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이야기

[회원에세이] 그 사람 나만 볼 수 있어요

행성인 2022. 12. 27. 00:03
* 이 글은 행성인 회원이 <뉴스페이퍼> 3호(2022)에 '잭디Jack’d 수기_그 사람 나만 볼 수 있어요' 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제작자와 저자 간의 협의 하에 일부 수정 후 행성인 웹진에 게재합니다. <뉴스페이퍼>는 다음 링크를 통해 구매할 수 있습니다. 
* 'eppe'는 가상의 필명입니다. 미디어TF로 찾아오는 사연들 중에서도 이름을 밝히기 부끄러운 경험들을 선별하여 이야기로 각색해서 사람들과 나누는 기획입니다. 해당 기획에 모든 이름은 'eppe'로 통합니다. 부끄럽지만 나누고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미디어TF의 문을 슬쩍 두드려주세요.  

 

eppe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핸드폰 화면에 ‘J’모양의 앱 알림이 뜬 것이 잠깐 화제가 되었다. 게이 데이팅앱 로고만으로도 아웃팅이 되는구나, 저 양반도 이쪽인가, 관상부터 이상했다, 저걸 폭로한 기자랑 무슨 일이 있던 게 분명하다, 등등 저잣거리 이야기가 수다하게 펼쳐졌다. 며칠 안 가 나온 해명으로 사건은 헤프닝으로 일단락되었지만 말이다.

 

 

국회의원의 성적지향 여부보다 흥미로운 부분은 그가 내놓은 해명 내용이었다. 그는 성소수자 데이팅앱 스캠 실태 조사를 위해 설치했다고 밝혔다. 이성애자도 이런 사례는 당연히 있겠지만, 어지간하면 잭디가 표적이 되었나 싶다. 팬데믹 상황에 성소수자는 더 외로울 거라고 생각했나? 몇 안 되는 만남의 채널에 들어와 감정을 수탈하다시피 이용해먹는 현실이 조금은 비참하고, 퀴어는 여기서도 호구인가 싶은데, 우는 소리를 늘어놓는 데는 다른 사정이 있다.

 

2020년 팬데믹이 국내에 확산하면서 모든 미팅과 데이트, 회의와 토론 등 온갖 만남의 이벤트들은 미뤄지고 취소되거나 비대면으로 전환되었다. ‘거리두기’는 특별한 해명과 근거가 아니어도 외부 관계를 피할 수 있는 정당한 알리바이가 되었다. 게이 커뮤니티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코로나정국 초기 ‘번개를 할 때 콘돔은 안 껴도 마스크는 써야 한다’는 농담이 게이 씬에 돌았던 일은 코로나가 얼마만큼의 위험부담으로 다가왔는가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당시 게이 데이팅앱에는 한족(漢族) 또는 야마토(大和) 계열의 준수한 2-30대 남성 프로필이 난무했다. 하고 많은 어플 중에도 잭디에 특히 많았는데 아시아권 게이들이 많이 사용해서였을까. 그들은 하나같이 번역 투 문장으로 말을 걸었다. 한국에 이렇게 훤칠하고 준수한 관상의 아시아 남성들이 많이 거주했나보다도 의아한 점은 그들이 굳이 나를 찾아 말을 걸어 준 것이었다.

 

화이트컬러 직종으로 보이는 이들은 하나같이 무역업과 금융업, 관광업 등에 종사한다고 설명한다. 코로나 때문에 본국의 집에 가지 못하고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 추가로 붙는다. 처지를 성토하는 메세지는 당장 너님을 만날 수 없다는 밑장이겠지. 그들은 어플에 잘 접속하지 않으니 라인이나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자고 제안한다. 이전에도 피싱에 대해서는 몇 차례 이야기를 들어왔기에 그를 온전히 믿지는 않았다. 그저 심심함을 해소할 수 있다면 한번 이야기 나눠보는 것도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바닥에 굴러온 짬이 있으니 적당히 거리를 두기로, 한 명만 상대하지는 않고 여러 명과 소통해보기로 한다. 나는 현명한 소비자니까.

 

잘생기고 훤칠한 미남들은 하나같이 비트코인 또는 블록체인을 한다. 코로나 상황의 새로운 취미라고 생각하면 이상한 것도 없다. 소비가 위축되고 시장이 경색되면서 각국은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었다. 자연스레 여행도 가지 못하고 어디 가서 돈 쓸 곳도 없던 이들은 투자를 하면서 꿈의 볼륨을 키우던 시절이니까. 이들은 일이 많거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당장은 만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이 또한 코로나 쇼크 때문이겠지. 노동환경도 불안정하고 기업마다 경영체제가 바뀌었을 테니까, 월말이나 분기가 끝나는 시점도 바쁜데 일조하겠거니 이해해보기로 한다. 너무 이해를 잘하는 건가 싶었지만 일단은 스스로 나잇값 한다고 합리화를 해보자(죽어도 잘생긴 어린 애들한테 꿇린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무엇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누구에게나 만남을 미룰 수 있는 적당한 알리바이였으니까. 경계심이 없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엮여보기로 했다. 동료는 로맨스 스캠을 의심했지만, 누가 모르나. 알고 먹는 맛이 더 무서운 거라고(이게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반은 장난처럼 그들의 농간을 받아주는 거지.

 

그들은 매일 먹은 밥상을 이미지로 보내고 직장의 풍경을 찍어서 공유한다. 더러는 제 벗은 몸이라며 군살 없이 단단한 알몸을 공유하며 요즘 운동을 못 해 근손실이 생겼다고 애먼 투정을 부린다. ‘자기’니 ‘여보’니 온갖 애칭을 마음대로 만들어 부르면서 채팅창에는 스티커와 이모지가 난무했다. 모션 효과가 가미된 스티커들은 감정을 표현하는데 좀 더 효과적이었다. 간혹 밤이면 서로 혼술을 한다며 술상을 올리고 가족사를 고백하기도 한다. 방에서 키우고 있다면서 식물과 어항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느 날은 음성 메시지로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다. 종종 영상 클립을 찍었다고 보내오기도 했는데, 각종 텍스트와 이미지 영상으로 전해오는 일상의 소재들은 그의 실존을 감각할 수 있는 지지체였다.

 

물론 모두가 이렇지는 않았다. 개중에 나는 당신 직장의 정보들을 캐물었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은 동문서답만 하다가 나가떨어졌다. 그래도 남는 사람은 남는다고, 그는 나를 금이야 옥이야 아끼고 관심을 갈구했다. 잘생기면 재밌는 거라고 했던가. 귀찮을 법도 한데 나는 시간을 쪼개며 기상부터 취침까지, 아침부터 새벽까지 대화에 몰입했다. 우리 꼭 만나자. 만나면 어디를 갈지 지도를 켜놓고 맛집을 찾았다. 그가 소개한 사대문 안 근사한 호텔의 스카이라운지는 나도 즐겨찾기를 해놨다고 반가워했다. 정보와 만남의 동선은 이미 구비되어 있다. 만남만 없을 뿐.

 

더러 이들은 자신이 투자 중이라는 블록체인이나 코인 현황을 보여줬다. 대개는 실적을 중심으로 보여줬지만, 그들 중 소수는 성과뿐 아니라 과실까지도 이야기했다. 실패와 빈틈을 보여준다는 것은 얼마나 인간적인가. 바빠서 만날 수 없지만 매일 같이 상냥하게 사랑스러운 호칭을 부르고 안부를 궁금해한 이가 근래 얼마나 있었을까. 그는 코인이나 블록체인을 같이 하자고 조르기도 했다. 그래야 우리가 앞으로 행복해질 거라고. 투정은 가볍게 물리쳤다. 매일같이 강약을 두며 요청했고 조금은 의심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와중에 나는 블록체인 앱을 설치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투자와 관련된 대화가 빠지지는 않았지만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투자를 하려면 뉴스를 봐야 하고 세태를 알아야 한다기에 나도 알고 있는 지식과 소식들을 공유하면서 이야기는 깊어졌다. 그래도 이 상황이 하염없이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고, 너무 이 기간이 지속되면 텐션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 만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날짜를 정해둔다. 가까워 봐야 한 달여의 시간이 남았지만, 다정한 당신과 함께라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디데이가 가까워 오는 어느 날, 그는 갑자기 본국에 부모님을 만나러 가게 되었다고 약속날짜에 한 달을 연장하자고 요청한다. 현명한 사용자의 입장에서 유사 연애 놀이라 생각하고 거리를 두고 있음을 계속 인지했지만, 지금 올라오는 감정이 아쉬움이고 실망임을 지각하면서 현명한 소비자 행세를 반납하고 어느 정도 그에게 감겨 있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아쉽지만 알았다고 말한 것이 마지막 인사였다. 그와는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한참 뒤 거리두기가 완화되는 시점에야 그의 얼굴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는 이의 인스타그램 계정이 추천으로 떴다. 그는 내게 알려준 국적과 달랐고 직종도 달랐으며 나와 소통하던 시점에 올린 그의 사진들은 대부분 본국에서 찍은 것들이었다. 한국은 와본 적도 없는 것 같던 그는 채팅방을 나간 지 꽤 되었다. 그는 그가 아니었고 여기 없으며 내게는 라인 채팅 기록만 손에 남았다.

 

가끔은 번역기가 탑재된 AI와 대화한 것일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이미 데이팅앱에 많은 한국 게이들이 ㅈㄴㄸㅌㄲㅈㅅ(중년, 뚱, 통, 끼 죄송)를 복붙하며 얼굴, 몸, 나이, 남자다운지 여부와 심지어는 재정 상황과 주쉬직(주말 쉬는 직장) 여부까지 따져 묻는 상황에서 그들은 포용적이고 친절했으며 무엇보다 나의 일상을 궁금해했으니까. 물론 직업과 주택 소유 여부까지 이야기할 때는 쌔한 기분도 없지 않았지만, 아시안계 남자들은 정도만 다르지 속물처럼 말하는 건 기본값이구나, 라는 내면의 편견을 애써 작동시키며 이해하면 문답을 꺼림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한국 게이든 외국 게이든 어차피 만날 수 없고 보지 못할 거라면, 이리저리 재면서 자존감을 깎이면서 남자들을 찾을 바에 허상일지라도 매일 안부를 묻고 보고 싶은 마음을 확인하는 관계가 못할 것은 무엇인가. 충실하게 감정과 기호가 정보 값이 되어버린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길고 진하게 하고 나온 생각도 들지만, 당시 들었던 감정은 배신감보다는 아쉬움과 허탈함이었고, 지금은 조금 고마운 마음마저 든다.

 

온라인 연애 놀이에 대한 애착은 금세 식었다. 효성이 좋고 친절한 사람을 찾는 당신들의 패턴은 비슷했고 그만큼 지루했다. 웬만하면 곧장 만날 수 있는 이들을 찾자고 노선을 변경했다. 다시 어플을 돌렸고 이게 무슨 우연인지 만난 이들의 상당수는 20대의 중화권 외국인이었다. 새 학기 직전이었고 서울권 대학가에 기거해서였을까. 대부분 원룸에 거주하는 유학생 또는 일용직 노동자인 상대들은 예의 훤칠함과 귀티와는 거리가 조금 있었다.

 

무슨 분을 풀고 싶었는지 한동안 그들의 자취방을 가정 방문하듯 다녔다. 대학가 주택이나 원룸을 찾아가 5분여의 대화를 나누고 의식을 치르는 인스턴트 연희가 이어졌다(마스크는 끼지 않았다). 이후에는 집을 둘러보며 이주민의 고충을 이야기 나누고 어색하게 자리를 정리하는 짧은 관계가 반복되었다. 때로는 부동산 정보를 나누고 전공을 물으며 동네 맛집과 카페 리스트를 공유하기도 했다. 그렇게 만남이 끝나면 더러는 차단하고 극히 일부는 다음을 기약하게 되는 관계들이었다. 혹여 집에 필요한 작은 물건들이 있으면 당근마켓처럼 나누거나 선물을 주기도 했다. 채팅만 나눴던 친구들과 비교하면 어떤 지속성도 낭만도 안정감도 없는 만남이었고, 연결이 있어 봐야 느슨하고 금세 멀어질 게 뻔한 관계였다.

 

살과 타액만 오간 빈곤한 관계이거나, 살과 비슷한 것들을 치덕치덕 가져다 붙이지만 절대로 살일 수 없는 관계들이거나. 데이팅앱에 걸쳐 있는 만남은 만남의 내피마저도 어플의 문법에 예속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련도 기록도 없는 일회적 스킨십으로 남거나, 아니면 채팅 기록만 잔뜩 남은 기억만 남거나. 대리석 텍스쳐의 시트지를 쳐바른 폴리우레탄/아이소핑크 조각이나 바람만 가득 찬 거대한 풍선 같은 관계들. 아니면 무거운 돌이 누르고 지나가 자국만 남은 관계들. 기관 없는 신체와 신체 없는 기관 같은 엉터리 관계들. 하지만 엉터리에 위안받고 잠시나마 애착을 가지며 생활의 리듬을 짜 맞췄던 가짜 실존의 관계들. 금세 차올랐다가 한순간 빠져버린 무용한 관계들이 파도처럼 치고 지난 자리처럼 추억이 되는가 싶지만 영원히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모래 같은 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