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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김비 장편소설 연재]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30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9. 산 - 괴물, and 長篇小說 金 飛 9. 산 - 괴물, and 그들은 언제나 나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확신도 없고, 자신도 없고, 제 존재마저 잃어버린 나에게 사람들은 똑같은 말을 했었다. 그런 너에게, 미래는 없다고. 종말은 미래가 아닌가, 죽음이 현재라면 큰일 아닌가. 나만 살아남고, 우리만 살아남기를 꿈꾸는 미래는 온전히 미래인가. 현재를 사는데 온 힘을 다하고 있다면, 미래 따위 없어도 그만 아닌가. 확신이나 자신이 없어도 살고 있다면 이미 존재 아닌가 말이다. 나는 미래가 없다고 단언하는 그들의 미래를 신뢰하지 않는다.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그들 앞에 내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그거 하나다. 미래를 믿는 그들을 믿지 않는 것. 고백하자면, 그럼에도 나는 두려웠다. 확신이나 자신이 없는 내가 이상하지 않았는데,.. 2015. 2. 1.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8. 데리다 - 세계, 호출하는 長篇小說 金 飛 8. 데리다 - 세계, 호출하는 “비가 오면, 이소라가 생각나지 않아?” “나 같아도 좀 섭섭했겠는데, 뭘.” “누나, 누나. 비 오면 이소라 노래 생각나지 않느냐고? ‘제발’ 부르면서 울먹이는 그 언니 모습이 아직도 선해. ‘이소라의 프로포즈’할 때… 그때 그 언니 그 노래 부르면서 자꾸 눈물 나서 못 하겠다고 무대에서 여러 번 내려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방송되었던 적 있었잖아, 기억 나?” “그래, 그랬을 수도 있지. 보고 듣는 것하고, 실제로 마주하는 건 꽤나 큰 차이니까. 차이가 있다고 듣는 것과도 또 훨씬 큰 차이라는 걸 알게 되니까. 그 사람도 자신도 모르는 편견이 있을 수 있고… 어떤 자격지심 같은 게 더해질 수도 있었겠지.” “그건 말 그대로 자격지심 아니에요? 그건 개인이 .. 2015. 1. 11.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7. 새 - 사랑, 사람이라는 말의 오기(誤記)인 長篇小說 金 飛 7. 새 - 사랑, 사람이라는 말의 오기(誤記)인 언젠가 편지에 글자를 잘못 쓴 적이 있었다. 나는 분명 ‘사람’이라고 썼는데, 편지를 받은 사람은 그걸 ‘사랑’으로 읽었다. 가령 ‘사람이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라고 나는 썼는데, 그는 ‘사랑이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라고 이해했다. ‘사람이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지.’라고 썼는데, 그는 ‘사랑이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지.’라고 받아들였다. ‘나도 사람이야.’라고 썼는데, 그는 ‘나도 사랑이야.’라는 고백을 닮은 말로 읽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그 모든 것은 내 엉망인 손 글씨 탓이었다. 한글의 ‘미음(ㅁ)’을 끊어서 쓰지 않고 한 번에 이어서 썼기 때문에, 조금만 성급하게 손을 움직이거나 흘려 쓰면 ‘사람’은 영락없이 ‘사랑’이 되어버리.. 2014. 12. 28.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6. 산 - 괜찮아, 동그랗지 않아도 長篇小說 金 飛 6. 산 - 괜찮아, 동그랗지 않아도 나는 비어 있었다. 구멍이 난 봉지, 찢겨진 상자, 깨진 유리창.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나는 오래도록 텅 비었다. 구멍이 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비어있는 나를 채우려고만 했고, 새어나가는 것들 때문에 불안하고 조바심 났다. 스물 네 시간 나를 지배하는 내 안에는 균열이 있었다. 볼록 튀어나온 것이거나 날카롭게 깨진 것이거나, 너덜거리는 것이거나 지저분한 것이거나, 손끝에 만져지는 그것을 통해 내 삶이 빨려나가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 두려웠던 건 그 틈이 내 몸을 따라 커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나는 완결된 구(球)가 아니었다. 그리다가 만, 흔들리거나 뒤틀린, 직선도 아니고 곡선도 아닌 어쨌거나 동그랗지.. 2014. 12. 21.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5. 새 - 진심, 페티시즘 혹은 長篇小說 金 飛 5. 새 - 진심, 페티시즘 혹은 나에게 사랑은, 마음 이전에 생각이 먼저였다. ‘좋아한다’는 감정을 앞에 두고 나는 언제나 먼저 생각하고, 괜찮은가 다시 생각해야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그 일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키가 작고 새 하얀 미소를 지닌 반장 아이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에게 다가가 좋아한다고 고백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자 아이였던 내가 남자 아이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게 되었으니, 게이인가 동성애자인가 어디선가 듣거나 보았던 그런 사람들에 나를 대입해 고민하는 시간이라도 있었을 텐데, 나는 해맑은 표정으로 그 아이에게 다가가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말해버렸다. 나에게 뽀뽀해도 된다고. 내가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해도 된다고. 나는 언제나처럼 나에 관한 많은 걸 잊.. 2014. 12. 14.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4. 데리다 - 유령들, 이방인의 長篇小說 金 飛 4. 데리다 - 유령들, 이방인의 “어, 나도 그 영화 봤는데. 너는 언제 봤어? 일요일, 일요일? 난 그 전 날이었는데. 에이 아깝네. 같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상우 형은 누구랑 봤어? 또 어떤 놈 꼬여다가 그런 영화를 봤니? 나름 또 수준 있다고 자랑하려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그런 영화 보겠다고 끌고 간 거지?” “이게, 사람을 뭘로 보고? 내가 그 감독 얼마나 좋아하는데? 페드로 알모도바르.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그녀에게’ ‘나쁜 교육’ 내가 그 감독 영화는 뭐든 다 찾아다 몇 번씩 보고 그러는데, 너는 나를 어떻게 보고… 짜식이 말야!” “에에에… 형 그거 전부 다른 애들이랑 봤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아? ‘내 어머니의 모든 것’ 볼 때는, 같이 본 놈의 모든 걸 알아.. 2014. 12. 8.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3. 산 - 임브레이스, 브로큰 長篇小說 金 飛 3. 산 - 임브레이스, 브로큰 치유는 가능할까. 시간이란 그토록 힘 센 걸까. 목숨을 버릴 만큼 절박했던 감정마저 아무렇지 않게 되어버릴까, 미완의 시간을 내려놓을 만큼 우리는 강해질 수 있을까. 레나라는 주인공 여자를 둘러싼 감정들을 나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슬픔이나 안타까움이 아니었다. 의심이 먼저였다. 1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 아득한 시간을 넘어설 수 있는 남자 주인공의 눈물이 쉽사리 이해되지 않아서. 아니다, 어쩌면 부러웠던 건지도 모른다. 그 긴 시간 뒤에 다가올 ‘포옹’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기꺼이 ‘부서질 수 있는’ 그들의 투신이 부러워서. “감독 얘기네요, 그죠?” 영화 안내문을 들여다봤다. 어디에도 자전적 이야기라는 설명은 없었다. 스페인의 섬 란타로사에서.. 2014. 12. 1.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2. 새 - 나, 나 아닌 長篇小說 金 飛 2. 새 - 나, 나 아닌 나는, 내가 아니다. 사람들은 나를 가리키며 내 이름을 불렀지만, 그건 내가 아니었다. 거기에 나는 있었고 사람들은 나를 불렀지만, 대답한 건 나 아닌 나. 다른 이름이니, 그건 내가 아니라고 나는 말해야한다. 여기에 있으면서 여기에 있지 않고, 언제나 없는 나를 찾아 여기에 있지 않은 나를 불러내야하는 것. 나 아닌 나로 나를 부르는 것. “왜 자꾸 말을 빙빙 돌리세요? 그러니까 지금 내 정체성에 의문을 재기하시는 거잖아요? 당신이 어떻게 트랜스젠더냐, 수술까지 해놓고 여전히 남자처럼 하고 다니는 건 도대체 무슨 정신 상태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잖아요, 지금?” 그래서 나는 내가 내 이름을 만들어주었다. 내가 사는 이 사회는 인정하지 않고 오직 나 자.. 2014. 11. 23.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1. 산 - 그래, come 長篇小說 金 飛 1. 산 - 그래, come 우리를 가로막은 건, 가루로 그려진 하얀 선이었다. 옆에 사람을 곁눈질하면서도 서로를 마주보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결승선만 바라보았다. 누구도 말하지 못했지만,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선 가까이 발을 딛기 위해 모두 안간힘 썼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두려웠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사진 속 나는 과장된 웃는 모습뿐이었는데, 나는 그때의 내가 겁에 질렸다는 걸 스물이 훨씬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의 말대로 항상 어깨를 활짝 편 채 걸었고, 선생님의 질문에 제일 먼저 손을 들어 대답했고, 답을 모르더라도 일단 손부터 들고 생각했다. 맞고 틀리고는 나중 일이었다.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준비물들을 두 개씩 챙겼고, 착한 학생이 되려고 항상 선생님.. 2014. 11. 16.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프롤로그 - Cafe, 데리다 長篇小說 金 飛 그녀인 나와,나의 그에게 0. 프롤로그-카페, 데리다 “그런 건, 좀 유치하지 않아?” “쫌… 그렇긴 해.” “뭐가, 그래? 매번 술 먹고 서로 들어주지도 않는 말들, 목소리 높여 떠들다가 돌아가면 그게 좋으니?” “잎새 누나 말이 맞긴 하지. 들어주는 사람은 없는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들어줬다고 착각하면서 말이야. 그러고 나중에 물어보면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하여간 또 삐딱하다, 저거.” “상우 형이야말로 또야? 형, 매번 용호가 무슨 말만 하면 쟤한테 시비거는 거, 알아? 혹시 용호한테 관심 있어? 박쥐네 뭐네 바이섹슈얼이라고 매번 시비 걸면서, 그건 항상 쟤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단 이야기잖아?” “난 사양할게요.” “저게? 나도 아니올시다야, 인.. 2014.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