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인 활동

[활동가 연재] 상임활동가의 사정

행성인 2024. 3. 25. 13:03
기획의 말

2024년 한 해 동안 '상임활동가의 사정' 연재를 시작합니다. 행성인 네 명의 상임활동가들은 종횡무진하며 단체 안팎에서 활동을 하는데요, 한 달 동안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무엇을 보고 어떤 것들을 고민하고 있는지 함께 만나봅시다. 

 

 

지오

 

요새 도시락 싸는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반상근으로 전환한 이후 점심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는데요. 물론 도시락을 싸는 날이 고작 일주일에 한 번 정도에 불과해요. 재미라고 하지만 대단한 반찬이랄 것도 없어요. 소시지와 김치, 두부부침과 메추리알 조림 정도지요. 도시락을 맛깔나고 예쁘게 싸는 방법들을 소개하는 유튜브도 많지만 저에게 재미는 도시락을 싸는 행위 자체에 있어요. 밥을 담고 그릇 크기에 맞춰 찬을 담아 오래된 보온 도시락 통을 들고 나오는 일, 이 작은 과정이 저 자신을 돌보는 아주 중요한 일처럼 느껴져요. 

 

예전에는 나를 위한 일이라고 하면, 영화관이나 미술관에 가는 문화생활이나 여행같은 것들을 떠올렸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저를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샤워를 마친 후에 잠자리에 든다거나, 도시락을 싼다거나, 화장실 청소를 하는 등의 아주 일상적인 습관이나 틀에 박힌 일들 말이지요.

 

지난달 체제전환운동 포럼에서는 많은 주제들이 돌봄과 연결되었어요. 그만큼 최근 돌봄이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돌봄은 구체적이고 사사로운 일상에 닿아 있고 이런 것들을 나누는 과정 또한 서로에 대한 돌봄을 감각하는 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자기돌봄이라고 할 때 어떤 일들이 연결되나요?

 

 

 

오소리

 

최근(이라지만 이것도 벌써 4년 전…) 동성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송을 시작하고부터는 종종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나는 지금 활동가인가 당사자인가… 물론 나 말고도 성소수자 운동의 활동가들은 대부분 성소수자 당사자이기 때문에 나만의 고민은 아니겠지만, 이게 소송 당사자가 되어보니 또 다르다.

 

활동가로서 인터뷰하거나 발언할 때는 ‘오소리’라는 활동명을 사용하고 흔히 말하는, ‘꿘 사투리’를 자주 쓴다. 이를테면, “좌시하지 않겠다.” 라든가… “규탄”하고 “촉구”하며 “투쟁”한다든가… 반면 소송 당사자로서 활동할 때는 일단 본명을 사용한다. 조금 더 실재하는 인물의 이야기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이고, 그리고 말투가 달라진다. 둥글둥글하고 말랑말랑해진 달까… 단어 선택도 일상적인 단어를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작년 가족구성권 3법 발의 기자회견에서 ‘혼인평등 당사자’로서 발언할 때 “동성혼 법제화로 무너지는 나라는 없습니다. 불행해지는 사람도 없습니다. 단지 행복해지는 사람이 늘어날 뿐입니다. 행복을 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함께해주세요.“ 라는 발언을 했는데, 만약 활동가로서 발언했다면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누구나 동등하게 행복해질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역시 기본적인 인권인 행복추구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국회가 제 역할을 다할 것을 촉구합니다.”라고 말이다. ‘행복’ 키워드 하나를 가지고도 이렇게 달라진다…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꿘 사투리가 튀어나오고 해서 조금 애를 먹기도 했는데, 이것도 하다 보니 적응이 되더라. 예전보다는 쉽게 활동가↔당사자 스위치를 바꾸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당사자로서 한 활동 소식을 행성인 채널을 통해 내가 직접 전할 때 끝에 가서 주어가 본명에서 활동명으로 바뀐다거나(…) 시점이 3인칭에서 갑자기 1인칭으로 바뀐다거나(…) 하는 식으로 꼬일 때가 종종 있긴 하다. 그런데 뭐, 그렇게 크게 문제될 건 없다. 작은 해프닝 정도로 넘길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런데 그걸 이렇게 길게 얘기하고 있는 건, ‘상임활동가들의 사정’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그냥 별거 아니더라도 최근 오소리의 사정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행성인 상임활동가 오소리는 그냥 이렇게 활동가로서, 때로는 당사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남웅

 

지난 주말 체제전환대회를 다녀왔다. 어린이대공원이 지근거리에 있고 마침 같은날 야외에서 도그쇼를 하고 있다. 전환이고뭐고 쨀까…행사장 바로 앞까지 몇번씩 땡땡이의 유혹이 들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입장- 체제전환대회 같은 거 하라고 만들어놓은 듯한 층고 높은 개량 창고(아마도)의 대기가 생각보다 산뜻했다. 공간 연출도 힘을 준 게 보였는데, 가운데 무대가 놓인 아레나 형태의 중앙집중형 공간 주변에 숙의 토론을 유도하는 원탁들을 홀 전체에 고루 배치한 연출이나, 비엔날레 전시장에서 볼법한 걸개와 선전물의 구성이 지루함을 깨고 집중과 이완을 안배한다. 당장의 체제전환에 앞서 일단 반도의 ‘꿘’스러운 디자인만큼은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십분 알겠다. ‘육영수의 땅에서 체제전환을 외친다’고 의기양양하게 누군가 뱉은 한문장은 조금 꿘같았다.

 

공간부터 대놓고 분위기를 부러 띄우는 모습에 기운이 난다. 어차피 여기에 온 다른 사람들도 나 못지않게 어색할 것이므로 모르거나 가끔 만나 데면데면한 활동가들 속에서 긴장하지 않는 게 속편하다. 나눠준 리플릿이 가벼워서 부담을 덜었고, 오자마자 종이배를 접는 것도 (4.16 퍼포먼스를 위한 준비였다) 산뜻한 시작을 알린다. 프로그램도 무겁지 않았다. 하긴 체제전환이 제일 무거운데 다른 것들까지 무거우면 힘들지.. 체제전환은 나만큼 다른 사람들도 감잡기 어려운 소재다. 그렇다고 누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체제전환 이런거다 하고 자신만만하게 얘기하면 그사람은 십중팔구 약을 파는 게 분명하다. 

 

숙의토론을 위해 마련한 질문과 퍼실리테이터의 진행이 과감하지 않고 사려깊었다. 덕분에 내가 속한 조에서는 허황된 이야기가 곧잘 나오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역과 의제마다 편차는 있지만 어느정도 정세에 환멸을 느끼고, 운동에 좌절을 경험하고 있음을 공유했다. 체제전환에 호기심과 냉담함을 가지고 있는 건 나뿐이 아닌 것 같아 외려 안심 되었다. 이미 시장자본주의가 제공하는 극단의 편의와 쇼츠단위의 쾌락에 쩔어버렸다는 고백을 했고, 저쪽에서는 기금에 운동이 포획되어버렸다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물론 반성의 장인들이 나눈 고백은, 전환을 실천하려면 모순에 직면해야 함을 주장하기 위한 빌드업이다. 현장에서 열심히 서명전을 하는 지역활동가들도 같은 조에 있었는데, 지역 주민을 먼저 조직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에 나름의 울분이 슬쩍 비치기도 했다. 

 

체제전환이 이토록 어려운 건 당장 각이 나오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만한 힘을 내는데 대한 부담도 있어서다. 그러니까 사회를 변혁하는 운동도 품과 마음이 드는 작업인지라 치이고 좌절하며 내부에 부정성을 품는다. 운동의 정치세력화라는 선언은 그 자체로 설레게 하는 무언가 있지만, 적어도 체제전환이 핍진성을 갖기 위해서는 이 냉담과 피로와 좌절을 껴안아야 한다는걸 체감했다는 점에 행사는 나에게 반 이상은 성공했다. 연결과 소통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연결되는 건 부정의 경험과 감각일 것이다. 설령 그것이 불만 대잔치일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불만대잔치로 끝날 수도 없다. 여기 이미 피로와 환멸에 찌든 훌륭한 활동가들은 수습과 정리의 대가이기도 한지라 자신의 부정적인 시야까지도 직시하면서 털고 일어설 태세를 취하며 다시 체제전환을 위한 이야기로 돌아온다. '지금 당장, 하지만 급하지 않게'(워딩은 다를 수 있다)의 긴박에 곧장 이어지는 이완은, 이미 운동사회도 변화를 위해 내부의 녹록치 않은 실정을 끌어안고 있음을 환기한다.  

 

 

2부 공연에서 이형주의 노래에 빠져들었고, 분위기를 고무시키려는 중앙무대의 퍼포먼스에 성심으로 박수쳤다. 요즘은 운동 리듬 비수기라고 자체 진단을 하는 중인데, 그래서인지 누가 같이 힘을 내자고 엉뚱하고 이상한 아이디어를 내도 찬물은 끼얹지 말자는 게 신조가 되었다. 역시 나만 그런 건 아니다. 체제전환 정치대회 조직위원회가 ‘체제전환 조직위원회’로 이름을 바꾸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에서 조용히 곁에서 나온 소곤거림 - ‘단체 또만들어요?’ 이 날 혼자 제일 터진 한마디였다.

 

 

호림

 

자차 운전자가 된 지 이제 막 1년이 조금 넘었다. 작년 1월 애인이 타던 차를 넘겨 받아 ‘내 차’가 생기기 전까지의 운전 경험은 6년 전 미국에서 지낼 때 몇 개월 운전을 한 것이 전부였으니 이제 겨우 왕초보 딱지를 뗀 초보 운전자다. 그래도 지난 1년 약 10,000km를 타는 동안 딱지 한 번 한 떼고, 상대방 100% 과실의 경미한 사고만 한 번 있었으니 제법 이 새로운 교통수단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차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도, 지금 자차 운전 생활에 만족하는 이유도 모두 행성인 활동 때문이다. 외부에서 여러 일정을 소화해야 할 때 좀 쉽고 편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면 좋겠다, 일정에 쫓기거나 혹은 너무 늦은 귀가에 지쳐서 택시탈 일이 이렇게나 많다면 그냥 내 차가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야외에서 열리는 집회나 행사에 부스를 낼 때나 사무실이 아닌 공간을 대관해서 행사를 진행할 때 싸들고 다녀야 하는 수많은 짐을 편하게 싣고 옮길 수 있으면 좋겠다… 

 

마침 애인이 넘겨 준 차는 소형 SUV에 하이브리드 모델이라 여러모로 활동가 라이프스타일에 최적이다. 이게 다 들어갈까 싶은 부피의 짐도 뒷자리를 접으면 너끈히 실을 수 있다. 실제로도 지금까지 뒷자리에 사람을 태운 적보다는 바리바리 짐을 실었던 일이 훨씬 많다. 연비도 좋고, 공영주차장 50% 할인도 되니 비교적 유지비도 덜 드는 편. 그래서 애인은 가끔 내 차를 탈 때면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온갖 활동 관련 짐들을 보며 이 차가 제 할 일(?)을 잘 하고 있다며 뿌듯해 한다.

 

최근 발견한 자차 생활의 장점은 조금 아이러니하게도 운전을 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휴식이라는 것이다. SNS와 메신저, 이메일 등으로 오가는 각종 뉴스와 메시지 등 아무튼 온갖 활자로부터 잠시 단절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보이는 것이 삭막한 도로일지언정 주변 풍경에 눈을 돌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 물론 (특히나 ‘드라이브’가 아닌 출퇴근 및 이동을 위한) 운전을 진정한 휴식이라고 할 수는 없고, 제대로 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는 있지만, 유난히 숨차게 바쁜 시간을 보내는 요즘이라 그런지, 운전하는 시간이 그나마의 쉼이다. 오전에 비가 내린 후 오랜만에 하늘이 맑았던 오늘도 출근길 강변북로에서 스치듯 본 개나리와 퇴근길 세피아 톤의 소월로 덕에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