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소식/해외 인권소식

일 년 동안 캐나다에서 퀴어로 살기

행성인 2018. 1. 14. 12:41

정예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 인권팀, 성소수자 부모모임)
 

캐나다를 선택한 이유
 
유학할 국가를 결정할 때 캐나다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영어 공부 욕심. 학생 때 영어는 완전히 관심 밖이었는데, 어떤 문제건 간에 가장 먼저 영어로 논의된다는 것을 깨달은 뒤 큰 필요성을 느꼈다. 영어를 쓸 수 있으면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군대 문제. 현역 1급이자 게이인 나는 다가올 징집이 두려웠다. 군형법 92조의6 이 존재하는 한, 군대 내 오픈리 게이는 존재 자체가 위법이기 때문이다. 벽장에서 나와 숨통이 트인지 몇 년 채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내 존재를 숨기는 건 끔찍하게 싫었다. 그래서 해결책을 고민하던 중 해외로의 이민이나 망명을 생각하게 되었고, 캐나다가 이민자나 성소수자 의제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기 때문에 그 곳을 선택했다.

 

 

공중파까지 타버려서 이젠 군대 가면 진짜 투쟁뿐이야...

 

 


캐나다, 퀴어, 나
 
캐나다에 도착하자마자 유학원을 통해 계약했던 홈스테이(현지인 가정에 월세를 내고 들어가 사는 것)에 들어갔는데, 백인 할머니 두 분과 강아지 두 마리만 있는 집이었다. 진짜 할리우드 가족영화에 나올법한 구김 없고 화목한 중산층 백인 가정이었다. 가자마자 할머니들한테 커밍아웃을 했는데, 이 곳에서 게이인 건 전혀 문제도 아니라며 캐나다다운 반응을 보이셨다. 두 분 다 내가 봐왔던 한국 노인들과는 다르게 사회 문제, 페미니즘, 인권 같은 문제에 관심이 많으셨다. 한국에서의 성소수자 차별, 여성 차별이 어떤 지 물어보기도 하시고, 반대로 내가 캐나다의 상황을 물어보기도 했다. 일 년 가까이 할머니들과 그렇게 살면서 정도 많이 들었고, 시사 공부도 되었고, 영어도 늘었다.
 

토론토 퀴어 페스티벌. 토론토에서 가장 크고 붐비는 시내 중심부를 전부 통제하고 행진한다.


6월에는 퀴어 축제가 있었는데, 한국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성대하고 크게 치뤄졌다. 마치 크리스마스 시즌에 장식을 다는 것처럼, 캐나다에선 축제 시즌에 다양한 무지개 장식들을 길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퍼레이드는 총 3일 동안 세 번 열린다. 각각 정치적 메세지를 담은 비공식 퍼레이드, 여성 퍼레이드, 공식 퍼레이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한 의미는 까먹었다. (올해 퍼레이드가 열리면 잘 기억했다가 쓰는 것으로...) 마지막 날 퍼레이드에서는 저스틴 트뤼도 총리도 같이 행진했는데 이 나라 국민들이 참 부러웠다.

 

그 밖에도 인도주의적 나라답게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퀴어들을 배려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대학 배치고사를 보는데 성별 선택란에 남성/여성 외에 세 번째 선택란이 있고, 대학 도서관 남자화장실에 크게 이런 안내판이 붙어있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남성으로 정체화 하는 모든 사람, 혹은 트랜스젠더퀴어인 사람은 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음. 우리는 모두가 맞는 화장실을 고를 권리를 존중함.

 

또 다른 캐나다의 모습
 
앞에서 서술했던 것들은 가기 전에도 내심 예상했던 것들이었는데, 캐나다에 와서야 알게 된 의외의 부분들도 있었다. 처음 도착해서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만 해도 대다수의 캐나다인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잘 이해하고,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캐나다는 이민자의 나라이고, (미국과는 달리) 개별 문화의 다양성을 그대로 존중한다. 이는 국가가 통일된 사상이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역설적이게도, 이 때문에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인종, 문화별로 크나큰 격차가 생긴다. 백인 문화권에서 가지는 성소수자 포용성은, 유색인 성소수자들이 있는 계층까지 닿기는 어려워 보였다. 실제로 캐나다에서 만난 가족과 함께 이민을 온 히스패닉, 동양인 퀴어들의 경우, 모두 클로짓에 가까웠다. 아무리 캐나다에 왔더라도, 이민자 가족과 커뮤니티의 사고방식은 출신 문화권으로부터 변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캐나다에서 태어난 백인들의 경우 이미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끝내고 인정받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몇 년 전 다양한 젠더와 성적 지향을 포함하는 성교육을 법제화 하는 과정에서, '다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이민자 차별이다.'라는 혐오세력의 공격에 결국 통과가 무산된 적도 있다.) 한국에서 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을 하며 미국 PFLAG에서 한국계, 동양인 부모들의 커뮤니티를 따로 만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가 안됐는데, 캐나다에서 살면서 그런 활동의 중요성을 크게 느꼈다.
 
아직 일 년 밖에 살지 않았고, 이 사회에서 정확히 내가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는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래도 그간 한국에서 접한 것과는 다른 이슈나 사람들을 만났고, 대부분이 색다른 경험으로 남았다. 이제 어느 정도 적응도 되었으니, 앞으로는 웹진에 더 많은 캐나다 소식을 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