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지향 · 성별정체성/트랜스젠더

[트랜스가시화주간 기획 ] 트랜스젠더를 좋아해주실 수 있나요?

행성인 2024. 3. 25. 16:28
3월 31일은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입니다. 미디어TF에서는 가시화주간을 맞아 행성인 트랜스젠더인권팀원들의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팀원들은 차별에 맞서고 성별이분법적 제도를 변화시키는 투쟁뿐 아니라, 사회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며 경험하는 일들을 나눕니다. 
장소를 구하는 일부터 사람을 만나는 일까지, 트랜스젠더는 자신들을 드러낼 수 없도록 만들어진 사회에 너무 쉽게 돌출됩니다. 매 순간 숨쉬는 일까지도 신경써야만 할 것 같은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는 그저 힘들게 살아내고 있다는 증언 너머 함께 지역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떤 변화를 만들어갈지 대화하자고 제안합니다.   

 

 

시현(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 인권팀)

 

이미지 출처 : irasutoya.com

 

 

 

트랜스젠더가 되기 전에는 이렇게나 외로운 줄 몰랐습니다. 대충 트랜스젠더가 연애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제가 그렇게 사람을 많이 가리는 편도 아니에요. 저는 팬 로맨틱/섹슈얼로 정체화하고 있거든요. 연애 대상도 넓은 편입니다. 하지만 저를 연애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폭은 좁다고 느껴요.

 

저의 상황을  이렇습니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데이팅 앱을 통해서 데이트 상대를 많이 찾잖아요? 헤테로 섹슈얼을 위한 어플 뿐 아니라 게이, 레즈비언들을 위한 앱들도 많지요. 팬 로맨틱/섹슈얼인 저는 이성애 동성애 가리지 않고 앱을 깔고 이리 저래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늘 매칭되고 대화를 거는 건 사기 계정뿐이었어요. 자기가 해외에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2주 정도 격리 상태라 자신의 통장에 접근하지 못해 돈을 출금할 수 없는 상태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알려주는 사이트에 가입해서 이래저래 하면 사례하겠다...비슷비슷한 수법들이었어요. 얼마나 많이 겪었는지, 이제 매칭하기도 전에 사기 계정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요.

 

가끔 진짜 사람과 매칭이 되어서 이야기를 이어간 적이 있는데, 전부 트위터 친구가 되었답니다. 저를 진지하게 데이트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매우 매우 매우 드물었어요. 그래서 몇 가지 실험을 해본 적이 있어요. 이성애, 동성애 앱에서 각각 트랜스젠더임을 숨기고 데이트 상대를 찾아본 것입니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대화상대를 찾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데이트 날짜를 잡을 때 트랜스젠더라고 고백했더니 다들 말해줘서 고맙다고, 하지만 “진짜” 여자가 좋다면서 파투 내버렸답니다. 그 뒤로 상처받고는 더이상 실험을 하지 않았어요.

 

그럼 시스젠더를 원하는 사람이 아닌, 트랜스젠더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실 수 있겠습니다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네이버 또는 다음 카페 어딘가에는 트랜스젠더여성 또는 CD(Cross Dresser, 크로스 드레서)와 러버(트랜스젠더를 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속칭)가 모이는 곳들이 있습니다. 이들 커뮤니티에 가면 정말 트랜스젠더 여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어딘가 하나씩 나사가 빠진 느낌이에요. 대화하다 보면  금방 저를 한 명의 인격체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단순히 성욕을 풀기 위한 도구로 바라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유일하게 트랜스젠더 여성을 여성 취급해 주는 곳이라 가끔 생각이 나곤 하는데, 또 물건 취급당할 걸 생각하면하면 짜게 식는답니다.이래저래 온라인으로 데이트 상대 찾는 것부터 곤란합니다. 저는 어디서 데이트 상대를 구할 수 있을까요?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말하면 대개 동성애자들은 성적지향만 말하곤 합니다. 자신이 시스젠더인지는 생략한 채로요. 트랜스젠더에게는 이것마저 차별로 느낄 수 있지만,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흔히들 말하는 성적지향에는 대체로 트랜스젠더가 배제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체로 그들의 성적지향은 시스젠더 여성 또는 시스젠더 남성인거죠. 저는 여기서 또 하나의 차별의 문턱을 느끼곤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고민지점이 하나 더 생겼어요. 그렇다면 트랜스젠더 여성, 트랜스젠더 남성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언어가 하나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어요. 속칭으로 부르는 '러버' 말고 좀 더 버젓한 분류의 단어로 말할 수 있도록요. 찾아보니 역시 그러한 단어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트랜스팬(Transfan, 트랜스젠더에게 끌리는사람), 스콜리오섹슈얼(skoliosexual,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젠더퀴어에게 끌리는 사람), 지네미메토필리아(gynemimetophilia, 트랜스젠더 여성에게 끌리는 사람), 안드로미메토필리아(andromimetophilia, 트랜스젠더 남성에게 끌리는 사람) 등.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지만요.

 

좀 더 생각하면 성적지향에 대해서 더 세세한 분류가 필요하지 않겠느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 젠더 표현이 여성인 사람을 좋아하더라도 남성기를 가진 트랜스젠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반대로 젠더 표현은 남성이지만 여성기를 가진 트랜스젠더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요. 이렇게 여러 조건들을 조합하다 보면 성적지향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다는 걸 깨닫게 되어요.

 

그렇다면 단순히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로 나눌 것이 아니라 더 세세한 구분 법으로 나누어서 말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제가 처음부터 팬 로맨틱/섹슈얼인 것은 아니었어요.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기 이전에 저는 단순한 시스젠더 남성 이성애자로 정체화하며 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트랜스젠더 여성이 되면서 고민이 시작된 거예요. 저는 그동안 남자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강동원 같은 멋진 미남자가 들이댄다면 과연 거부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봤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거예요. 또 트랜스젠더 남성, 여성이 연애 상대라면 어떨지 하고 생각해  생각해 봤는데, 그것 또한 나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단순히 양성애자도 아니고 좀 더 포괄적으로 쓸 수 있는 팬 섹슈얼이라고 정체화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시스젠더 남성 이성애자에서 트랜스젠더 여성 팬섹슈얼로 변화하게 되었답니다. 짜잔.

 

여러분도 성적지향에 대해 더 탐구하고 고민해 보시면 바뀔지 누가 알겠어요? 성소수자의 퀴어 정체성은 항상 고정적이지 않고 늘 유동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혹시 알아요? 여러분 중 어떤 분은 트랜스젠더가 성적지향에 포함될지도?