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무지개문화읽기/[김비 장편소설 연재]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18. 새 - 향기로운, 지독하게

by 행성인 2015. 4. 12.

長篇小說

金 飛

 

 

18. - 향기로운, 지독하게 



 나를 두고 지독하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던 건 열 일곱 제일 친했던 친구 S의 장례식 때부터였다. 나 같은 것에게 살아남을 방법은 공부 밖에 없을 것 같아 지독하게 공부를 해 외국어고등학교에 갔지만, 항상 괴리감이었던 학교의 존재는 달라지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다른 모양의 교복으로 성별이 나뉘었을 뿐, 나에게는 마찬가지 인형이었고 똑같은 벽이었다

 물론 그 벽은 내 것이었다. 내 앞에 모든 사람들을 향해 떠밀었을 뿐 생각해보면 그 벽을 만들고, 숨고, 넘을 수 없다고 단정지은 것은 바로 나였다. 내가 만든 내 벽이었고, 오직 나만 둘러싼 벽이었고, 빈틈도 없이 나 하나만 꽁꽁 가둔 원통형의 굴뚝같은 벽이었다

 숨도 쉴 수 없을 것 같고, 몸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그 어리석은 고립 속에, 유일하게 위로가 되었던 것이 친구 S였다.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커다란 덩치의 말이 없던 친구는, 내가 매일 학교에 등교하는 단 하나뿐인 의미였다. 그렇다고 원래 말이 없던 그 친구와 아무 말도 하기 싫은 내가 만나 별 대단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건 아니었다. 이 다음에 내가 성 전환 수술이라는 걸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을 때, ‘그러냐? 잘 햄.’ 그는 대답했다. 세상에, 그렇게 모호하고, 흐릿하고, 성의 없는 대답은 처음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게 좋았다. 그 어떤 장황한 설교나 설득보다 더 반가웠고, 마음 깊이 와 닿아 지워지지 않았고, 그 한 마디를 붙들고 있으면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았다.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자 아이였고, 내가 떨림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스타일의 남자도 아니어서 친구 이상의 감정은 가질 수 없는 아이였는데, 굴뚝을 틀어막은 산타 할아버지의 배처럼 퉁퉁한 그 얼굴이 참 좋았다. 좋았고, 고마웠다

 2학년 기말고사가 끝나고 그 친구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슬픔보다는 배신감이 먼저였다. 나 역시 자살사이트를 여러 번 들락거렸고, 그때 알게 된 자살하는 방법들에 관해 S에게 말했던 건 내 고통을 좀 봐 달라는 애원이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고, 간단한 그의 말이 나는 좋았고, 위로 받은 것 같았고, 계속 자살에 관해 이야기했다. 죽음에 관해 말하면서, 씨발 사는 게 뭐가 이러냐고 도대체 나한테 어쩌라는 거냐고 울기도 했고, 그가 해준 말 역시 간단했고, 나는 좋았고, 고마웠다

 그가 살아있을 때에는 그 큰 덩치마저 보이지 않는 듯 모두가 외면하며 지내다가, 그가 죽고 나니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애도의 꽃송이를 보며 나는 역겹다고 생각했다. 모두 울었고 나는 울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그런 나를 두고 지독하다고 말했다. 너하고 친하게 지냈던 거 아니냐고, 넌 어쩜 그러냐고 날 다그쳤을 때, 나는 나 원래 그램.’ 간단히 답하고는 그만이었다. 그리고 지독하다는 그 말이 전하는 지독한 것들 덕분에 나는 처음 굴뚝을 기어올라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잘 해보고 싶어서, S의 부탁처럼 끝까지 잘해내고 싶어서

 아빠와 엄마가 이혼을 하고, 아빠가 다른 여자와 재혼하겠다고 했을 때 마음대로 하시라 대답하고 관심을 끊었던 것도 그 지독함이었을 것이다. 뒤늦게나마 자신의 삶을 찾아야겠다며 외국으로 공부를 하러 가겠다고 엄마가 공항에서 전화를 걸어왔을 때, 그녀의 보고서 같은 생존 방식 몇 마디에 담담하게 알겠어.’ 대답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던 것도 그 지독함이었을 것이다. 동생이 학교에서 돌아와 뭐 이런 부모들이 다 있느냐고 엉엉 울어버렸을 때, 나에게는 왜 슬픔이나 아쉬움 같은 게 없을까 스스로 자문했을 때에도, 그런 나에게 동생이 지독하다고 말했을 때에도, 그건 나에게 꼭 맞는 어울리는 말이었다

 성 전환 수술을 준비하면서 이태원의 트랜스젠더 클럽에 취직해 트랜스젠더 종업원 중 하나와 멱살잡이를 했던 것도, 그렇게 지독했던 내 일상의 일부였을 것이다. 성전환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자랑처럼 이력서 안에 적어 놓고서 번번이 채용을 거부하는 현실을 마주하면서도, 부당하다고 맞서 싸울 생각 같은 건 하지 않고 돌아설 수 있었던 것도, 당당함보다 더 힘 센 지독함이었을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단 한 번도 스스로 여성임을 의심해본 적 없다는 마흔이 넘은 MTF 트랜스젠더 앞에, 위선 떨지 말라고, 자기 최면은 집어 치우라고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던 것 또한 그런 지독함이었을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나의 정체성은 불안하고 흔들리며 유약한 것이었는데, 생각해보면 지독하다는 건 내게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유일한 정체성이었다. 신념이라고 하기에도 비루하고, 믿음이나 희망이라고 하기에는 형편없고 폭력적이기만 한 나의 지독한정체성은, 나를 살게 하고, 버티게 하고, 또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아무리 기어올라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그 벽을 알지만 그래도 기어오를 수 있는 이유는 내 지독한정체성 덕분이었다. 나에게 비명을 질러놓고 도망치는 그를 보면서도 그를 쫓아가거나, 전화하거나, 눈물 한 방을 흘리지 않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던 것도, 심지어 버스 안에서 위성 TV를 보며 푸슬푸슬 웃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지독함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집에 돌아와 침대에 쓰러졌을 때, 까마득한 높이의 일렁임이 내 머리 위에 쏟아졌지만, 흐느끼거나 소리치지 않고 그대로 잠에 빠질 수 있었던 것도.     

 

 그렇게 나는 지금도 생존하고 있다

 지독해지고 다시 또 지독해지면서




 “이 영화 정말 골 때리네? 쟤 뭐니, 뭐 저런 게 다 있니? 약을 빨아도 정도껏 빨아야지, 이건 뭐정말 남자들은 별로라는 말에 저렇게 민감할 수 있는 거야? 너도 그러니? 게이인 너도 잠자리하고 나서 별로라고 하면 저렇게 돼? ? 저 남자 얼굴 봐, 저 배우 어쩜 저렇게 연기를 잘 하니?” 

 

 술병을 사 들고 유진의 집까지 찾아 왔으면서도, 나는 영화 채널의 코미디 영화 한 편에 빠져 거실을 데굴데굴 구르고만 있었다

 

 “이거 완전 웃기는데? 근데 왜 흥행을 못했지? 그치, 이 영화 별로 안 떴지?” 

 

 리모컨으로 영화 소개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으로 영화를 검색하는데, 붉어진 내 얼굴이 그 영화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이봐, 사람들 평도 좋은데요즘 오백만 넘겼다는 그 허술한 웹툰 코미디보다는 훨 나은데, 왜 흥행을 못했지? 결국 파워 게임인건가? 그치, 그런 거겠지?” 

 

 열이 오르는 얼굴을 매만지며 나는 아예 TV 앞에 배를 깔고 누웠다. 대답 없이 혼자 술을 따라마시는 유진의 침묵은, 등 뒤에서 유독 시끄러웠다

 

 “넌 왜 안 봐? 봤어? 한 번 본 거야?” 

 “영화 보려고 온 거 아니잖아?” 

 

 그가 술잔 속을 향해 말했다

 

 “, 아니지. 근데근데 이거 재밌네, .” 

 “그럼 계속 봐.” 

 

 보려했던 게 아니었으니, 영화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후반부로 가면서 조금씩 감동 코드를 풀어놓는 식상한 이야기구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지독했던 가슴팍이 좀 배겼다

 

 “뭐야, 그 사람이랑 안 좋아?” 

 “그냥어차피 그냥 만났던 건데 뭐. 원래 우리 같은 것들의 사랑이나 관계라는 게 다 그런 한계가 있는 거잖아?” 

 “무슨 한계?” 

 

 갑자기 그가 발끈하며 반문했다

 

 “몰라서 묻니?” 

 “사람 좋아하는데, 무슨 한계가 있어야하는 건데?” 

 

 멱살잡이라도 하려는 사람처럼 유진은 허리를 세웠다. 내 지독함도 바닥에 들러붙었던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내가 너희 같은 동성애자도 아니고아무래도 나 같은 것들은 사람 만나기가 좀 복잡스럽지. 여자로 살고 있으니 남자 동성애자들은 날 좋아할 수 없고, 남자 태생을 가졌으니 이성애자 남자들은 당연히 날 좋아할 수 없고. 기껏해야 큰 가슴에 짙은 화장에 호기심으로 몇 번 만나보고 싶은 감정이그게 우리 같은 것들이 매달릴 수 있는 사랑이란 거지, 안 그래?” 

 

 최대한 이성을 가장해 짚어낸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침이 말랐다. 지독했던 마음속이 뻐개지듯 아팠다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거야, 아니면 그래야한다는 거야?” 

 “뭐가?” 

 “사람을 만난다는 거 말이야. 누난 지금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투잖아? 아니면 그렇게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는 중이던가. 사람 사는 일 무 자르듯 그렇게 되는 게 어딨냐고, 자기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그래서 어쩌라고 뻔뻔스럽게 살겠다고 하더니궁지에 몰리니까 누나도 별 수 없구나?” 

 

 나도 모르게 내 몸은 벌떡 일어섰다. 다른 뜻이 있던 건 아니었다. 붉어지는 얼굴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을 뿐이었다. 과거 속에 내 스스로 내다 버렸던 발기하는 성기처럼,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몸이 나를 다시 곤두세우고 있었다

 

 “갈게아무래도 가야겠다, 너무 늦었어.” 

 

 유진의 얼굴은 보지도 못한 채, 나는 허공에 대충 손을 들어 올리고는 현관문으로 달려 나갔다

 

 “외로웠다면서,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면서? 그럼 그 동안 누나를 질식시켰던 게 누나 자신이었던 거 아니냐고! 야 이 비겁하고 비굴한 여자야, 수술 다시 해! 그 형편없는 정신머리부터 뜯어 고치라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놓고도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계단으로 뛰었다. 높은 나무들이 둘러싼 산자락도 아닌데 유진의 목소리는 메아리치듯 여러 번 튕기며 나를 따라왔다.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제 자리를 빙글빙글 돌고만 있는 길을 따라서, 곤두박질치는 나를 따라서




 “웬일이래? 모임도 없는데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카페에 다 나오고? 매일 혼자서 점심 먹는 오빠가 불쌍해서 와 준 거냐?” 

 “점심은 시켜 먹어요?” 

 

 어쩌면 이것 역시 지독함인지 모른다. 상대의 물음에 대답을 하는 대신 오히려 되묻는 것. 질문을 받아놓고 엉뚱한 걸 물으며 틈새로 빠져나가려는 것. 그러나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제 안에 갇히는 것

 

 “시켜먹기도 하고, 그냥 대충 샌드위치 만들어 먹기도 하고뭐 먹을래? 시켜 먹을까, 아니면 샌드위치 만들어 줄까?” 

 “여기 안에서 시켜도 되요? 냄새 나잖아요?”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이불처럼 나를 뒤덮던 지독한 잠은, 어젯밤엔 내내 발꿈치 어딘가에서 뒤엉켰을 뿐이었다

 

 “손님도 없는걸 뭐. 지금 시간에는 원래 아무도 없어. 요즘 들어 이상한 놈들이 새벽마다 가게 앞에다가 자꾸 이상한 걸 던져 놓고 가서 문제다만뭐 아침 시간에는 원래 아무도 없으니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밤은 마치 누군가 내 생각 속에 피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던지고 간 것만 같았다

 

 “뭐 냄새 좀 베면 어떠냐? 음식 먹는데 그럼 냄새 안 나냐? 하다못해 커피 한 잔을 내려도 그 냄새가 온 동네로 퍼지는 법인데그게 다 사람 사는 냄새지, 냄새 하나 없는 게 그게 사람이냐?” 

 

 커피 냄새를 생각했다. 아니, 커피 향기. 그윽하고 쌉싸래해서 더욱 달콤한 그 향기. 주택가 입구에 자그맣게 자리한 카페를 지나, 사람들이 드나드는 골목 구석구석을 파고 들었을 그 향기. 누군가는 머리를 감다가, 요리를 하다가, 누군가는 마당에서 혼자만의 방식으로 운동을 하다가 그의 일상을 잠시 흔들었을 그 향기, 냄새

 

 “기다리면 다 빠지지 뭐. 창문 열어 놓고 기다리면 되지, 뭔 그 냄새 하나 때문에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살 일 있냐? 뭐 먹을래?” 

 

 그가 나를 향해 묻는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그가 물은 질문에 내 대답을 말하기 위해 입을 벌린다. 지독함을 뒤집어 본다

 

 “, 아예 냄새 풀풀 풍기면서 자장면 같은 거 시켜 먹을까? 카페에서 먹는 자장면도 나름 퓨전이라서 좀, 잎새야?” 

 

 아침에 집을 나올 땐 분명 비 예보는 없었는데, 물 냄새가 났다. 새까맣고 달달한 기름진 음식의 이름을 생각하며 입을 벌렸던 건데, 내 입에서 쏟아져 나온 건 기호나 문자로 표시할 수 없는 낯선 언어였다. 간단하기도 너무 간단해 뾰족한 한 글자 같은 말.  

 

 “잎새야, 왜 그래?” 

 

 냄새를 견디지 못한 사람처럼 나는 코를 막고 테이블 위에 엎어졌다. 지금은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데, 지워버렸거나 모른 채 했거나 지독하고 또 지독한 내 생존 방식이니 뭐 어쩌라고?’ 그거만 믿었는데

 어디서 풍겨오는지 알 수 없는 냄새가 자꾸 들러붙었다. 얼마나 지독한 냄새였는지 두 눈이 시큰해 계속 눈물이 쏟아졌다. 굴뚝이 아니라 오물통에 코를 박은 것처럼 역겹고 지독한 냄새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내 온 몸의 물기를 끌어올렸다. 어디에서 무엇이 썩고 있었는지, 삭고 삭아 내 안에서 얼마나 물러터지고 있었던 건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나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한 채 소리 높여 엉엉 울기만 했다. 여전히 나 혼자 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지독하고 또 지독한 짓이었다



 

김비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돼 등단했다. 장편소설<빠쓰 정류장>·<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산문집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등을 냈다. 한겨레신문에 ‘달려라 오십호(好)’를 연재 중이다.

 

*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은 2014년 김비 작가가 웹진에 연재한 '나의 우울에 입맞춤'을 2022년 수정한 원고입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