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10. 크리스마스와 새해 맞이
여기동(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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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해가 밝았습니다. 올 해가 토끼 해라고 하는데 토끼띠인 저에게 행운이 많이 찾아오는 그런 새해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난해 행성인으로부터 ‘올해의 작가상’을 받고 정말 기뻤습니다. 저희 집에 가문의 영광인 이 상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큰 상을 이다음에 인보가 크면 육아 일기와 함께 선물로 주려고 합니다.
지난달에 찰스 아빠와 아기가 고향에 가서 입양 수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가 돌아오기 1주일전부터는 제가 초등학교 시절 소풍날을 기다리듯 하루가 왜 그리 더디 가던 지요. 이제는 아이가 없으면 살 수가 없을 것만 같습니다. 엄마 아빠 곁에서 오래도록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요즘 인보는 혼자서 숟가락으로 밥을 먹습니다. 그런데 먹는 거 반 흘리는 거 반 입니다. 아가 식탁 의자와 바닥 청소가 번거로워도 계속 이렇게 먹여야 합니다. 어느 정도 크면 혼자서 숟가락질 을 잘 하겠지요? 그 날이 언제나 올까나.
인보의 치아가 제법 많이 나서 이제 아랫니 6개, 윗니 6개나 나왔답니다. 그래서 양치질도 시작했습니다. 이 녀석이 컨디션이 좋을 때는 잘 하지만, 하기 싫으면 요리 조리 도망을 간답니다. 내가 해준다고 하면 난리를 치면서, “그럼 네가 해”하면 아주 좋아라 하며 칫솔을 잡고 양치를 합니다. 이 녀석, 양치질을 하지 않고 칫솔에 뭍은 치약을 맛있게 빨아먹어버리죠. 그제 치과에 가서 스켈링을 하고 난 후 아이의 첫 치과 방문은 어제쯤 해야하는지 물어보니 위 아랫니가 10개씩 나오면 치과를 방문해야 한다네요.아무쪼록 오복 중에 하나인 이빨도 튼튼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는 필리핀에서 아주 특별한 명절 입니다. 그야말로 크리스마스 석 달 전부터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면서 거리에서는 캐롤이 울려 퍼집니다.
올해 크리스마스를 위해 거실에는 커다란 트리를, 문에는 산타, 눈사람과 루돌프가 매달린 걸개와 반짝이는 등으로 꾸몄습니다. 트리의 제일 꼭대기에 우리 가족 사진을 매달고 나비와 꽃잎으로 장식했어요.
크리스마스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선물입니다. 올해 가족 선물로 아기는 눈사람 머리띠를 그리고 남편에게는 향수를 선물했습니다. 이 곳 필리핀은 열대기후라 눈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눈은 로망이지요. 인보에게 눈사람 머리띠를 씌워주고 깡총깡총 노래를 불러주었더니 신나라 했답니다.
지난번 크리스마스에도 남편에게 큼지막한 향수를 사주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인간이 고향집에 놓고 왔습니다. 제가 보기에 분명히 잃어버렸는데 매형(인보 친할아버지)에게 선물했다고 공갈을 치더라구요. 남편은 물건을 잘 챙기지 못하고 잃어버리기를 곧 잘 하는 선수 인데 그야말로 올림픽 금메달감입니다. 저한테 있는 야단 없는 야단을 맞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남편은 본인이 필요한 물건을 사용하고 난 후 제자리에 돌려 놓지 않는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제가 쫓아다니며 정리하다가 드디어 폭발했지요. “나는 당신의 부모님이 아니라 당신의 배우자 이니 제발 좀 쓰고 나면 정리하시라”. 지난 결혼생활 7년 동안 부부싸움도 엄청 했습니다. 그야말로 '사랑과 전쟁'을 100편도 넘게 찍은 것 같아요. 이 사랑과 전쟁은 백과사전, 아니 슈퍼컴퓨터 메모리도 모자랄 듯 하네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사랑과 전쟁'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부부간의 문제 뿐 아니라 남편의 형제들과 겪었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들의 시집살이와 아주 유사한). 이 다음에 인보의 물건을 간수하고 정리하는 습관은 엄마인 저를 닮아야 합니다, 제발.
찰스는 저에게 바디로션을 넣은 산타 양말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바디로션은 온 가족이 바를 수 있어서 아주 유용하지요. 가족 선물은 사랑입니다. 저희 집과 가장 친한 이웃은 엔딩 이모와 조 이모 입니다. 조 이모는 인보처럼 입양되어 자라났습니다. 이 두 이모님들이 우리 인보를 아주 많이 이뻐해주셔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작은 선물을 드렸습니다.
재야의 밤 불꽃놀이
12월의 마지막 날 저녁을 조금 일찍 먹고 시내로 나가 야경을 구경하였습니다. 지난 코로나 시기에는 열리지 않았던 불꽃놀이가 열렸습니다. 0시가 되자 폭죽들이 하늘로 치솟아 펑펑 터졌습니다. 불꽃놀이를 처음 본 인보는 매우 놀라며 멀리 도망가자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하늘의 불꽃이 신기했지만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놀란 듯 합니다. 공원에는 2023년이 새겨진 등불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2023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해변가를 거닐었습니다.
필리핀의 새해맞이 음식 풍습
필리핀은 새해를 맞이하여 두 가지 풍습이 있습니다. 첫째, 가족의 안녕과 번영을 비는 의식이 있습니다. 쌀에 돈을 꽂고 솜도 올려 놓습니다. 그리고 월계수 잎에 가족의 기원을 적어 쌀에 꽂습니다. 남편과 저는 가족의 건강, 평화 그리고 안정된 재정 이 세가지를 적어 놓았지요.
둘째,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여 온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습니다. 필리핀의 새해맞이 음식은 각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생선은 물고기가 헤엄을 잘 치치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잘 헤쳐 나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잡채와 같은 면 음식은 장수를 기원하는 음식 입니다. 찰스가 생선과 새우, 잡채, 돼지수육탕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삼겹살을 구웠고 배추 쌈에 맛있게 먹었습니다.
찰스는 요리를 아주 좋아하고 잘 만듭니다. 남편은 손도 무척 커서 요리의 양이 아주 많습니다. 그 이유는 필리핀이 대가족 문화이고 이웃과 음식을 나누는 문화이기 때문에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음식이 남으면 싸주는 것도 우리네 인심과 비슷한 것 같아요.
새해, 2023년
이제 새해가 밝았습니다. 행성인 여러분 좋은 계획들 많이 세우셨는지요?
아무쪼록 몸과 마음의 건강 잘 챙기시면서, 여러분들이 이루고자 하는 꿈이 이루어지길 기원 합니다. 특히 퀴어로 살아가면서 보다 안전하고, 친퀴어적 환경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마음껏 누리시는 한 해가 되길 저희 레인보우 패밀리가 응원 합니다. 힘차게 화이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