 웃는 서로의 두 눈만 봤다. 다시 한 번 손의 크기를 재어보기도 했고,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거리에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헤어질 시간은 고속으로 우리 앞에 달려왔다. 나는 그녀의 손을 놓기 싫었다. 그래서 자꾸 그녀의 얼굴을 봤는데, 그녀도 그때마다 내 얼굴을 마주 봤다. 지하철이 터미널에 다다르고 승강장에서 용인 행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나는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마침내 버스가 승강장에 도착해 문을 열었는데도, 그녀는 내 곁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잡은 손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며 그녀는 노래라도 부를 듯한 표정이었다

 

 “갈게요.” 

 

 그녀가 말했다

 

 “다음 주에 봐요.” 

 

 내가 말했다. 그녀가 길고 느린 숨을 한 번 쉬더니, 내 품에 폭 안겼다. 어색하고 신기한 떨림이 쏟아지듯 온 몸에 번져갔다. 좌석에 앉아서 그녀가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었고, 나도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천천히 버스가 움직였고, 그녀는 다시 손을 흔들었다

 아, . 사랑한다고 말해야하는데, 그제야 하지 못했던 말이 생각났다. 하지 못한 말 때문에 흔들고 있는 내 손은 조급해 졌는데, 그녀는 두 눈을 뒤집고 혀를 내미는 개그우먼 표정을 짓고는 다시 손을 흔들었다. 너무 멀어 우린 서로의 말을 들을 수 없겠지만, 나는 그 말이 괜찮다는 말인 것 같았다. 물론 이번 역시 내 생각이 틀렸더라도, 나는 정말 괜찮다.’  



 삶이라는 시간으로부터 칭찬이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따스하고 부드럽거나 단단하고 믿음직스러운 손길이었다. 잘 했다, 괜찮다는 말들이 비처럼 머리 위에 쏟아져 내렸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다가 아버지와 살고 있는 네 살 위의 형을 만났다. 형이 주도적으로 사업을 하고 아버지가 돈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두 사람은 가족이자 동업자였고 투자자이자 부자지간이었다. 건물 모퉁이에서 담뱃불을 입에 물고 있던 그는 나를 보자 대뜸 소리를 질렀다. 왜 밤늦게 다니느냐, 엄마를 집에 혼자 내버려두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제는 네가 엄마를 보살펴야할 나이가 아니냐, 질문도 충고도 아닌 그의 말은 서로 다른 높낮이로 내 앞에 쏟아졌다

 나는 그의 질문들에 적절한 대답을 알지 못한다. 언제나 그의 물음에는 해답이 없었다. 내가 하는 말은 항상 틀린 답이었다. 볼썽 사납게 고개만 숙인 내 어깨 위로 그녀의 개그우먼 표정이 생각났다. ‘괜찮다는 말이었다

 직장은 구했느냐고 그는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했다. 직업 교육원에 등록은 했느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건 아니라는 대답이 아니라 아직이라는 대답이었는데, 그는 불량배처럼 건들거리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엉뚱한 짓거리를 하고 돌아다니면 정신 병원에 처넣어버리겠다고 말하는 그의 속삭임은 언제나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항상 위압적이었던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는데, 오늘은 신기하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괜찮았다

 

 “사는 게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 엄마는 널 자유롭게 키운다고 그렇게 내버려뒀는지 모르지만, 나나 아버지 같았으면 너 그렇게 가만히 안 둬. 그게 너를 위한 건 줄 알아? 그래서 네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인 거야. 올 해 안으로 직장 잡지 못하고 이대로면 너 원양 어선 태워서 바다로 내 쫓아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 알아 들어!” 

 

 그래, 괜찮다. 아무 일도 아니다. 형이라는 사람도 원래 그런 사람이고, 아버지란 사람도 원래 그런 사람이다. 두 사람에게 붙들려 머리가 깎여 철원의 군부대로 끌려갔던 때에도 그랬다. 몸부림을 치는 나를 짓누르며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한 일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물론 나는 얼마 되지 않는 군 복무 기간 동안, 자학과 우울감에 짓눌려 정신과와 각종 캠프를 들락거리다가 현역 복무 불가 판정을 받아 공익으로 간신히 군 복무를 마쳐야했다. 결코 괜찮을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

 

 “산다는 건, 전쟁이야. 알아? 어떻게든 다른 놈들을 짓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넌 짓밟히고 있는 중이란 의미라고!” 

 

 주먹질이라도 하려는 듯 그가 손을 들어올렸다

 

 “씨발, 좆같고 개같은 거 알겠으면, 그 마음으로 들이 받으면서 살라고 이 좆만아, 알아?” 

 

 투사 같은 몸짓으로 그는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반듯한 양복을 입은 그의 뒷모습은 반짝이는 갑옷이라도 입은 것 같았다.  

 하지만 괜찮다. 그가 말한 전쟁하는 삶을 살지 못해도, 살려면 반드시 해야 한다는 짓밟는 일을 할 수 없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그 모든 것들을 용서하고 싶었다. 여전히 내 삶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깨져나가고 단발의 파열음으로 찢겨나가고 있더라도, 오늘은 모든 것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싶었다

 

 오늘 만큼은 그 모든 것들이, 나는 괜찮다.’ 



 

김비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돼 등단했다. 장편소설<빠쓰 정류장>·<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산문집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등을 냈다. 한겨레신문에 ‘달려라 오십호(好)’를 연재 중이다.

 

*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은 2014년 김비 작가가 웹진에 연재한 '나의 우울에 입맞춤'을 2022년 수정한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