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11. 산 - 파르마콘, 시간의

2015. 2. 15. 21:15무지개문화읽기/[김비 장편소설 연재]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長篇小說

 

 

金 飛

 

 

11. 산 - 파르마콘, 시간의

 

 

 변하지 않는 것이란 말이 싫었다. 변화는 반드시 있다, 존재한다, 실재한다. 설령 내가 수십 년의 우울 속에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비아냥거림을 듣고 살았더라도,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변화는 있고, 있어야하고, 있을 것이다

 휴대폰을 움켜쥐고 나는 한참을 울었다. 배신감 때문은 아니었다. 자신은 변해놓고, 그래서 살아남아 놓고서, 변하지 않을 거라는 그녀의 말이 너무도 허무하고 절망스러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꾸 눈물이 쏟아졌다. 나를 둘러싼 여기가 너무도 슬퍼서. 끝내 변하지 못하고 어딘가로 곤두박질치고 말 어떤 생이란 게 너무도 안쓰러워서

 문 밖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는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또 한 번 피를 뒤집어 쓴 아들의 몸뚱이를 발견할까 마음을 졸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변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똑같은 나 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그녀와, 이토록 변하고 싶으면서도 여전히 똑같은 나는, 어쩌면 그녀가 말했던 변할 수 없는 것들의 증거인지도 모른다

 제발 나를 내버려두라고 소리를 질렀다. 문 밖에서 애처로운 목소리가 대답했다. 절대 다시는 그런 짓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부모한테 그런 꼴을 보여서는 안 되는 거라고, 그녀는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불안 속에 붙박아버리는 이율배반적인 외침

 이불을 뒤집어쓰는 건 싫었다. 수십 년 동안 반복해왔던 똑같은 몸짓이었다. 커터 칼로 손목을 긋는 것도 싫었다. 변하지 못한 똑같은 반복이었다. 약을 먹거나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것도 싫었다. 나의 죽음은 끝내 변하지 못한 나를 박제할 것이다. 그래, 원래 그런 놈이지. 결국 그렇게 됐네. 변하지 못한 나는 애도조차 받지 못한 채 몰락의 증거로 불태워질 것이다. 지금까지 온 힘으로 견뎌낸 그 모든 의지와 바람조차 오직 실패의 증거로

 벗어 놓은 트레이닝복 팔꿈치를 입에 쑤셔 넣었다. 더 크게 울기 위해, 더 소리를 지르기 위해 계속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침과 눈물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있는 힘을 다해 비명을 지르고, 소리를 지르고, 울음을 쏟아내며 나는 우는 내 얼굴을 다시 침대 위에 처박았다. 문 밖이 조용해졌다. 문에 볼을 붙이고서, 그들은 변하지 않은 나를 체크할 것이다



 형에게 어떤 전화를 받았는지 엄마는 벌써 여러 날째 전전긍긍이었다. 가족이니까, 부모니까, 그가 바랐던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것들일 텐데, 그렇다면 단호히 거부해야하는데, 엄마는 며칠 째 넋 나간 사람처럼 소파에 기대있었다. 어딘가에 전화를 넣고 사정을 하고 그러다가 다시 소파에 기대 눕고, TV는 웃고 엄마는 웃지 않고, 밥을 차려놓고 엄마는 밥을 먹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그 모든 것들을 거역하길 바란다. 부모 노릇을 팽개치길 바라고, 자식에 대한 사랑에 침을 뱉길 바라고, 남편이라는 작자를 폭행하거나 살해하기를 바라고, 스스로를 방에 가둔 아들을 내버려둔 채 매일 춤을 추기를 바란다. 제일 시끄러운 이웃들을 불러 먹이고 취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관리실에 끌려가고, 대출 받은 돈에 다시 또 고리 이자를 얹어 불법 대출을 받고서 그 돈으로 제일 비싼 호텔에 제일 비싼 여행을 몇 달씩 떠나버리길 바란다. 가족이란 인간들은 결코 꿈꿀 수 없는 엉망진창인 스스로로 변해버려서, 마침내 변해서, ‘이 새끼들아, 봤지?’ 마침내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과 가족의 요청에, 침을 뱉을 수 있기를

 

 “여보세요?” 

 

 그러지 않으려고 했지만, 내 목소리엔 울음이 묻었을 것이다. 너무 오랜만이었다. 그 후로 여러 차례 그녀에게 전화를 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이렇게 그녀의 이름으로 휴대폰이 울린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정말정말 많이 기다렸어요.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아서그 날은 내가 많이 흥분해서좀 그런 일들이 있었어요. 아직은아직은 다 말해줄 수는 없지만나도 모르게절대 자기 마음을 몰라서는 아니에요, 그것만은 이해해줘요.” 

 “시간이필요해요.” 

 

 휴대폰 너머에서 바스락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시간이요? 무슨 시간이요?”

 “그냥우리 좀 시간을 가져야할 것 같아요. 너무 성급하게 서로에게 다가갔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까서로관계를 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네요.” 

 

 그러나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간이란 끔찍하고 잔인한 것일 뿐, 역겹고 혐오스런 우연을 만드는 것일 뿐, 나는 그것이 필요하다는 그녀의 말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슨 시간요? 내가 잘못했어요. 그 날은 정말 그럴만 한 일이 있었어요. 내가 미안해요, 사과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무슨 시간이요?” 

 

 그녀 앞에 입을 틀어막고 싶지는 않은데, 그래서 자꾸 말을 하는데 목구멍이 꽉 막힌 것만 같았다

 

 “시간을 좀 가져요. 그게나을 것 같아요.” 

 “헤어지자는 거예요?” 

 “서로조금 떨어져서시간을 가져요.” 

 “헤어지자는 거냐고요? 나는 그렇게 모호한 말 몰라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 억지로 버티고 있는 그런 말나는 모른다고요. 헤어지자는 거예요?” 

 “……” 

 “말 해봐요, 그런 거예요? 결국 그 말이에요?” 

 “둘 중에하나라면지금은 그래요.” 

 

 나는 그녀가 농담이라고 말해주길 바란다. 뭐 사람이 그럴 수도 있죠, 살다보면 이런 일도 생기고 저런 일도 생기고, 원하지 않은 일들을 겪어야하는 때도 오고, 그러면서도 버텨가는 그런 게 삶이고 사랑이라고 말 해주길 바란다. 별 일 아니라고, 모두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살고, 그래도 서로를 놓지 않고 붙들어주는 게 그게 사랑이라고, 그것이 사랑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그 즉시, 내 바람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그토록 혐오하고 역겨워했던, 모든 걸 똑같이 만들어버리는 변하지 않는 소망들.  

 

 “다신그런 말 안 할게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우연이 겹치고 겹치다 보니까그러다 보니까사람 인연이란 게그럴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인연이란 게인연이…” 

 “다음에다음에 다시 연락해요.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그때 다시 봐요.” 

 “얼마나 오래요?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하는 거냐고요? 그깟 시간이 뭔데어떻게든 되겠지, 그게 얼마나 비겁한 일인데시간이 뭔데요, 시간이 뭘 할 수 있는 데요?” 

 

 불쑥 화가 치밀었다. 변하지 못하고 변할 수도 없는, 앞으로도 변할 리 없는 내 것이었다

 

 “안되겠네요. 더 이상 통화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끊을 게요, 잘 지내요.” 

 “저기요, 저기요!” 

 

 그러나 이미 그녀는 시간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그토록 원했고 나는 지독히도 혐오했던 그 시간 너머로. 이제 내가 변해야 할 시간인지 모르지만, 나는 또 한 번 팔꿈치를 물어뜯었다. 휴대폰을 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김비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돼 등단했다. 장편소설<빠쓰 정류장>·<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산문집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등을 냈다. 한겨레신문에 ‘달려라 오십호(好)’를 연재 중이다.

 

*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은 2014년 김비 작가가 웹진에 연재한 '나의 우울에 입맞춤'을 2022년 수정한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