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하늘로 간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들을 추모하며 -


평소 같았으면 기억도 나지 않을 꿈 때문에 중간에 몇 번이나 깼을  법한데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잠을 잔 것 같다. 너무 슬프고 서러웠던 장례 때문이었을까. 술에 취했는지, 슬픔에 취했는지도 모른 채 이틀간을 장례식장에서 지내다보니 많이 지쳤었나보다

오랜 시간 뇌종양 말기로 투병생활을 해 왔던 故 원희영(단영) 회원이 3월11일 사랑하는 파트너와 친구,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먼저 하늘로 떠났다. 늦은 새벽 핸드폰 진동소리에 잠깐 일어난 나는 전화를 건 이의 이름을 보고 직감적으로 A가 파트너의 부고를 전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침착한 목소리로 희영씨가 편안한 얼굴로 하늘로 떠났음을 알려주었다. 그날 밤 급하게 회사 일을 마치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투병시절 자주 찾지 못한 미안함과 안타까움 때문에 서둘렀다. 다행히 많은 회원들이 찾아와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파트너의 죽음을 먼발치에서 보고만 있어야만 하는 A의 모습이 몹시도 애절하게 보였다. 장례식장 한 구석에서 예배를 드리는 동안 “그래도 교회에서는 편안하게 웃을 수 있었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장례가 진행되는 이틀 동안 많은 이들이 함께했다. 나조차도 그동안 잊고 지내던 오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발인을 앞두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투병기간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래도 친구들을 저렇게 주변부 취급해도 되는 건가’ ‘가족들은 인사도 안 받아주네’, ‘회사에서 일반친구들과 함께 장례식장을 가게 되면 친구들에게 참 과분할 만큼의 환대를 해주던데’, 마치 우리가 우리의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조심 또 조심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벽제에서 화장을 하고 고인을 보내는 마지막 길에 가족들은 친구들과 투병하는 기간 동안 그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간호를 해 온 A가 함께  동행하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가족들끼리만 가기로 합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가족?? 가족이 뭔데?? 그 순간 A와 친구들은 희영의 가족이 아니었다. “나도 가족이지 않냐고” 애원하는 A를 뒤로 하고 가짜 가족들은 떠나버렸다.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통곡을 하고 있는 A를 그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가 없었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그 어느 때보다 발길이 무거웠다.

벽제화장터에서 화장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는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함께하는 “무지개 놀토반” 3월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프로그램을 함께 준비하는 나로서는 발길을 빨리 재촉해야 했는데,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남아 준 친구들은 교회로 향했고 나는 사무실로 돌아섰다. 며칠 동안 우울하고 힘든 상황이 계속되었지만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우울할 여유조차 없을 만큼 다시 에너지가 솟구쳤다. 희망을 만들고 있는 20명이 넘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풋풋하고 달달한 우리들의 사랑이야기”라는 프로그램 주제처럼 핑크빛 사랑을 꿈꾸는 청소년을 보고 있노라니 그냥 웃음이 나왔다.

3월16일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故 원희영 회원을 기리는 삼우제가 열렸다. 그녀가 살아생전 좋아했던 아메리카노 커피와 여러 음식들을 차려놓고 사무실을 찾은 회원들과 옹기종기모여 앉아 각자 담고 있던 그녀에 대한 추억들을 나누었다. 투병 생활을 했을 때, 늘 윤가브리엘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대표)처럼 싸우고 싶다고 말했던 그녀가 지금은 편하게 지내고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살아있는 동안 가짜 가족들 때문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들게 살았을 그녀를 생각해 보면 제발 하늘에서만큼은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가족들에게 외면 받고, 하늘로 가는 마지막 길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가슴에만 희영을 묻어야만 했던 A를 생각해보면, 그곳에서도 여전히 편치 않을 것 같다. 편히 쉬어야 할 텐데. 많은 짐들을 내려놓고 갔어야 할 텐데. 그래야지 남은 사람들도 이 세상에 맞서 열심히 싸우며 살아 갈 텐데. 삼우제 때 A는 가짜 가족들을 더 이상 탓하지 않기로 했다한다. 문제는 가족이 아니라 이 사회라고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모습이 당차보이기 보다, 오히려 안쓰러웠다. 우리는 다시 A가 가슴에 서러움이 아니라 분노를 안고 함께 활동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것이 바로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몫일 것이다. 


2003년 4월, 육우당

육우당. 청소년 동성애자로서 자신을 당당히 밝히지 못하고 현실을 비관한 채 짧은 생을 마감한 그의 죽음이 벌써 여섯 해를 넘기고 있다. 이제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2003년, 10평도 채 되지 않은 사무실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던 육우당이 사무실을 처음 찾을 때만해도 청소년 회원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리고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겪는 삶의 경험에 대해 진심으로 귀 기울이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 성소수자 운동의 큰 이슈였던 청소년 보호법상의 동성애 조항을 삭제하기 위한 활동에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활동을 기획한 것도 아니었다. 사실 청소년들을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 육우당 3주기 추모의 밤 _ 사진 출처 참세상

 요즘 무지개 놀토반과 같이 청소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친구들과 학교, 가족, 진로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느 순간 가슴 한 구석이 깊이 아려올 때가 있다. 육우당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한 지난 시간도 안타깝지만 그가 무지개 놀토반이나 청소년 세미나를 통해 동성애자인권연대를 찾는 청소년 친구들과 함께 어울렸다면 스스로 목숨을 버릴 만큼의 몹쓸 생각을 했을까. 이제는 다 지난 시간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그는 지금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허물없이 만날 수 있게 해 주고 그들 옆에서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마법 같은 힘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별이 되어 2009년 청소년으로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들과 또 그들을 만나는 우리들에게 큰 힘을 주고 있다.  

여섯 번째 육우당 추모제 준비가 시작되었다. 2003년 5월 느티나무 카페에서 진행되었던 (눈물없이 볼 수 없었던) 첫 번째 추모의 밤도 이제는 추억으로 남는다. 벌써 여섯 번째 라니. 올해는 특별히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들이 다짐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육우당 추모제를 눈물과 한숨만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더 가까운 곳에서 소통하기 위한 활동을 찾고 청소년 성소수자 스스로 자긍심과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을 아름다운 만들 또 하나의 무지개별.

육우당의 죽음이 동성애자인권연대 청소년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 故 원희영 회원의 죽음은 동성 간 파트너 관계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누구보다 가슴아파했던 그녀의 파트너, A는 희영을 간병하는 몇 개월 동안 법적으로 등록된 가족들에게 그냥 친한 동생이라고만 자신을 소개해야 했고, 병원에 함께 가서도 사촌동생이라고 해야만 했다. 그녀는 마지막 장례기간 동안에도 영정 옆을 지키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조문하는 친구들을 지켜봐야만 했다. 성소수자라면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이런 문제들, 동성 간 파트너쉽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할 때이다. 동성애자인권연대는 벽제화장터에서 겪은 이 좌절감과 서러움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시는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그리고 고인이 못 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여기서 함께 노력하겠노라고, 다시 한 번 다짐을 해 본다. 2009년 3월.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춰줄 또 하나의 무지개별이 떴다.



정욜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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