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14. 어느덧 아가는 두 살, 엄마는 환갑
여기동(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잠이 올 땐 아빠, 아플 땐 엄마
아가들은 잠이 오면 보채면서 잠투정을 하지요. 우리 딸내미가 아빠를 찾을 때는 졸리거나 잠잘 때 아빠 옆에 코알라처럼 딱 달라붙어 자는 껌딱지가 됩니다. 내가 자신과 아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누우려고 하면 (엄마 자리)저리로 가라고 손사래를 칩니다.
이 녀석 엄마를 찾을 때는 어디가 아프다고 약을 바르고 호 해달라고 달려 옵니다. 모기가 물어서 가려울 때 물파스를 발라 달라 하고요. 다리에 상처가 나서 밴드를 붙일 때는 연고를 발라 달라고 합니다.
문제는 물파스나 상처 연고를 만진 손을 입으로 빨아 먹기 때문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구강을 상쾌하게 해주는 스프레이는 먹어도 괜찮아서 그걸 뿌려주고 호를 해주는데, 이 녀석 여기도 아프다, 저기도 아프다 계속 해달라네요.
몇 일전에는 오토바이 연통에 기댔는지(?) 다리에 화상을 입었어요. 다행히 상처가 크지는 않았지만 물집이 생긴걸 보니 많이 쓰라렸을 것입니다. 찰스 아빠는 저에게 미안하다고 했지만 아이의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에 남편을 탓하지는 않았어요. 매일 소독을 하고 상처드레싱을 해주고 있습니다. 다행히 치료할 때 크게 울지는 않습니다. 피부가 재생될 때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듯합니다. 아가야 조심조심 해야해.
필리핀 생일: 빚을 내서라도 자녀의 생일잔치를
필리핀에서 생일날은 매우 중요한 날입니다. 아무리 궁핍한 가정이라도 생일잔치를 합니다. 이 말은 빚을 내서라도 생일상을 차린다는 의미 입니다.
필리핀에서는 한국처럼 100일 잔치는 없습니다. 대신에 첫 돐 생일, (행운의 숫자 일곱?) 7살, 성인이 되는 18세 생일은 큰 생일에 속합니다. 어르신의 경우 한국의 환갑 잔치와 같은 잔치를 50세에 연다는데 이는 예전에 일찍 단명 하기에 그런 듯 합니다(예전에 한국에서도 환갑을 크게 쇠었지만, 지금은 100세 시대에 칠순 잔치로 바뀌었듯이). 그리고 이후에는 10년 단위로 어르신들의 큰 생일인데 70세, 80세 그리고 90세 생일 입니다. 최근 필리핀 뉴스에 100세를 맞이한 어르신들에게 정부가 거금의 현금을 선물로 드렸다는 소식을 보고 ‘역시 필리핀 답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도 환갑이 되었다네
1963년에 태어난 나는 올해 환갑을 맞이합니다. 10대에는 성정체성과 성적지향을 일찌감치 인식하게 되었고 20대에는 가톨릭 신앙과 간호학 공부에 심취하면서 보냈습니다. 30대에 병원에서 간호사 노동자로 일했고, 37세 즈음에 동성애자인권연대(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회원이 되어 퀴어해방투쟁에 입문하였지요. 아, 그리고 석사과정을 기점으로 성소수자와 정신건강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40대에는 정신간호학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일하면서 공부하는 늦깎이 학생이었지만 공부하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가끔 저의 50대를 돌이켜보면 놀랄만한 개인사가 많은 시기였습니다. 50세에 박사학위를 받고 그 이듬해 대학 조교수로 임용되었지요. 52세가 되던 해 하늘의 인연(?) 이었을까요,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이듬해 필리핀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그리고 58세가 되던 해, 내 생애에 단 한번도 꿈꾸지 못했던 레인보우를 입양하여 우리 부부는 부모가 되었지요. 어느덧 딸내미는 두 살, 그리고 저는 환갑을 맞이했습니다. 정말 세월이 유수처럼 왜 이렇게 빨리 흘러만 가는지요?
늦둥이 아이를 갖게 되면서 저는 ‘몸과 마음이 팔팔한 88세까지 살고 싶네’라는 작은 소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의 마음을 나의 하느님은 잘 아시지요? 무병장수 만수무강 하려면 담배를 끊고 운동을 해야 하는데, 담배는 끊었다 피웠다를 반복하고 있어요. 어찌 되었든 부모 노릇을 잘 하려면 건강관리도 잘 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딸내미의 생일잔치
지난 4월 29일에 인보가 두 살을 먹게 되었습니다. 멀리 사는 인보의 유전적(genetic)적 가족들이 한걸음에 달려오셨습니다. (찰스 사촌누나인) 할머니와 (찰스 조카인) 이모 둘, (인보의) 사촌 언니 와 오빠 셋이 우리 집에 와서 생일을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인보를 많이 사랑해주는 (찰스 사촌 매형인)할아버지는 휴가를 내지 못하셨답니다.
파티의 달인 찰스 아빠는 생일상 장식했고, 우리 세 식구의 옷은 하와이언 스타일로 갖춰 입었습니다. 그리고 오프닝은 동네 꼬마들이 음악에 맞춰 귀여운 춤으로 열었습니다. 많은 지인, 이웃 그리고 친척들이 참석하여 축하를 많이 해주고 선물도 많이 주셨네요.
생일 상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먹거리지요. 필리핀에서 아주 유명한 통돼지구이와 잡채, 치킨, 생선구이를 푸짐하게 준비하여 함께 나눠 먹었습니다.
생일파티를 마치고 멀리서 온 가족들을 위해 리조트에 가서 물놀이도 했습니다. 해가 진 뒤에는 해변 공원에 놀러갔습니다. 이렇게 3박 4일을 보내고 기념품 가게에 가서 이모들은 에코백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커플티를 선물했습니다. 내년에는 할아버지도 함께 오세요.
두번째 생일을 맞이한 우리 딸 인보에게 뽀뽀해주고 싶구나. 다음 세 살이 될 때까지 큰 사고 없이 잘 먹고, 잘 뛰어놀고 지금처럼 튼튼하게 무럭무럭 자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