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DOR 특집] 그날 죽지 못한 나는
연수(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매년 11월 20일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다. ‘Transgender Day of Remembrance’, 줄여서 TDOR 이라고 한다.
2019년 11월 어느 날, 나는 ‘조각보’라는 트랜스젠더인권단체에서 TDOR 행사 공지를 올린 것을 보았다. 그때는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은 있었지만 명확하게 정체화하기 전이었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라고? 대체 얼마나 많이 죽길래..?’ 라는 당혹감과 함께, 연대와 지지의 마음으로 그 행사에 참가했다.
서울의 어느 한 건물, 어스름한 조명 아래 족히 수십 명은 되어보이는 사람들이 모였다.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깃발을 두른 LED 촛불을 든 채로.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은 조용히 무대 앞으로 나와 삶과 죽음을 오갔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했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모두 ‘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 있는지’를 서늘하게 알려주었다. 당사자 발언에 이어서, 기타를 들고 가지런히 앉은 싱어송라이터 분의 추모공연이 있었다. 그의 처연하면서도 몽환적인 목소리와 잔잔하게 물결치던 기타소리, 분홍빛과 하늘빛이 섞인 촛불들의 고요한 함성. 죽지않기 위해 숨죽여야 했던 삶들 앞에서 고개숙일 수 밖에 없었던 그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로 살아가고, 또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접한 이후로 나에 대한 고민은 깊어져갔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지정성별과의 불화, 혹자들의 말처럼 이것이 ‘정신병’이라면 치료를 받아 ‘정상’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정체성은 치료의 대상이 아니었기에, 나는 기꺼이 ‘비정상’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성 주체성 장애’라는 정신과 진단을 받고 호르몬치료를 시작했다. 나의 선택으로 인한 모든 결과를 감내하기로 했지만 지정받은 성별에 저항하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커다란 고통을 수반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부모는 ‘자식을 망쳤다’며 극심한 우울감과 죄책감에 빠져 신앙을 버렸고, 학교 동창이나 주변 지인들과의 관계도 대부분 단절되었다. 평범한 여자로 살고싶었지만 이 사회에서 남자도 여자도 될 수 없던 나는 그저 평범한 괴물이었다. 인간사회에 섞일 수 없는 이물질 같은 내가 살아있어봤자 사람들에게 피해만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지정받은 이 세상에서 나 라는 이물질을 ‘닦아내기로’ 결심했다. 그 날은 2020년 11월 20일, 공교롭게도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었다. 그 날 나는 손목을 그었고 결국 실패하여 응급실에 다녀왔다.
그렇게 나는 TDOR이 왜 있는지를 트랜스젠더의 삶을 겪어내면서 더욱 뼈아프게 깨닫게 되었다. 내가 죽으려고 하기 이전부터, 그리고 그 이후에도 수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우리 곁을 떠났고, 떠나가고 있다. 2017년 한국 트랜스젠더 27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 중 40%가 넘는 사람들이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자살로 내몰린 죽음만 심각한게 아니다.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트랜스젠더 살인을 기록하는 ‘트랜스젠더 살인 모니터링’ 프로젝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21년 9월까지 4042명의 트랜스젠더가 혐오범죄로 인해 살해당했다. TDOR의 계기가 되었던 1998년 리타 헤스터 살해사건이 수십년 동안 수천 번도 넘게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트랜스젠더가 어떻게 죽는지는 통계가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트랜스젠더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
애니 <진격의 거인>에서, 유미르라는 캐릭터가 손목을 그으면서 거인이 되는 장면이 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이따끔씩 욱씬거리는 손목을 바라보며 나도 마음을 가다듬는다. 내가 더 큰 사람이 되어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없애나갈 수 있도록, 그리하여 우리가 추모와 애도가 아닌 기쁨과 환대의 이름으로 모일 날이 많아지기를, 그 날 죽지못한 나는 이렇게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