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대 동성애 에이즈 예방콘서트 후기
재연(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살면서 그동안 딱히 혐오를 직접 두 눈으로 마주한 적이 없기에, 너무도 명백하게 혐오적인 색채를 가진 행사에 직접, 처음으로 참석하는 일은 떨리고 궁금했다. 그동안 글과 사진으로만 보던 ‘혐오’를 직접 보고 듣게 되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증을 가지며 총신대학교를 향했다. 신기하게도 총신대학교는 ‘이수/총신대학교역’보다 ‘남성역’에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7호선을 타고 굉장히 오묘한 이름을 가진 ‘남성역’에 내려 걸어갔다. 수업이 끝날 시간이라 그런지 역을 향하는 총신대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신기하게도 아직 어떠한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학교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을 뿐인데 나를 향한 그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마 튀는 머리 색과 피어싱 때문이었겠지.
콘서트 내용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별선동세력이 항상 꺼내는 HIV/AIDS혐오, 감염인 치료비가 ‘우리의 피같은 세금으로 나간다!’는 이야기, 동성애의 말로는 비참하고 끔찍하며, 동성애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게 될 미래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 자신들은 혐오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들을 동성애로부터 '회복'시켜 '원래'의 이성애 상태로 돌아올 수 있도록 사랑을 베푼다는 이야기 등등. 딱히 나를 자극할만한 놀랍고 새로운 이야기는 없었다. 페이스북에서 항상 보던 혐오 포스팅이나 댓글과 차이가 하나도 없었으니.
다만 콘서트를 보며 앞으로 이러한 분야에 대해 생각을 더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세련되고 호소력있는 미디어 활용
물론 토론자 중 방송경력이 있는 감독이 있으니 당연하겠지만, 그들의 미디어 활용력은 엄청난 수준이었다. 미디어 컨텐츠가 가지는 특성 중 주변적 단서—컨텐츠 내용과 그 질적 측면이 아닌 컨텐츠를 전달하는 방식, 컨텐츠를 전달하는 사람의 호감도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가 거의 지적할 부분이 없을 정도로 잘 짜여 있었다. 이러한 차별선동세력의 적극적 미디어 활용을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정보 처리는 핵심적, 의식적 사고에 의해 일어나는 중심적 정보 처리보다 주변적 단서에 의한 정보 처리가 먼저 일어나므로 이를 잘 활용해 컨텐츠를 만들 경우 사람들에게 동성애에 대한 공포심, 두려움, 불쾌함을 심어주기 쉽다. 특히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 좋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차별선동세력은 이 분야에 굉장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또한 매체를 활용하여 그들이 가진 또다른 우위인 머릿수를 이용해 널리 퍼트릴 경우 관련 이슈에 대해 관여도가 낮은—그 분야에 개입된 정도가 적고, 관련 지식이 많지 않은—사람들은 메시지의 질 자체보다 주변적 단서에 의해 더 쉽게 설득될 수 있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견에 잠재적으로 동조하도록 만들 수 있다.
아무리 우리 메시지가 질적인 측면에서 더 좋고 왜곡되지 않은 사실을 담고 있더라도 사람들에게 첫 인상을 형성하는 것은 내용 자체보다 주변적 단서인 이상 우리도 더 호소력있는 컨텐츠를 활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성소수자가 '잘' 사는 세상 만들기
그들이 틀어준 영상에는 '한국 트랜스젠더 1호'라는 분이 나왔다. 나이가 드신 분이었는데 몸이 굉장히 불편해 거동조차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분이었다. 토론자들은 "동성애의 말로는 저렇게 비참하며, 우리는 동성애자들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이 저런 결말을 겪지 않도록 그들을 구하려는 것이다"라는 발언을 이어갔다. 누구라도 힘들어할 때 세상을 바꾸기보다 그들을 세상에 맞추려는 구시대적인 발상이었다. 하지만 한 발 떨어져 다시 생각해보니 저런 분들이 있다면 차별선동세력이 먼저 그분들에게 다가가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디서 시작할 수 있을까? 우리 안에서 차별받고 소외받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HIV/AIDS 감염인의 경우 커뮤니티 내에서 배척을 받는 경우가 있다. 감염인이라는 일종의 ‘사회적 낙인’이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는 벽이 되고, 그 벽이 감염인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적절한 도움이 지원되지 않는다면 차별선동세력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로 HIV/AIDS 감염이라는 사실 자체가 ‘힘든 일’의 ‘원인’처럼 보일 수도 있을테니까.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이 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빠르고 즉각적인 개입인 만큼, 우리가 그동안 미처 보지 못한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더이상 '자기 자신이 누구'라는 이유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고 자신을 향한 잘못된 내적 귀인(사건의 원인을 주변 환경이 아닌 자기 자신에서 찾는 것)을 그만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손을 뻗는 일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신기하게도 콘서트에 가서 차별선동세력을 직접 내가 보고 들었는데, 인터넷에 있는 글을 볼 때 처럼 화가 나지는 않았다. 동성애를 항문 성교에 한정하는 모습, 인권 개념이라는 기본적인 시민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것 같은 모습, 상관 관계와 인과 관계를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든 감정은 '화'라기 보다는 연민에 가까웠다. 행사 후 사진 촬영에 엮이기 싫어서 행사가 끝나기 전에 미리 강연장을 나왔다. 강연장 한편에 텅 빈채로 남아있던 '동성애 옹호자석' 만큼이나 공허한 밤하늘이 학교를 덮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