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와 노동

[퀴어X투쟁] 효율성과 합리성을 넘어 안전한 노동 고민하기- 쿠팡 물류센터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최효 동지를 만나다

행성인 2022. 8. 29. 17:09

 

연훈 (성소수자 노동권팀)

 

 

ⓒ 쿠팡 물류센터 채용 공고

 

 

338만원?

 

“바코드 찍으면? 한 달에 338만 원” 쿠팡 물류센터 채용 공고의 홍보 이미지에 등장하는 문구입니다. 여기에는 물류센터 노동이 강도가 낮으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지만, 그에 비해 많은 보상을 제공한다는 주장이 담겨있습니다. 최저임금이 월 191만 4천 440원으로 책정된 2022년 현재, 실수령액은 그보다 적은 노동자들이 너무 많은 대한민국에서 월 338만 원은 아주 매력적인 액수입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면서 월 338만 원을 버는 것이 실제로는 어렵다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홍보 이미지에도 법정 공방을 피하고자 아주 작은 글씨로 “최대”라는 조건이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명백한 거짓말만큼 제 머릿속을 착잡하게 만든 것은 이 홍보 문구에서 드러나는 차별적인 인식이었습니다. “바코드 찍으면”이라는 문구는 물류센터 노동을 단순하고 쉬운 작업인 것처럼 포장합니다. 그 문구와 나란히 놓인 “한 달에 338만 원”이라는 큰 액수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노동이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전문성과 숙련도가 요구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노동은 천대받는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물류센터에서 하게 되는 노동이 정말 “바코드만 찍는” 손쉬운 노동일까요? 과연 “바코드 찍는 노동”은 쉬운 걸까요? 그렇다면 “어렵지 않고 숙련도가 요구되지 않는” 노동은 적은 돈을 받는 게 마땅하다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사고방식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요? 

 

로켓 배송이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서 익숙해진 만큼 쿠팡 물류센터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드러나는 사건이 많았습니다.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대규모 감염이 있었습니다. 물류센터에 불이 크게 났을 때는 쿠팡 본사가 책임을 지지 않고 외주업체 노동자만 입건되기도 했죠.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에는 폭염에 시달리고 있는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이 기사화되기도 했습니다. 물류센터 노동을 쉽게 보이게 하는 채용 홍보 문구와는 대비되는 소식들을 접하며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은 물류센터 노동자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쿠팡 노동자를 만나다

 

우리가 만난 최효 동지는 일용직을 거쳐 계약직으로 쿠팡 물류센터에서 5년간 일했습니다. 그는 트위터에 물류센터에서의 경험을 일기처럼 남기며 점점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러 기사를 찾아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노동할 권리를 보장받고, 나아가 노동자가 주인인 세상에서 살고 싶어 자연스럽게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12개월 계약직 전환을 위한 재계약 시점이 다가온 지난 6월 30일, 최효 동지는 쿠팡으로부터 석연치 않은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습니다. 복직 투쟁 중인 그를 만나 쿠팡에서의 노동 경험과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해고를 2주 앞두고 근무지인 인천1센터 앞에서 출근 선전전을 갓 마친 모습. 인천 분회 동지들과 함께 ⓒ 최효

 

 

🌈노동권팀: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최효 동지: 취업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독립을 하기 위해 쿠팡 물류센터에서 노동하기 시작한 쿠팡 5년 차 노동자 최효입니다. 이전에도 최저임금을 받는 여러 일터를 경험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편입니다. 자부심도 있고요. 지금도 물류센터 현장을 좋아합니다.

 

🌈노동권팀: 많은 사람이 물류센터는 잠시 거쳐 가는 일터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로 이루어진 일터이기도 하고요. 이런 인식 때문에 물류센터의 열악한 상황이 더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요. 최효 동지 생각은 어때요? 

 

🔥최효 동지: 이젠 모바일로 다양한 물건을 주문하고 빠르게 배송받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되었어요. 물류센터에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온갖 물건이 있고요. 그런데 사람들은 로켓 배송의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물류센터 노동은 불안정하고 위험한 일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요. 물류센터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들 또한 비슷한 인식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정규직으로 쿠팡에서 계속 일할 생각은 없으며, 물류센터는 원래 이런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일해야 하는] 곳이라는 말이 오가죠. 그 점이 답답했습니다.

 

🌈노동권팀: 최효 동지가 겪은 물류센터 노동은 어땠나요?

 

🔥최효 동지: 쿠팡은 시간당 생산량 (Unit Per Hour, UPH)로 노동자들을 줄 세워요. 매주 모두가 볼 수 있는 게시판에 업무 효율 순위를 게시하고, 순위가 낮게 나온 노동자들은 면박을 줍니다. 능률이 좋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PDA와 카트를 배정하고요. 당연히 지급해야 하는 업무 도구와 휴게 시간을 보상으로 여기게 하는 거죠. 그런 방식으로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을 유도합니다. 그리고 쿠팡은 마감 기한을 맞추기 위해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서 노동 강도를 조절하기 때문에 노동자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요. 그런 작위적인 기준에 의해 노동자들을 평가하고 경쟁을 유도하는 회사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노동권팀: 이런 상황이 문제라고 느끼면서 최효 동지는 자연스럽게 노동조합에서 활동하게 되었군요. 그렇다면 지금 쿠팡 물류센터 노동조합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휴게시간/냉방장치 설치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해 사무실에 전달하는 모습 ⓒ 최효

 

 

🔥최효 동지: 물류센터가 진짜 덥거나 춥거든요. 여러 미디어에서는 쿠팡 물류센터가 굉장히 쾌적한 것처럼 나오지만 일부 물류센터만 그렇습니다. 그래서 쾌적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어요. 에어컨과 휴게시간 보장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는데요, 서명부를 전달하며 일주일 뒤에 냉방장치 설치와 휴게시간 보장에 대한 회사의 계획안을 제출하라고 했지만, 회사는 약속한 날 계약만료 통지서를 내밀었습니다. 저처럼 노동조합 활동하다가 부당해고 당한 사람들과 함께 복직 투쟁도 하고 있어요. 해고 이후에도 에어컨 설치를 요구하기 위해 에어컨을 들고 50km를 걸었어요.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실내 작업장으로 분류되는 물류센터에도 온열 질병 예방을 위한 휴게시간을 쟁취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기쁜 소식으로는 지난 8월 3일에 해고 사유 중 하나였던 사내 징계에 대해 부당 징계를 인정받은 것이 있습니다.

 

🌈노동권팀: 축하드립니다. 듣기만 해도 숨 가쁜 투쟁이네요. 여전히 우리 사회의 많은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이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일터에서의 성소수자는 낯선 존재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쿠팡 물류센터 안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요?

 

🔥최효 동지: 물류센터는 문턱이 낮은 일터라고 표현됩니다. 그래서인지 성소수자 정체성을 드러내고 다니는 분들이 꽤 보였어요. 트랜스젠더 플래그 배지를 상의에 달거나, 남성으로 보이는데 치마처럼 여성의 옷으로 규정된 옷을 입거나 짙은 화장을 하고 출근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를 들으면서 일하시는 분을 본 기억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에 비해 사람들의 시선은 폭력적인 경우가 꽤 있었어요. 창원센터 아웃팅 사건을 계기로 노동조합에서 성소수자와 연대하기도 했지만, 아직 현장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껴요. 더욱 노력해야죠.

 

🌈노동권팀: 그렇군요. 쿠팡은 일용직부터 무기계약직까지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높잖아요. 어떤 방식으로 성소수자 노동자가 안전한 일터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이 듭니다. 쿠팡이 모두에게 안전한 일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최효 동지: 현장에서 직접 일하는 노동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류센터에 냉난방 시설을 설치하는 문제도 이런 맥락에서 보아야 해요. 현장에서 일한 사람보다 회사에서 고용한 “전문가”의 의견이 더 중시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작은 것 하나도 노동자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노동자는 건강한 사람뿐만 아니라 나이가 많든, 어리든, 아프든, 건강하든, 이성애자든, 성소수자든 모든 노동자를 말합니다.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선 평등한 일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자는 소모품이 아니다

 

인터뷰 이후, 최효 동지의 마지막 답변이 제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았습니다. 우리 사회는 노동에 대한 전문성이 아주 한정된 영역에서만 존중받는 사회입니다. 어떤 때에는 한 분야의 전문가는 현장에서 노동하며 그 분야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와는 아주 먼 곳에서 분야를 관찰하는 사람일 때도 많습니다. 우리는 왜 노동자들의 말을 듣지 않을까요? 어째서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물류센터에서 일한 최효 동지도 자신의 업무에 대한 자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알고리즘에 매여 그에 따라 업무를 진행해야 할까요? “전문가”들이 개발한 알고리즘이 그렇게 효과적이라면 알고리즘이 요구하는 대로 쉬지 못하고 일하다가 과로사한 노동자들의 죽음 또한 합리적인 걸까요?

 

효율적인 것이 반드시 합리적이지는 않으며, 합리적인 것이 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특히 합리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라면 과연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심지어 노동자들이 업무 중 탈진하고 심지어는 사망에 이르더라도 그것을 묵과하는 방식이라면 말입니다. 노동자가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 여기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 어린 사람, 아픈 사람, 건강한 사람, 성소수자, 외국인이 모두 포함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 기억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자가 인간이며 여러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일터는 모두에게 평등하고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