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이야기/코코넛의 눈코입귀13 [코코넛의 눈코입귀] 나는 활동하는 사람입니다 코코넛 (행성인 HIV/AIDS 인권팀) 연말이다. 작년 연말과 비교하면 그래도 상대적으로 평온한 나날을 보내지 않나 싶다. 일단 당장 탄핵할 대통령이 없는 것만도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한 해를 바쁘지 않게 산 것은 아니다. 학업과 알바, 단체활동, 그리고 지난달 초부터 시작한 일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다 보니 어느새 한 해가 거의 다 끝나 간다. 크리스마스고 연말인데 연휴도 연말연시 느낌도 이렇게 들지 않는 해가 있었나 싶다. 작년 이맘때는 동지들과 광장에서 매일 같이 깃발을 들고 행진하느라 감기 몸살이 떨어지지 않았다. 작년의 연대의 기억이 겹치는 동시에 계엄의 충격이 1년째 가시지 않는 게 뒤숭숭한 연말에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연말은 연말이니까. 지.. 2025. 12. 23. [코코넛의 눈코입귀] 오늘, 섹스하고 싶은 당신을 위한 게이 섹스 안내서 코코넛(행성인 HIV/AIDS인권팀) 게이 커뮤니티에서 성적 권리와 만족감을 동시에 챙기는 섹스를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성적 권리'라고 부르기엔 나의 것을 빼앗기지 않는 것, 세이프섹스, 인권과 같이 재미없고 원론적인 원칙을 말하는 느낌이 들고, '만족감'은 점잖은 장소에서 말하기 어려운 것, 은밀한 욕망과 페티시, 혹은 동등한 위치에서 하는 섹스가 아니더라도 하룻밤을 뜨겁게 보낼 수 있는 즐거움 등을 떠올리게 해서 둘은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게이 커뮤니티에서 성적 권리를 이야기하면 재미없는 사람 취급을 받으며 본인이 잘 안 팔리니까 그런 애기만 하고 다닌다는 말을 들을 것도 같다. 서로를 탐색하는 과정, ‘팔고’ ‘팔리는’ 과정, 섹스를 하기 위해 준비하고 현장에 임하고 떠나는 .. 2025. 11. 25. [코코넛의 눈코입귀] 아무튼 연대하기 코코넛(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토요일 밤, 친구를 만나러 나갈 준비를 한창 하고 있던 차에 성소수자부모모임의 상근활동가로부터 텔레그램 메시지가 도착했다. 본인이 (내) 아빠와 함께 찍은 셀카 한 장이었다. 죽기 전에 볼 것이라고는 절대 예상하지 못한 투샷이었다. 하기사, 그 날은 성소수자부모모임의 10월 정기 월례모임일이었고, 공식 모임시간을 한참 넘겨서도 아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아마 높은 확률로 뒷풀이까지 따라갔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친구를 만날 일이 있어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니 정말 오랜만에 취기 오른 아빠가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술 좀 적당히 마시고 다니라고 잔소리를 한 다음에 집을 나섰다. 아빠가 성소수자부모모임(이하 ‘부모모임’)에 참여한 것은 .. 2025. 10. 23. [코코넛의 눈코입귀] 문란하게 말할 자유와 권리 코코넛(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퀴어가 문란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퀴어 당사자뿐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사실 퀴어가, 혹은 퀴어인 내 자신이 어떻게, 왜, 언제, 어떤 방식으로 문란한지 돌아보고 이에 대해 논하는 것도 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게이 친구들끼리 술을 마시면서 애널섹스, 남자의 가슴과 자지, 식이 되는 남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말고도, 애인이나 섹스 파트너, 혹은 번개 상대와 서로를 탐색하고 원하는 섹스의 방향에 대해 합의하는 그 과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말할 수 있는 것이 나 자신의 즐거운 성생활을 위해서도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내용을 거부감 없이 편하게 논할 수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아 보인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2025. 9. 18. [코코넛의 눈코입귀] 만나지 못함이 우리에게 지니는 의미 코코넛(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20년대라는 새로운 십년기의 첫 1/4이 넘는 시간을 고립 속에 보냈던 나날들이 기억난다. 당시 기숙사 딸린 대학교를 다니던 나는 학교가 시작하고 나서 4월 중순이 되기까지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했다. 들어가고 나서도 대부분의 수업을 줌으로 진행하는 요상한 시간들이 이어졌다. 2인 이상 집합 금지, 4인 이상 금지, 몇 시 이후 영업 금지 등의 별의별 방역 규정들이 기억하기도 버거울 정도로 빈번하게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QR코드 체크인, 백신 인증서, 1차 백신, 2차 백신, 3차 백신, 몇 차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대유행’이라고 이름 붙은 것들. 그 시기를 지나고 더 이상 코로나 때문에 거리두기를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이 정부에 의해 내려졌을 때, 사회는 그 .. 2025. 8. 25. [코코넛의 눈코입귀] 다만 유혹에서 저희를 구하소서 코코넛(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퀴어 커뮤니티에 나와서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와 연인을 사귄 지 어느덧 2년이 넘어간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정말 짧은 시간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이전의 23년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간이다. 게이 수행을 2년 동안 꽤 충실히 하면서 제일 크게 느낀 점 중 하나라면, 게이 섹스는 '유혹'이라는 것이다. 동성애가 악한 유혹이라는 말은 퀴어문화축제 건너편에서 확성기로 음악을 트는 혐오 세력이나 극우 개신교 세력이 흔히 할 것 같은 말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맥락이 다를지 모르지만, 사회에서 흔히 터부시되는 섹스, 그러니까 항문에 삽입된 남성기로 전립선을 자극시켜 오르가즘을 느끼는 일련의 행위를 여러 위험이라면, 그리고 남들의 시선이나 H.. 2025. 7. 25. [코코넛의 눈코입귀] 신은 우리를 죽도록 사랑하시거나, 죽어라 증오하시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코코넛(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지난 5월 17일부터 6월 20일은 퀴어팔레스타인연대 QK48와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그리고 무지개행동이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의 달’로 지정한 기간이다. 사회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여러 이슈 중에 성소수자들이 연대하지 않는 의제가 어디 있겠냐마는,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는 나에게 다른 의제들보다 조금 더 다층적이고 섬세한 것으로 다가온다.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탄압의 역사가 애초에 여러 강대국들이 관련되었고 수십 년 전부터 이어 온 복집한 문제이기도 하고, 팔레스타인 탄압은 한국 땅에서 벌어지는, 눈에 보이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생각보다 대중의 관심이나 호응을 받기 어려운 것 같기도 하며, 이란을 비롯해서 이스라엘이 공격하는 대부분의 이슬람 .. 2025. 6. 22. [코코넛의 눈코입귀] 가족 여러분, 저는 게이입니다. 이를 어쩌죠? 코코넛(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3월 초 어느 밤에 아빠에게 스트레스성 커밍아웃을 한 적이 있다. 써 놓고 보니까 글을 시작하기에 이보다 구린 문장이 있을까 싶긴 하다. 그런데 진짜 이것 말고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커밍아웃 유경험자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조언을 한다. 원가족(특히 부모)에게서 심리적, 물리적, 경제적으로 독립했거나, 그럴 준비가 되었을 때 커밍아웃을 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않은 청소년기나 대학생 시절에 덜컥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했다가 제대로 실패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집에서 쫓겨나거나 전환 치료까지 받은 경우도 주변에서 들었다. 나는 이십대 중반이고, 대학교의 마지막 학년을 보내는 중이다. 당장 혈혈단신으로 밖에 나가면 단 일주일도 제대론 된 곳에서 잠을 .. 2025. 5. 22. [코코넛의 눈코입귀]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 비애국 성소수자의 독백 코코넛(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날부터 정확히 11년 하고도 하루가 모자란 날, 2014년 4월 17일 아침.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평소와 같이 학교에 갈 준비를 하면서 집 앞에 배송된 일간지의 헤드라인을 훑어보고 있었다. 대형 여객선이 침몰해서 여러 명이 구조되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크게 보도된 것 같았다. 모르는 사람들이 구조선을 타든 말든, 당장 학교에서 애들이랑 무슨 딴짓을 하고 놀지, 학교 끝나고 자기 전까지 풀어야 할 문제집 양이 얼마나 많을지가 더 중요했던 시절, 대한민국의 나름 선진적인 인명 구조 시스템이 어련히 일을 잘하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기사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학교로 향했다. 그 이후로 며칠, 몇 주, 몇 달이 지나서까지 사람들이 기사 속 여객선 .. 2025. 4. 19. [코코넛의 눈코입귀] 당신 눈앞에 퀴어는 풀만 먹습니다. 버티세요 코코넛(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평소에 술을 많이 좋아하는 편이다. 일주일에 8번 정도 술을 마신다는 게 과장은 아닐 거다. 학교 수업과 알바와 집회 등 이런저런 일정을 소화하고 나서 밤에 사람들과 함께 소주 마시는 게 삶의 몇 안되는 낙 중 하나인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다 보면 사소하게 걸리는 게 하나 있다. 만 5년째 비거니즘을 지향하고 있어서, 일반 술집에 가면 생각보다 안주로 먹을 게 많이 없다는 점이다. 보통 메뉴에 가지튀김이나 감자튀김 같은 메뉴가 있으면 그걸 일단 시키고 본다. 감자튀김에 소주는 생각보다 많이 안 어울리는 조합이지만, 빈속에 술을 마시기에는 좀 그러니까 뭐라도 시킨다. 한국은 생각보다 비건 프렌들리하지 못한 나라이고, 그나마 식사를 할 때는 들깨수제비나 콩국수,.. 2025. 3. 25. [코코넛의 눈코입귀]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코코넛(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내가 이따금 나가는 모임이 있는데, 다름이 아니고 가톨릭 앨라이 아르쿠스의 월례 미사이다. 한국에 퀴어 당사자와 앨라이가 모여서 퀴어 정체성을 긍정하며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장소가 그렇게 많지 않기도 하고, 사람들이 들으면 놀라겠지만 내가 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유신론자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스로가 성소수자임을 받아들이기 전부터 젠더나 성소수자 등의 이슈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서 아르쿠스 미사를 나가기 시작했고, 퀴어 커뮤니티에 나오고 나서도 시간이 되면 아르쿠스의 미사나 워크숍 등의 행사에 참여했다. 얼마 전에는 미국의 포덤대학교에서 만든 퀴어 기도문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한국의 퀴어 당사자나 앨라이들의 이야기까지 수록된 책자를 만드는 아르쿠스.. 2025. 2. 21. [코코넛의 눈코입귀] 광장의 게이가 보는 광장의 남자들 지난해부터 행성인 코코넛 활동가는 웹진에 매월 글을 쓰고 있습니다. 2025년부터는 코코넛의 글을 '코코넛의 눈코입귀' 페이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코코넛(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새해에도 집회마다 광장에 나간다. 추운 겨울에 몇 시간씩 찬바람을 맞으니까 육체적으로 피로하지만, 윤석열 체포, 더 나아가 구속이라는 기쁜 소식을 접하면 조금이나마 풀린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집결한 극우 세력이 법원을 때려 부수고 혐오 표현을 서슴없이 내뱉는 소식을 들으면 다시금 눈앞이 깜깜해진다. 이런 와중에 광장에 나와 윤석열 탄핵을 외치고 있는 이들, 혹은 발언 무대에 올라 스스로를 밝히는 이들이 누구인지 유심히 보게 된다. 다양한 성별과 계층과 연령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윤석열 탄핵 촉구라는 계기가 아니었다면.. 2025. 1. 19. [회원에세이] 거리의 크리스마스- 꺼지지 않는 목소리를 위해 코코넛(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연말을 맞아 시의성 있으면서도 뭔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그리고 연말에 맞는 글 주제가 뭐가 있을까 하고 행성인 웹진을 담당하는 남웅 활동가와 연초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사실 지금 시의성이 있을 만한 주제라고 하면 하나밖에 생각이 안 나긴 한다. 그런데 뭔가 너무나 중요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주제여서, 나뿐만 아니라 12월 웹진에 원고를 보내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얘기만 쓸 것 같았다. 하지만 며칠 전, 내가 경험한 12월에 대한 전반적인 기록을 써 줘도 좋겠다는 제안을 남웅 활동가에게서 받았다. 마침 나는 원고 작업을 시작조차 하지 않던 시점이었으므로, 원래 쓰려고 했던 이야기는 좀 더 나중으로 미뤄두고 제안받은 주제에 대해 글을 쓰기.. 2024. 12. 24.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