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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 혐오/서울시민 인권헌장

무지개농성단 서울시청 점거 농성의 의미를 짚어보는 토론회 - 당신의 인권이 여기 있었다!

by 행성인 2015. 1. 26.

종원(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지난 1월 7일 저녁 서울 마포구 인권중심 사람 다목적홀 한터에서는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의 주최로 무지개농성단 서울시청 점거 농성의 의미를 짚어보는 토론회 ‘당신의 인권이 여기 있었다!’가 열렸다. 2014년 12월 6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된 6일간의 서울시청 점거 농성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전망을 논의했다. 극우 개신교의 반발과 압력에 지난달 박원순 서울시장은 성소수자 인권 보호를 명시한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일방적으로 폐기, 한국장로교총연합회와의 간담회에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 는 말을 해 성소수자들과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시민은 서울시청 점거 농성을 벌였다. 농성으로부터 1달이 지난 시점에 개최된 토론회에도 6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하였다.



성적소수문화환경을위한모임 연분홍치마 상임 활동가 일란은 점거 농성이라는 최후의 수단이 성소수자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는데, 존재하는 것 자체가 투쟁인 성소수자들이 특정한 공간을 점유하고 그곳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냄으로써 ‘집단적 커밍아웃’을 하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외쳐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드러내며 싸워 온 성소수자 인권 운동은 1997년 노동자 총파업, 퀴어퍼레이드 등 다양한 공간을 점유하며 집단 행동을 취했고, 특히 2007년 누더기 차별금지법 제정 저지 운동을 통해 국가 주도의 인권 담론에 집단적으로 개입하여 공동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11년 12월 학생인권조례 원안 통과를 요구하며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1층 로비 점거 농성에 들어간 것이 성소수자 인권 운동 역사상 첫 점거 농성이었다.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원안에 가깝게 통과됐다.
 
일란 활동가는 2014년 서울시청 점거 농성이 전환점이라고 말하면서,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이제 한국 사회에 ‘인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확장하며 ‘인권 운동’을 촉발하는 ‘운동’인 만큼 성소수자들의 다음 단계로의 전환이 어디로 향해질지를 결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2014년 서울시청 점거 농성이 2011년 서울시의회 점거 농성과 다른 점으로, 문제 해결과 국면 타계에 집중된 투쟁이었다기 보다는 한국 사회와 운동 진영에 ‘인권의 가치가 무엇인지’와 같은 첨예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효과적으로 제기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된 점거 농성이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주요 선출직 정치인이자 잠재적 대권 주자인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이끌어내고 사과를 받아낸 것도 있지만, 12월 7일 ‘성소수자 인권지지와 서울시민 인권헌장 선포 촉구 인권시민사회’ 긴급 기자 회견, 300개가 넘는 단체들의 공동요구안 연명은 무지개농성단의 매우 소중한 성과였다. 그리고 성소수자 이슈가 중요해졌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 무지개 농성의 성과라고 강조했다.
 
다음으로 동성애자인권연대 운영회원 나라가 서울시청 점거 무지개 농성의 배경과 진행 과정, 성과와 과제에 대해 발제했다.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발한 혐오 세력의 조직화와 활동으로 시작된, 공공연히 성소수자를 희생양 삼는 정치가 기성 정치의 우경화와 맞물려 기세를 올린 점을 지적했다. 특히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사태, 보수 정치인들의 혐오 발언 등 오늘날 절박한 상황을 전했다. 무지개 농성의 중요한 성과로는 성소수자 대중의 요구 확인, 시민 사회 운동/진보 진영의 중요한 준거점으로서 성소수자 인권 의제의 부상, 성소수자 운동이 쌓아 온 연대의 폭과 깊이의 확인을 꼽았다.
 
서울시민 인권헌장이 상징적인 의제로 떠오른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한국 정치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서울시의 문제라는 것과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인 박원순 서울시장 정치의 시금석이었다는 것, 진보적인 학계 인사와 인권 운동 활동가들이 이 사안에 관련을 맺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혐오 증대에 대한 우려와 관심이 높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끝내 민주주의와 인권의 원칙을 저버린 서울시의 억지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고, 성소수자 운동은 신속하게 기자 회견과 토론회를 열어 서울시를 규탄했다. 위기감과 절박감 속에 성소수자 활동가들은 강력한 항의 행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점거 농성 결정, 유보, 토론, 계획 변경 등 긴박한 과정을 통해 결국 12월 6일 농성이 시작됐다. 시청 측과 경찰의 위협과 치졸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무지개 농성은 언론과 SNS의 주목을 받으며 지지와 연대를 확대했다. 발제자는 주말을 거치며 농성 돌입이 옳은 결정이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평가했다. 화요일 박원순 시장에게 직접 항의하는 그림자 시위는 박원순 시장과의 면담과 사과를 끌어내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날 밤 확대 상황실 회의에서 긴 시간에 걸친 회의가 진행됐고, 박원순 시장이 사과했다는 사실의 정치적 효과와 현실적 힘을 고려하여 어렵게 농성 종료가 결정됐다. 발제자는 이러한 판단의 근거와 농성의 성과에 대한 토론이 충분히 이루어졌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면서, 그러나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필요했다고 역설했다.
 
나라 활동가는 12월 11일 저녁 승리 보고 문화제를 끝으로 공식 종료된 무지개 농성이 가장 중요한 목표를 이루었다고 평가하며, 농성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성소수자 대중의 지지를 재차 강조했다. 또 성소수자 운동에 싸우는 법에 대해 다양한 교훈을 남겼다고 봤다. 마지막으로, 정치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성소수자 인권 제도화는 쉽지 않을 것이지만, 차별 금지 원칙이 공격받을 때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면서 성소수자 인권을 보편적 인권으로 확장시켜 나가야 하며, 무지개 농성에서 그 성과를 확인한 연대의 폭과 깊이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제에 이어 토론에 나선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의 한가람은 서울시청 점거농성을 2007년 차별금지법 투쟁, 2011년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투쟁의 분절점과 연속성 속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면서, 여전히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이다”라는 슬로건이 슬로건에 그치지 않고 현실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점거 농성이라는 방식이 성소수자들에게 낯설 수 있으면서도, 공간의 전유/점유라는 점에서, 즉 카페, 바, 클럽 등의 공간을 전유하고, 게이들의 경우 이러한 곳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을 일시적으로 점령하는 점에서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수도 서울의 시청사라는 공적 공간을 전유/점유하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존중받길 원했던 성소수자들의 바람들이 서울시민 인권헌장 사태를 둘러싼 가장 중요한 장면이고 정치적 의미라고 말했다. 또 농성 종료에 관한 어려운 결단 등 농성의 최종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많은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스스로의 힘을 확인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꼽았다. 그리고 2007년, 2011년, 2014년으로 이어지는 싸움의 경험들은 제도화의 성과보다 성소수자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쳤다면서, 끝으로 무지개 농성 참가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어 토론자로 나선 명숙은 진보적 인권 운동의 기치를 내세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로서 이번 싸움의 의미를 짚었다. 명숙은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꾸준한 운동으로 성장해 왔다면서, 서울시청 로비 점거 농성은 성소수자 운동이 쌓아 온 연대의 폭과 깊이로 힘을 확인한 것임에 동의했다. 한편으론 성소수자 혐오 역시 2008년 보수 정권 등장 이후 더욱 조직적으로 세력화되어 확대되어 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경제 위기로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면서 사회의 우경화는 혐오의 정치를 동반한다. 따라서 이번 서울시청 점거 농성은 성소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권을 지키는 싸움이기도 했다. 혐오는 차별을 확대하고 모든 부분의 인권의 후퇴를 보여 주는 신호탄이다. 토론자는 ‘서울시청 점거 농성에 돌입한 행동’이 선언이고 인권의 의지이고 질문이라면서, 그 행동이 성소수자가 저항하는 주체임을 드러냄으로써 정치, 즉 기존 질서를 흔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박원순을 궁지에 빠뜨렸다”는 일부 박원순 지지 세력의 비난에 반박하면서, 바로 이번 농성이 진보의 의미를 다시 묻고 민주의 의미를 다시 묻는 작업을 시작한 셈이라고 지적했고, 인권의 의미를 내적으로 확장한 것을 농성의 중요한 성과로 꼽았다. 
 


발제와 토론이 끝나고 이어진
 질문과 청중 토론 시간에 다양한 질문과 의견이 쏟아졌다. 먼저 전재우(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씨가 서울시청 점거 농성 기간 동안 모은 성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물었다. 농성단 평가 토론 때 향후 투쟁을 이어가는 역할을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맡기로 결정됐으며, 크게 혐오 대응, 연대 활동, 성소수자 인권 보장 활동의 세 방향으로 기금이 사용될 예정이다. 특히 LGBT 인권포럼이나 성소수자 차별 반대의 날 행사 조직에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한 토론회 참석자는 서울시청 점거 농성의 성과가 자랑스럽다고 평가했으나, 기획단과의 간극을 많이 느꼈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서울시민 인권헌장이 인권의 제도화로 느껴져 큰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서울시에 의해 폐기가 되는 순간 헌장 선포가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게 됐다는 참석자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확인하고 시민 사회의 인정을 받는 것이 더 중요했다는 점에 공감했다. 그러나 박원순 서울시장 면담 후 많은 사람들이 박원순 시장의 사과가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는데도 농성 종료 결정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궁금했다고 말했다. 이에 분명히 간극이 존재했다고 생각한다면서, 농성이 끝난 이후 농성 과정을 되돌아보고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사과가 형식적으로 이뤄진 상황에서 그 이후의 국면 변화를 감당할 수 있을까 라는 확신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농성장 민주주의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면서, 이 문제에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기자 나랑 씨도 과정과 방식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며, 박원순 서울시장 면담 이후 토론을 통해 농성을 이어가자고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농성 종료가 결정된 방식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특히 면담 다음날인 12월 11일 기자 회견을 통해 농성 종료를 발표할 것이 아니라, 농성단을 다시 소집하여 의견을 묻고 결정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승리 보고 문화제에 대해서도 승리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었다면서, 무게감 있게 평가해야 할 지점이라고 말하고, 앞으로 이런 오류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에 나라는 굉장히 타당한 지적이라 수긍하고, 이 지점이 바로 이번 서울시청 점거 농성에서 가장 부족한 지점이었다고 말했다. 12월 11일 오전 농성 참가자들에게 회의 결과를 전하고 설득하는 시간도 가지긴 했으나 미숙함이 있었고, 민주적 소통 경험이 충분치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반성했다. 명숙 역시 집행부와 기획단의 실력 부족이었다고 수긍했다. 그러나 이번 무지개 농성은 직접 민주주의가 아니라 광장 민주주의에 가까웠다고 주장하며, 비록 구체적인 상은 없었지만 시도 자체가 의미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가람의 말에 따르면, 원래 기획단은 토론 결과를 들은 후 밤 회의를 거쳐 결정을 내리기로 했었는데, 당일 사회를 보았던 본인이 분위기에 취해 기획단 입장을 자의적으로 잘못 전달한 것이었다. 가람은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이라며 용서를 구했다.
 
성북구 청소년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 사업 제안자인 안영신 씨는 성소수자 사업의 불용 사태와 관련하여 “행정 기관들이 위기만 모면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면서 성북구의 상황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또 박원순 서울시장 면담 과정에서 절반의 사과를 받아 여러 가지 약속을 한 지점들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체크하면서 이후의 전망으로서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욜 씨는 성소수자 인권이 행정 영역에서 많이 이야기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인권을 표방한 서울시와 성북구의 선례가 다른 지자체에 미칠 영향을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서울시장의 면담이 부족했다는 건 분명하지만, 면담에 이르는 과정과 농성을 통해서 존재감과 요구가 드러났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끝으로 최근 더욱 조직적으로 행해지는 에이즈 혐오에 대해 이야기하며 돌파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웅 씨는 무지개 농성을 통해 우리의 위치를 확인했다면서, 성소수자들의 욕구, 조직력, 힘, 자원, 연대에 대한 감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특히 음지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사적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 공적 공간을 점유하면서 연대를 확인하거나 자원을 지원받거나 하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비록 간극도 있었지만, 이렇게 확인된 에너지들을 외부로 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LGBT 인권 포럼, 성북무지개행동(가) 토론회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활동가 나영 씨는 성북구 사태를 겪으면서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끝까지 박원순 서울시장의 입으로 선포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니었나 라는 고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즉 12월 10일 시민 위원들이 선포하는 방식의 전략이 아니라, 아예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선포하지 않고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끝까지 선포를 요구하는 전략이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앞으로 서울시와의 면담 과정에서 외부적으로 공인, 승인하는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 장병권은 많은 이야기가 오간 토론회를 마무리하며 보수 혐오 세력이 우리가 가는 곳마다 ‘지뢰’를 심어 놓는 상황에서 연대에 대해서도 면밀히 바라보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오는 3월 개최될 LGBT 인권 포럼과 5월에 있을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행사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