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차별 혐오

한복인가 제복인가, 전통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성별규범을 묻는다

행성인 2016. 10. 13. 18:13

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문화재청이 내건 한복의 기준으로 시끄럽다. 한복 무료입장은 지난 2013년 10월부터 문화재청이 한복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취지로 마련한 이벤트다. 한복을 입고 서울일대 궁궐과 왕릉에 가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화재청의 ‘한복 무료관람 가이드라인’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지정성별의 의복을 갖춰야 한다고 명시한다. 여성이 남성 한복을 입거나, 남성이 여성 한복을 입는 경우는 ‘한복 차림’으로 볼 수 없어 무료입장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남자는 바지,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 하는 것이 전통인가. 아직까지도 고릿적 주장에 문제제기 하는 것에 힘이 빠진다. 한간에 한복을 지정성별화하는 문화재청의 지침이 시대착오적이라고 하지만, 이는 엄연히 존재했던 과거 실험적 젠더표현의 역사를 무시하는 발언이다. 여장을 하고 사람들에게 해학과 즐거움을 줬던 남사당패는 전통이 아닌가. 한국전쟁 이후 5,60년대를 풍미했던 국극은 여성 국악계가 정점을 찍던 배경으로부터 나온 예술장르일진대, 배우들의 남성성은 오히려 남성중심 전통문화계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지 않았던가. 한국 전통춤의 거목으로 평가되는 이매방선생의 승무와 살풀이는 전통의 궤를 벗어나는 표현이고 몸사위란 말인가. 예술여부를 따져 묻고 과거로 거슬러 오를 필요도 없다. 최근의 사극들을 보자. 이미 수다한 드랙과 오까마, 여/남장과 크로스드레싱이 있고 특히 최근에는 갓 쓴 여성배우가 계층과 성별의 규제를 뚫고 이성애로맨스를 완수하는 것이 하나의 드라마 코드로 자리 잡았다. 지정성별과 다른 옷을 입는 배우들의 분투는 외국인들도 열광하는 K-한복의 낯설지 않은 용례일진대, 전통과 세계화를 두루 엮는 문화적 자원들을 전통이 아니라 하는 것은 자가당착 아닌가?

 

다른 접근으로 거리 위의 한복들이 전통을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지, 시중의 한복들이 계승한 것이 전통복식인지 사극전통의 한복을 따른 것인지도 물을 수 있다. 전통과 사극전통은 어떻게 다른가, 전통한복과 생활한복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지침에 따르면 생활한복과 짧은 치마도 무료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생활한복이 어떻게 전통의 기준에 부합하는가. 치마의 길이가 전통여부에 판단기준이 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오히려 노출이 심한 경우는 입장을 제한다고 한다. 한복에 노출이 없었던가. 조선 후기에 여성저고리는 짧아졌고 더러는 가슴을 내놓고 다녔다. 이를 전통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문화재청의 한복 지침은 전통 여부를 떠나 성적 보수주의의 도구로 전통을 들먹이는 것일 뿐이다. 갓 쓴 여성, 치마 입은 남성은 안 되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아니, 정말 조상을 노하게 하지 않으려면 사농공상을 막론한 대중의 궁궐출입부터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민족 정체성을 흐리고 다니는 외국인 관광객의 출입부터 막아야지 않겠느냔 말이다. 문화재청의 한복지침은 전통을 둘러싼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문화재청의 자의적인 기준에 전통의 시시비비를 따지자는 것이 논의의 주요 의도는 아니다. 묻고 싶은 것은 전통과 비전통을 가르는 주체가 왜 문화재청이 되어야 하는가에 있다. 지정성별이 아닌 전통복장착용자에 대한 문화재청의 처결은 ‘입장료 징수’다. 생각에 따라서는 치사하고 졸렬한 처사이지만, 표현의 자유를 완전히 금지하지 않는 선에서 내릴 수 있는 사소한 불이익이라는 계산이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불이익을 감수하고 입장료를 내는 것은 한복을 잘못 입었다는 데 대해 ‘벌금’을 내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불평민원이 많아서 이성 한복착용자의 무료입장을 금지했다고 한다. 자의적인 기준으로 전통을 단정하고 기준을 벗어나면 위반과 일탈의 낙인을 찍는 태도가 과연 불평인가. 불완전한 규범을 봉합하고자 혐오가 소환된 것은 아닌가. 문화재청 공무원들에게 혐오의견은 수다한 민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민원으로 둔갑한 혐오는 전통의 얼굴로 귀환했을 것이다. 사소한 불이익의 뿌리는 혐오로 구축되는 성규범이다.

 

지정성별에 어긋난 한복착용자에 대한 문화재청의 입장은 입장료 징수로만 머물지 않는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더라도 성별에 맞는 옷을 입으라 강제당하고 ‘출궁’조치까지 당하기가 부지기수다. 문화재청은 최근 고궁 부근의 한복 제작·대여점들에 재차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고, 행사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당부까지 했다고 전한다. 성규범이 표현의 자유를 압제하며 자유주의 시장질서까지도 침식하는 실정이다. 오히려 성적 보수주의가 과거 여성들의 노출에 대한 맥락을, 지정성별에 불일치한 젠더표현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 가능성조차 막고 있다. 한복을 성별화하고 기준을 정하는 문화재청이야말로 전통의 표현을 코스프레로 전락시킨다. 한복이 제복인가. 전통으로 표현을 막는 문화재청의 태도야말로 전통의 열린 표현과 논의가능성을 차단한다. 아니, 문화재청의 태도는 거리에서 치마길이를 재고 머리길이를 단속하던 시절의 낯설지 않은 또 다른 ‘전통’을 불러낸다. 이것이 ‘유신 전통’, ‘새마을 전통’의 좀비 같은 반복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의복과 신체를 제한하는 것은 줄곧 권력을 뺏기지 않기 위해 기득권층이 민중을 규율하는 기술이기도 했다. 한복 성규범에서 이탈하고 규범에 반목했던 민중의 표현들은 전통의 규범 앞에서 전통으로 인정되기는커녕 줄곧 싸구려 가십으로 배제되었다. 배제의 주체는 문화권력을 쥐고 있는 계층이고, 남성이었다. 성적 보수주의의 규율, 성규범 파수꾼들의 눈총과 감시는 내가 입고 싶은 한복의 매듭 끝단까지도 판단의 도마에 올려놓는다. 공공장소에 내가 입고 나간 옷이 죄수복처럼 낙인찍히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기분 내서 입고 나온 의상이 규율과 판단의 대상이 되어야하는 것부터 수치이자 모욕이다. 내가 원하는 한복착용은 이상복장 착용자로, 규범 위반으로, 혐오의 대상으로 손가락질 받는 기제로 작동한다.

 

한 시민이 문화재청에 항의전화를 했을 때, 문화재청은 전통의 의미를 물었다. 통화자가 대학생 같다며 전통의 의미를 모르냐는 비아냥조의 언급은 문화재청의 교양수준을 의심케 한다. 질문은 얼마든지 되받아칠 수 있다. 문화재청이 생각하는 전통의 의미는 무엇이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혹여 그토록 전통을 지키려는 강박 자체가 전통으로 포장한 젠더규범은 아닌가. 전통은 변화 위에 뿌리를 내린다. 규범이 대중을 구속하지만 이들의 변칙적인 자기표현은 새로운 몸을 만들고 새로운 집단과 장소를, 새로운 시간을 만들며 역사가 되고 지층을 이루며 ‘전통’으로 불린다. 이를 입장료로 구속하는 문화재청의 태도는 궁궐이라는 전통가치가 집약된 공간적 의미를 이용해 전통의 규범을 재차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

 

문화재청의 지침이 성규범으로 작동하여 사소한 부분부터 죄어들어온다면 우리 역시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다. 사소한 싸움도 놓치지 않겠다. 이렇게 패를 내놓았으니 더 이상 표현을 양보할 이유가 없다. 졸렬한 규범에 표현을 구속당할 수 없다. 나의 휴일을 망치지 않겠다. 전통을 가장한 차별적인 지침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문화재청을 규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