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인터뷰] 어쩔 수 없는 활동 덕후, 성소수자 노동권팀장 모리
인터뷰 받은 사람: 모리(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성소수자노동권팀, 비폭력트레이너네트워크 '망치')
인터뷰 한 사람: 오소리, 조나단(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오소리: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모리: 모리킴 입니다. 성소수자노동권 팀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어요. 시스젠더 남성 동성애자 입니다.
오소리: 많이 이야기 했겠지만 기본 질문부터 할게요. 정체성을 어떻게 깨닫게 되었나요? (웃음)
모리: 초등학교 5학년 때 울대뼈가 멋진 친구를 좋아하게 되면서요. 그때 알게 됐죠. 저는 부정의 과정 같은 것이 없었어요.감정이 너무 명확하니까. 그냥 아 그렇구나, 했어요. 근데 그때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다른 애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그때서야 앞으로 동성애자로서의 내 삶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때는 이렇게 커뮤니티를 만날 수 있으리란생각을 못하고 혼자 이성애자만 좋아하다가 외롭게 죽겠구나 생각했어요. 사회적 소수자로 살 거라는 걸 그때 알게 된 거죠.
오소리: 그럼 그때부터 행성인에 나오기 전까지는 어떻게 지냈어요?
모리: 행성인에서 ‘데뷔’한 거니까그때까지 커뮤니티가 없었죠.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냥 공부만 열심히 했고 대학 와서는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어요.커뮤니티를 찾을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요. 벽이 너무 높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해요. 나와는 다른 사람들인 것 같다는. 그러다 23살 때부터 블로그를 했어요. 그게 행성인 나오기 1년 전이에요. 동성애자로 사는 삶에 대해서 고민을 쓰는 블로그였죠. 고민을 글로 쓰면서 정리가 많이 됐던 것 같아요.
오소리: 블로그는 어떻게 하게 됐어요?
모리: 그때가 대학교 4학년 시작할 때였는데요. 아는 이쪽 친구 두 명 정도만 있고 데뷔를 안 한 상태여서굉장히 답답했어요. 그때는 뭔가 마음 속에 언어화되지 못한 분노와 화만 있었어요. 그런 것들을 글을 쓰면서 정리하고, 또 블로그를 하면 블로그 이웃들이 생기고, 트위터도 그때 시작하면서 온라인으로나마 대화를 하는 성소수자인 사람들이 생기면서 답답함이 많이 해소됐던 것 같아요. 벽장을 나오는 과정이었던 거죠. 그리고 나름대로는 블로그를 하는 것 자체가 인권 운동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제 삶과 고민을 블로그에 솔직하게 쓰면서 온라인 공간일 뿐이지만 가시화 운동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름 열심히 했어요. 한달 동안 매일 글 올리기 프로젝트 같은 것도 하고.
오소리: 그러면 행성인 오기 전에도 나름 인권 운동을 생각 한거네요.
모리: 그렇죠. 근데 그땐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이유였어요. 차별 받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소수자로 살고 싶지 않다는. 가족을 이루고 싶은 욕구가 강했거든요. 그때 ‘내 학교 동기들이 언제 결혼할까? 그때 동성 결혼이 합법화 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안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이 급해진 거죠. 내 힘이라도 보태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오소리: 지금은 그런 개인적인 이유로 운동하지 않는 건가요?
모리: 거의. 소수자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보단 소수자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근데 그렇게만 생각하는 것도 문제라는 생각도 한 편으론 하고 있어요. 운동과 내가 연결된 느낌이 별로 없거든요. 그래야 오래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지개 별똥별, 유성 노동자를 만나다' 집회에서
행성인 활동
오소리: 그럼 본격적으로 행성인 활동에 대한 질문을 할 게요. 행성인에서는 언제부터 활동했는지, 나오게 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해요.
모리: 2012년에 나왔으니 이제 6년째네요. 그 당시에는 행성인이 이렇게 급진적이고 저항적이고 집회 나가고 그런 단체인지 몰랐어요. 왜 다른 단체가 아니라 여기로 왔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그때 이름이 ‘동성애자 인권연대’여서, 여기가 메인인가 싶었어요. (웃음) 블로그 이웃중에 평인이나 은찬이 같은 행성인 회원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행성인에서 활동하니까 더 가깝게 느껴서 온 것 같기도 하고요. 그때도 페이스북을 했으니까 아마 신입회원모임 공지를 보기도 했을 거고.
오소리: 운동에서 메인인지 왜 중요했을까요?
모리: 아까 말한 것처럼 운동을 앞당기고 싶어했으니까, 아무래도 활동이 활발한 곳이 좋다고 생각한 거죠. 그때도 행성인이 제일 활발히 활동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오소리: 행성인이 이런(?) 단체인지 몰랐다고 했잖아요? 알았을 땐어땠어요?
모리: 저는 전공도 자연과학인데다 사회운동에 딱히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연대나 집회 뭐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이 거의 없었어요. 그렇게 무심하게 살아도 될 정도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고. 근데 행성인 나오기전에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장애인 운동이나 여성 운동 같은 다른 소수자 운동에 대해 생각하기 사작한 것 같아요. 언어를 빌려온달까? 내 주장을 하려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다른 운동들을 끌어오게 되더라고요. 그런 기억도 나요. 구조적인 억압 속에 내가 받는 차별이 있다는 걸 처음 인식했을 때, 동시에 다른 소수자들이 받는 차별에 대해서도 눈이 뜨이는 듯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성소수자가 아니었어도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성소수자인게 축복일 수도 있겠다고 처음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거든요. 왜 페미니즘에 대한 명언 중에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는 말 있잖아요?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행성인이 이런 단체인지 알았을 때도, 연대가 뭔지 집회에 왜 나가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도 일단 지지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 ‘중립’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던 떄였는데, 행동하지 않는 건 중립적인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체제를 옹호하는 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래서 잘 몰라도 일단 행동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물론 행성인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그렇게 못했겠죠.
오소리: 그럼 이제 팀 활동에 대한 질문을 할게요. 행성인에서 다양한 팀 활동을 하며 팀장을 맡기도 했어요. 세 팀을 돌아가며 팀장을 맡아왔는데요, 활동한 시간 순서대로 웹진팀, 부모모임, 노동권팀 순서로 질문 할게요. 먼저 웹진팀 활동에 대한 질문인데요, 웹진팀에서는 어떻게 활동하게 되셨나요?
모리: 제가 운영한 블로그가 인기가 있었어요. 솔직하게 이야기를 썼더니 반응이 좋더라고요. 웹진팀에서 하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글 쓰고 홍보하고 포토샵하고 그런 활동에 자신이 있었거든요. 2012년부터 2013년 말까지 2년정도 활동했어요.
오소리: 웹진팀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모리: 웹진팀은 굉장히 따뜻한 조직이었어요. 무슨 특별한 행사가 기억에 남는다기 보다 인터뷰 하면서 뭐 먹고, 충정로 사무실에서 발행작업 할 때 밥 해서 같이 먹고. 그런 것들이 제일 많이 기억나요.
모리 어머니 레시피의 잔치 국수를 만들어 먹었던 2013년 웹진팀 MT
오소리: 웹진 팀장은 어떻게 하게 되었어요?
모리: 제가 잘 했기 때문에 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웃음) 그 전해에 팀장이었던 나라가 권유해서 했는데, 사실 오래되어서 잘 기억이 안나요. 물 흐르듯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오소리: 웹진팀이 제일 초반 활동인데 애정 같은 게 있나요?
모리: 애정이 있죠.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에요.
오소리: 지금 웹진팀 보면 어때요?
모리: 웹진 팀은 개선의 여지가 있죠. 지금의 웹진팀 상황이 되기까지 웹진팀 안에서 굉장히 많은 고민이 있었을 거잖아요? 그래서 이런 저런 말을 하는 것이 망설여지기는 하는데, 팀원들 조직을 잘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그게 제일 먼저인 것 같아요. 그래야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신나서 아이디어도 많이 내고 그럴 것 같아요.
오소리: 그럼 모리가 활동했던 2012, 13년과 현재 웹진팀을 보았을 때, 현재와 어떻게 달라요?
모리:: 사실 2012년과 2013년도 달라요.2012년은 팀이 처음만들어진 때였기에 애초에 팀을 키우고 정착시키는게 그 해의 활동 목표였어요. 웹진의 수준 같은 것에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널럴하게 글을 생산하는 것 자체도 힘들지 않았고, 같이 밥 먹고,놀러가고, 술먹고. 그런 걸 굉장히 많이 했죠. 당시 팀장이었던 나라가 그런 걸 참 잘 했어요.
2013년에는 제가 팀장을 했는데, 제가 철이 없던 시절이라 욕심이 많았어요. 운동을 앞당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던 때여서활동에 욕심을 많이 냈어요. 그래서 웹진에서 나오는 글의 양이나 기획이 많이 풍부해지긴 했고 재밌는 행사도 많이 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팀원들의 활동이 많아졌죠. 그 당시만해도 팀장으로서 팀을 어떻게 이끌고 팀원들과 어떻게 같이 활동해야하는지 잘 몰랐어요. 카톡방에서팀원들에게 짜증내기도 하고 그랬어요. 이거 왜 하기로 한 건데 아무도 안하냐고. 굉장히 후회되는 행동이죠.. 반성을 많이 하고 있어요.
지금의 웹진팀과는 어떤 게다르냐면, 그때는 초기 멤버들이 2013년까지 계속 있었고,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좀더 끈끈한 그런게 있었던 것 같아요. 가끔은 제가 그런걸 다 와해해버린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어요.
오소리: 웹진팀 활동을 그만둔 이유는 뭐예요?
모리: 너무 오래되어서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여러가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일단 그때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행성인 활동에 너무 빠져서 대학원 공부를 많이 못했어요. 균형을 잡으려고 계속 노력했는데 그게 잘 안되어서 아예 활동을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활동이 힘든 것도 좀 있었던 것 같아요. 2013년부터 혐오세력들의 공세가 심해졌어요. 전방위적으로 그 공격이 들어왔어요. 강원도 학생인권조례, 전북 학생인권조례,마포구청, 등등등. 전 지역에서 우리가 하는 일마다 민원 폭탄넣어서 좌절시키고.그때 운영위원들이 그런 공격에 대응하는 걸 다 같이 힘들어했던 것 같아요. 처음 겪는 일이니까.
개인적으로는 아웃팅 이후로 가족들과 여전히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고.
이 사진이 '지친 모리' 사진으로 쓰일 줄 몰랐을 모리
오소리: 활동을 쉰다고 했는데, 사실은 쉰 게 아니라 2014년 초부터 부모모임 활동을 시작했잖아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모리: 그때 친구사이에 성소수자 가족모임이 있었는데, 행성인에도 연락 오는 부모님들이 있어서 우리도 그런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인님, 덕현 어머니, 리하 어머니 등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는 부모님들이 계셨고, 저도 개인적으로 가족과 갈등을 겪으면서 느낀 게 있었고요. 그 당시만 해도 부모님들의 이야기는 없었어요. 성소수자 가족의 갈등 서사는 항상 당사자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족에게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이야기하는 것만 있었는데, 한 쪽의 서사만 있어서는 갈등이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한거죠. 그래서 부모님의 스토리를 발굴해서 알리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주변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외로 성소수자 자녀를 받아들이는 부모님들이 많았고, 사실 부모님들도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 할 곳이 없으니까 모임이 있다는 걸 알기만 하면 오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정기모임, 대화록 남겨서 홍보하기, 미국 PFLAG부모 가이드북 번역, 이렇게 세 가지 활동으로 시작을 한 거죠.
성소수자 부모모임
오소리: 부모모임은 기존에 있던 활동이 아니었는데요. 부모모임 체계를 만들어가고 활동 방향을 잡아가는데 있어 어려움이 있진 않았나요?
모리: 초기에는 새로운 부모님을 조직하는 게 제일 큰 과제였어요. 초창기 멤버인 어머님이 세 분이었는데, 새로운 사람이 안 오면 새로운 이야기를 못들으니까 모임이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홍보하는데 엄청 공을 들였어요. 지금은 언론 인터뷰나 영상 같은 걸로 홍보를 하고 있는데 그때만해도 부모모임에 운동성이 별로 없어서 그런 전략은 쓸 수가 없었어요. 처음 온 부모님이 이 공간이 왔을 때 편안한 공간으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그런 걸 부모님들에게 요구하지 않았거든요. 커밍아웃이 자기 스스로 편안하게 진행되어야 하는 것처럼요. 지금도 이런 고민은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오소리: 운동성은 어떻게 생겼어요?
모리: 부모님들이 자발적으로 하고 싶다고 하셨을 때, 하시라고 했어요. 의외로 부모님들이 운동을 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컸어요. 생각보다 훨씬 더 먼저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하시라고 했죠.
오소리: 그 이후에 더 힘든 점은 없었어요?
모리: 임파워먼트를 하는데 애를 먹었어요. 부모모임 운영을 부모님들에게 조금씩 넘기려고 했는데 과정이 쉽지 않더라고요. 돌이켜보면 너무 일찍 그 과정을 시작했던 것 같기도 해요. 조직을 키우고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게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닌데, 생각 없이, 계획 없이 덤볐던 것 같아요. 더구나 부모모임 부모님들은 열정이 대단하신 분들이잖아요? 사실 운동에 열정적인 구성원이 있다는 건 다른 곳에선 엄청 부러워할 일인데, 조직에 그런 구성원을 잘 이끌고 성장시킬 체계와 계획이 잡혀 있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 것을 잘 잡아 놓지 못한 것에 책임감을 많이 느껴요. 작년에 부모모임 활동이 너무 힘들어져서 갑작스럽게 활동을 쉰다고 하고 나왔는데, 그래서 더 부모모임에서 활동하는 분들에게 죄송하죠.
오소리: 부모모임에 갖는 기대가 있다면? 부모모임이 성소수자 운동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모리: 사실 더 바랄 게 없어요. 지금도 너무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서 지금처럼만 있어도 너무 좋을 것 같아요. 부모모임이 성소수자 운동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생각은 해요. 성소수자 당사자들에게 굉장히 큰 위로를 준다는게 가장 큰 것 같아요. 그게 제일 크고, 또 하나는가족이긴 하지만 비성소수자로서 성소수자를 지지하게 된 사람들이잖아요? 평생 생각해본 적도 없는 존재를 받아들이고 지지하게 된 경험을 우리 사회에 많이 나누면 좋을 것 같아요. 나와 다른 사람을 포용한다는 것, 그 사람을 위해 함께 싸운다는 것, 그게 어떤 의미인지 많이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아요.
오소리: 부모모임에 대해 아쉬운 점은 없어요? 혹은 바라는 활동방향이 있다면요?
모리: 아쉬운 점에 대해 말하기엔 많이 죄송한 입장인데, 이제 부모모임이 활동을 시작한지 4년째니까 한 템포 쉬고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요.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활동의 원칙도 같이 만들어보고,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눠보고요. 그런 시간이 필요해 보여요.
2016년 노동자 대회에서 선전전하는 모리
오소리: 현재는 노동권팀에서 활동 중인데요. 노동권팀 활동 계기는 무엇인가요? 원래부터 노동운동에 관심이 있었나요?
모리: 2014년부터 부모모임 활동을 했어요. 거의 부모모임 활동만 한건데, 이 활동으로 내가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보면 기계처럼 일을 해서 이 조직이 굴러가게 하는게 제 중요한 역할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활동을 오래 했는데, 2016년 LGBT 인권포럼 가서 느꼈던 게, 사람들이 막 토론을 하는 거예요. 토론하고 자기 고민을 이야기 하고 그런걸 보면서 혼자 조용히 충격을 받았어요. 제 안에 운동에 대한 아무런 고민이 없는 거예요. 할 이야기가 없는 거죠. 손들고 질문 할 것도 없고요. 내가 그런 상태라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그래서 내가 성장할 수 있는 활동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리고 노동권팀은 행성인의 가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팀인데, 노동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행성인에 들어온 이후로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좀 배워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 노동권팀이 팀 상태가 안좋았어요. 팀 조직이 잘 안되고 있었고. 그래서 들어가서 팀을 좀 살려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어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노동권 팀에 들어간거죠.
오소리: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 같아요?
모리: 네. 고민은 확실히 많아진 것 같아요. 다른 운동도 많이 접하게 되고요. 팀도 많이 살아났고.
오소리: 현재 노동권팀의 중점 사업은 무엇인가요?
모리: 노동권 팀의 사업은 크게 세 축으로 나뉘어지는데, 당사자 모임인 일하는 성소수자 모임, 다른 운동과 연대의 접점을 넓히는 것, 인터뷰 및 실태조사, 이렇게 활동하고 있어요.
올해는‘일하는 성소수자 모임’을 교육, 세미나, 놀기 등 다양한 형식의 모임으로 매월 진행하고 있어요. 벚꽃놀이도 가고, 강의도 듣고, 영화도 보고. 가볍고 재밌게 하고 있어요.
또 퀴퍼 끝나고 나면 노동조합 대상 성소수자 인권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시작할 거예요. 최근에 문재인의 ‘동성애 반대’ 발언이나 육군 동성애자 군인 색출 사건에 대해서 민주노총 뿐 아니라 산하 노조에서도 자발적으로 연대를 많이 했어요. 얼마 전 민주노총과 행성인이 공동주최한 영화 ‘런던 프라이드’ 공동체 상영회에도 200석이 꽉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왔고요. 노동운동 내에서 성소수자와 접점을 넓히려는 욕구가 많은 것 같아요. 잘 짜여진 교육 프로그램이 있으면 만나기가 훨씬 쉬워질 것 같고, 더 깊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를 많이 하고있어요.
그리고 교육 프로그램 개발의 사전작업으로 성소수자 노동자 인터뷰도 할 예정이에요. 2009년, 2011년에 인터뷰 사업을 한 후로 6년만에 인터뷰를 하는 건데, 지난 6년간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뀐 반면, 한편으로는 성소수자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많지 않은 것 같아서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궁금해요.
6월에 진행된 일하는성소수자모임에서는 빵과 장미 영화를 보았다
오소리: 노동권팀이 주축이 되어 민주노총, 알바노조, 유성 등 노동단체들과의 연대를 쌓아가고 있기도 한데요, 관계를 쌓는 과정, 어려움은 없는지, 어떤 연대활동을 해왔고, 계획중인지 궁금해요.
모리: 노동운동과 관계를 쌓아온 건 행성인의 지난 20년의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자신의 권리를 외칠 때 옆에 함께 있는 것. 깃발을 들고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 그러면서 말 걸고, 만나온 사람들이 관계를 쌓은 거죠.
알바노조와는 최근에 많이 가까워졌어요. 노동권팀 팀원들 중에 알바노조에 가입해서 조합원이 된 사람도 많고, 얼마 전엔 알바노조 안에서 성소수자 조합원 모임도 만들어서 같이 활동하고 있어요. 알바노조에서 배우는게 많아요. 노동조합에서 여성,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이슈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고, 실제로 활동으로도 적극적으로 연결시키고 있어요. 그리고 알바 노동자들도 성소수자 노동자들처럼 한 사업장 안에 모여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사업장에 분산되어 있어서 조직에 어려움이 있는데, 알바노조는 이슈파이팅이나 상담을 통해서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앞으로 성소수자 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노동권팀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영감을 많이 얻는 것 같아요.
어려운 점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좀 더 진하게 만날 수 있을까하는고민이 있어요. 그냥 집회에 참여하는 것 말고, 진짜로 대화하고 친해지는 연대 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오소리: 행성인에 성소수자 노동권팀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의의를 가질까요?
모리: 일단은 성소수자 노동권이라는 주제를 다룬다는 것에 기본적인 역할이 있고요. 그런데 그보다 연대가 무엇인지 많이 고민하게 되는 팀이라는 점에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노동운동’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약한 사람들의 운동이라는 게 더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약한 사람들이 작은 힘들을 모아 싸워온 역사 속에서 성소수자 운동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성소수자 친화적인 기업이나 핑크머니,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핑크워싱같은 것들도 여성운동, 노동운동, 평화운동 등 다양한 운동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을 때 더 제대로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노동권팀 활동하면서 행성인이라는 단체에 대한 고민도 하게 돼요. 사실 인권이라는 건 전체주의의 아픈 역사 속에서 탄생한 개념이고, 개인의 자유가 중요시되는 개념이잖아요? 그런데 행성인은 인권단체이면서 회원단체예요. 개인의 자유가 중요한 문제를 다루면서 동시에 공동의 가치가 중요한 공동체이기도 한 거죠. 사실 이건 행성인 내부의 문제이기만 한 것은 아니고, 인권운동이 계급운동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하는 고민이기도 한 것 같아요. 누구나 공동체가 필요해요. 성소수자들은 누구보다 공동체에 대한 공포가 크고, 동시에 누구보다 공동체에 대한 욕구가 큰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은 어떤 공동체인지가 중요한 거죠.
환대 받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사람들을 조직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노동조합에서 여성주의, 소수자 인권 같은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것이 중요한 이유도 그런 것이고요. 그런데 그 균형을 잡는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조금만 방심하면 둘 중 하나가 뭉개져버려요. 어떻게 하면 균형을 잡을 것인가, 혹은 좀 더 이상적으로는 양쪽을 통합할 것인가,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해요.
오소리: 노동권팀의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모리: 작년 노동권팀 중장기 비전 토론 때 좀 더 깊은 연대를 하자는 얘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노동조합 대상 성소수자 인권/노동권 교육 프로그램 개발 사업을 올해 진행할 예정인데, 이후엔 그 교육 프로그램 가지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이야기도 하고 관계를 쌓는 작업을 할 예정이에요.그렇게 관계가 쌓이면, 예를 들면 전교조랑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해 이야기한다거나, 언론노조와 미디어의 성소수자 차별에 대해 이야기한다거나, 공무원 노조와 공공 서비스에서의 차별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꿈이 있어요. 노동권팀이 몸이 열 개라면 좋겠네요. (웃음)
그리고 아직 팀 안에서 결정된 건 아니지만 내년에는 우리만의 이슈로 싸워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알바노조가 이슈 파이팅 하는 걸 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성소수자가 겪는 다양한 차별 사례들 중에 어떤 이슈를 띄울지, 성소수자 노동자도 굉장히 다양한데 어떤 사람들을 타겟으로 조직할지, 그런 논의를 올해 해보고, 내년 사업으로 진행해보면 어떨까 생각중이에요. 지금 만들어 놓은 ‘일하는 성소수자 대나무 숲’ 페이스북 페이지를 잘 써보려고요.
오소리: 팀이나 모임의 장을 여러번 맡았잖아요. 본인이 생각하기에 팀장으로서의 역할이 본인에게 맞는 것 같나요? 팀장이라는 자리가 부담 되지는 않나요?
모리: 할 여유가 있는 사람이 없어서 매번 팀장을 맡게 됐는데, 하면서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저는 원래는 혼자 일하는타입이고 효율적인 걸 신봉하는 타입이었는데, 여러 사람과 함께 활동을 만들어가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팀원들이 다같이 신나서 활동을 할 수 있는지 많이 고민하게 되고, 배웠어요. 가끔 부담될 때도 있어요. 좀 쉬고 싶은데 쉴 수 없을 때, 그럴 때 부담이 돼요.
오소리: 본인에게 리더십이 있는 것 같나요?
모리: 리더라는 말보단 조직가로서 역할을 잘 하고 싶어요. 아직 계속 배우는 중이죠, 뭐.
사색하는 모리
연대에 대한 고민
런던 프라이드
오소리: 요새 연대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들었어요. 본인이 생각하는 연대란?
모리: 최근에 ‘전쟁없는세상’ 이라는 단체에서 영화 ‘런던프라이드’ 리뷰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글을 쓰려고 2주 정도 잡고 있었는데, 결국 못 썼어요. 제가 쓸 수 없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소리: 왜요?
모리: 글을 잡고 있던 2주 동안 연대에 대해 많이 생각을 했어요. 영화를 보면 그 사람들이 굉장히 진하게 만나요. 사실 완전 상관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게이와 광부가 무슨 상관이 있어요? 그런데 런던에서 웨일즈까지 버스 타고 가서 친해지고, 같이 먹고 자고, 서로의 개인적인 문제들까지도 나누게 돼요. 굉장히 친한 사람들이 된 거죠. 어떻게 그렇게 친해질 수 있었을까, 관계를 맺는다는 건 뭘까, 그런 고민을 계속 했어요.
영화에 이런 장면이 나와요. LGSM 멤버들이 웨일즈에 가서 경찰에 잡혀간 광부들이 석방되도록 도와주잖아요? 그때 풀려난 광부 중 한 명이 자기들을 풀어준 게 동성애자들이라는 말을 듣고는, 공격적으로 걸어와서 “너가 마크냐?” 이렇게 물어요. 그런데 마크가 “그래. 우리는 LGSM이고, 나는 마크 애쉬튼이야.” 이렇게 대답해요. 무서웠을 텐데도 용기를 낸 거죠. 너와 만나고 싶다고.
이 장면을 생각하면서 사람을만난다는 건 자신을 온전히 보일 수 있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 방어벽을 치고 피상적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어쩌면 상대가 내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벽을 허물고 내 모습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 내 가장 연한 살을 보이는 것, 그렇게 용기를 내는 것. 그런게 정말로 관계를 맺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커밍아웃이 곧 연대인 거죠.
그런데 문제는, 제가 글을 쓰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건, 과연 내가 그런 관계를 얼마나 맺고 살아왔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연대에 대해서 글을 써야 하는데, 사실 연대도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잖아요? 나는 사람과 관계 맺는 방법조차 모르고 살아왔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니까 도저히 글을 못 쓰겠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에게 벽을 얼마나 두껍게 치고 살아왔나, 나를 얼마나 꽁꽁 숨기고 살아왔나. 그런 걸 깨달았어요. 충격이었어요. 슬펐고.
오소리: 왜 벽을 치게 되었을까요?
모리: 잘 모르겠어요. 요새 상담을 받기 시작했는데, 상담 받으면서 그 이유를 천천히 찾아보고 싶어요. 오랫동안 벽장 속에 있으면서 내가 공격받을까 두려워서 벽을 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까 봐 벽을 친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권력은 다층적인 거니까. 저는 동성애자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남성이고, 건강한 편이고, 유복하게 자랐어요. 그런 것들을 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계속 번아웃 언저리에서 아슬아슬하게 활동을 해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여유를 가지고 책도 읽고, 스스로 고민과 질문을 쌓아가며 이것저것 돌아보면서 살았어야 했다는 생각을 최근에야 하고 있어요. 그래야 벽을 넘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오소리: 모리는 번아웃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모리: 네. 활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생각해온 고민이에요. 그러고보니 아예 고민이 없는 삶을 살진 않았네요. (웃음) 활동을 하다가 지쳤을 때 "좀 쉴 때가 됐어"라는 말을 듣는게 항상 아쉬움이 있었어요. 이렇게 주기적으로 쉬어야 하는건가? 활동을 정말 좋아하고, 어떻게 보면 덕업일치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지치는 걸까? 쉬고 싶은게 아니라 힘을 받으면서 활동을 하고 싶은 거거든요. 물론 잘 쉬는 것은 중요하고 그렇게 말해주는 동료 활동가들에게 고맙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생각을 계속 해왔어요. 단순히 휴식이 필요한 문제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한 거죠. 운동은 꼭 사람을 갈아 넣어야만 하는 건가.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비폭력트레이닝을 만났어요. 제가 받아들인 ‘비폭력’이란 '지금 여기에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실천한다'는 운동철학이에요. '성소수자 해방 세상'이라는 최종 목표는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지향일 뿐, 완전한 해방이란 세상 끝날 때까지 이룰 수 없어요. 그래서 나중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원하는 운동의 목표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해요. 운동의 모든 과정에서 해방 세상을 이루는 것, 지금 당장 우리부터 폭력과 억압을 중단하는 것. 좀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어떻게 하면 회의를 할 때 좀 더 민주적이고 모두로부터 더 큰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조직 내의 권력 다이나믹을 확인하고 평등하고 안전한 공간을 만들 수 있는지, 유머와 재미를 어떻게 운동에 녹일 수 있는지, 갈등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고 활동가로서 성장시킬 수 있는지, 운동의 중장기 전략을 어떻게 짜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비폭력’이라고 하면 무력하거나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 반대예요. 결과 뿐 아니라 과정에도 집중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전략을 세우게 돼요.
저는 사실 많이 목적 지향적인 사람이었거든요. 목표를 두고 그걸 이루려고 앞만 보고 달리는 타입이었는데,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은 옆에 있는 사람들을 치고 가기가 쉬워요. 실제로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도 많이 주고 관계가 단절되기도 하고 그랬어요. 요즘엔 반성을 많이 하고 있고, 활동의 과정에서 더 큰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게 지치지 않는 길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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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리: 행성인이 해온 연대가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모리: 고민의 폭, 운동의 폭을 굉장히 많이 넓혀준 것 같아요. 행성인에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제 머릿속엔 동성결혼이랑 입양 합법화 밖에 없었거든요. 사실 그런 제도를 얻어내는 싸움은 끝이 있는 운동이죠. 합법화가 되고 나면 끝이니까요. 그런데 언제나 그 후에 남는 운동이 있잖아요. 우선 순위에서 밀리고 나중으로 밀리는 운동. 사실 지금 성소수자들이 정권교체의 과정에서 ‘나중에’라는 소리 듣고 있는 것도 그런 거고요. 저는 ‘지금 당장’이라는 슬로건이 품고 있는 핵심 가치는 연대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성소수자 운동이 연대를 이야기해온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하고요. 행성인의 연대를 통해 운동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나는 그 속에서 어떤 활동가가 되어야 하는지 항상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오소리: 본인이 보았을 때, 연대가 큰 힘이 되었다고 가장 크게 느꼈을 때가 언제에요?
모리: 항상 그렇게 느껴요. 특별한 순간이 있는게 아니라.
오소리: 행성인은 앞으로 어떤 연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나요?
모리: 다른 회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이젠 겉으로만 만나는 건 하지 않으려고요.집회마다 무지개 깃발 들고 가서 옆에 있다가 돌아오는 건 좀 줄이고 싶어요. 물론 그런 연대도 중요하긴 하지만, 이젠 좀 진하게 만나는 연대를 하고 싶어요. 정말로 친해져서 같이 술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일상에서 겪는 이야기도 나누는, 그런 연대를 하고 싶어요. 요새 노동권팀 팀원들이랑 알바노조 조합원들이랑 같이 ‘알바노조 성소수자 조합원 모임’을 만들어서 하고 있는데, 그 모임에선 그렇게 만나기 시작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같이 뒷풀이도 하고. 페이스북 친구도 되고. 쉽지 않고 오래 걸리겠지만 그렇게 만나고 싶어요.
오소리: 행성인에서는 누가 그런 걸 잘하는 것 같아요?
모리: 많죠. 우리 회원 개개인이 갖고 있는 네트워크가 많아요. 노동권 팀에서 알바노조와 맨 처음에 활동을 같이 하게 된 것도 재윤과의 관계가 있어서 가능했던 거고, 장애인 운동과 깊이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도 있고. 회원 한 명 한 명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와 연결된 운동이 많아요. 그게 행성인의 힘인 것 같아요.
동성애자 모리씨가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다
비폭력 트레이너
오소리: 요즘 전쟁없는세상 활동도 하고 계신데, 평화운동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요?
모리: 사실 전쟁없는세상은 평화운동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비폭력트레이닝 때문에 만나게 됐어요. 부모모임 활동 하면서 많이 힘들어했는데, 비폭력트레이닝을 받고 나니까 왜 힘들 수 밖에 없는 구조인지 설명이 되더라고요. 예를 들면 활동이 정말 많았는데, 만나서 하는 회의는 한 달에 한 번 3시간 정도 밖에 못했어요. 회의에서 합의가 굉장히 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고민이나 걱정 같은 걸 나누지 못하는 구조인거죠. 그리고 부모님들과 성소수자 당사자 활동가들 사이에 권력 차이도 있었고, 또 아무래도 임팩트가 있는 주제이다보니 과정보다 결과가 너무 강렬해서 작은 것들에 집중하는게 쉽지 않았어요. 그런 것들을 비폭력트레이닝을 접하면서 알게 된 거죠. 당장 해결할 순 없어도 일단 뭐가 문제인지 알게 되니까, 한 줄기 빛을 본 느낌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전쟁없는세상의 활동에 많이 끌렸어요. 비폭력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권력, 폭력, 평화가 무엇인지 더 배우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트레이너로 들어간 거죠.
비폭력 트레이너 네트워크 <망치>
오소리: 요새는 평화 운동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모리: 군형법 92조의6 때문인 것 같아요. 이 싸움에서 군대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당장 구속되어 있는 사람이 있고, 유죄판결이 나오고 이런 상황에서는 쉽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요. 군형법 92조의6이 없어지면 군대에 기꺼이 가야하는 건지, 군대와 군사주의가 우리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남성의 평화와 여성의 평화는 어떻게 다른지. 이런 질문들을 던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오랫동안 이런 고민을 해온 평화운동과의 접점을 넓히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저는 약하다는 게 무엇인지, 강하다는 게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군기강을 해쳐선 안된다’는 건 결국 약해지면 안된다는 거잖아요? 소수자 운동인 우리가 할 일은 약하면 왜 안되냐는 질문을 던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성소수자도 군 생활 잘했고, 나라 잘 지킬 수 있다는 이야기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이건 노동운동과도 연결되어 있어요.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은 모두가 더 강해지기를 요구하잖아요?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돌리고 경쟁하는. 그런 세상에선 약한 사람은 살 수가 없어요. 체제에 순응하는 힘을 획득하는 방식이 아니라 약한 사람들의 작은 힘들을 모아서 싸우는게 운동의 더 큰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곧 연대고요. 얼마 전에 회원모임에서 전쟁없는세상 용석씨랑 같이 이야기를 할 때도 ‘병역거부와 병역기피를 나누지 않는게 중요하다’, ‘겁쟁이여도 괜찮은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눴잖아요? 병역거부 소견서에 “나는 약하고, 내 약함을 긍정한다”고 썼다는 병역거부자의 말은 성소수자들의이 자긍심을 갖게 되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라고 봐요.
오소리: 비폭력 트레이너로 활동 하면서 성소수자 운동에서도 트레이닝을 진행한 적이 있나요?
모리: 얼마 전에 신입회원모임에서 권력꽃 그리기를 짧게 한 적은 있어요. 바쁜 활동 중에 시간 내서 트레이닝을 받기가 쉽진 않겠지만 더 많은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비폭력 트레이닝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활동가들이 갈등을 많이 두려워하는데, 문제를 파고 들어가보면 실제로는 갈등이 되지 않아도 되는 구조적인 문제인 경우가 많아요. 회의 구조가 엉망이라던가, 구성원 사이의 권력차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이런 걸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결국은 갈등으로 표출되는 것 같아요. 8월에 있을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 대회에서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실용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툴도 많거든요.
인간 김모리
오소리: 요즘의 가장 큰 고민은?
모리: 사적인 삶과 관계를 찾는 것이요. 지난 몇 년 간 너무 활동에만 매몰된 삶을 보냈더니 사적인 삶이 없어졌어요. 2년쯤 전부터 느끼기 시작한 문제인데, 아무 욕구가 없어지더라고요. 입고 싶은 옷,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영화 그런 게 정말로 없어요. 하루는 오랜만에 저녁에 아무 일정도 없어서 집에 일찍 들어왔는데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어서 한동안 멍하니앉아있었어요. 문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엔 이것저것 새로운 것들을 해보고 있어요.
오소리: 담배도 그래서 피우기 시작한 거예요?
모리: 제가 안하는 게 많거든요.저는 원래 하기 싫은 건 안 하는 타입이에요. 그런데 이것저것 힘든 일들을 겪고 활동에 지치고 그러면서 그런 게 더 심해졌던 것 같아요. 안전하다고 느끼는 작은 테두리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만 산 거죠. 새로운 도전, 모험 같은 것들을 피하면서요. 경험하지 않으면 재밌다는 것을 모르잖아요? 그러니 갈수록 점점 재미 없는 사람이 되는 거죠. 그래서 스스로 금지해 왔던 것들을 조금씩 해보고 있어요.
요새 제가 걸어다니거든요? 퇴근길에도 용산에서 마포 집까지 걸어 다니고 행성인 사무실, 종로에서 집에 갈 때도 걸어 다녀요. 걷는 동안은 온전히 내 시간이니까 걸으면서 이제껏 미뤄뒀던 고민들을 하나 둘 정리하고 있어요. 경의선 숲길을 따라 자주 걷는데, 숲길이라 힐링도 많이 돼요. 나무도 많이 보고, 산책 나온 애기들이랑 강아지들도 보고, 개천에 물 흐르는 것도 보고. 안 가봤던 곳, 안 해봤던 것, 안 만나본 사람을 많이 만나보려고요.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찾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좋아하던 것들, 영감을 주던 것들.
사적인 삶을 찾는 건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도 중요한 것 같아요. 아까 ‘커밍아웃이 연대다’라는 말을 했는데, 내보일 내 삶이 없으면 커밍아웃 할 것도 없는 거니까. 지금 저는 정말 텅 비어있거든요.
자연인 모리
오소리: 취미는 무엇인가요? 쉴 때 어떤 것을 하며 노나요?
모리: 사실 저녁에 쉬는 날이 별로 없는데, 가끔 시간이 날 때는 집에서 영화 보면서 맥주 먹어요. 가끔 요리도 하고요. 대부분 카레나 찌개 같은 생존식량이지만 닭볶음탕이나 갈비찜 같은 음식에 도전해보기도 하고요. 종로 가서 술 마실 때도 있고.
오소리: 활동 외에 배우고 싶거나 새롭게 더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모리: 요리하거나 먹는 걸 좋아해서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전부터 있었어요. 제철음식을 찾아다니는 여행도 해보고 싶어요. 트래킹도 해보고 싶고. 미술을 좋아해서 맘 잡고 꾸준히 그림 그리는 걸 연습해보고 싶기도 해요. 지금은 정말 그냥 낙서 수준이어서 뭔가 내보일 수 있는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거든요. 또 언젠가는 서핑도 배워보고 싶어요. 파도 타고, 우쿨렐레 치고, 맥주 마시는 그런 삶에 대한 판타지가 있어요.
오소리: 본인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셀프 칭찬)
모리: 이런 질문은 정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 저는 끈기가 있어요. 참고 인내하는 걸 잘합니다. 오랫동안 꾸준히 해야하는 건 자신 있어요.
오소리: 외모 중엔?
모리: 손이 예뻐요. (웃음) 생명선이 완전 길고 손등에 점이 있어요. 손등에 점이 있으면 손재주가 많은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오소리: 본인의 모습 중 고치고 싶은 점은?
모리: 단점이 많지만 딱히 드라마틱하게 고치고 싶은 건 없어요.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오소리: 향후 활동이나 직업적인 부분에서 어떤 계획이 있나요?
모리: 계속 활동가로 살고 싶어요.
오소리: 모리에게 행성인이란?
모리: 커뮤니티이면서,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죠.
오소리: 행성인과 만나서 삶이 많이 변했잖아요? 대학원을 그만 두기도 했고. 지금 기억을 그대로 두고 과거로 간다면 행성인 활동을 할 건가요?
모리: 해야죠. 제일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활동가도 여러 유형이 있는데, 저는 학문을 하거나 변호사가 되거나 하는 것은 흥미가 없어요. 조직가의 역할이 좋아요. 사람들을 만나고 조직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어요.
오소리: 모리가 생각하는 ‘활동’이란 무엇인가요?
모리: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활동과 행동들이죠.
오소리: 인터뷰를 마친 소감이 어때요?
모리: 제가 말을 잘 못해서 인터뷰하는 두 분이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 일단 죄송하고요. 생각과 고민을 정리하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요. 이번 호 주제가 연대라고 해서 사실 많이 부담스러웠거든요.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 근데 그래서 오히려 혼자 생각 정리를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지난 6년간의 활동을 돌아보게 되기도 했고요.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소리: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모리: 독자 여러분 행성인 웹진팀에서 만든 ‘행성인 A to Z’ 텀블벅 후원을 많이해주세요! 라고 말하라고 하네요. (https://tumblbug.com/lgbtpride_webzine) 웹진팀에겐 미안하지만 이 인터뷰에서 한 제 아무말 대잔치들이 부디 조용히 묻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