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15. 법적 입양은 무산?, 그래도 우리 딸내미 인걸!
여기동(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최근 우리는 전에 살던 집에서 가까운 새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나무가 많아 시원하고 정원도 넓은 월셋집을 얻었습니다, 지인들이 짐을 나르는데 손을 보태 주셔서 그나마 좀 수월했습니다.
이사 후 방충망을 설치하고 문 손잡이 등 수선이 필요한 것을 수리했어요. 필리핀에서 무언가를 신청하면 함흥차사로 진행되어 인내심이 필요하답니다. 그런데 웬일이니? 인터넷 회사를 방문하여 신청을 했더니 몇 일 만에 아주 빠르게 핑 개통 되었습니다. 덕분에 한국 뉴스와 다큐 보기 그리고 한국 음악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딸내미의 엄지 척, 나는 최고라고 응답
인보가 어느 날 갑자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어 나에게 내밀었답니다. 아마도 유아 동영상에서 보았거나, 동네 언니 오빠들과 놀면서 배웠는지 좋다는 의미로 엄지 척을 한 듯해요. 나도 이 녀석 응답으로 '최고예요'라고 외치면서 응답했더니 빙그레 웃어요.
인보를 자전거에 태우고 읍내 공원을 산책을 가곤 합니다. 가는 길에 이 녀석 한국말도 아닌 것이 영어와 필리핀 말도 아닌 자기 만의 언어로 이것 저것을 물어 봅니다. 그리고 가끔은 자기 혼자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뭐라고 뭐라고 중얼거립니다. 아직은 한국말도 필리핀 말도 문장을 구사해서 말하지 못하지만 이 단계를 거쳐 조금씩 말을 잘 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아가야, 네가 엄마의 한국말을 조금씩 알아들어서 기분이 좋아진 단다. 왜냐하면 엄마는 영어나 필리핀 말로 하면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거든.
법적 입양 절차가 무산되었다
지난 5월 견뎌내기 힘든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우리 부부가 학수고대하던 법적 입양이 조카 내외 (아이의 생부모)에 의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원래 우리가 진행했던 입양 절차는 올해 2월 말일에 완료될 예정 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카 내외가 2월 말일에 복지부를 찾아가서 취소 신청을 해버렸어요.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카 내외는 수시로 남편에게 돈을 요구했다고 하더군요 (아이의 2살 생일이 다가오자 돈을 요구하는 메신저를 계속 보내옴). 그래서 한번은 돈을 부쳐주었으나 그 이후로 돈을 보내지 않았거든요. 그랬더니 이들이 화를 내었고 복지부를 달려가서 이런 몹쓸 짓을 저질렀습니다. 당시에 남편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고통스러워 하면서 복지부 직원과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해야했습니다.
복지부 미팅을 앞두고 인보 친가 가족이 모두 모였습니다. 남편과 가족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답답했어요. 그러나 나에게 중요한 것은 입양절차를 다시 밟아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조카내외에게 두 손을 모아 간절히 빌었습니다. 남편 호적에 아이를 올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그들은 내 말을 듣더니 알았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남편도 가족들이 입양절차를 다시 밟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나는 이때까지 만해도 입양 수속을 다시 밟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복지부에서 우리 부부와 조카네와 미팅을 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를 데리고 갔어요. 현지어로 진행되어 무슨 말이 오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담당 직원에게 중요한 내용은 영어로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미팅이 끝나갈 즈음 나는 직원에게 앞으로 입양 절차가 다시 진행 될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직원 왈,
“필리핀 법에 의해(?) 당신들의 입양 절차는 완전 취소되었고 또한 재개가 불가능합니다. 앞으로 아이가 18세 성인이 되고 난 후 아이가 당신 부부에게 입양을 원한다면 입양하실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입양이 불가능하다니. 생모는 복지부 직원에게 자신들이 우리에게 돈을 요구했다는 말은 숨긴 채,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핑계와 구실을 늘어 놓았습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아이 생모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왜 우리와 의논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취소했냐고? 생모 왈, 우리 부부가 사망하면 아이가 자신들의 성을 계속 갖게 하기 위해서라나. 더욱 가관인 것은 내가 앞으로 이 아이를 당신들이 키울 것이냐고 묻자 자신들은 키울 능력이 없으니 우리 보고 계속 키워달라고 말하더군요.
무슨 궤변 입니까?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데!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번 미팅은 이미 취소된 입양 사례를 종료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분노가 누그러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인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고모들에게 어떻게 이렇 수 있냐고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카 내외의 사과를 받고 싶다고 말했어요.
저녁이 되어 다시 가족 회의를 열자고 합니다. 이런 회의가 아무 의미도 없는데다 나는 호흡기 감염으로 기침이 너무 심해서 몸도 너무 아팠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얻어맞은 충격으로 멘붕이 와서 최악의 컨디션으로 버텨야 했습니다.
나는 조카네에 우리 부부가 그동안 입양을 위해 쏟아 부었던 열정, 노력, 시간과 비용 등 무진 애를 썼는지 각인시켜야 했습니다. 그랬더니 조카네 회의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면서 미안하다고 말을 던지고 사라졌습니다.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인간들 같으니라구, 나는 마음 먹었어요 ‘생부모의 자격을 내팽개친 너희들은 결코 아이와 함께 친밀한 시간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차선책으로 양육권 이양 각서와 공증
나는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지만 정신을 차려야 했어요. 법적 입양이 물거품 되었으나 차선책으로 우리에게 양육할 권리가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조카 내외와 증인과 함께 변호사 사무실로 달려갔어요 다행히도 지난 해 입양 신청 서류에 공증을 서 주었던 변호사 여서 우리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 조카네 그리고 증인이 서명한 각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작성되어 변호사의 공증을 받았습니다.
- 양부모 찰스와 여기동은 2015년 한국에서 결혼하였음 (이런 상황이 동성결혼 법제화가 필요한 이유임).
- 생부모가 자발적으로 서명한 각서와 공증, 시청과 법원 관할의 지방자치단체의 문서와 생부모가 서명한 공증 서류를 통해, (입양부모) 찰스는 입양아 레인보우를 현재까지 입양하여 양육해오고 있음.
- 상기 증명서에 의해 입양 아동 레인보우가 찰스에게 입양되었다는 증거는 복지부에 제출된 입양 서류와 (입양 부모가 이수한) 위탁 양육 교육 이수증명서로 입증되었음.
- 입양부모 찰스와 여기동, 생부모, 증인 1인이 서명함.
이 각서가 우리에게 법적 양육권을 보장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조카 내외의 돈 요구 버릇을 보아왔을 때 앞으로도 돈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지요. 우리가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이들이 나쁜 마음을 먹고 경찰서에 우리 부부를 아이 유괴로 신고할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대비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랬을 때 이 각서는 우리 부부가 아이 양육권을 이양 받았음을 증명해 줄 것입니다. 앞으로 아이는 (찰스 아빠의 성씨) Cayasa가 아닌 (조카네의 성씨) Montenegro 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아가야, 네가 성인이 되는 18세가 되면 네가 직접 신청해서 아빠 호적에 올릴 수 있단다.
누가 뭐래도 우리 딸내미 인걸
저에게는 위로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나의 마음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우리 딸내미 ‘레인보우 그레이스 여기동 까야싸’ (영어로 쓰니 정말 긴 이름일세)는 태어나자마자 우리 품에 안겼고, 지금도 우리 슬하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 딸내미야’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