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차별 혐오

라벤더 공포와 테러방지법 - 1950년대 미국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행성인 2016. 3. 13. 16:48


겨울(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우리는 영화 <캐롤>을 통해 사회의 호모포비아적 억압을 느끼고 볼 수 있다. 영화에서 캐롤의 레즈비언 아이덴티티는 정신질환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에 캐롤은 "어머니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 영화의 당시 배경이 되는 50년대 미국 사회에 대해 더 깊이 파보면 성소수자 차별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당시 성소수자들에게 가해진 끔찍한 억압의 사례로 "라벤더 공포"를 들 수 있다. 이 "라벤더 공포"는 무엇이고,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1920년대 미국 사회는 성소수자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은 시기였지만 대도시의 성소수자 문화는 활발하게 꽃피는 중이었다. 예로 당시 유명하던 배우 윌리엄 헤인즈는 공개적으로 남성 연인과 함께 살았고, 그린위치 빌리지를 중심으로 성소수자 문화가 꽃피었다. 여기에는 할렘 르네상스와 함께 흑인 성소수자들이 서로를 만나고 함께 만든 대안적 성소수자 문화(볼룸 문화 등)가 자리를 잡은 것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30년대 후반에 청교도적 윤리가 다시 미국에 퍼져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성소수자 운동은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3~40년대 이런 억압적 분위기 속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곳은 바로 군대였다. 여군 인력이 부족했던 점, 그리고 레즈비언에 대한 관련 규정이 없었다는 점 때문에 레즈비언들이 입대시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었다. Camp LeJeune에서 미 해병대 입대심사위원들은 서로에게 "남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여성은 완벽히 정상적이고 군대에 최적화된 인재일 수도 있다"는 충고를 하기도 했다. 성소수자 문화는 대도시에 대부분 집중되어 있었는데, 그런 성소수자 문화에서 소외된 농촌에 사는 성소수자들이 집을 떠나 동성애적 분위기가 있는 군대에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기도 했다. 예로 WAC(미군 육군내 여군 부대)내부의 레즈비언들은 당시 증가한 여성들의 사회진출로 인해 바, 클럽, 레스토랑, 영화관 등을 마음대로 활보할 수 있었다. 또한 군대 근처의 클럽에서는 레즈비언 바 문화가 형성되어 부치/펨 아이덴티티가 강화되고 선호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도 4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많은 탄압을 받았다. 특히 45년에 전쟁이 끝나고 나서 여성에 대한 억압이 시작되었다. 전시에 남성들이 부족했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이들의 일자리를 대신 했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나서 남성들이 다시 되돌아오자 여성들은 집에서 아이를 보는 것이 본분이라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이것은 여성의 성에 대한, 더 나아가서 여성 레즈비언에 대한 탄압으로도 이어졌다. 가부장적인 규율을 따르는 것이 여성과 남성의 미덕으로 여겨졌다. WAC 내부의 부치 여성들은 외모나 행동으로 인해 가부장제에서 허락한 ‘여성상’에 맞지 않았으므로 이들은 이런 공격의 주 표적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 라벤더 공포가 시작되었다. 발단은 바로 냉전의 도래였고 이 억압은 두 가지에 뿌리를 박고 있었다. 첫째, 공산주의자들에 대항해 미국의 기독교적 전통을 수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공산주의자들의 무신론적 믿음에 대항하여 미국의 영적 자산을 지켜내야 한다는 이 논리는 사회로 급격히 확산되었고, 미국의 국기에 대한 경례에서 "Under God"라는 종교적 문구가 들어간 것도 50년대다. 이런 기독교적 윤리는 비단 애국심에 대한 강조뿐만이 아니라 이성애 중심적 가부장제에서 벗어난 행위를 탄압하는 데에도 쓰였다. 둘째, 매카시즘이 퍼지면서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이 증가했다. 이는 얼핏 보면 성소수자 탄압과 상관없어 보이지만, 당시 공산주의자들과 성소수자들은 자주 혼동되었다. 둘 다 모두 숨겨진 서브컬쳐로써 고유한 문화적 특징과 만나는 장소가 있고, 정신적으로 약하거나 문제가 있는 집단이며, 비도덕적이고 무신론적 집단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맥카시는 미 정부 내에 숨겨진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주장을 펼쳤고, 이런 주장을 통해 많은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어느 정도 고리타분해질 무렵 다른 상원의원들은 성소수자들을 표적으로 삼으라고 했다. 논리는 이것이었다. 성소수자들이 비록 공산당원이 아닐 수는 있지만, 이들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공산주의자들이 알게 되면 협박에 취약해지고, 때문에 "우리 일반인"보다 국가 기밀을 누설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서, 많은 타블로이드 신문이 공산주의자들은 이런 "변태적 성행위"를 퍼트려서 미국을 약화시키고 국가를 전복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음모론이 1950년 초기 주장하였다. 이런 상황 하에 1953년 4월 27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대통령령 10450번을 서명했다. 이 대통령령에 따라 정부산하에서 일하는 성소수자들은 색출되어 해고당해야 할 존재로 전락했다. 천명이 넘는 연방요원들이 누가 성소수자인지 찾는 일을 맡게 되었고, 성소수자라고 지목당한 사람은 다른 성소수자의 이름을 대라는 심문을 받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성적 지향성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용히 자진 사퇴하는 것을 택했고, 이런 방식으로 1953년에만 적어도 5000명의 성소수자들이 실직했다. 그리고 이 여파로 1993년 클린턴 대통령이 정부 정책을 바꿔버리기 전까지 40년동안 정부하에서 성소수자라는 것이 밝혀지면 해고당했고, 군대에서의 성소수자 차별은 Don't Ask, Don't Tell 정책이 2011년에 폐지되기 전까지 정책적으로는 계속되었다. 2013년까지 29개주에서 LGBT라는 이유로 회사에서 직원을 해고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락되었고, 이것은 이런 50년대의 성소수자 차별적 문화와 정책에서 기인한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도 공산주의와 성소수자를 엮으려는 시도는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유명한 "종북게이" 발언을 봐도 그렇다. 성소수자들은 공산주의자들처럼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집단이며, 이것은 (설령 성소수자 개개인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해도) 북한을 이롭게 하므로 배척해야 한다는 논리를 몇몇 종편이나 특정 차별선동세력의 언행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성소수자들이 자의든 타의든 공산주의를 이롭게 하고 공산주의가 퍼지는 것을 더 용이하게 한다는 주장이라는 점에서 라벤더 공포 당시 개별 성소수자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닐 수 있어도 이들은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에 취약하다는 논리와 굉장히 흡사한 면이 있다. 그렇다면 테러방지법의 내용을 보자. 테러방지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국가정보원이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민감정보를 포함하는 개인정보와 위치정보를 '개인정보처리자'와 '위치정보사업자'에 요구할 수 있다"(9조 3항)고 한 부분이다. 여기서 민감정보는 개인의 성생활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을 색출해낼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도 있다. 즉 50년대 미국의 라벤더 공포와 비슷한 시각으로 성소수자들을 보는 시각이 늘어가고 있는 분위기 하에서 (이젠 제1야당까지도 성소수자 혐오에 동조하고 있고, 차별선동세력은 촘촘한 네트워크를 통해 성소수자 인권이 다뤄지는 것을 조직적으로 막고 있다) 정부가 성생활까지 감찰할 수 있는 무기가 주어진 셈이다.
 
 물론 라벤더 공포 같은 인권침해 사례가 우리나라에서 꼭 재현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 모든 것이 너무 예민하고 두려움이 많은, 한때 정부부처에서 일하길 원했던 나만의 걱정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정부의 검열과 안보 공포에 의해 성소수자 탄압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던 미국의 사례를 보면 테러방지법이 한층 더 두렵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상황이 비슷하고 그때보다 더 뛰어난 감청 시스템이 갖춰진 지금, 이것이 얼마나 우리 커뮤니티에 큰 해를 끼칠지, 더 나아가서 만일 라벤더 공포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난다면 이것이 완전히 해소되기에 몇 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오늘도 우리는 계속 투쟁하고 싸워나가는 것이겠지만.

 

 

참고자료:
http://www.press.uchicago.edu/Misc/Chicago/404811in.html
http://www.edb.utexas.edu/faculty/salinas/students/student_sites/Fall2008/6/editorials.html
http://www.out.com/entertainment/popnography/2013/04/26/9-things-to%C2%A0know-about-lavender-scare
http://abcnews.go.com/Health/lavender-scare-us-fired-thousands-gays-infamous-chapter/story?id=15848947
http://www.archives.gov/federal-register/codification/executive-order/10450.html
http://outhistory.org/exhibits/show/lesbians-20th-century/wwii-beyond/wwii-beyond-cont
Odd Girls and Twilight Lovers: A History of Lesbian Life in Twentieth-Century America, by Lillian Faderman, Columbia University Press; Reprint edition (February 21,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