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인터뷰] 용기와 응답이 되어주기 : 이경-하나 인터뷰
인터뷰이: 이경, 하나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인터뷰어: 남웅 (행성인 미디어TF)
인터뷰 날짜: 2023. 12. 28.
편집자 주: 2023년 하반기 무렵 이경 하나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니다. 정확한 행사 이름은 ‘퀴어부부 잔칫날’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웃었다. 이제 결혼식을 한다고? 그런데 결혼식은 아니라고? 무슨 사연일지 궁금했다. 퀴어부부 잔칫날이 참석한 이들로 하여금 웃음과 눈물, 반가움과 따뜻함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로 성료한 시점에서, 2023년 12월 말경에 진행한 인터뷰를 여러분과 나눈다. |
남웅(웅): 이경과 하나가 1월에 큰 행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겸사겸사 두 분을 인터뷰하게 되었어요. 저야 오랜 시간 가까이서 멀리서 함께 해왔지만, 두 분에 대해 모르는 행성인 회원들도 많잖아요. 먼저 본인들 소개를 부탁드려요.
이경: 저는 곽이경입니다. 행성인 회원이고 회원 된 지는 너무 오래 돼서 크게 숫자를 세는 게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은 민주노총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행성인 활동은 잘 못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민주노총 성소수자 조합원 모임을 하고 있어요.
하나: 저는 행성인 온 지 10년 되었어요. 지금은 놀고 있고 결혼과 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웅: 결혼과 여행 이야기는 이따가 좀 더 자세히 들어보기로 하고요. 두분은 어떤 관계인가요?
하나: 부부라고 소개를 하고 있어요.
이경: 배우자로, 가족관계죠.
웅: 하나는 행성인 온지 10년이 되었군요.
하나: 이경이랑 사귄 지도 10년이에요.
활동과 연애
웅: 이제 술번개에서 할법한 질문을 하게 될 텐데(웃음) 저야 두 분이 만나기 전부터 봤던 사이라 다 아는 얘기기는 한데 그래도 모르는 사람들도 있고 파다보면 제가 모르는 얘기도 있을 거니까. 흠흠. 두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첫 만남부터 사귀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하나: 제가 처음 2013년도 5월달에 행성인 등산 모임(흥산회)에 왔어요. 그리고 이경을 만났죠. 당시 저는 애인이 있었고 이경은 솔로였어요. 얼마 안 있어서 제 애인이었던 분이 바람을 피워 헤어졌는데, 이경이 좋아졌죠. 원래 마음이 좀 있었는데 이제 프리가 되니까 이경한테 더 마음을 표시할 수 있었어요. 5월달에 처음 보고 7월 16일부터 사귀기 시작했으니까, 2개월 쫓아다니다 사귄 거죠.
웅: 그때까지 HIV/AIDS인권팀 활동도 반짝 하셨는데요. 두어달 하시다 갑자기 안 보였는데, 생각해보니 사귄 시점이랑 딱 맞아떨어지는군요.(웃음) 그 당시 이야기도 좀 들려주세요.
하나: 이경이 그런 걸 되게 좋아했어요. 활동을 하면 어땠는지 묻고, 이야기하면 듣는 걸 되게 좋아하는 거에요. 그래서 활동을 하게 됐어요. 얘기를 해주려면 활동을 해야 하고, 되게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어요. 그나마 여기서(당시 동인련) 할 수 있는 게 에이즈팀이었던 거죠.
그때 에이즈팀에서는 푸제온인가 HIV/AIDS 치료제 이슈 이후로 초국적제약회사 특허권에 대한 공부인가를 한다고 해서 그걸 좀 해볼까요? 라고 얘기했는데 이경이 너무 관심 있게 잘 들어주니까 열심히 다니는 척했지. 사귀고 나서는 (제가) 되게 바빠지더라고요. 그러다보니까 멀어진 거지.
이경: 아니 근데 진짜 그 이후로 한 번도 안 나왔어?
웅: 속이 투명한 친구라고 생각했어요.(웃음) 목적이 있는 참여였다...그 때가 2013년이었는데, 이경이 운영위원장 하던 때죠.
이경: 운영위원장을 하고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번개를 나가볼까 하는 마음도 들던 시기였어요. 실제 나가다가 행성인 친구들도 만나고 그랬어 길바닥에서. 아무튼 김하나 씨를 등산 모임에서 만났는데 그때 제가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2010)에서 한 꼭지를 쓴 적이 있어요. 그걸 너무 잘 읽었다고, 팬이라고 그랬어요. 나는 그런 책을 읽었다니 너무 신기하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죠. 아무튼 저는 활동에 대해서 물어보는 걸 좋아하기도 했지만, 이제 호감이 있으니까 더 물어봤고 하나에게 여기저기 나오라고 했어요.
그때 기억에 남는 활동은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 서명운동을 하는데, 레즈 바를 돌면서 받았던 게 있어요. 평생 못 가본 레즈 바를 하나가 열심히 가고, 근데 사람들은 군형법이 뭔지 잘 몰랐던 것 같아. 아무튼 열심히 받았다~ 그리고 본인이 특허에 관심이 많다고도 했어요. 또 빈곤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고도 했고요. 이 얘기는 각색 좀 해줘요. 너무 얘가 이상해 보이지 않아?(웃음)
웅: 10년 전 일을 따져 묻는 청문회 같기도 하고…하나는 하나는 행성인에 오게 된 계기 같은 게 있어요?
하나: 우리 목사님이었던 사람. 지금은 척을 져서 목사라고 말하기도 힘든 사람이 있어요. 그 목사님이 예배 시간에 한겨레 신문에 있는 육우당 시집을 읽어주면서 행성인을, 당시 동인련을 소개해 주셨어요. 그래서 그걸 보고 이런 단체가 있단 말이야? 그러면서 가입하게 된 거죠.
웅: 육우당과HIV/AIDS인권팀이 맺어준 인연이구나. 그렇게 해서 사귀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후에 두 분의 단체 안팎 활동이나 관계들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하기는 해요.
아까 하나가 연애를 시작하면서 행성인 활동을 내려놨다라고 말씀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행성인에 지금까지 나오는 걸 보면 활동을 아예 안 했다고 보기는 어렵잖아요. 연애 이후에 활동이나 관계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이경: 이게 어떻게 들릴지 걱정이긴 한데, 나는 솔직히 그때 행성인에서 누굴 사귀는 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또 안 되면 나는 딴 데로 가야겠다. 그러다가 사귀고부터는 활동이나 관계에 변화가 생겼죠. 하나하고 행성인 얘기를 하는 시간이 많아요. 같은 단체에 있다 보니까 이런저런 활동에 대한 것들, 자주는 못 나와도 이 행사는 가보자, 그런 게 있었고.
이 단체에서 만나서 이제 사귀고 같이 살고 한 지가 10년이 지났잖아요. 이때쯤 되니까 사람들이 그냥 하나는 하나 이경은 이경, 이렇게 보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한묶음으로 보는 인상이 있었는데 지금은 따로 보는 생각이 듭니다.
웅: 하나는 어때요?
하나: 전 사람 만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활동 같은 걸 잘 안 하는데 이경이랑 사귀기 전에는 열심히 다니는 것처럼 보이고 사람들을 만났는데, 사귀게 되니까 본모습이 나오는 거죠. 그래서 굳이 사람들 안 만나고 이경만 만나요. 예전에는 회사-집-교회만 다니다가 이제 회사-집-행성인 이렇게 나오고요. 원래 교회도 일주일에 한 번만 가잖아. 그것도 잘 안 가지. 지금도 잘 안 가지만 비슷한 느낌인 것 같아요.
웅: 하나가 연애를 하러 행성인에 온 건 아닐 거고, 그러니까 여기에 이경을 만나야겠다는 마음으로 처음에 온 건 아닐텐데, 처음 행성인에 온 이유가 있을까요?
하나: 그냥 행성이라는 단체에 후원만 하려고 그랬는데, 당시 활동했던 나라한테 전화가 온 거죠. '이런 활동이 있는데 해볼래요?' 처음엔 너무 무서웠어요. 노멀해 보이는 데 가고 싶었어. 진짜 그래서 행성인 등산모임(흥산회)을 간 거에요. 그때 너무 떨렸어요. 이상한 사람들 있을까 봐. 근데 한번 가보니까 괜찮더라고요. 여기 사람들 재미있네, 친해지고 싶어서 계속 나간 거지.
활동했던 HIV/AIDS인권팀은 이경 때문이기보다는 특허 이슈에 관심이 있어서 들어가긴 했는데 너무 재미없는 거에요.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그런데도 활동은 계속 했던 거지. 그러다가 애인 만나고 본 모습으로 간 거고.
웅: 대놓고 재미없다고 말하는 것도 재능입니다. HIV/AIDS인권팀 활동 부분은 제가 뺄지 고려해야 겠군요.(웃음) 이전에는 행성인 오기 전에 다른 친목 모임이나 활동을 따로 하지는 않았나요?
하나: 교회만 다녔어요. 교회랑 회사만 다녔죠.
웅: 행성인 오면서 많이 달라졌겠구나.
하나: 맞아요. 특히 행성인 오고 이경 만나면서 갑자기 중간으로 확 편입됐다고 해야 되나? 그냥 회원으로만 있으면 주변만 맴돌텐데 얘랑 만나고부터는 활동의 중심으로 들어가 버리니까. 그런데 주요 활동보다는 캠페인이나 집회 부르면 가서 그냥 서 있거나 서명 받거나 하는 일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재미있는 회원 활동을 시켜주지 않고 계속 뭐 들어달라고 하고.
이경: 내가 그때 많이 시켜 먹었어요. 하나야, 짐 좀 들고 운전해서 와. 행성인 짐 실어서 어디좀 가줘. 제가 실수했네요.
하나: 그때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정비를 시작했어요. 새로운 일을 하니까 나도 이제 정신이 없었던 거죠.
웅: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활동을 처음 하는데 그냥 회원들끼리 사귀는 것도 아니고, 단체 운영위원장이랑 신입 회원이 사귀면서 활동에 휩쓸려버린 거잖아요. 피곤하거나 힘든 건 없었어요?
하나: 그래도 너무 재밌었어요.
이경: 다행이다. 행성인 같은 단체 활동을 할 때 캠페인을 같이 하거나 집회에 나가는 게 재미를 준다고 생각했어요. 집회에 나가면 해방감을 느끼잖아요. 무지개 흔들면서 다니고. 그런 거는 대부분 재밌어 하는데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끼기에는 어색할 수 있잖아. 그걸 넘어서기가 쉽지 않죠.
근데 하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다니면서 그 과정이 많이 단축됐죠. 내가 지금까지 보면서 김하나가 제일 재밌어 했던 건 집회였던 것 같아요. 집회하고 행진하고 하는 걸 되게 재미있어 했던 것 같아.
결혼을 해야했다
웅: 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 만나서 사귀는 과정은 잘 맞는 활동을 찾아가는 시간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지금 두 분이 같이 살고 있죠. 동거는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이경: 2016년 가을부터 백남기 농민 투쟁할 때, 서울대병원에서 부검 저지 투쟁 할 때쯤에 합쳤어요.
웅: 바쁜 와중에 합치자고 했던 동기가 있었나요?
하나: 나는 항상 같이 살고 싶어 했어. 같이 살고 싶어 했는데 이경이 안 된다 안 된다 하다가 엄청 쪼르고 하니까 내가 불쌍했는지(웃음)
이경: 그건 아니고…우리 엄마가 혼자 계시니까 두고 나오기가 좀 어려웠어요. 김하나는 그때 맨날 울고 그랬죠. 제가 너무 바빠서 일주일에 한 번도 볼똥말똥한 상태에서 얘와의 관계를 건강하게 지속하려면 적어도 함께 사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엄마에 대한 미안함을 누른 거지. 관계를 잘 만들려면 계속 이 상태로 가는게 힘들게 보이니까.
하나: 그래서 엄마한테는 경기도 쪽으로 발령났다고 뻥치고 합치게 되었어요.
이경: 엄마는 왜 나가냐,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어요. 빠져나오고 싶었지. 근데 그 뒤로는 안 찾더라고요.
웅: 처음 살았던 지역이 어디였죠?
이경: 군포에서 1년 살았어요
웅: 하나는 그전에는 계속 혼자 살았던 거였어요?
하나: 언니랑 살았어요. 그리고 이경이랑 사귈 때쯤에는 언니가 다른 데로 이사 가면서 혼자 살고. 그래서 2~3년 정도 혼자 살다가 이경이랑 합친 거죠.
웅: 그럼...이경이 민주노총 일한 지 얼마나 됐죠?
이경: 2014년 가을부터 일했으니까 10년 차
웅: 한참 다 바쁠 때였네. 하나는 왜 그렇게 같이 살자고 밀어붙였던 거에요?
하나: 너무 보고 싶어가지고 너무 같이 있고 싶어가지고 맨날 서울까지 운전해서 오고, 이경 데려다 주고 집에 가면 12시 1시 그랬고 그것도 다행이면 만나는 거고 못 만날 때 더 많았고 그래서 많이 울었어. 찡찡이 찡찡이
웅: 합친 다음부터는 관계가 많이 좋아졌어요?
하나: 그렇죠. 우리는 합치자마자 경제도 같이 합쳤거든.
웅: 진짜?
이경: 합치고 나서는 사이가 더 좋아진 것 같아요.
웅: 어느 정도 좀 상의를 했겠어요. 동거와 동시에 경제를 합친 거면
하나: 아니, 합치고 나서 내가 경제까지 합치자고 그것부터 졸랐어요.
이경: 디테일한 협상을 하지는 않았고, 나는 그렇게까지 본격적으로 합쳐야겠다는 생각은 굳이 안 했는데, 김하나 씨는 내가 다 하길 바랐어요. 금전 관리를
하나: 월급 다 줄 테니 나 용돈 주세요~
이경: 탐탁치 않았지만 그렇게 되었죠.
웅: 그랬군요. 이제 살림까지 합치고, 그동안 애인 사이라고 소개를 했던 두 분이 이제 뭐라고 해야 돼. 사실혼, 유사 부부 같은 관계처럼 된 거잖아요, 동거를 하고 경제까지 합친 거면. 이 관계 설정이 연인에서 부부나 다른 친밀한 관계로 인식이 바뀐 어떤 계기가 생겼을 것 같아요.
이경: 이게 되게 자연스럽게 변한 것 같은데, 그러니까 김하나 덕이 컸다. ‘덕’인가 ‘때문’인가. 내가 봤을 때 하나가 이성애자로 태어났으면 전형적인 한국 남자에요. 처음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나하고 평생 가야지 하면서 반지를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관계에 대한 열망이 강했어요. 결혼을 하고 싶어 하고 함께 가족을 이루고 싶어 하고 양쪽의 부모님을 잘 봉양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되게 컸어요.
이 사람은 내 사람이다 하는 마인드가 컸는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고 동반자 관계다 정도. 연인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바뀌었죠.
한 두 가지 계기가 생각나는데, 그동안은 누가 배우자입니까? 물어보면 약간 걸리는 게 어느 정도 있었거든요. 그러다 김하나가 입원을 한 적이 있어요. 갑자기 차 사고가 난 거예요. 얘가 다치고 나서 나한테 처음 연락이 오고 내가 병원에 가서 원무과에 접수하는데 이제 관계를 물어볼 때 내가 배우자라고 했거든요. 동성 배우자라고. 신기하게 이물감이 하나도 안 느껴졌어.
그때가 거의 한 3~4년 전인가. 그 정도 됐어요. 그 전에는 ‘파트너’에요, 아니면 ‘동성 파트너 동거인’이에요, 이런 식으로 되게 다양하게 관계를 소개했는데 ‘배우자’라고 말하는 게 괜찮아졌죠. 그게 무슨 차이였는지는 모르겠어요. 병원에서 관계를 이야기해야 한다면 이게 가장 적절하다는 생각을 했고, 두 번째 생각이 나는 건 양쪽의 원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하면서. 특히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하면서는 의식을 더 많이 한 것 같아요. 서로 사랑하는 감정을 넘어서 이후에 나이가 들었을 때 어떻게 삶을 설계할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 같아요.
하나: 전 얘 보자마자 혼인이라고 생각했어요. 내 배우자다 (웃음)
웅: 궁금한 게 있는데요, 그럼 하나는 그전에 만났던 파트너들에 대해서도 그런 식으로 의미를 뒀었어요? 원래 스타일이 그래? (웃음)
하나: 차이지만 않았으면 그랬을거야. 난 다 차였거든.
이경: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가. 내가 아니었을 수도 있거든 이 자리에.
웅: 그치 내가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내가 아닐 수도 있지. 인터뷰의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고.
하나: 어딘가 조용히 누군가와 살고 있었겠지.
원가족에게 가족 소개하기
웅: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은 언제 했어요?
이경: 나는 2018년
하나: 근데 이게 사실 애매한 게 (이전에도) 얘네 가족들이 거의 다 알고 있었어.
그냥 이경 본인 입으로 얘기한 게 그러니까 내가(파트너가) 있다 이렇게 얘기한 게 18년도고, 대부분 눈치 챘지만 다른 데서 얘기하지 말라는 식의 분위기여서.
이경: 그치. 얘하고의 관계. 가족들에게는 확고한 관계로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하나: 저는 14년도. 15년도인가? 14년도 일거에요. 14년 가을쯤 엄마한테 커밍아웃을 하고 한 달쯤 힘들었죠. 엄마와 관계가 너무 안 좋아서 힘들어 하다가 아빠가 그 얘기를 듣고 괜찮아 하나야, 하나만 행복하면 됐지 뭐. 이렇게 얘기하니까 엄마가 갑자기 그렇다면 나도 괜찮아! 이렇게 나와서 2014년도에는 그렇게 잘 마무리가 됐어요. 그 뒤로 계속 커밍아웃을 하면서 이경 사진을 보여준다거나 이경을 직접적으로 소개시켜주지는 않아도 나한테는 애인이 있다, 이런 식으로 이어졌어요.
이경: 아 저는 원가족 엄마한테는 18년이었고 동생한텐 더 빨랐어요. 동생은 그전 해에 (커밍아웃을)해서 '엔진을 켜둘게'(행성인 20주년 후원주점) 당시 (동생) 애인하고 둘이 같이 왔죠.
웅: 동생분한테도 커밍아웃 할 때 파트너가 있다는 걸 얘기했어요?
이경: 그렇죠. 인사했지.
웅: 하나도 2014년도에 처음 커밍아웃 하면서 파트너가 있다는 얘길 했나요?
하나: 했어요. 15년도에 엄마가 언니랑 부모모임 왔었거든. 오면서 이경 한번 얼굴 보자고 해서 같이 만났어요. 맥주 한잔 마시면서 이경이랑 인사하고 그다음 날 가고. 그리고 얼마 안 돼서 2016년에 이경이가 우리 집에 왔지.
웅: 그당시면 부모모임이 행성인 소모임처럼 운영되었을 때인데. 넌 진짜 행성인을 십분 활용했구나. (웃음)
하나: 십분 활용했지. 그리고 우리 집에 온 걸 기억하는 게, 그때 우리 아빠를 소개시켜주는 자리였어요. 아빠가 그랬거든, 나는 그냥 밥만 먹고 갈게. 그러시는 거야. 그래서 ‘알았어, 밥만 먹고 가’ 그랬어.
근데 밥을 먹고 이경이랑 윤진이랑 그 총무님이라고 이경이랑 되게 친한 분이 있거든. 세 분이 왔어요. 부모님 계신 강원도 사북집에 온 거죠.
앉아서 밥을 먹고 아빠는 다 먹었으니까 가셔도 되는데 안 가시는 거야. 저기 슈퍼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계속 이렇게 보고 있더라고.(웃음) 우리 대화에 말을 자꾸 얹으시고 계속 우리 보고 흐뭇하게 보고 계시는 거죠.
그렇게 이야기를 다 끝내고 등산 가기로 했거든. 민둥산 갔다오고 나서 숙소에서 같이 놀고 다음 날 집에 가는 계획이었는데, 아빠가 연락을 한거에요. 다음 날 점심을 아빠가 사주고 싶다. 그래서 같이 점심 먹고. 그리고 빠이빠이 했지. 그 다음부터 아빠가 이경을 너무 좋아하는 거에요. 그때부터 이경을 되게 좋아했어.
웅: 이경 어머님한테는 언제 같이 가서 인사를 드렸어요?
이경: 18년도. 동생 결혼식 날 처음 뵀어요. 엄마한테 꼭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한 아주 직접적인 계기는 내 동생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하나가 나와 배우자 관계로 사는데 가족들한테 말을 못해서 얘가 못 온다는 게 약간 킹 받는 지점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없는 사람처럼, 오더라도 그냥 친구인 것처럼 왔다 간다? 그건 싫었어요. 그러니까 사실은 꼭 데리고 와야 하나 싶지만 그렇다고 안 오면 좀 그렇고 복잡한 심경이었는데, 그때 처음 봤죠.
웅: 사전 예고를 하고 인사를 했던 거야?
이경: 데리고 올 것 같다고 했어요.
웅: 그때 이경 어머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어요?
이경: 우리 엄마 어색어색하지만 그래도 되게 잘 말을 듣고, 우리 이모들이 또 되게 좋은 분들이에요. 동화작가 이모랑 엄마 큰언니인 큰인모가 계시는데, 우리 이모들이 하나한테 먼저 네가 하나니? 그러면서 안아주시는 거야.
하나: 눈물이 막 나가지고 동생 결혼식 날 화장실 엄청 갔어요. 그때도 민해리 씨가 함께했어요. 항상 감사합니다. 어딘가에 써야 되는데
웅: 행성인의 관계에도 십분 빚을 지고 있는(웃음)
레즈비언 커플로 동거하기
웅: 동성 커플로 동거를 한 게 꽤 오래됐잖아요. 그러면 이제 남다른 일화나 일상에서 겪는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주거부터 이웃이나 집주인과 마주칠 수밖에 없잖아요.
하나: 집주인보다 군포 오피스텔에 둘이 살았을 때 빌라 관리하는 분이 엄마한테 빨리 결혼시켜야지 여자 둘이 산다고 막 얘길 했대요. 엄마는 퉁명스럽게 대꾸하셨다고 하는데, 관리하는 분들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이 말할 때가 많아요.
이경네 집도 아파트 관리 해 주시는 분이 나한테 대놓고 무슨 관계예요? 그랬어. ‘내가 그걸 꼭 말씀드려야 되나요?’ 그러니까 여기 사인을 받아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더라고. 그래서 이따가 어머니 내려오시면 하실 거에요. 그러고 올라왔거든. 그래서 어머니한테 일렀지. ‘어머니 저 사람이 나한테 무슨 관계냐고 묻는데 말해도 돼요?’ 지금 빌라에 사는 사람들은 이제 알 거에요.
이경: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지금은 망원동에 살고 있는데요. 여기는 (퀴어들이) 너무 많아요. 망원동은 그냥 여여(女女) 가족, 그러니까 여여 동거 관계가 너무 많아서 특별하지 않은 상태가 좀 되어 있어요. 길을 다니다 보면 우리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부치들이 너무 많고. 그런 동네에 사니까 좋아요.
하나: 근데 회사 다닐 때는 그런 게 있지. 이제 같이 살잖아. 그런데 나도 모르게 같이 사는 사람 있다고 말할 뻔 한 적이 있다거나, 되게 오랫동안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핸드폰 사진이나 이런 거는 절대 안 보여주니까.
그러다가 직장을 그만두기 한 1년 전부터 커밍아웃을 했어요. 놀랐던 건 어떤 언니가 ‘알고 있었어~’ 이러는 거에요. ‘어떻게 알아?’ ‘딱 보면 알지 언제 얘기하나 했어. 누가 더 예뻐?’ 라고.(웃음) ‘제가 더 예뻐요’ 그랬어. 커밍아웃 하니까 특별히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더라고요.
웅: 하나도 ‘걸커’의 기운이 있나보다. 이경 같은 경우는 단체 안에서 주로 연애를 했으니 행성인이나 당시에 동인련에서 활동이든 인간관계든 어느 정도 겹쳐 있었잖아요. 그래서 공유할 것들도 많았을 거고요. 그럼 하나는 이경 전에 다른 파트너들 만날 때는 어떤 관계나 활동들을 공유했는지 새삼 궁금하네요.
하나: 기억이 안 나(웃음)
이경: 재밌을 것 같은데요.
하나: 첫 번째 애는 필리핀 분이라 대화가 힘들었고. 두 번째 2년 사귀었던 친구는 교회에서 만나서 교회나 하나님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 나보다 10살 어렸어요. 당시 그분은 대학생이었는데 학교 다니니까 힘들다는 얘기 했고, 그런 얘기하면서 교회 얘기 그때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난 손잡고 밖에 나가는 것도 이경이 처음이었어요. 같이 벚꽃놀이 해본 적도 없고 사람들 많은데 둘이 나간 적도 없고.
웅: 그럼 뭐 했어?
하나: 방에서, 방에서 뭐.. 했어.
웅: 방에서 꽃놀이를…(웃음) 이경 만나면서 상당히 생활이 많이 바뀌었겠다.
하나: 엄청 많이 바뀌었죠.
이경: 자기는 이렇게 자기가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하나를 보고 있으면 너는 그래도 여기에 와서 날 만난 건 참 다행이다. 저렇게 티내고 싶어 하는데 상대방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못했던 거잖아요. (하나: 그치)
웅: 만약에 이경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만나서 반지도 주고 결혼도 하고 그렇게 해서 둘만 방 안에서 계속 살았으면 너 의처증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하나: 날 너무 몰라.(웃음)
맞춰주는 관계
웅: 하나의 과거를 들으면서 조금 놀란 건, 지금의 하나를 바깥에서 보면 상당히 액티브해 보이거든요. 캠핑카를 직접 만들어서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하나: 전 액티브하지 않아요. 진짜 집에만 있고 누굴 만나지도 않거든. 캠핑카 만들 때도 혼자 사부작사부작 가서 만들었지.
웅: 그럼 이경이랑 생활을 많이 공유하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두 분의 관계가 롱런할 수 있는 건 단지 감정만 있어서 보다는 같이 공유하는 활동이나 취미 같은 게 있으니까 여기까지 왔을 거라 생각하는데, 두 분은 활동 말고 다른 같이 하는 취미 같은게 있나요?
이경: 저는 지금쯤 되니까 하나가 나한테 많이 맞춰줬다고 생각을 하고, 그 덕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저는 활동하는 게 우선이다보니까 거기에 그냥 같이 와서 있는 경우가 많지만, 요즘에는 많이 그러진 않지. 그래도 나와 함께 하는 활동들을 좋아해주는 것 같아요. 한동안은 집회에 같이 나가는 것들이 주말 데이트의 거의 전부였는데, 그 당시 사진을 보면은 다 집회장에서 찍은 거예요. 본인도 그게 싫기만 했으면 안 나왔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잘 이해 하면서 시간을 저랑 같이 보내기 위해서 낸 게 좋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우리가 취미나 여행을 같이 하는 걸 좋아한다거나 이런 것 때문에 오래 갔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보다는 서로가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맞춰준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더 많이 알게 되는 것 같고, 그걸 맞출 수 있었기 때문에 함께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걸 이해했기 때문에 나는 김하나가 캠핑카를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 그러라고 했죠. 사람들은 내가 캠핑카를 엄청 타고 떠나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사실은 하나가 만들고 싶어했던 거였어요. 하나가 진짜 하고 싶어 하는 거면 거의 다하라고 했어요.
하나: 캠핑카 만드는 게 돈이 많이 들기도 하고 막연해요. 처음에 만든다고 그랬을 때 니가 어떻게 만들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왜냐하면 기성 프레임을 가지고 짠 게 아니라 용접부터 시작해서 만드는 거니까. 내가 만든다고 했을때 이경이 1년은 안된다고 했어요.
이경: 제가 보기에 사람들은 내가 캠핑카를 원했다고, 우리 둘이 함께 키워온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건 아니였어요. 나는 처음에 택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나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셔서 그럴거면 그냥 하라고 놔두는 게 낫겠다 생각했지. 김하나 생각보다 고집이 세구나, 이걸 새삼 깨달은 뒤로는 그냥 하고 싶은 거 있으면 거의 막지 않고 대부분 보장을 해주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왔고요.
하나: 맞아. 제가 하고 싶은 걸 이경이 막은 적은 없어요.
웅: 이제 슬슬 나오는 것 같은데, 캠핑카 얘기를 좀 더 듣고싶어요. 최근에 캠핑카를 만들었죠? 왜 이렇게 만들고 싶어 했어?
하나: 그게 제 꿈이긴 했어요. 저는 그냥 이동할 때도 잘 수 있는 곳, 그러니까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곳, 그러니까 어디든 갈 수 있는 나만의 작은 공간, 우리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이제 이경이랑 같이 살고서부터인가 아니면 사귀고 나서부터 얼마 안 됐을 때 세계여행 가자고 얘기했었거든. 그래서 처음에는 배낭 메고 여행을 가려고 했다가 그것보다는 캠핑카를 만들어서 유라시아를 횡단하고 싶어지는 거야. 유튜브 보니 그런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런 거 하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그럼 나도 만들어볼까, 이런 상상을 계속하니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거야. 그래서 이런 저런 조건의 캠핑카를 만들고 싶다고 이경한테 계속 얘기를 했고, 상상하고 만들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만들 수 있게 도와주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생각했던 모습 그대로의 캠핑카가 만들어진 거야. 원래 내 꿈이었어.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었어. 여행 다니고 싶었어.
이경: 그래서 나는 엄청 잘 맞는다기보다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걸 잘 하게 해주는 거죠. 싸울 때도 우린 거의 싸우진 않았는데 끝장을 보려고는 안 했던 것 같아요. 내가 꼭 너와의 싸움에서 이겨야지 이런 생각은 별로 안 했던 것 같고, 가급적이면 이 사람이 가장 좋아하고 편한 걸 잘 맞춰주려 노력을 해요. 그래도 하나가 많이 맞춰줬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 동의해요.
웅: 아름답군요. 캠핑카 제작은 얼마나 걸렸어요?
하나: 만드는데 1년 걸렸어요. 주말에만 가서 만들어서. 지금도 계속 만들고 있어요. 예를 들어 이제 차 내부를 고친다거나 뭔가를 달거나.
‘가족주의자’
웅: 캠핑카는 새해에 요긴하게 사용한다고 들었어요. 그게 아마도 잔치 이후에 예정된 계획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이 계획은 조금 이따가 들어보기로 하고, 먼저 1월 행사를 이야기하기 위한 빌드업을 좀 더 해볼게요.
아까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셨죠. 두 분이 커밍아웃도 하고 부모님들한테 서로를 소개도 해드렸다고 했잖아요. 양가의 부모님들은 혹시 만남을 가졌나요? 어떤 자리였어?
이경: 우리 엄마랑 이모를 모시고 사북으로 여행을 갔어요. 우리가 그날 (하나) 어머님이랑 아버님을 하이원 리조트에서 만났죠. 그때 코로나가 한창이어서 4명만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멀리멀리 떨어졌는데요. 그렇게 얼굴 보면서 인사하고 차도 마셨어요.
하나: 엄마 아빠 나랑 이경 어머니 넷이 앉고, 저 옆 테이블에 이경이랑 이모님들 이렇게 앉았어요. 저쪽에서 날 너무 놀렸지. 나는 우리 엄마 아빠가 이상한 소리 할까봐. (웃음)
웅: 그 자리에서는 어떤 얘기들을 나눴어요?
하나: 감사하게도 이경 어머님께서 하나 덕에 이경이 잘 지내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시고, 둘이 잘 만나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도 하셨던 것 같아요. 저는 너무 떨리고 긴장돼가지고.
이경: 하나는 그 자리를 빨리 끝내고 싶어 했어요. 앉은 지 10분밖에 안 됐는데 이제 가라고(웃음). 부모님들은 되게 반가워했어요. 어머니들끼리 덕담으로 인사하는 거 있잖아. 이렇게 젊어 보이세요? 그런 얘기로 서로 칭찬해주고. 하나가 아빠 닮았네 이런(웃음) 그냥 그렇게 여느 가족들 만난 것과 비슷하게
하나: 아니지, 사실 여느 가족들은 이렇게 안 만나잖아.
이경: 그치. 이성애 커플은 격식을 차리는 경우들이 많죠. 엄마 아빠가 바라는 것도 많고. 우리는 부모들이 바라는 게 없어요. 부모들에게 그 순간은 빨리 지나가고 싶은 순간이야. 편하게 만나도 다들 빨리 헤어지고 싶어 했던 것 같아.
웅: 그것도 있겠고, 두 분이 평상시 빌드업을 잘 해놓은 것도 있어 보이고요. 그럼 이경이 어머니랑 이모님 모시고 사북에 놀러간 김에 겸사겸사 만나자고 했던 건가요?
이경: 우리 계산으로는 그게 여행의 메인 이벤트였어요. 한 번은 얼굴을 보여줘야 된다. 근데 각 잡고 한정식집에서 만나면 얼마나 체할 것 같겠냐. 1시간 동안 밥을 먹어? 있을 수 없지. 그래서 마련한 자리가 그거였어요.
웅: 보통은 그냥 서로의 부모님한테만 인사드리고 마는 경우가 많잖아요. 제가 알기론 부모님들끼리 대면하는 건 또 다른 도전 같거든요. 결심하게 된 어떤 동기나 배경이 있나요?
이경: 저는 그때 기억을 분명히 하는데, 보통 가족 간에 이런 일을 만들어서 추진하는 경우는 99% 김하나 씨가 원하는 것이다.
하나: 아니~ 이제 강원도 사북에 놀러 가자. 왜냐하면 사북 좋잖아. 워낙 여행할 데 많고 이모님들 모시고 내가 살았던 곳에 모시고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렇게 갔는데 엄마 아빠 안 만날 수는 없잖아. 바로 집 앞인데. 그러니까 가는 김에 그래도 엄마 아빠를 봐야 된다. 인사는 좀 같이 했으면 좋겠다 그거였지.
이경: 안 갈 수도 있거든 사북에. 사북 말고 딴 데 갈 수도 있죠. 근데 사북 가자고 강력하게 제안을 하신 거죠. 나는 소극적인 사람이거든요. 김하나 씨의 용기 덕분에 끊임없이 나의 호기가 확장될 수밖에 없었다.
하나: 이모님들과 어머님 모시고 어느 곳에 살았는지 보여드리고 싶었지. 내가 얼마나 해맑게 자랐는지 보여드리고 싶었고 겸사겸사 부모님도 뵙고.
이경: 가족주의자(웃음)
웅: 어필을 하고 싶었던 거군요.
하나: 그냥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한테 이렇게 좋은 데가 많으니까 사북에 또 정선, 이렇게 딱 그 코스가 너무 좋으니까 한번 모시고 가고 싶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지.
그리고 내가 아는 데 모시고 가는 게 편하지. 모르는 데 모시고 가면 내가 운전하고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설명하기도 힘들잖아요. 이렇게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엄마 아빠도 이렇게 후딱 한 번 만나게 해드리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던 거고. 이번에 결혼식 때 상견례를 안 할 수 있는 이유가 그때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경: 맞아 그게 낫지 차라리
웅: 그런 장면들이 ‘모두의 결혼’ 영상에서도 뭔가 하나 부모님들께서 환대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여쭤본 거기도 해요.
하나: 거기 감독님들이 어머니 연기 너무 잘하신다, 연기왕이라고 그랬어요.
이경: 실제로도 가면 그렇게 반겨주세요.
웅: 그렇군요. 어쨌든 모두의 결혼 영상은 유튜브에도 걸려 있고 뭐 알 사람들은 다 아는 관계이기는 하죠. 주변에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어요?
이경: 나는 몇 명 있어요. 윤경이라고 장애인권운동했던 동료고 지금은 법률원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는데, 갑자기 메시지를 보내더니 영상 잘 봤다고 하더니 어머니하고 이경하고 똑 닮았더라는 거야.
하나 어머니를 우리 엄마라고 착각한 거지. 어쨌든 간에 다 잘 봤다고 얘길 해줬고, 심지어 누군가는 전광판에서 우리를 본 사람들도 있었어요. 지나가는데 갑자기 나왔대요. 내 주변에는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많이 봤다고 이야기를 했고. 우리 엄마한테도 일단 얘기를 했어요. 엄마가 갑자기 누가 봤다는 얘길 들으면 당황할까 봐 이런 거 찍었다고 하고 보여줬어요. 이모한테도 링크 보내서 보여줬더니 이모가 너무 잘 나왔다고 하는데, 엄마가 그때 나한테 조심스럽게 나중에 한번 물어봤어요. 그 전광판에 어디 걸렸냐고. 약간의 걱정을 하는 것 같긴 했어요. 누가 볼까 봐. 근데 겉으로는 뭐…
퀴어부부 잔칫날
웅: 그게 최근의 일이고, 이제 두 분이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죠. 사람들은 ‘결혼식’이라고 아는 행사를 하잖아요. 정식 명칭이 뭔가요?
이경: ‘퀴어부부 잔칫날’. 지금은 혼인 평등 결의대회처럼 되어가고 있어.
웅: 그 행사를 하게 된 동기가 있나요?
이경: 저는 욕구가 없었어요.
하나: 난 결혼식이 하고 싶었어. 널 만났을 때부터
웅: 그럼 이경은 해야겠다 결심한 계기가 뭐였어요?
이경: 결혼식이라는 걸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죠. 근데 부모님들한테 다 커밍아웃 하고 지내다 보니까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뭔가가 있었어요. 뭔가 벽 같은 게 있었고. 우리는 부부라고 얘기하고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친구처럼 느끼시지 않나 생각할 때도 있고, 그렇다고 대놓고 말하기에는 되게 어려운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결혼식을 한 동생 부부와 우리랑 거의 동시에 부모님이랑 같이 밥 먹은 적이 있어요. 가족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얘네들은 갑자기 가족이 돼버리고 나는 꾸준히 만들어 가야만 하는 느낌이 계속 드는 거에요.
하나: 그게 결혼식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가 레즈비언 커플이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얘네 가족들도 그렇지만 우리 집에서도 마찬가지로 느껴지는 게 있는 거에요.
우리 언니가 결혼하기 전에 배우자랑 한 4년인가 3년을 같이 집에 왔었어. 근데 그때 대하는 모습과 결혼 후에 대하는 모습이 정말 달랐거든요. 아마 결혼한 다음엔 이경을 대하는 모습도 조금 더 달라질 거라 생각해요. 내가 느끼기에는 그래요. 말하는 것도 그렇고 엄마가 예전에 이경을 대할 때 얘기했던 말과 지금 통화했을 때 느낌이 그 온도 차이가 난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결혼식을 하고 싶었고요.
또 다른 계기는 뭐냐면 우리가 이제 예전부터 여행을 가는 게 사실은 더 먼저 계획이 있었던 거에요. 2023년도 2022년도에 이제 캠핑카를 타고 세계여행 가자고 했을 때 그걸 신혼여행으로 삼고 싶었던 거죠. 작게나마 우리끼리 어떻게든 결혼식을 하고 그다음에 그걸 가지고 신혼여행으로 가려는 게 나의 첫 번째 플랜이었어요. 그게 제 생각과 의지대로 된 거죠. 나는 고집이 세니까(웃음)
이경: 하나가 하고 싶어 하는 건 결국 해줄 수밖에 없어요. 나는 김하나가 정말 너무 쉼 없이 계속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해가지고,
하나: 내가 하고 싶다기보다 해야 돼 해야 돼 해야 된다고!
이경: 너무 무섭다 저 집착이.(웃음) 내가 더 이상 피할 수 없겠구나. 결혼식을 끝까지 안 하겠다고 하면 나의 마음이 의심받는 느낌이 들었죠. 저는 기본적으로 일만드는 걸 싫어해요. 그래서 일단 알겠다고 했지. 이제 와서 조심스럽게 생각해보면 민망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 앞에 굳이 내가 부부임을 밝히고 지금까지 이러고 살았는데 도대체 무슨 예식이 필요한가. 결혼식이라고 하지만 퀴어들이 다양한 삶의 형태를 갖잖아요. 근데 그중에는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할 만한 상황과 조건이 안 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머릿속이 복잡해서 마음의 결정을 못한 것도 있었어요. 가족들한테 커밍아웃을 했지만 결혼식은 또 하나의 커밍아웃이잖아요. 그러니까 가족들이 우리가 배우자 관계로 살고 있다고 암묵적으로 인정한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식을 한다고 말하는 순간 내가 느끼기에는 되게 성애적인 관계로 우리를 인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야.
웅: 성애적인 관계는 뭐야?
이경: 그러니까 사랑하는 관계인 게 당연한데, 가족들은 편한대로 생각하는 게 있거든요. 그래서 동성 커플, 특히 두 여자가 사는 걸 자매같이 생각하시는 것 같고. 정겹게 같이 사는 느낌 있잖아요. 그런데 부부라던가 혼인 관계를 선언하는 건 이성 부부 같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죠. 이성애 관계하고 똑같다고 가족들은 생각할 것 같은데 그게 조금 민망한 거에요. 엄마한테 그 얘기를 한다는 게 좀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엄마하고 엄청 친하지도 않은데 또 이야기하려니까 저어되는 게 있었죠.
한편으로 가장 저어되는 부분은 결혼 실무였어요. 어떻게 초대할 거냐, 어디까지 불러야 하나. 결혼식이라는 게 생각만 해도 너무 골치가 아픈데 굳이 해야 하는가. 너무 골치 아픈 걸 감당하기에는 결혼식을 해서 스스로에게 의미 있다고 별로 생각이 안 들었던 게 몇 년을 갔던 것 같아요.
하나: 우리 엄마 아빠는 너무 좋아했어요. 당연히 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이경: 우리 엄마는 약간 올 것이 왔구나, 라는 느낌과 어쩔 수 없지 라는 체념, 회피할 때까지 회피해 보자는 태도가 초반에 다가온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한동안은 결혼이라는 말을 입밖에 못 냈어. 그러니까 내 마음이 동하지 않은 데에는 엄마의 반응도 있었던 거죠. 얘기하기 싫어하는 게 느껴지니까.
그러다가 세 달 전쯤에 드디어 본인 입으로 스스로 ‘결혼’이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웅: 얘기 들으면서 이경한테 궁금한 게, 이경은 결혼에 대한 부담을 계속 느끼면서도 계속 상황들에 부딪히면서 관계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해왔던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렇게 동거를 하고, 커밍아웃을 하고, 부모님들끼리 ‘상견례’하는 자리까지 마련한 건데, 두 분이 그냥 사실혼처럼 그냥 우리는 같이 사는 부부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갈 수도 있는데 이걸 하나의 예식으로 가져가는 건 또 다른 문제잖아요.
하나가 동거부터 혼인관계와 결혼식까지 간절히 원했다는 걸 너무 분명하게 잘 알고 있고, 그걸 또 끊임없이 어필을 계속했다고 하더라도 이경이 어느 순간 결심을 한 건지, 아니면 점진적으로 입장을 바꾸게 된 계기를 알고 싶어요.
이경: 진짜 하자고 결심한 계기는, 이렇게 얘기하면 좀 네(하나)가 섭섭할까. (하나: 얘기해봐) 약간 눈 딱 감고 그냥 결정한 그러니까 여전히 설득이 다 안 되고 있는데, 진짜 이유가 딱 그거 하나였어요. 내가 김하나를 진짜 아끼고 사랑하니까 여기까지 오는구나. 얘가 결혼을 너무 원하고 너무 하고 싶어 하는구나. 이게 그냥 하고 싶다고 졸라서 들어준다기보다는, 말로 설명하긴 조금 어려운데, 하나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기본적으로 용기 있는 애라고 생각하거든요. 용기가 있어. 계속해서 하고자 하는 것을 해왔는데, 그걸 꺾고 싶지 않았고 그걸 꺾기에는 나의 하기 싫은 이유가 하찮다, 약간 이런 느낌. 나는 하고 싶은 이유를 정확하게 못 찾았을 뿐이지 그렇다고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그런 게 있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조금은 너무 귀찮은 일을 내가 벌이는 게 아닐까, 이런 게 사실은 크기도 했고. 한 번도 내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나 단지 그거였어. 얘를 꺾고 싶지 않았어.
하나: 눈물이 나네. (울지는 않음)
이경: 하나가 행복한 걸 보고 싶었던 거지. 하고 싶으면 또 해야한다는 게 또 있었고. 하나가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알고 있고. 꺾이고 싶지 않은 마음, 자기의 존재 존재를 꺾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을 그냥 인정했어요. 그렇게 처음에는 다소 약간 거칠게 시작됐죠. 이 결혼은 선언이다. 우리 원 가족을 향한 어떤 레즈비언 부부의 거친 선언이다. 그래서 어쩔래, 할 건데, 부부인데, 뭐 약간 이런 느낌.
웅: 그러면 하나는 이경이 계속해서 결혼에 대한 요구를 미루거나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어떡하려고 그랬어요?
하나: 계속 얘기했겠지
이경: 등 떠밀리기는 했는데 나는 선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처음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선언이라도 해서 가족에게 인정받고 싶어요. 이런 욕구가 엄청 큰 건 아니었는데, 이게 인정이 안 될 이유는 뭔데, 그런 생각이 조금 더 있었다~
웅: 하나에게는 조금 원론적인 질문일 수도 있는데, 두 사람이 함께 살 수 있는 다른 관계들도 있잖아요. 그럼에도 혼인관계를 처음부터 찍어서 밀어 붙였던 이유가 있나요?
하나: 뭐가 있겠어요. 동거는 결혼을 위한 거고, 결혼이 짱이다. 짱이라기보다 어쨌든 혼인관계가 아닌 상태에서 같이 살면 불편한 것들이 있잖아요. 매번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우리 관계를 설명해야 되는 게 너무 귀찮고, 싫고, 누구한테는 설명하고, 누구한테 안 하는 것들이 싫었던 것 같아. 항상 나는 그냥 어느 순간부터 그냥 좀 편히 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해온 거고.
또 결혼은 그런 투쟁의 하나였던 것 같아. 나는 우리가 가족이라고 생각하는데 더 이상 어떤 가족이 있지? 이성애자 부부나 우리랑 똑같은데 왜 다르게 느껴질까? 이런 생각도 하면서, 결혼이라는 것도 한 번에 그냥 딱 알려버린 거죠. 해석은 너네들이 알아서 하고 우리는 이렇게 살 거야. 딱 그러고 나서는 조금 더 편해질 것 같아. 그래서 하는 것 같아.
사실은 내가 결혼을 꼭 해야겠다, 이런 결혼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근데 살아보니까, 살다보니까 (결혼)해야겠다고 확신하게 된 거지. 예전에는 결혼식이라는 게 되게 수치스럽고 혐오스러운 모습 중에 하나였어요. 내가 누군가와 결혼한다고 하면 여자랑 할 텐데, 아마 주변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하고 비웃을 거라는 생각을 했죠. 내 모습이나 이런 게 너무 창피한 거에요. 그래서 이런 결혼식을 한 번도 꿈꿔본 적이 없었어요. 당연히 난 안 할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못할 건 또 뭐야.
그리고 결혼을 안 하면 불편한 게 더 많고 하고 나면 좀 더 편해질 게 더 많단 말이죠. (결혼을 하면) 더 개선되는 관계들이 있을 거 같아요. 가족들도 마찬가지고. 결혼 안 하고 살다 보면 불편함이 계속될텐데, 이걸 한 단계 넘으려면 결혼식이라는 걸 해야 관계가 새로 열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래서 결혼식을 하는 거고요.
어쩌면 이것도 이경 만나고 나서 이경 엄마한테 커밍아웃하고, 얘 동생 결혼하고 나서부터 생겼던 건지 몰라요. 이거는 나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웅: 그럼에도 두 분이 준비하는 행사 이름이 결혼식은 아니잖아요. ‘퀴어부부 잔칫날’. 물음표 투성이고 어중간한 느낌인데(웃음) 배경이 궁금해요.
이경: ‘결혼식’이라는 이름이 맞을까 생각했던 건, 내 동생이 결혼식을 했는데 동생 와이프가 집에 오니까 갑자기 이제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고 얘기하는 거죠. 그건 내가 느끼는 거하고 너무 딴판인 거예요. 나는 그 사람을 본 지 얼마 안 돼서 아직은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지가 않는데 갑자기 가족이 됐대, 결혼식을 하니까. 그러니까 나는 그런 게 결혼식이라면 나하고 맞지 않겠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근데 행사 이름이 사람들을 혼란하게 하더라고요. ‘잔칫날’이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그럼 잔칫날은 뭐야?’ 이렇게 물어요. 무슨 문화제인 줄 알더라고. 특히 이성애자들이 더 헷갈려해요. 성소수자들은 우리가 다양한 형태로 웨딩을 할 수 있고 축하 의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이성애자 동료들한테 알릴 때는 결혼식? 잔칫날? 약간 알쏭달쏭해 하는 표정을 많이 보였죠. 그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하길 잘했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한테 제일 많이 물어봤던 것들 중에 하나가 신혼집은 어디야? 그걸 물어볼 거 꿈에도 생각을 못한 거예요.
웅: (웃음) 통상적으로 궁금한 부분이기도 하니까.
이경: 우리는 이미 살다가 그냥 세레모니만 하는 거잖아요. 이성애자 부부 중에 그런 사람들도 있긴 한데, 이게 공식에서 약간은 벗어날 수 있겠다 생각했죠.
그게 쉽지는 않아요. 결혼식 한다고 했을 때 하나랑 의견 일치가 안 돼서 최근까지도 엄청 투닥 거린 게, 혼인 서약을 무슨 내용으로 할까였어요. 나는 지금의 이 결혼은 우리가 지금까지 10여 년을 같이 지내온 그 시간의 결과일 뿐이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이 의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랬는데 김하나는 이제 지금부터 우리가 함께 잘 살 것이라는 약속하는 자리라고 얘기하는 거에요.
내가 그 약속은 지금까지 같이 지내왔던 시간이 믿음이 돼서 생긴 거지 갑자기 약속한다고 없던 믿음이 생기냐, 그걸 왜 남들 앞에서 맹세 하냐, 이런 거 가지고도 얘길 했죠. 그러니까 나는 이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당연한 게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모든 의미가 조금씩 어긋나 있구나 생각을 많이 했어요. 복장도 그렇고 뭐 하나 우리가 생각하던 게 딱히 없어요.
웅: 그 이름부터도 ‘퀴어 부부 잔칫날’이라고 하니까 결혼식이랑 거리를 두고 있다는 생각이 좀 들었고, 그러면서도 누가 뭐라 부르던 신경쓰지 않는다고 하는 태도를 보이지만 이름을 지으면서부터 오갔을 협상의 과정이 간단치 않았겠다는 생각도 들긴 했거든요.
이경: 그 협상이 아주 길고 지난했고, 그것 때문에 싸우기도 했던 거죠. 이게 협상의 결과예요. 김하나는 처음부터 결혼식으로 박아두고 싶어 했는데 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그럴 걸, 이런 생각도 해요. 업어치나 메치나 다 결혼식이라고 하는데. 그렇지만 ‘부부’하고 ‘잔칫날’이라는 말을 집어넣은 거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려는 행사의 상과 상황을, 그리고 욕망을 가장 잘 표현한 네이밍이 아닐까.
하나: 근데 우리만큼 부부가 결혼식이라는 걸 할 만큼 너무나 딱 떨어지는 부부가 없지 않나? 우리처럼 10년 살았으면. 내가 생각하는 결혼식이라는 건 이제 우리 평생 같이 할 사람이다, 그리고 이게 얼마나 축복된 일이야.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고 사람들한테 축하받을 일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내가 생각했을 때 결혼식이라는 걸 하면 우리만큼 적합한 인간들이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진짜 나는 얘 말고는 이제 다른 사람이랑 살 걸 상상을 못하겠거든.
이경: 내 스스로 잘 설득이 안 돼. 왜냐하면 내가 잘 살겠다는 걸 굳이 바쁜 사람들을 모아놓고 뭔 축하를 해달라고 하냐, 그런 생각을 많이 해. 그 얘기 하면서 하나를 정말 많이 많이 서운하게 했어요.
하나: 서운해요. 나만 하고 싶니.
이경: 그치. 그게 생각이 많이 바뀌었던 시간이 있는데, 그 이후로 일기를 썼어요. 나의 결혼 일기. 결혼에 대한 몇 가지 토픽을 글로 써놨어요. 메인 토픽 중에 하나가 청첩에 대한 거예요. 청첩을 열심히 했어요. 그거 하면서 좀 뜻밖의 마음가짐을 갖게 됐어.
일단은 옛날 옛적 20년 전에 학원 강사 알바하다가 만난 레즈 동생이 있는데, 걔가 퀴어 잔칫날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그날 애인이랑 놀러 온다고. 근데 그런 퀴어들이 친하던 안 친하던 많았어요.
그걸 보면서 내가 기반하는 퀴어 커뮤니티는 뭘까, 이런 생각을 좀 해봤고. 오히려 이성애자 동료들한테 힘을 많이 얻었는데, 그들이 생각보다 열심히 오려고 해요. 그렇기도 하고 생각보다 많은 이성애자 동료들이 엄청 기뻐하고 축하도 많이 했어요.
그들에게도 의식의 변화가 생기는 시간일 수 있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소식을 전하면서 더 많은 얘기를 하는 거죠. 다양한 걸 물어봐요. 그럼 너네는 옷은 뭐 입어? 부터 시작해서 엄청 궁금한 거죠. 그럼 누가 나와? 어떤 방식으로 해? 이런 걸 많이 묻고, 그들도 통상적인 예식을 벗어난 것들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물론 반응이 100% 호의적인 건 아니었지만, 그것마저도 괜찮다는 그런 생각을 했었고요.
웅: 저는 두 분이 행사를 한다고 할 때 이제서? 하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좀 더 정확하게는 식만 안한 거 아니었나?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예식(이렇게 부를 수 있다면)의 의도가 궁금했는데 들으면서 이해를 했습니다.
앞서 두 분이서 식에 어떤 의미를 둘 지 부딪혔다고 하는데요, 옆에서 보기엔 지나온 시간에 의미를 둔다고 하는 거나 앞으로 잘 살아가야겠다는 의미들이 크게 대립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야 당사자가 아니니까 어떤 맥락이 있는지 다 헤아리진 못하겠지만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두 분의 관계에 의미를 두는 사적인 예식으로서 결혼식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선언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공적인 의도도 다분해 보이거든요. 오는 사람들마다 목적도 다를 것 같고, 어떤 사람들이 오느냐도 되게 궁금하고, 아무래도 두 분의 같고 다른 의도와 목적이 있으니 이번 잔치가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돼요. 관련해서, 이 인터뷰는 잔치가 끝나고 한참 뒤에 나가겠지만, 어느 포인트에 집중해서 행사를 기획했는지 이야기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경: 원래 순서에는 없었는데 나중에 따로 모신 분이 이동환 목사님이거든요. 이동환 목사님이 축복 기도를 해주기로 했어요. 하객들을 생각하면 퀴어 측, 노동 측 정도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기독교 측이 있겠죠. (웅: 행진대오야?) 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니까 오히려 단순해졌어요. 퀴어의 결혼을 축하하러 멀리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 시간을 굳이 설명하지 않고 그냥 겪고 즐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해요. 그래서 설명을 최소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결혼의 의미가 어쩌고 이런 거는 딱히 많이 이야기 하지 않고 싶고.
그리고 이번에 청첩에 대해서 아까 이야기했는데, 퀴어의 결혼은 법이나 제도가 허용을 안 하잖아요. 그거 생각하면서 혼인 성명이 될지 뭔지 모르겠는데 좀 쓰고 있어요. 열심히 쓰면서 느끼는 거는 그런 법 제도보다 확실히 (설명하긴 어려운데) 사람들 간의 우애와 연대가 이만큼이나 앞서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혼인성명 전문
하나에게 편지를 쓴다면, 내 용기는 하나의 사랑에서 왔고, 이 자리는 그 덕분에 마련됐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경의 사랑 속에서 안정을 찾았고, 성소수자 친구들과 함께 하며 혼자가 아님을 깨닫고 용기를 키웠습니다.
우리가 함께해온 시간이 서약이라면 서약일 것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 관계는 꽤 단단합니다. 살다보면 흔들리는 시간도 오겠지만, 그조차 우리에겐 잘 지나갈 수 있는 힘이 있을 겁니다.
제도는 우리가 가족이 아니라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가족이라 합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가족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만큼 이렇게 당연한 결혼이 어딨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결혼식을 준비하려니 무엇하나 당연한 것이 없었습니다. 결혼식 이름짓기부터 준비, 의상까지 세상이 정해놓은 것들에 우리는 하나도 맞지 않았습니다.
성소수자 가족이 서로의 원가족과 섞이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꼈던 것도 사실입니다. 며느리인지 사위인지 헷갈리는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애써주시는 가족들에게 감사합니다.
동시에 우린 성소수자 친구들과 연결된 퀴어가족입니다.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지지와 돌봄의 포인트를 잘 아는 친구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뭐 하나 해주는 것 없는 세상에 살면서도, 끈질기게 우리 방식대로 서로를 의지했습니다.
때로는 연약하고 부족해서 무너질 때도 있었지만, 우리는 아픈 친구를 돌봤고, 늙어감을 걱정하고, 슬픔과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친구들의 온기 속에서 괜찮게 지내고 있습니다.
퀴어로, 퀴어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나에게 맞는 옷을 누구보다 잘 만들어 입고, 그 모습을 즐겁게 바라봐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모여 퀴어의 결혼을 축하해주는 여러분이, 그런 세상을 필요로 하는 이가 이렇게나 많다는 걸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한참 뒤쳐진 법제도보다 사람 간의 우애와 연대가 이만큼 앞서있다는 것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퀴어부부 잔칫날에 와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신 넘치는 축하를 잊지 않겠습니다.
김하나와 곽이경은 몸에 잘 맞는 옷을 만들어 입고, 생긴대로 재밌게 퀴어부부로 잘 살겠습니다.
나와 오랜 시간을 같이 해왔던 이성애자 동료들이 가지고 있는 환대의 마음이 설명 안 해도 느껴져. 그게 나한테는 좀 신기한 경험이었고, 그게 결혼식이라는 이름을 붙이던 붙이지 않던 크게 상관없구나. 이들한테는 그냥 곽이경이 행복한 날이구나, 내가 축하해 줘야지, 이게 많이 느껴졌어요.
준비 과정에서 그게 고맙고, 그리고 퀴어 커뮤니티에는 우리 곁을 떠난 친구들도 많잖아요. 그런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이 생각나고, 나는 장례든 결혼이든 흘러가는 삶을 살면서 겪는 어떤 한끗 차이의 이벤트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이상한 얘기를 했다가 하나는 그게 어떻게 한끗 차이인지 모르겠다고 했지만요. 어쨌거나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대체로 모이는 그 구성원이 비슷하잖아요. 다 비슷하고 그렇게 늙어가고. 이제 형들도 나이가 들면 섭섭한 것도 많아지는데 잘해야 된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죠. 지금의 제도는 우리가 가족이 아니라고 하는데, 퀴어들에게는 혼인의 범주를 넘어서 이런 잔치를 열고 관계를 서로 확인하고 지지해 주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자리,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기쁜 자리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곧있으면 여기동 선생님 환갑잔치도 우리가 해줘야 되고,(편집자 주: ‘퀴어부부 잔칫날’이 열리는 날짜에서 딱 일주일 후인 20일, 여기동 님의 환갑잔치가 열렸다. 이경은 행사를 기획하는 일원이다.) 나중에 저 형들 다 나이 먹어서 아프고 이러면 또 챙겨줘야 되고, 막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어.
웅: 하나는 이경이 이런 얘기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요?
하나: 얘는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 몇 번이고 이런 얘기를 하니까. 밥먹으면서도 하고. 그렇구나…하죠.
이경: 돌봄의 영역 안에 있구나. 우리는 항상 잊지 말자. 우리 둘만 잘 산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하나: 잘 살자 다들.
웅: 생각을 많이 하셨네요.
이경: 고민을 많이 했죠. 너(하나)는 왜 얘기 안 해?
하나: 동의합니다. 생각이 없었어. 비슷하지 뭐.
확장된 결혼의 의미
웅: 그럼 하나는 이번 행사에서 신경을 쓰거나 기대하는 점들이 뭐가 있어요?
하나: 난 이랑님이 오는 게 너무 좋아요.
이경: 이랑님은 약간 믿져야 본전이다 생각했지. 하나가 엄청 좋아하는데 혹시 되려나 해서 연락드렸던 거거든요. 안 될 것 같지만 후회하지 말고 연락이나 해보자 했는데 오신다는 거야. 그래서 이랑님이 안 되면 그냥 축하공연 없이 가자고 생각을 했죠.
저는 이동환 목사님을 초대한 점을 얘기하고 싶은데, 목사님이 그날 많이 힘을 받으면 좋겠어요. 그 자리는 목사님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여 있을 거잖아요.
웅: 지금 하는 말씀은 집회와 문화제의 어디쯤인 것 같아요.
하나: 저는 집중해야 되는 건 우리의 혼인 서명과 딴 딴딴딴~ 같이 식장에 입장하는 순간인 것 같아요. 나머지는 그냥 공연이니까.
이경: 이번에 제일 기대되는 손님은 우리 엄마 고교 동창이 와요. 엄마한테도 우리 결혼은 본인의 커밍아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이 자리가 그런 면에서는 효용성이 또 있구나 생각이 든 게, 엄마도 얘기할 계기가 딱히 없었는데 마음이 급해진 거지. 그래서 삼촌한테도 얘기하고
하나: 그렇게 친척들도 다 오시고
이경: 동창 분이 엄마의 마음을 많이 먼저 열게 해줬죠.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많이 해주셨어요. 얼마 전에도 그 동창분이 엄마한테 이동환 목사님 링크를 보내면서 모금에 동참하라고 했대요.
웅: 어머님 동창분도 조직가시네.
하나: 우리가 부모님한테 커밍아웃하면 그때부터 엄마 아빠도 세상에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거 같아요. 그분들에게도 새로운 삶이 열리는 것 같아. 이번 결혼식에 우리 아빠 친척들이 있거든요. 아빠의 셋째 형이지, 나의 셋째 큰아버지, 85세 되신 분이 오시고 그 자녀분들도 오니까.
웅: 난 이경이 한끗 차이라는 표현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가는 게 장례식에 올 수 있는 사람들이 다 오는 느낌이 들긴 했어요. 현장에서 직접 인사를 나누지 않더라도 한 공간에 생애를 거쳐 간 이들의 어색한 만남들이 생기잖아. 당신들이 몰랐던 그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되는 것도 그렇고요. 또 하나는 결혼을 한다고 선언하면서 가족에게 또 다른 삶의 국면이 열리는 부분은 HIV감염인이나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가족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이해시키는 과정과도 비교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어떻게 생각해요? 아까 장례랑 결혼을 비교했을때 살짝 떨떠름해 보였는데. 지금 한마디 해요. 그래야 네 찝찝함이 여기 남을 거야. (웃음)
하나: …동의할게요.
이경: 나는 궁금한 건 있었어. 행성인은 우리 결혼식에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어요?
웅: 개인 결혼식에 공식 입장이라고 할 게 있나… 저로선 그냥 오랫동안 알아온 이들이 새삼 결혼식을 한다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들으니까 ‘새삼’은 빼도 좋겠구나 싶었고. 그건 두 분을 아는 다른 동료들도 그럴 거에요.
다만 최근에 행성인을 찾는 회원들 중에서는 이경-하나를 모르는 분들도 있잖아요. 2017년 이전에 촛불집회나,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 앞에서 ‘인권을 반반으로 나눌 수 있습니까’ 라고 얘기했던 것들 말이죠. 2010년엔가 이경이 여성의날 집회때 무대에서 ‘성소수자에게 좋은 것은 여성에게도 좋다’고 이야기한 건 이미 까마득하지만(웃음) 촛불집회만 해도 벌써 6, 7 년 전 이야기가 됐죠. 그런 활동을 공유하면서 연결을 넓히면 좋겠다는 생각은 막연하게 들어요. 보통은 장례식 같은 데서 많이 약력을 이야기하지만, 조사 말고 경사에도 좀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이야기하면 좋겠어요. 꼭 결혼식에 집어넣지 않더라도.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생각이 났던 건 그리고 하나의 결혼의지(웃음)에 대해 이경이 결혼의 의미를 정리하는데 품을 많이 들였다는 인상이 들었어요. 그냥 결혼, 가족과 가족의 결합 정도로 닫아두지 않고 연결의 의미를 붙여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행사 이름도 ‘잔칫날’이라고 지었구나. 처음에 혼인 선언을 얘기했을 때는 이건 결의 대회인가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얘기 들어보니까 님들의 결혼식은 조직 대회였지 싶고.(웃음)
하나: 나는 그냥 결혼식만 하면 됐는데 말이야.
이경: 나 손깃발도 주문했어.
하나: 이경 하고 싶어 거 다 해. 이렇게 6개 기둥에 무지개 휘장도 달고.
이경: 프라이드 웨딩에서 이번 예식을 기획해주는데, 무지개 너무 많이 넣으면 정말 싫다고 하지 말라고 하다가 포기했어. (웃음) 지금은 그냥 내가 하고 있는 게 너무 좋아요.
선배들한테 제일 많이 들었던 얘기는 정말 별걸 다 한다, 그러면서도 자기한테 얘들 결혼하면 연락 안 하려나 신경은 쓰였다는 거에요. 다들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웅: 이번 행사는 서강대 곤자가 플라자에서 하죠?
이경: 맞아요. 근데 사람들이 저녁에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더라.(17시 30분에 했음) 다들 점심인 줄 아는 분들이 많고.
웅: 결혼식은 보통 그때 하니까 식사시간 전후로 끼고서.
이경: 그래서 예식장 선생님한테 얘기했어요. 테이블에 세팅하는 주류랑 음료를 원래 까는 규모의 두 배로 깔아달라고. 어차피 많이 와서 먹을 거니까 한 번에 한 방에 빨리 그냥 많이 깔아달라고.
신혼여행
웅: 아까 잠깐 말씀하기는 했는데, 신혼여행을 준비중이죠. 신혼여행이라는 이름도 좀 재밌다.
이경: 기념 여행이에요.
하나: 10주년 여행이 아니라 신혼여행이지. 우리 신혼이잖아.
이경: 이게 신혼이야?
하나: 신혼여행 딱 예쁘잖아.
웅: 남다르게 준비하고 있다는 걸 오랫동안 들었어요.(웃음) 인터뷰에서도 조금씩 얘기를 나눴는데 어떻게 계획하고 준비하고 있는지 들려주세요.
하나: 우리가 2020년도에 캠핑카를 만들었어요. 둘이서 직접 만들었죠. 원래 계획은 2022년도에 가는 거였는데, 코로나 터지면서 못 갔거든요.
이제야 가게 됐는데, 일단은 블라디보스토크로 들어갈 거에요. 3월달에 가서 러시아를 관통해서 유럽으로 갈 거고, 유럽에서 여기저기 여행하다가 다시 블라디보스토크 통해서 다시 오는 거지. 그게 한 7개월 정도
웅: 준비하는 것도 일이겠다.
하나: 이제 캠핑카 내부를 손보고 있어요. 안전하게 가려면 차도 한 번 더 점검할 거고 타이어도 교체해야 되고 이것저것. 전기 장치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돼요. 식 끝나면 본격적으로 차에 대해서 점검해 봐야지. 시간이 금방 갈 것 같아.
웅: 어떤 루트로 갈지, 국경을 통과할 때 무엇을 준비해야 되는지도 준비해야겠네요.
이경: 차차 해야죠. 루트는 크게 밖에 못 잡았는데, 일단 결혼 사업의 실무가 너무 빡세요. 그래서 거기까지 신경을 못 쓰는 거지. 13일에 식 끝나면 열심히 준비해야죠. 루트는 정말 딱 그거밖에 안 돼 있는데, 유럽에서는 비자 상 3개월만 체류할 수 있어요. 그 시기가 유럽의 프라이드 퍼레이드 시즌이랑 겹치니까 이제 어딜 갈 것인가 정해야죠. 일단은 한번 가보고 싶어요. 행성의 깃발을 고이 넣어서 갈게요. 차기 국제연대상을 노리며…
웅: 여행경비는 축의금에서도 해결하나요?
이경: 지금 예상이 잘 안 되는데 내가 처음에 이제 축의금을 걷는 게 마음에 걸려요. 편하게 오셔야 되는데 사람들이 ‘축의금을 받지 않습니다’ 내거는 건 세계의 부자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하더군요.(웃음)
하나: 결혼식도 돈이 엄청 들어가요. 다행히 이경이 유급 휴가잖아요. 그래서 나오는 돈이 있으니까 빚을 좀 져야겠죠.
웅: 이 여행도 오래전에 준비하지 않았나요? 어쩌다 보니까 되게 부대 행사 같은 느낌이 돼 버렸네.
하나: 원래는 만나고 나서 얼마 안 됐을 때 세계여행을 가자고 얘길 했어요. 그래서 배낭도 샀지. 60리터짜리 배낭 메고 여행 가자고 했는데 캠핑카 만들고 유라시아 가자고 또 바뀐 거죠. 캠핑카 만들고 여행하려고 하니까 배낭 여행을 계획했던 것보다 예산이 더 많이 느는 것 같아.
이경: 레즈비언 캠퍼들이 해외에도 많아요. 엄청 많아. 게이들은 캠핑 잘 안 하나?
웅: 캠핑 좋아하는 게이들도 있겠죠? 근데 저나 주변 분들 보면 호텔 가더라고요.
하나: 캠핑카로 각국의 레즈비언들을 만나보자 이런 것도 있어. 각국의 레즈바를 꼭 가자.
이경: 레즈비언 캠퍼들을 만나고 싶은 그런 마음도 있어요.
웅: 여행의 스케일이 큰 만큼 여행기 같은 후기를 남기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들도 어느정도 생각할 거 같은데, 혹시 여행을 두 분의 경험으로 간직하지 않고 여행기로 남길 계획 같은 것도 있을까요?
하나: 책을 쓰고 싶어요. 사진은 이경이 잘 찍으니까 사진 찍고 글은 이경이랑 내가 쓰고. 유튜버를 하고 싶긴 한데
이경: 유튜브는 아닌 것 같아. 그건 관종력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할 수가 있는데, 둘 다 그런 스타일은 못 돼가지고.
하나: 그래도 아까우니까 찍고 편집해서 뭔가 올리기도 해보려고 노력은 해볼 것 같은데, 어쨌든 글은 쓸 것 같아요. 계속 저장해 놓고 갔다 와서 한 권의 책은 남기지 않을까요?
웅: 결과물에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아요. 이게 주객 전도되기가 쉽거든.
용기와 하나님의 응답
웅: 이제 거의 이제 마무리가 되어 가는데요. 두 분은 1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만났고, 앞으로 더 많은 시간들이 지나갈 텐데 나에게 상대는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해주면 좋겠어요. ‘ㅇㅇ은 나에게 ㅇㅇㅇ다.’
하나: 이건 진짜…아무리 생각해도 없어. 나에게 너는
이경: 나는 있는데. ‘나에게 김하나는 용기다.’ 내가 용감해질 수 있게 하고 하기 싫은 것도 하게 만드는
하나: 그럼 나는 ‘나에게 이경은 하나님의 응답이다.’ 내가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
웅: 나쁘지 않은데? 좋습니다. 결혼식도 하고 여행도 다녀오는 이야기까지 들었는데요. 이후에 생각해 놓은 계획 같은 게 있나요?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이라든가.
하나: 여행까지 다녀오면 진짜 많이 바뀔 것 같아요. 지금은 쉬고 있고 갔다 와서 무슨 일을 할지조차 모르겠거든요. 흘러가는 삶이 세워질텐데, 계획은 하나도 없어. 그냥 이경이랑 잘 살아야겠다 이런 거지.
이경: 저는 10년 일하고 안식휴가를 가는 거니까, 이제 갔다 와서 뭘 할지는 조금 열어놓으려고요. 민주노총에 계속 있을지, 아니면 뭔가 새로운 걸 한번 해볼지, 아직은 열려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10년 일하면 민주노총을 나와야겠다는 마음이 셌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생각하자는 마음이 들었어요. 최근에 제가 (청첩장 전달하려고) 성소수자 단체들, 활동가들을 찾아갔잖아요. 간만에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니까 되게 재밌더라고요. 내가 모르는 이슈도 많고 다시 호기심이 생겨서 퀴어 운동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예전보다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웅: 하나는 운동할 생각 없죠?
하나: 없어요. 저는 1가구 1 활동가를 주장합니다. 활동가를 보필할 거에요.
웅: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 독자들 중에는 행성인 회원도 있고 그냥 검색해서 얻어걸려서 오는 사람들도 많고 가끔 언론인들도 찾아오는데요. 그런 모든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남겨주세요.
하나: 나는 이 결혼식을 하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게 드러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되게 컸어요. 더 많이 드러내고,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은 드러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근데 결혼식을 막상 하려니까 진짜 쉽지가 않더라고요. 돈도 돈이고 관계도 관계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다행히도 운이 좋고 결혼식이라는 걸 할 수 있는데, 이제는 드러내고 싶은 이유보다는 그냥 하고 싶은 사람들은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이경: 나는 요즘에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없는데요.(웃음) 이 행사가 도대체 나의 삶에 어떻게 남을까 기대가 돼요. 잔치에 오는 사람들한테 재밌는 날이었으면 좋겠고, 앞으로는 크게 별스럽지 않은 행사가 되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우리가 하나의 사례를 제공하기를 바라고요. 이런 식으로 한 사람들도 있었다.
웅: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