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아직 쌀쌀했던 3월 7일, 2009년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정기 총회가 열렸다. 총회 시작 전에 이번 웹진 글로 총회를 스케치 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대로 된 후기 같은 걸 쓴지 반년도 넘은 상황이어서 제대로 쓸 수 있을지 겁부터 났다. 하지만 웹진을 통해 동인련의 그간 활동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일도 동인련을 알리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인련이 뭐하는 단체야?’라고 물어봤을 때 ‘이거 읽어봐.’라고 해줄 수 있는 그런 스케치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총회를 하는 동안 어떤 식으로 쓸지, 어떤 사진을 넣을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고민만 한 덕분인지, 마감을 며칠 앞둔 상황에서 다시금 총회를 생각하려니 머리가 반은 백지가 되어버린 느낌이 든다. 찍어둔 사진을 보고 있자면 한숨부터 나온다. 내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걸 찍었을까? 안건지를 들춰봐도 당최 적어둔 것이 없어 쓸 만한 꺼리를 찾기가 힘들다. 3월 20일 금요일 오전 12시 55분, 원고를 마감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총회가 시작되고 석주씨가 준비해온 파워포인트를 보면서 동인련이 지난 1년 간 얼마나 많은 일을 해왔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학교생활도 반쯤 포기하고 매진한 일이 많았는데, 다시 보니까 그 짧았던 1년이 꽤나 길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촛불 집회, 걸음 활동가 모임, 웹진 발행, 청소년 자긍심 팀 구성, HIV/AIDS 캠페인, 육우당 추모제, 퀴어 퍼레이드, 군대 내 성소수자 인권 프로젝트, 무지개 행동 등 정말 많은 활동을 했었다. 1년이 짧았다고 느낀 건 그만큼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 왼쪽 _ 촛불 집회 당시의 사진을 보고 있다.
1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았기에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느껴진다.
* 오른쪽 _ 집회 때 만든 무지개 피켓. 인기가 좋아서 적게 뽑은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 왼쪽 _ 故 육우당 추모제 때 만든 영상의 일부. 4월이었는데도 그 날은 유달리 추웠다.
아직 세상이 춥다는 걸 그도 알고 있어서였을까.
* 오른쪽 _ 11월과 12월에 집중한 HIV/AIDS 캠페인을 위해 만든 홈페이지 화면.
로슈 덕분에 올 해도 힘든 투쟁을 계속 해야 할 것 같다.

 1년 동안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한 걸 보고 혹자는 ‘무슨 활동을 이렇게 많이 해?’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2008년 퀴어 퍼레이드 때 이주 노조를 위한 모금 운동과 서명을 받으면서 받았던 질문도 비슷했다. 동성애자인권연대인데 왜 이런 일을 하냐고. 그 질문을 받으면서 한동안 생각도 많이 했는데, 결국 나오는 답은 다른 활동에 대한 답과 비슷하게 나왔다.  하나의 문제는 하나만 해결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동시에 바뀌어야 해결되는 문제이다. 우리가 연대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기도 하고 말이다.

 올 해 할 일도 참 많다. 작년부터 이어온 웹진, 청소년 자긍심 활동, 회원 프로그램, 사무국 활동, 그리고 성소수자 노동권 활동까지. 1년지 지날 때마다 인권은 10년씩 후퇴하는 것 같은 정부 하에서 각자가 고민해온 이야기를 꺼내고, 활동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온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회원을 위한 활동, 세상을 조금씩 바꾸기 위한 활동, 억압받는 이들을 위한 활동들까지.

 활동다짐 글 중에 ‘연대’와 ‘실천’을 통해 2009년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사무국 회의 때 수정을 해서 홈페이지에 올라가겠지만 나는 그 문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가장 ‘동인련’스럽지만 그런 것이 가장 ‘인간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공통되는 지점에서 서로 연대하며 나아가는 것, 그것이 모든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과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사회도 개인을 원자화 시키고 개인 또한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 풍조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이런 시대 속에서 더욱 인간적인 것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 다.

 2시간에 걸친 총회가 끝나고 뒤풀이에 가면서 총회에는 뭔가 대단한 이야기가 나올까 생각했던 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깨달았다. 새 해가 되어서 다 쓴 일기장을 다시 들춰보고 새 일기장에 올 해 목표를 적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우리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1년 후도, 5년 후도, 10년 후도. 하지만 그 일기장 속에 적힌 내용은 조금씩 더 나아질 것이다. ‘아, 이때는 이랬었지.’하면서 추억하는 것이 일기장을 다시 들춰보는 묘미가 아니던가.


Anima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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